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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편지 쓰는 시간/옮긴이의 말

옮긴이의 말

by 북인더갭 2016. 1. 13.

니나 상코비치는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벨라루스 이민자 2세로 태어났다. 이 책에서 소개되듯이 그녀의 아버지는 독일과 소련의 전쟁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정착했으며 집안의 ‘유일한’ 대학생으로 고등교육을 받았다.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나 터프츠대학과 하버드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후 공공기관의 변호사로 일하던 상코비치에게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계기는 큰언니 앤 마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상코비치는 큰언니의 죽음 이후 그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365일 동안 하루 한 권의 책읽기라는 다소 무모하고 대담한 과제를 스스로 기획해 읽은 책의 서평을 자신의 블로그에 매일 빠짐없이 올렸다. 또한 당시의 기록들과 그 과정에서 자신이 깨달은 지혜와 교훈을 모아 2011년 『톨스토이와 자주색 의자』(Tolstoy and the Purple Chair)를 출판했다. 어떻게 책읽기로 슬픔을 대처했는지를 아름다운 문체로 기록한 이 책은 오프라 윈프리가 꼽은 10권의 책에 선정되었고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이듬해 한국에서도 『혼자 책 읽는 시간』(웅진지식하우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에 출간된 상코비치의 두번째 책 『혼자 편지 쓰는 시간』(Signed, Sealed, Delivered)은 저자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100여 년 전의 편지에서 시작해 고대 이집트의 위문편지, 중세 시대의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편지, 자식을 잃은 링컨의 서한, 에밀리 디킨슨과 헨리 제임스의 편지, 그리고 다산 정약용이 형인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와 조선 중기 이응태라는 인물의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보낸 편지 등 동서고금의 다양한 편지들을 다룬다. 


저자는 작가와 서평가로, 그리고 네 아이의 엄마로서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큰아들이 대학에 진학해 집을 떠나면서 새삼스레 편지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대학 기숙사에 큰아들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큰아들에 이어 나머지 아이들도 줄줄이 자신의 품을 떠나게 될 것을 저자는 쓸쓸히 예감한다.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부모로서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가슴 한켠 상실감이 스며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문자메시지나 SNS, 이메일을 통해 전해 오는 안부와 용건으로는  헛헛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 이때부터 저자는 아들로부터 꼭 편지를 받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는다. 


이렇게 작가는 편지에 집착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손으로 편지를 쓰고, 보내고, 다시 답장을 받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손으로 쓴 편지가 문자메시지나 SNS, 이메일과 같이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요즘의 의사소통 방식과는 어떤 면에서 다른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은 물론이고 수천 년 전의 역사적 기록에서부터 서간체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편지들을 대상으로 살펴본다. 


작가는 말한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들이 받은 편지를 보관하고 있다고. 맞는 말이다. 손편지가 귀해진 요즘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부터 손으로 써서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을 거치는 여러 사람의 수고 끝에 내 손에 들어오는 손편지에는 함부로 파기하거나 훼손하거나, 그 내용을 무시할 수 없는 신성함이 있다. 그 신성함은 편지가 글쓴이의 마음을 낱낱이 담아내는 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단순히 종이에 글로 적힌 내용 이상의 것을 전달하고 기록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용된 편지지와 필체, 편지 왕래의 빈도와 간격, 서로를 부르는 애칭과 문체 등등의 주변적인 요소를 통해서도 편지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손으로 쓴 글, 그리고 그 글의 대상이 오롯이 ‘나’인 편지는 두 팔을 벌려 나를 관계 속으로 불러들인다고 작가는 말한다. 다시 말해 나에게 온 편지는 이성과 감성이 온전히 함께 교류하는 진정한 의미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반원”을 그리면서, 우리가 답장을 해주기를, 그래서 나머지 반원이 완성되어 온전한 하나의 원이 되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우리는 글쓰기에서 체취와 감촉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산다. 편지는 말할 것도 없고, 책 역시 디지털도서의 시대로 넘어가는 중이다. 그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손편지가 주는 감동과 힘은 더욱 강력해졌다. 효율과 편리를 우선시하는 약삭빠른 이성에 밀려 둔탁하고 게을러 터진 감성의 손으로 꼭꼭 눌러 쓴 편지는 때로는 비수처럼 꽂히기도 하고, 빗물처럼 스며들기도 하면서, 어서 눈을 떠서 자기를 보라고 재촉한다. 만져보고 맡아보고 느껴보라고, ‘너에게 내가 왔다’고 말한다. 그렇게 편지는 그 어떤 초고속망을 타고 지구 반대편에서부터 눈깜짝할 새에 도착한 형태도 냄새도 감촉도 없는 메시지로는 절대 실현 불가능한 강도와 깊이를 가지고 내 손에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작가가 ‘집착’하고 간절히 소망한 것은 그렇게 상대방의 체온과 체취와 마음을 느끼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 역시 간직하고 있는 커다란 편지 보관함을 보면서 그것은 충분히 집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동의한다. 

무딘 번역자의 손끝 때문에 따뜻하고 섬세한 원작자의 감성과 위트가 희석되지 않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독자들에게 이 책을 보낸다. 


2015년 10월    

박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