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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반대하며』는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1987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두 해 전 출간된 에세이집이다. 「우리 집」 「전직 화학자」 「고통에 반대하며」 「벼룩의 도약」 「하늘로부터의 소식」 「향기들의 언어」 등 1964년부터 1984년까지 20년간 주로 일간지 『스탐파』에 기고한 짧은 에세이들을 모았다. 레비는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증언의 글쓰기로 알려져 있지만, 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자전적 회상, 과학 및 시사 이슈, 민속학, 언어학, 문학비평 등을 다룬 에세이들은 레비의 활발한 호기심, 예리한 감각, 자유로운 상상력, 폭넓은 관심사를 드러내며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 



프리모 레비는 1919년 7월 31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집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냈고(「우리 집」에서 썼듯이 “의지에 반해 떠나야 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1987년 4월 11일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토리노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으며,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고 독일군이 이탈리아 중북부를 점령하자 무장투쟁 단체에 들어갔다가 체포되어, 1944년 2월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인 모노비츠에 수감됐다. 1945년 1월 소련군이 수용소를 해방할 때까지 그곳에서 인류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들을 경험했다. 이후 『휴전』La tregua(1963)에 묘사한 대로 9개월간 동부 유럽에서의 방랑 끝에 마침내 고향 토리노로 돌아왔다. 


레비는 “병적일 정도로 절대적인,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처음 원고를 보낸 에이나우디 출판사에게 거절당한 뒤, 데실바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것이 인간인가』Se questo è un uomo(1947)는 초판 2500부를 찍는 데 그쳤다. 그러자 증언자-작가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긴 그는 글쓰기를 잠시 접고 현지의 니스 공장 연구소에서 화학자로서 일을 시작했다(「솜화약 양말」에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레비는 1975년에 이르러서야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58년 에이나우디가 『이것이 인간인가』를 재출간하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1959년 영어판이, 1961년 프랑스어와 독일어판이 나왔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1980년과 2007년에 각각 번역·출간되었다. 이 책은 독자들의 호평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12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라디오극과 연극으로 각색됐다. 이에 힘입어 후속편인 『휴전』도 발표했다. 이 책은 이탈로 칼비노Italo Cavino가 표지글과 추천사를 썼으며 제1회 캄피엘로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로는 스트레가상을 수상한 『멍키스패너』La chiave a stella(1978)와 비아레조상과 캄피엘로상을 수상한 『지금이 아니면 언제?』Se non ora, quando?가 있으며, 단편집 『자연 이야기』Storie naturali(1966), 『형식의 결함』Vizio di forma(1971), 『주기율표』Il sistema periodico(1975), 『릴리트』Lilit e altri racconti(1981), 시집 『브레마의 선술집』L’osteria di Brema(1975) 등을 출간했다. 에세이집으로 『고통에 반대하며』(1985, 원제는 ‘타인의 직업’L’altrui mestiere이다)와 마지막 저작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Sommersi e i salvati(1986)가 있다. 번역가로도 유명한 레비는 카프카의 『소송』, 레비스트로스의 『먼 곳으로부터의 시선』 등을 이탈리아어로 옮겼다(「번역하기와 번역되기」에서 번역의 문제를 다뤘다). 


이탈로 칼비노는 레비를 “백과사전적 맥(脈)”을 지닌 작가로 정의내렸다. 그만큼 다양한 주제들을 탐구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홀로코스트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글들 가운데 마지막 저서인 『고통에 반대하며』의 주제들은 ‘도락가로서의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레비는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썼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타영역의 점유’, 다시 말해 타인의 직업에의 침입, 남의 사냥터에서 벌인 밀렵, 동물학·천문학·언어학 영토에서의 약탈”(「서문」)이라고 설명한다.  


각 글들은 재치와 아이러니, 유머와 비애가 가득하면서도 동시에 냉철한 비평적 어조를 띠며, 명확성, 정확성, 간결성의 원칙에 따라 씌었다. 레비는 「불명료한 글쓰기에 대하여」에서 “불명료한 방식으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젊은 독자에게」에서도 “명료성과 합리성에 대한 극심한 필요성”을 느낀다고 역설했다. 그의 문체는 마치 “중세의 단선율 성가 같은 매력”을 지녔다.  


무엇보다 과학과 시(혹은 양심)의 통합, 즉 과학적 정신, 문학적 창조성, 윤리의 융합은 그의 글쓰기의 중요한 요소였다. “‘두 문화’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선의의 인간들이 협력함으로써 서로를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서문」)고 기술한 것처럼 각 글들의 무질서한 배열은 작가의 의식 속에서 각 영역이 서로를 존중하며 양립해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를테면 화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화학자의 언어」 「전직 화학자」 「화학자의 표지」는 「젊은 독자에게」 「소설 쓰기」 「올더스 헉슬리」 「프랑수아 라블레」 등 문학 에세이와 나란히 놓여 있다.


작가는 “이야기하기, 증언하기는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고통의 체험은 글쓰기로 그를 이끌었고, 그는 ‘모든 피조물들의 고통에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마치 정언명령과도 같다. “동물들은 진정 존중받아야 한다. 동물들이 ‘선’하다거나, (모든 동물이 그렇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유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새겨진 그리고 모든 종교와 모든 제정법이 인정하는 규칙이 우리 스스로는 물론, 고통을 감지할 수 있는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고통을 야기하지 말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고통에 반대하며」) 


한계상황의 기억은 창조적 글쓰기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기억을 통해서 예리하고 명확한 자기인식을 보여주었으며, 따라서 첫번째 에세이 「우리 집」이 기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일견 무감한 외관을 지닌 작가의 집은 그와 가족의 지난 역사와 일상, 그의 직업적·예술적 삶과 더불어 절망의 체험과 갑작스러운 죽음을 증언하는 기억의 공간이다. 


거의 전 학문 분야에 걸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에세이집의 번역은 참으로 녹록지 않았다. 전문 학술용어들은 물론이고 피에몬테 지방 방언에 이르기까지 곳곳이 ‘함정’이었다. 하물며 이탈로 칼비노와 더불어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프리모 레비의 20년에 걸친 에세이들이라니! “모든 번역은 필연적으로 상실을 내포한다”는 작가의 위로에 힘입어 다만 그에게 누가 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번역 대본으로 삼은 판본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어판 L’altrui mestiere (Einaudi, 1998), 프랑스어판 Le métier des autres (Éditions Gallimard, 1992), 영어판 Other people’s trades (Abacus Books, 1991).  


2016년 6월

심하은·채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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