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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맛대로 살아라』는 2015년 5월부터 2016년 8월까지 『한겨레21』에 연재했던 음식에 관한 칼럼 ‘어정밥상 건들잡설’과 다섯 편의 새로운 글을 더해 만들어진 책이다. 『한겨레21』로부터 연재를 부탁받았던 시기는 식재료에 관한 사사로운 견해를 묶어낸 책 『알고나 먹자』가 출간된 직후였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일반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풀어주길 바라는 요청이었지만 더이상 음식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알고나 먹자』에서 이미 충분히 서술한 데다 『딴지일보』에 연재했던 『야만인을 기다리며』(가제)라는 여행기를 통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한 후의 제안이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일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영화감독 구로사와 기요시가 떠올랐고 그에게 영감을 받아 연재를 시작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큐어」 「도플갱어」 「밝은 미래」 「도쿄소나타」와 같은 B급 호러영화 혹은 장르를 규정지을 수 없는 이상한 영화를 만들어온 일본의 중견감독이다. 지금은 그가 제시한 새로운 영화언어가 영화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큐어」로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진 괴짜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유년기부터 단편영화를 만들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워왔지만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아 한동안 포르노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포르노 영화 제작자(닛가츠 영화사)가 구로사와 기요시에게 했던 제안은 단순한 것이었다.

“70분짜리 영화에 섹스 장면이 다섯 번 이상만 들어가면 돼. 그리고 나머지는 너 알아서 찍어.”


구로사와 기요시는 제작자의 요청대로 섹스 장면이 다섯 번 이상 들어가는 포르노 영화를 찍었는데 그 안에서 호러, 미스터리, 코미디, 멜로, SF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를 뒤섞고 찢어발기며 마음껏 실험할 수 있었고 이때의 자유로운 실험이 자신의 영화 스타일을 만들었노라고 말했다. 


『한겨레』의 제안은 포르노 제작자의 제안처럼 들렸다. 소재가 음식이라면 내용은 작가의 역량에 맡긴다는 제안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구로사와 기요시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작가의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단지 생각나는 것을 『딴지일보』에 적어나갔던 『알고나 먹자』가 책이 될 때도 기쁨보다는 의아함이 앞섰는데 칼럼을 써달라니…. 제안은 칼럼이었지만 처음부터 칼럼이란 ‘장르’는 머릿속에 없었다. 느슨한 테두리 안에서 내면의 흐름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어정밥상 건들잡설’이란 제목을 짓고 첫 글 「미나리연연」을 썼다. 말하자면 ‘어정밥상 건들잡설’의 ‘어정밥상’은 형식이고 ‘건들잡설’이 주 내용인 것이다. 또한 주변에 차고 넘치는 그 못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라도 기록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 자신부터 못나디 못났지만 나와 만나는 그녀 또한 못나디 못났고, 글에 자주 등장하는 내 어미 또한 지독하게 못났을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시대를 살았었는지도 모를, 기억해주는 이 아무도 없는 못난 사람들이어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도 한마디 남기고 싶었다. B급의 품위는 못난 것들을 못나고 볼품없는 언어로 깊이깊이 품어 서로의 설움을 달래는 데 있지 않을까. 싸구려로 무장해 세련됨을 파괴하는 데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여전히 B급을 사랑하고 거칠고 투박한 B급 언어로 이야기한다. 


‘칼럼’이라는 짐짓 그럴싸한 형식과 위엄을 사투리와 욕설과 이해 못할 문장과 받아들이기 거북한 주제들로 버무려 끌어내렸다. 이러한 행위는 나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이기도 할 테지만 『한겨레』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일이기도 해서 언제고 해고를 통보받을 법도 했는데 『한겨레』는 1년이 넘도록 내 글을 계속해서 받아주었다. 감사하기보단 고집이 참 쎄구나,라는 생각이 우선 든다. 또한 이런 글을 책으로 엮자고 제안한 북인더갭의 안병률 대표도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거칠고 사나운 글에서 따뜻함을 느꼈다니 B급을 사랑한 포르노 제작자임이 분명하다. 그 혜안(?)에 감사드린다. 


글은 수많은 형식들을 끌어들여 비틀고 뒤섞어놓았다. 주제는 일관되지만 형식은 중구난방이다. 이게 소설인지, 시인지, 산문인지, 에세이인지, 칼럼인지 구분하기 힘들고 단락과 단락이 아무런 연관성 없는 이야기들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다 읽고 나면 무슨 소린지 이해는 간다는 글들이 태반이다. 가령 「은하의 물고기들」과 같은 이야기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한겨레』에서도 화자를 표기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단락마다 화자를 표기했지만 책에는 표기하지 않았다. 이 글은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내가 지어낸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이므로 한 사람(나)의 이야기로 읽는 것이 좋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전언과 소망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은하의 물고기들」은 시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화자를 구분 지으려는 노력은 매우 헛된 짓이다. 글 전체를 하나의 목소리로 읽으시길 바란다. 또한 「스스로 살아가기 마련이다」와 같은 글은 문단과 문단을 연결 지어 읽기 불편하게 써진 글이다. 삐거덕거리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털털거리며 살아가는 두 인생의 이야기가 유려한 문장으로 부드럽게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단어와 문장과 단락이 뚝뚝 끊어지고 시간을 급작스럽게 뛰어넘다보니 읽기에 불편하다. 어쩌면 이러한 글이 태반이다. 대체로 삐거덕거리며 살아가는 못난 삶들을 이야기에 담았으므로 형식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재를 하는 동안 단 한 편도 쉽게 씌어진 글이 없었다. 2년 가까이 글을 쓸 때마다 끙끙거렸는데 그때마다 흔들리는 마음을 지켜주고 주제와 형식에 대한 토론을 지치지 않고 이어나가준 사람은 ‘그녀’ 서윤이다. 나의 위대한 스승이자 도반인 서윤에게 이 글을 빌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친구이자 연인으로 생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저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보다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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