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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작품 해설

실패한 인생은 없다_작품해설_안광복

by 북인더갭 2010. 11. 27.

 

 

해설


실패한 인생은 없다




안광복_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1


1992년 봄, 독문과 송요섭 교수의 ‘중급독문강독’ 시간. 나는 그때 「곰스크로 가는 기차」(Reise nach Gomsk)를 처음 만났다. 교수님은 그때 감기에 걸리셨다. 코맹맹이 소리로 읽어나가시던 독일어 문장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나는 이 강의를 한참이나 빠져야 했다. 교생실습을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교수님, 저 교생실습을 나가서 수업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중간시험은 어떻게 할까요?

두꺼운 안경 너머로 부드럽게 올려다보는 눈, 이윽고 코맹맹이 섞인 답이 돌아왔다.

―그래요? 그럼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일부를 번역해서 제출하세요.

청운(靑雲) 중학교의 교생실습실은 으슬으슬 추웠다. 나는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독일어 사전을 뒤적였다. 과제로 하는 독서가 재밌는 법은 없다. 그러나 나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쉽고 아름다운 문장, 가슴을 아리게 하는 감미로움. 나의 번역은 어느덧 숙제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교생실습을 끝나고 학교에 돌아왔지만, 나의 번역은 계속되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오롯하게 옮기고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 여기에는 스무세살 젊은이의 ‘치기(稚氣)’도 있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번역해서 당시 좋아하던 여학생의 생일선물로 주고 싶다는.

모든 끌림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때는 몰랐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왜 그토록 절절하게 다가왔는지를. 돌이켜보면,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주인공은 내 삶의 메타포(metaphor)였다. 아니, 어떤 누구의 인생이라도 삶은 「곰스크로 가는 기차」와 비슷할 수밖에 없으리라.



2


세월이 흘러,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내 삶에서 잊혀져버렸다. 군 입대 즈음,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선물했던 여학생과의 인연도 끝났다. 제대 후의 삶도 정신없이 흘러갔다. 숨 가빴던 대학원 수업과 그리스 유학 준비, 그리고 취업. 내 생활 어디에도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다시 떠올릴 구석은 없었다.

그러나 나의 번역본은 대학가를 떠돌고 있었다. 손에서 손으로, 타자기로 친 나의 원고가 돌아다녔다. 누군가는 PC 통신에 나의 번역글을 올리기도 했다. 나는 뜬금없이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최초 소개자’로 세상에 알려졌다.

때때로 나에게 지은이 오르트만의 소식을 묻는 이들이 찾아오곤 했다. 한 방송국에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단막극으로 만든다며 전화를 하기도 했다. 연극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이들의 문의도 한동안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저자인 프리츠 오르트만(Fritz Ohrtmann)에게 미안했다. 아무리 뒤져보아도, 나는 그에 대한 자료를 구할 수 없었다. 대학생 시절의 얼치기 번역으로 저자의 문학적 가치를 깎아내리지는 않았을까?

문의를 받을 때마다 떠올려야 하는 스물세살 시절의 내 모습도 나를 괴롭게 했다. ‘고전문헌학자’를 꿈꾸던 패기만만한 젊은이의 모습, 아득바득한 생활 속에서 어깨가 굽어가던 나의 현실에서, 잊고 있던 꿈을 떠올리는 일은 그 자체로 고문이었다.



3

(중략)

출판사에서 보내준 소설집 서문(Vorwort)에는 짤막하게 오르트만의 삶이 요약되어 있기는 하다. 그는 1925년에 독일 북부 해안가인 프리슬란트에서 태어났다.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이곳 저곳을 옮겨다녔다. 18세에 아비투어(대학입학자격시험)를 치르고, 한때 노동일을 했었나보다. 그러다가 전쟁에 참전했고, 프랑스에서 전쟁포로가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도 녹록하지 않아서, 미국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영국의 포로수용소를 거쳐야 했다.

이후로 그는 영국과 킬(Kiel)에서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동안 여자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을 했다. 1962년부터 1971년까지는 터키 이스탄불의 독일어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도 오르트만의 삶은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따뜻하기만 하다. 「붉은 부표 저편에」 「그가 돌아왔다」 「럼주차」에는 그의 고향인 프리슬란트의 모습이 정겹게 그려져 있다. 해변가의 모래언덕, 밀물과 썰물이 빠르게 지나가는 바다 등등,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정겨운 사람들이 살아간다. 부기우기라는 활기찬 춤을 좋아하는 쾌활한 주민들, 여자들은 ‘남자들이 럼주와 담배와 차만 생각한다며’ 푸념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보듬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양귀비」에서는 전쟁 즈음의 오르트만의 삶이 엿보인다. 부대가 포위된 상황, 그러나 어디에도 공포나 두려움은 엿보이지 않는다. 어머니께 드리려고 곱게 갈무리한 양귀비꽃 이야기만 잔잔하게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오르트만의 작품 어디에도 신산스러움은 엿보이지 않는다.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독자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제대로 위로받았다는 느낌이 밀려들 것이다. 오르트만의 따뜻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4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오르트만의 따사로움이 제대로 담긴 소설이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중략)

주인공은 결국 곰스크로 떠나지 못한다. 가장 큰 방해자는 아내였다. 표를 샀을 때 아내는 임신중이었다. 주인공은 미래가 불투명한 곳에 아이 가진 여인을 데려갈 만큼 매정하지 못했다. 주인공은 마을에 더 있기로 한다. 아이를 키우려면 안정된 수입도 필요했다. 주인공은 마지못해 학교 선생님 자리를 물려받는다.

어느덧 둘째까지 생기자, 주인공은 이제 곰스크를 입밖에 꺼내지도 못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탓이다. 주인공은 안정되어가는 일상이 불편하기만 하다. 자리를 잡을수록 자신의 꿈은 점점 더 흐려질 터였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인생은 실패한 것일까?

주인공에게 교사 자리를 물려준 늙은 선생님이 이 물음에 답을 준다. 그 역시 젊은 시절, 곰스크로 갈 꿈을 꿨던 사람이다. 그도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이 작은 시골마을에 주저앉게 되었다. 하지만 늙은 선생님은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말한다.


그대가 원한 것이 그대의 운명이고, 그대의 운명은 그대가 원한 것이랍니다.

Seine Wille ist seine Schicksal, seine Schicksal ist seine Wille.


주인공은 곰스크로 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가 원치 않은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아내를 위해 곰스크를 포기한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마을에서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에서 가족들 사는 일은 불행했을까? 아니다. 이 또한 그가 원했던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차가 마을에 섰을 때 주인공은 아내의 이끌림에 넘어가지 않았을 테다. 목표한 대로 되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히 따뜻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 어찌 보면 오르트만의 가르침은 스토아(Stoa) 철학자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리게 한다. 


“최선을 다해 살되, 결과에 초연하라.”

Work wholly heartly, but detach from it.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이 잘 담겨 있는 말이다. 인생이란 연극배우와 같다. 누구는 왕 배역을 맡았는데, 자기는 거지역할을 한다며 투정을 부려서는 안된다. 배우로서의 성공은 배역이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충실하게 연기를 했는지에 따라 갈릴 테니까.

그러나 오르트만은 스토아 철학자들보다 훨씬 따뜻하다. 그는 최선을 다해 아득바득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실존철학자들처럼 “신 앞에 홀로 서서 매순간 심판을 받는 듯” 치열하게 살라며 윽박지르지도 않는다. 그냥 살아온 대로의 삶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라고 일러줄 뿐이다.

오르트만의 가르침은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작품 속 철학자는 인생이 시시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는다. 반면, 화가 친구는 삶의 순간순간을 즐긴다. 화가는 높은 울타리를 넘다가 바지가 찢어진다. 하지만 이 덕분에 그는 어린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어린 소녀와 즐겁게 논 덕택에, 그는 소녀의 아름다운 언니와 사귈 수 있었다. 슬프게도, 언니는 가난한 화가를 떠나 부자 총각과 결혼했다. 슬픔에 빠진 화가는 자살을 결심한다. 죽으려고 간 곳에서 그는 거지가 켜는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을 듣는다. 그러곤 발길을 돌린다.

철학자는 화가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이 물음에 화가는 철학자의 가슴을 찌르는 가르침을 돌려준다. 철학자는 문득 깨닫는다.


“그렇지, 살아 있지.”


살아 있는 한, 삶은 계속된다. 지금의 선택은 인생의 다음 순간을 만들어낸다. 울타리를 넘지 않았다면 소녀를 만날 일도, 연애도, 실연도, 자살 결심도 없었을 테다. 인생이 꼭 이렇게 흘러가야 했을까? 정답은 없다. 어떤 선택을 했건, 일어난 일을 통해 나는 충분히 나의 인생을 얻었다. 인생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목표 자체가 아니다. 인생을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삶의 순간순간이다.



5


마흔한살, 나는 아직도 그리스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유학을 준비하던 스물일곱살, 나는 생계를 택했다. 3년만 돈을 모으고, 그때 유학을 떠나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도 사랑은 찾아왔고 이를 책임져야 했다. 아이도 생겼다. 때마침 IMF가 터졌고, 나는 ‘절절하게’ 가장(家長) 역할을 맡아야 했다. 이윽고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더이상 나는 누구에게도 유학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손때 묻은 그리스어 사전과 플라톤 전집을 책장에서 치우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곰스크’는 그리스였다. 그곳에서 나는 고전문헌학자로서의 삶을 살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꿈과 아주 먼 삶을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자신의 곰스크가 있으리라. 그리고 대부분은 곰스크에 다다르지 못할 테다. 그러면서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한 누군가를 탓하고 있을지 모른다.


십수년 만에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다시 읽으며, 나는 스물네살 나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내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에서 고통이 밀려든다. 스물네살 나에게 나는 다시 묻는다.

“너는 왜 그리스로 가고 싶니?”

침묵. 마땅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그때 그냥 그리스를 꿈꿨을 뿐이다. 꿈은 막연할수록 더 절절하다. 막막해야 내 삶에 대한 모든 기대를 담을 수 있지 않던가.

먹먹해진 나를 오르트만은 다시 다독여준다. “그대가 원한 것이 그대의 운명이고, 그대의 운명은 그대가 원한 것이랍니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의 나의 삶은 결국 내가 원한 것이었다. 또한, 나쁘지 않은 삶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안광복_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중동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학생들에게 철학과 논술을 지도해왔다. 일상에서 철학하는 즐거움을 전해 주려 애쓰는 인문학 필자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아마추어 철학자로 살아가는 방법을 소개한 『철학의 진리나무』, 철학적 상담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정리한 『인생고수』, 『열일곱 살의 인생론』, 철학 사상을 역사에 엮어 풀어낸 『철학, 역사를 만나다』 등이 있다. 이 책, 『지리 시간에 철학하기』는 지리학의 주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글이다. 앞으로도 문학과 철학, 경영학과 철학, 심리학과 철학 등의 만남을 계속 주선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