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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서재

<토성의 고리> 나는 소설가다

by 북인더갭 2012. 11. 7.

에디터의 서재

나는 소설가다

-『토성의 고리』(W.G. 제발트)를 두 번째 읽고

 

김실땅

 

 

시작부터 엄살

사실 나는 소설을 좋아하지만 즐겨 읽지는 않는다. (이건 무슨 심보일까.) 이래봬도 김실땅이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읽지 않는 듯하다. (점점 억지가 늘어간다.) 소설을 잘못 읽으면 불현듯 미친듯(!) 소설을 쓰고 싶기 때문에 나로선 조심히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 쓰고 싶다고 척척 써지지 않는 게 소설이기에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듯 쓰고자 하는 욕망의 찌꺼기는 건져내고 처음 글을 배운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공책에 또박또박 쓰는 맘으로 소설은 써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진정한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소설가로서 책 한권 세상에 내놓지 못한 주제에 말은 잘한다. 안타깝게도 소설가로서의 내 자존감은 애저녁에 바닥을 쳤다. 신문사 공모에서부터 문예계간지에 이르기까지 퇴짜와 빡꾸(혹은 빳꾸??)를 번갈아 받아먹으며 형성된 내공이다. 누군들 환희와 환멸의 밤을 오가며 글을 쓰지 않겠는가마는, 정말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젤로 듣기 싫은 게 엄살떠는 소리다. 그런데 삶에는 사실만 정확히 말하는데도 턱없이 기가 죽어버리거나 이유도 모를 억울함과 분노에 심장이 떨리는 순간이 있다. 쪽팔리지만, 내게는 소설가 운운할 때가 그러하다. 그만큼 세상물정 모르고 한량으로 살았단 소리겠지. 이 얘긴 여기서 일단 그만두자.

 

왜 다시?

도대체 내가 『토성의 고리』를 왜 또 집어들었는지 누가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다. 작년에도 ‘거, 상당히 지루하네’ 어쩌구 하면서 읽었던 소설인데, 왜 나는 올 가을에도 뭐에 홀린듯 또 펼쳐들었을까.

 

 

재미삼아 스스로 분석하건대, 이 책에는 아무래도 여러 낯선 도시가 왕왕 나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 존재하는 도시건 상상의 도시건 낯선 도시나 낯선 거리가 나오면 나는 쉽게 끌린다.

 

소설 한편 쓰기 위해 여행을 ‘소비’하는 글쓰기에 끌린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제국주의 방식으로 짐꾼과 가이드를 동원해 자본 없인 불가능한 여행을 소설을 (혹은 소설을 쓰기) 위해 떠난다거나, 소설 집필에 필요해 취재차 떠난다는 말은 소설가에게 합당하지 않다. 기자나 여행작가, 에세이스트에겐 그런 여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소설가라면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어떤 목적을 갖다부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내 골방에서 써지지 않는 글이 돈 들여 떠난 그곳에서 잘 써질 리도 없다. 떠나는 데 굳이 목적을 대라면 멍 때리기 위해, 이 정도가 가장 타당하고 솔직할 듯하다. 머릿속으로 멍 때리다 지겨우면 글이나 그림, 노래, 춤 아니면 뭐 어떤 형식으로라도 뭔가를 만들어내며 노는 게 사람의 본성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주 심심하게 자라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튼, 아이 방에 있던 지구본을 내 책상에 갖다놓고, 때론 구글 지도도 검색하며 연필을 쥔 채 새로운 지명이 어서 또 나오길 기다리며 나는 『토성의 고리』를 다시 읽었다. 다시 읽은 뒷맛은 뭐랄까, 나름 새롭고도 재밌다고나 할까(!). 지루함에 중독돼보긴(?) 처음인데, 지루함과 익숙해지는 것도 못할 일은 아닌 듯하다. 이건 전적으로 소설가 제발트의 힘이자 그의 소설가로서의 인문학적 양심에서 기인한 형식의 묘미이기도 한데, 나는 그런 제발트가 부럽다. 이런 지루한 소설을 책으로 내주는 사회도 부럽고, 이 책을 번역해 낸 대한민국 사회도 아직 희망이 있지 않나 싶다. 제발트에게 이러한 형식의 소설이 가능했던 건 제발트가 속했던 사회에 단 하나의 틀만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불특정 다수의 그 누군가도 과거에 일어났던 ‘파괴의 흔적’에 귀가 솔깃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롭고 재밌기 위해선 그 재미를 만들어낸 사람(작가)의 양심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발트는 말하고 싶었던 게 확실하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재미’나 ‘새로움’을 나는 여전히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추구하는 재미나 새로움의 실체는 계량화 된 후 기술화와 대량생산화의 과정을 거쳐 획일적으로 뿌려진 상품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러한 전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축에도 낄 수 없는 사회의 몰개성 문화도 아직 만연하다. 내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규명할 수 없는 공범의 사회란 이런 것.)

 

밀려오는 당혹스러움

제발트는 일년여 도보여행를 한 뒤 ‘온몸이 마비된 상태로 지방의 주도(州都)인 노리치의 병원에 입원’한 장면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가 걸어야만 했던 이유를 굳이 책에서 찾자면 ‘다소 방대한 작업을 끝낸 뒤 나는 내 안에 번져가던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걷기 시작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장기간의 도보여행 여독이 그를 쓰러뜨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랜 과거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파괴의 흔적들을 보며 느낀 먹먹한 전율의 기억에서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쓰러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 (10쪽) 적어도 내가 볼 땐 그렇다.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17세기 영국 노리치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토머스 브라운이란 인물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제발트가 그를 왜 연구해야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는 소설가니까. 특히 토머스 브라운의 표류하던 두개골에 깊은 의미를 둔 작가의 의도도 불투명하고 사실 아직까지도 나로서는 제발트가 왜 해골바가지란 소품에 천착해 토머스 브라운을 찾아 나섰는지 의아하다. 제발트가 떠올린 고인이 된 친구 마이클 파킨슨도 평생 라뮈(1878-1947, 프랑스계 스위스 작가로 농민의 생활을 묘사하는 방대한 소설들을 썼다)라는 작가를 연구했고(13쪽), 마이클 파킨슨의 오랜 친구 재닌 로잘린드 데이킨스 역시 ‘19세기 프랑스 문학에 대한 일종의 사적(私的) 학문을 전개했다.’(15쪽)

 

제발트가 이들 동료와 어떤 대화를 나눴으며, 마이클 파킨슨이 죽었을 때의 그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그들의 집요한 연구의 성과나 효용, 그 연구로 얻은 명예와 부 따위나 갈등, 혹은 서로 오해는 없었는지 등등 평범한 이야기 흐름은 어째 영 보이질 않는다. 몇 페이지를 더 읽어도 소설답게 이제 곧 펼쳐질 무엇인가 사건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알고 있던 소설의 작법, 혹은 소설의 전형성을 조금이라도 기대했다간 이 글을 한줄도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해골바가지 사진과 시체를 해부하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는 순간엔 그 당혹스러움이 절정이 이르러 무슨 소설이 이래?, 그 한마디 남기고 초반에 책을 덮을 게 분명하다. 이게 바로 (역설적으로 말해) 소설가 제발트의 힘이다.

 

제발트에게 그 순간 의미 있었던 것은 상대방과의 대화도 아니요, 그들과의 관계도 아니요, 연구결과나 연구목적도 아니었다. 모두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말하는 지나온 날들에 남겨진 ‘파괴의 흔적’이 아직도 그를 공격하며 사로잡았기 때문이라는 걸 나도 두 번째 읽으며 알았으니까. 그러한 흔적을 독서와 연구, 집필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소설로 형성화한 작가가 제발트 하나만은 아니겠지만, 오로지 활자로 남겨진 지식을 주인공 삼아 상처를 재해석하고 공격자들의 공격이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을 고발하며 지식에 새로운 값어치와 캐릭터를 부여해준 작가는 제발트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로저 케이스먼트와 중국

그가 파헤친 흔적 중 기억하고 싶은 한 남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1916년 런던의 감옥에서 처형당한 로저 케이스먼트라는 죄인이다. 죄명은 반역죄.(124쪽)

 

그 사내의 진가를 제일 먼저 알아낸 사람은 『암흑의 핵심』의 작가 조셉 콘래드다. 1890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콩고 상업주식회사로부터 콩코강 상류를 오가는 증기선의 지휘권을 맡은 조셉 콘래드는 부푼 가슴을 안고 콩고를 향해 떠난다.(물론 이 부푼 가슴은 금방 멍이 들지만.) 콘래드와 케이스먼트가 처음 만난 곳은 아프리카 콩고. 콘래드는 ‘열대기후 탓에, 그리고 그들 자신의 욕심과 탐욕 탓에 타락해가는 유럽인들 가운데 오직 그만을(로저 케이스먼트) 올곧은 사람으로 여겼다.’(125쪽)

 

케이스먼트는 콩고 서부 도시 보마에서 다름 아닌 영국 영사직을 맡고 있었는데 토착민들에게 저질러진 백인들의 끔찍한 범죄가 바로 케이스먼트를 통해 일반인들에게까지 알려진다. 영국의 외무장관 랜스다운 경에게 케이스먼트는 ‘돈을 향한 탐욕으로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이라면 콩고강 상류를 올라가면서 한 민족 전체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적어 보냈다.(154쪽) 이러한 보고에도 꿈쩍하지 않은 관계자들은 그를 페루, 콜롬비아, 브라질 등 남아메리카로 보내버렸는데 그곳에서도 케이스먼트는 콩고와 별다를 것 없는 상황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케이스먼트를 향해 돈키호테와 같은 열정의 소유자라 돌려 말하며 그에게 귀족신분을 수여함으로 권력의 편으로 끌어당기지만 이미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에 눈을 뜬 케이스먼트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런 그가 아일랜드 사람으로서, ‘특히 연민의 감정에 예민했던’ 그의 의식은 아일랜드 사람에게 가해진 부당한 행위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아일랜드 해방을 위해 병력을 모집하고 무장하는 작업에 케이스먼트는 적극 참여한다. 그러나 봉기는 진압되고 그는 이미 감방에 갇힌 상황에서, 케이스먼트의 가택수색 중 발견된 이른바 검은 일기장이 세기의 권력자들에게 전달된다. 지금까지의 사건은 이 수첩 하나로 방향이 완전히 틀어지는데, 이 일기장에는 다름 아닌 케이스먼트의 동성애에 대한 일종의 연대기가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158쪽) 이 반전에 대한 제발트의 평은 다음과 같다.

 

바로 케이스먼트의 동성애가 그에게 사회계급과 인종의 벽을 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억압과 착취, 노예화와 불구화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주었다는 것이다. (…) 1965년에야 비로소 영국 정부는 로저 케이스먼트의 시신이 내던져진 펜톤빌 감옥 마당의 석회구덩이에서 더 이상 신원을 입증하기도 어려운 그의 유골을 발굴하도록 허가했다’ (161-162쪽)

 

이 정도면 파괴의 흔적은 완전범죄에 가깝다. 아마도 케이스먼트의 죄명은 반역죄라기보다는 풍기문란죄. 유럽인 중 제정신을 가진 한 사람이었던 케이스먼트의 양심적 투쟁은 동성애자라는 사실 앞에 한낱 가쉽거리로, 그런 인간이었어, 라는 비난과 함께 모두 백지화 된다.

 

제발트는 싸우스월드에 도착한 이튿날 저녁, BBC에서 방영한 이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잠이 든 자신의 무책임함(!)을 탓하며 사료를 통해 케이스먼트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리라 다짐한다. 인적이 끊긴 해변가를 몇시간이고 며칠이고 돌아다니다 겨우 들어선 호텔에서 심야 다큐멘터리를 보다 잠이 든 건 결코 무책임한 일이 아니다. 다만 케이스먼트에게 가해진 위선적인 폭력, 파괴의 흔적이 시대를 뛰어넘어 제발트의 심장까지 강타했을 뿐이고,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지금이라도 파괴를 막아보려는 제발트의 노력이 책 한권으로 발현됐을 뿐이다. 양심도 없는 것들은 당연 읽지도 않을 테지만.

 

기독교를 가장한 경건과 돈이면 된다는 탐욕이 문제다. 그들은 늘 심심한 편인데 그것도 문제다. 악한 손과 거짓된 발이 부지런하니 못할 일이 없는 것이다. 도와달라 한 적도 없는데, 다짜고짜 문명을 발전시켜 주겠다며 (말도 안 되는) 교역을 강요하는 건 어느 나라 법인고 하니 영국법이었다. 팔아먹을 게 없어 아편을 팔았을까. 영혼을 악마에게 팔지 않은 한 불가능한 생각이다. 완전 무례한 것들이 살았던 곳은 화성도 아니고 달나라도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더 두렵다. 그럼 어떻게 아편을 팔 생각을 했을까. 인도라는 큰 땅떵어리를 차지했으니까, 그곳에서 대량 생산되는 물자를 어딘가로 또 팔면 더 많은 돈이 생기겠으니까, 벵골지방 넓은 들판에서 양귀비를 재배하면 내 욕심이 더 채워질 테니까.

 

이게 바로 사람이란 짐승이었다니. 그렇다고 자기네끼리는 신뢰가 두터웠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투쟁의 용사라 여겼던, 불의 앞에 양심의 목소리를 높였던 한 사내의 동성애 편력이 드러나는 순간 워낙에 경건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돌을 던진다. 자기네들은 얼마나 더 무섭고도 잔혹한 일을 글로벌하게 해내고 있는지 이미 돌아볼 힘을 잃었다. 완전 탐욕스러운 돼지들이다. 그들이 양심을 되찾아 새사람 되는 축복을 맛보지 않고 계속 돼지처럼 살다 죽도록 이 고통을 감내하겠다 기도했던 사람들이 분명 그 시절에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아이 방에 가서 『먼나라 이웃나라』 중국편을 가져와 함께 펼쳐놓고 책을 읽는다. 나라별 역사 배경지식이 딸릴 땐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에서 종종 도움을 받는다. 요긴한 만화책이 아닐 수 없다^^)

 

아편전쟁과 서태후, 함풍제, 광서제, 황제의 인공낙원 별장 원명원, 특히 이 별장이 서양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불태워지는 장면…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이 전설적인 정원에서 자행된, 군기는 고사하고 일체의 분별력을 잃은 듯한 끔찍한 파괴행위는 결정적 전환이 자꾸 미루어지는 데 대한 분노를 감안하더라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추측건대 그들이 원명원을 불태운 진정한 이유는, 중국인이 미개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보여주는, 현세에서 창조된 이 낙원이 고향에서 끝없이 멀리 떨어져 강요와 궁핍과 갈망의 억압밖에 알지 못하는 병사들에게 어처구니없는 도발로 비쳤던 데 있었을 것이다’(172쪽)

 

마치 언젠가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이야기』을 읽을 때도 이러한 장면을 읽은 것만 같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슬람교도들을 살육하고 살육하다 지치는 장면, 강을 피로 물들인 십자군 병사들이 평화롭게도 곯아떨어지는 장면.

 

영국은 중국에게 아편을 맘놓고 팔아먹기 위해, 프랑스는 자국 선교사를 처벌한 중국에게 맛 좀 보여준 후 동시에 포교활동을 맘놓고 하기 위해, 늘 세상의 중심에 서서 조공을 받으며 일대일 교역이란 상상도 못해본 용의 나라 중국를 넘어뜨리기 위해 결코 친근하지 않은 두 나라가 손을 잡는다. 선과 악 따위는 애시당초 고려한 적 없는 제국주의의 언어를 중국이 알아듣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서양작가의 입에서 자연스럽고도 신비롭게 흘러나오는 19세기 침몰하는 중국의 역사는 독자를 완벽하게 매료시킨다. 역사를 이토록 객관적이면서도 우아하게, 또한 가슴 저리면서도 아름답게 서술할 수 있는 작가는 제발트 하나일 것이다. 특히, 서양에서는 부정적으로 꾸며낸 서태후를 함축적이고도 간결하게 묘사한 문장은 압권이 아닐 수 없다. 26세에 과부가 되어 역사에 부대끼며 여인으로서도 권력자로서도 단 하루도 행복할 수 없었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소유했던 그녀. 끝 모를 불안과 고독을 은폐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사치를 부리고, 누에고치가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에 한없는 평화와 안식을 누렸던 강박관념의 이 여인이 바로 내 앞에서 죽어가는 듯한 당혹스런 연민이 나를 사로잡았을 때, 나는 묘한 감동과 두려움마저 느꼈다.

 

‘그녀는 궁궐 정원의 기묘한 그림자 풍경 속으로 나아가 인공절벽과 양치식물 풀밭, 짙은 색의 측백나무와 싸이프러스 사이를 서성였다. 아침 일찍 맨 먼저 상해를 입지 않게 해주는 묘약이라고 여겨지던 곱게 빻은 진주를 먹었고, 때로 낮이면 생명없는 사물들을 가장 애호하던 그녀답게 몇시간이고 방의 창가에 가만히 서서 그림처럼 펼쳐진 고요한 북쪽 호수를 쳐다보았다.(…) 특히 밤이 되면 혼자서 누에가 자라는 대(臺’)사이에 앉아 신선한 뽕나무 잎을 갉아먹는 무수한 누에들이 내는 나지막하고 일정하며 한없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소리를 듣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녀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 자아놓은 귀한 실을 위해 목숨을 읽게 될 이 거의 투명하고 창백한 존재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신하라고 생각했다.’(178쪽, 180쪽)

 

파괴의 흔적은 어디에 남는가. 민족성에 남는가, 얼굴색에 남는가, 가해자에게만 남는가. 제국을 향한 적확하면서도 날카로운 일침은 도대체 작가의 상상력일까 학자로서의 탐구열일까.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절제된 분노로 동양의 한 거대한 제국의 멸망을 제발트는 블라이스강 위를 가로지르는 철교를 바라보며, 저 강을 가로지르는 열차의 물품들이 중국을 향해, 중국의 어느 비운의 황제를 위해 달려갔던 것을 회상하며 되새긴다. 날아오르지 못한 용이 그려진 낡아빠진 기차를 상상하며 파괴의 형태로만 충분히 각인되는 과거를 지금까지도 그는 마비를 일으킬 정도로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며.

 

나는 소설가다

누군가 이 글은 소설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발트 자신도 자신의 글을 ‘보고’라고 지칭하기도 했다.(166쪽) 보고서라 해도 맞고 소설이라 해도 맞다. 중요한 건 글의 근본에 글을 쓴 사람의 양심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제발트는 (내가 볼 땐) 왕이다. 제발트는 절대군주처럼 자신의 소설에 군림한다. 사상과 문장을 장악하고, 독자가 익숙해하는 인과관계의 스토리 도식을 완벽히 깨부수며(계몽군주?), 두 번 세 번 되새기지 않으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입도 뻥끗 못하게 하는 치밀한 군주다. 제발트 그는, 이야기에는 어떠한 전형도 없으며 지켜야 할 원칙도 없고 스스로 외치고 싶은 것을 주저없이 외칠 수 있는 용감함이 필요할 뿐이라고 포교하는 전도사다. 그는 또한 우리가 오래 전부터 여겨온 소설의 재미라는 미덕 위에 연구와 통찰이라는 육중한 대체물을 제시하는 사차원의 자유영혼이다.

 

슬슬 더 흥미로워지는 건, 그 새롭고도 특별한 글쓰기에 나도 도전하고픈 열망이 제법 꿈틀거린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은 기교나 천재적인 재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무한한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기교에 탁월한 작가는 이미 에너지를 기교에 빼앗겼기 때문에 세상과 같이 아파하거나 통탄할 힘이 없다. 거칠고 날것인 채로 말할 수 있는 정신구조가 이미 흐트러졌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 작가는 스스로에게 속아 깊이와 넓이를 아우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재능은 원석이지만 원석 그대로를 아름답고 유용하다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겠다고 뭣도 모르고 덤볐을 때, 나의 자의식은 내 재능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리라는 허황함으로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란 사람은 넘치는 자신감의 소유자라 하기도 뭣한 이를 테면 못 말릴 백일몽환자(?)라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기교나 재능 때문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못 깨닫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왜 ‘나그네’라는 옛스런 낱말에 끌리고 세상에 넘쳐나는 ‘불빛’에 나만의 의미와 은유를 부여하는가를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방식은 20대말 30대 초반의 감성과 역량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이미지와 묘사의 수법이었는데, 그때로서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써내려간 초기의 단편이 내 맘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까, 먼지나 손때가 묻지 않은 잘 정돈된 어떤 형상물을 나는 원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다시 또 어느 날 나그네나 불빛이 내 맘을 파고든다면, 그렇다면 나는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이미 40대가 되었고, 이미지나 묘사로 스타일을 살리는 것만으로는 이제는 성에 차지 않는(?) 아점마의 내공도 무시할 수 없고, 더 이상 못 참겠다 싶은 순간까지 글쓰기를 참을 줄 아는 인내심도 생겼기 때문이다.(충동구매와 충동창작은 모두 지양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성질을 다 죽였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제발트 같은 소설가가 내게 왜 위험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워낙 소설이 특별하면서 기이하면서 재밌으니까 욕심이 생기는 거, 그런 기분, 흉내도 못낼 내공인데 막 따라하고 싶은 유치한 기분, 원래 허영이란 게 이루지 못할 걸 내 것으로 만들고픈 욕심 아닌가. 이런 대목에서 한번쯤 나도, 동시대 동연배의 작가가 아닌, 그렇다고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보다는 현대적이며 고전의 반열에도 곧 오를 21세기의 작가를 향해 동일시의 감정을 품으며 나도 이렇게 쓸 수 있다고 나를 세뇌하며 글을 열심히 쓰도록 나를 동기부여 하기 때문에 제발트는 내게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대목에서 제발트에겐 아무 잘못도 없다.)

 

그리고 제발트가 왕일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의 글쓰기를 놓고 변명하지 않으며 세상에 양해를 구하지 않으며, 내가 구축한 사고와 문장으로 나는 세상을 살았고, 과거의 파괴의 흔적을 오늘도 아프게 느꼈으며, 그래서 세상을 향한 내 대결방식으로서의 글은 이러한 틀과 결을 갖추었다고 당당히 작품으로 항변한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가수는 노래로 정체성을 평가받는 게 당연한 것처럼, 소설가는 소설로 인정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소설을 쓰고 고치고 빠꾸 맞고 다시 또 쓰고 고치고 또 빠꾸 맞고. 이러한 과정에서 내가 오해했던 건, 내 소설이 아주 형편없거나 시대착오적이라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건 아닌 듯하다. 내 소설이 탁월하다는 뜻이 아니라, 나는 세상을 향해 소설가로 맞짱 뜰 자신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소설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기우뚱한 진흙탕의 세상에서 균형을 잡고 살 자신이 없었던 듯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나의 판단을 나는 확신할 수 없었던 게 틀림없다. 그러니 내용과 형식을 아우르는 주제의식을 확장시키지 못한 채 애꿎은 스타일만 붙잡고 늘어진 듯하다. 내가 늘 하는 우스갯소리 중 하나가 ‘하늘이 두 쪽 나도 스타일이다’ 인데, 스타일만으로는 양심 있는 소설가의 반열에 설 수 없다. 스타일과 분위기만 있는 글이 얼마나 공허하고도 얄팍한지는 누구나 다 안다. 누구나 알면서도 그런 글을 찾는 이유는 (아까 말했듯이) 여기는 공범의 사회이기 때문인 것이다.

 

제발트에게도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것도 소설입니까? 그럼 제발트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제가 소설이라고 썼으니 소설이죠. 이런 걸 소설이라고 내놓고 창피하지도않으십니까?, 괜히 걸고넘어지려고 또 물으면 그는 똑같은 얼굴로 말할 것이다. 소설가가 내 소설 읽어준 사람 앞에서 창피할 건 없죠. (끄덕끄덕… 그럴 것 같다. 내 글을 읽어준 사람이 악평과 혹평으로 나를 공격한다 해도 그건 창피한 일이 아니다. 고마운 일이지!) 세상엔 이런 거 안 읽은 사람이 더 많거든요, 나는 점점 더 그를 시험하고 싶어 그를 놔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더 잘 써야죠.

 

거봐라. 자꾸 열심히 써야 된다고 나는 나를 몰아세우지 않는가. 올 가을에 왜 내가 또 『토성의 고리』를 읽었는지는 영원한 비밀로 남겨둔 채 글을 이쯤에서 마무리 해버리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무명의??) 소설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