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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곰스크는 어떤 책?

삶,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기차여행

by 북인더갭 2010. 12. 10.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80년대말에서 90년대초 대학가에서 알음알음으로 조용히 알려진 소설이다. 처음에는 독일어교재에 실린 소설의 번역본이 사본 형태로 학생들 사이를 나돌면서 마니아층이 형성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 마니아층에서 배출된 작가들이 여러 매체에 이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MBC 베스트극장 「곰스크로 가는 기차」(황경신 극본, 엄태웅 채정안 주연)였다. 「샴푸의 요정」의 황인뢰 PD가 연출한 이 단막극에서 시작된 대중적 관심은 이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연극(2009) 등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나만 알고 있는 기차여행이 있었다!

독일어교재에 실렸을 뿐인 소설이, 그것도 미출간 상태에서 이처럼 문화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한번 읽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스토리,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묘사, 극적인 캐릭터 등으로 빛나는 소설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빛나는 이 소설만의 장점은 우리 인생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과 성찰일 것이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간단한 줄거리를 가진 소설이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기차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목적지는 곰스크. 이 도시는 사내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들어온 꿈의 장소로, 평생에 꼭 한번 가야 할 운명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중 우연히 내리게 된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내와의 갈등 끝에 결국 사내는 곰스크로의 꿈을 접고 만다.

이 소설에서 곰스크로의 여행은 누구에게나 있는 인생의 진정한 목적지, 곧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 유토피아의 의미는 세상에는 ‘없는 땅’(U-Topia)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바로 이 소설의 강렬한 역설이 있다. 유토피아를 추구하면 할수록 실제 인생은 그곳에서 더욱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주인공의 삶이 그러하다. 작은 마을에서 정원이 딸린 집을 얻고 자신의 능력에 어울리는 선생직을 물려받았음에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곰스크로의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마을의 늙은 선생님은 말한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원한 삶을 살았다”고. 어쩌면 이 장면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유토피아의 진정한 의미가 밝혀지는지도 모른다. 곰스크는 현실에서 갈 수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바로 지금까지 일궈온 당신의 영역(You-Topia)이라는 진실이.

생의 편에서 추구된 사랑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서 유토피아의 참 의미가 성찰됐다면,「배는 북서쪽으로」는 이 목적지에 가닿는 것을 방해하는 세상의 탐욕을 짚어낸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목적지를 잃고 유령선처럼 바다를 떠도는 배는 “돈”이라는 자신의 항로를 따라가는 이 세계를 함축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외침처럼, 사람에게는 돈 말고도 저마다의 진정성이 있고 목적이 있다. 그 외침은 세상이 아무리 돈과 권력을 향해 질주하더라도 인간만큼은 그 길을 강요받을 수 없음을 항변한다.

오르트만의 소설에서 돈과 권력의 반대편에는 항상 살아있는 인간의 사랑이 빛을 발한다.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에서 생의 의미를 옹호하는 화가, 「양귀비」에서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평생 부끄럽게 간직하는 아들의 모습은 이 작가가 얼마나 생의 편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럼주차」와 「붉은 부표 저편에」 「그가 돌아왔다」 역시 살아 움직이는 생의 한 단면을 프리슬란트(독일 북해지역) 지역의 풍광과 더불어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이 작품집의 가장 큰 매력은 여러가지 해석과 상상을 가능케 하는 열린 구조에 있다. 처음 대학가에서 자발적으로 소개된 이후 2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유도 아마 이 작품집이 우리 인생에 던지는 지속적인 질문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