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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스트인가? 그렇다고 생각해왔다. 당당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런데 저자인 제사 크리스핀이 왜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신랄하게 조목조목 짚어낼 때마다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지금보다 조금 더 잘 살고 싶고,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여야 합니다라는 문구의 가방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며, 억울하게 당했던 경험들을 가슴에 품고 칼을 가는 내 모습이 크리스핀이 비판하는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들과 겹쳐 보여서다. () 역자 또한 독자로서,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는 한 여성으로서, 크리스핀의 문제제기와 선언에 깊이 공감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수긍이 갔던 것은, 페미니즘이 여성들에게 대안적 삶의 가치를 제시하거나 대안적 삶이 가능하게끔 돕는 인프라는커녕 그런 대안적 삶을 꿈꾸는 상상력조차 만들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부분이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 유지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영어과에서 번역을 전공했다. KBS 라디오 PD로 근무하다 지금은 미국 LA에 거주하면서 번역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 국제행사 프로그램 및 기사 등을 번역했고 한국에 출간된 번역도서의 감수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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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_중앙SUNDAY>

 

페미니즘 서적들이 쏟아진다. ‘페미니즘 빅뱅이다. 페미니즘(feminism)이란 무엇일까. 이즘(ism)이다. 이즘은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는, 주의(主義)와 동의어인 외래어다. 이런 용례가 나온다. “그건 염상진이라는 개인의 뜻이 아니라 정치 폭력화한 이즘의 충돌이었던 것이다.조정래, 태백산맥/ 죽음을 걸 만큼 그 이즘이라는 것이 그렇게 절대한 가치였었는지를 나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김성동, 만다라.”

 

유럽·미국 기준으로 대표적인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문화 페미니즘, 환경 페미니즘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여성주의를 비롯한 이즘·주의는 계속 진화하고 분열한다. 페미니즘이라는 우산 용어(umbrella term)’ 속에서 다양한 페미니즘 조류가 공존하고 경쟁하며 서로 맹공을 퍼붓기도 한다. 심지어는 보수 페미니즘도 있다. 보수 페미니즘이라는 페미니즘의 작은 우산 속에는 개인주의적 페미니즘, 복음주의 페미니즘, 국가 페미니즘, 포스트페미니즘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남성 페미니즘도 있고 생활 페미니즘도 있다. ‘미투 페미니즘’ ‘메갈리아 페미니즘’ ‘워마드 페미니즘도 충분히 가능하다.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체계화된 학설·이론·운동 속에서 각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형용모순 같은 안티페미니즘적인 페미니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가 그런 경우다. 원제는 나는 왜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페미니스트 선언(Why I am not a feminist: a feminist manifesto)’이다. 버트런드 러셀(1872~1970)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1927)와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1848)을 한꺼번에 연상키는 묘한 제목이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마르크스의 선례를 감안하면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는 제목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좌파 페미니스트 논객인 저자가 반대하는 것은 가부장적인 자본주의에 만족하고 적응하는 미국의 주류 페미니즘이다. 미국 페미니즘은 급진적인 변혁 운동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으로 추락했다는 뜻이다. 그가 보기에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저자 크리스핀은 개량주의·점진주의 페미니즘에 반대한다. 저자는 이빨 빠진(toothless)’ 페미니즘이 여성 최고경영자(CEO), 여성 정치인 숫자의 확대에 만족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 페미니즘은 저자에게 탈정치화된 자기계발 페미니즘에 불과하다. 체제를 바꾸지 않는 페미니즘은 의미가 없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크리스핀은 기성 페미니즘을 맹공하지만, 특정 페미니스트 운동가나 그룹을 타깃으로 삼아 지칭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공동의 적을 눈 앞에 두고 불필요한 싸움, 적전분열을 피하기 위해서다. 같은 이유로 크리스핀은 남성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깎아 내리는, 온라인·디지털 세상을 주무대로 삼는 격노(outrage) 페미니즘에도 반대한다. 그는 남성혐오를 혐오한다. 반성하는 남성은 페미니즘의 우군이 될 수 있다고 보는 듯 하다.


<한겨레>


페미니즘에 관한 강의나 토크행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 중 하나는 이렇다. “남편/남성 동료/남자친구/아들이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행동과 말을 바꾸게 할 수 있는 좋은 말이나 책은 뭐가 있을까요?” 내가 생각하는 답은 다소 회의적이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모범답안이 있다면, 애초에 차별이 없었겠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그러니까 동물과 식물을 비롯한 생태계까지 포함해 세상의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가 득을 보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장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설득’하기에는 그럴듯해 보여도 설득의 결과는 미미하다. 누구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는 말은 공허할 수밖에 없고, 사회운동으로서의 힘을 갖기 어렵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백인 페미니스트들, 즉 최근 몇 년 미국을 휩쓰는 ‘페미니즘 유행’ 이전부터 여성의 권익 신장과 자유를 위해 싸워왔다고 자부심을 갖는 이들의 생각을 잘 알 수 있는 책 중 한 권이 바로 제사 크리스핀의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다. 결론부터 말하면 더 급진적이고 시스템을 바꾸는 시도야말로 페미니즘의 본령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제사 크리스핀은 앤디 자이슬러의 <페미니즘을 팝니다>처럼 ‘선택적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이것은 진정한 변화에 따르는 불편함은 감수하지 않고 급진적 페미니스트를 물리치는 태도이며, “여성이 무엇을 선택하든, 생활방식에서부터 가족관계나 대중문화, 소비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그저 하는 행위만으로 페미니스트에 걸맞은 선택을 한다는 믿음이다.” 페미니스트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는 ‘유행’의 일부가 된다고 페미니스트로서 실천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대중 앞에 서는 직군의 여성이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사용해도 아무런 위해를 입지 않을 경우에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여성 뮤지션이 페미니즘에 관심만 보여도 ‘소비자’인 남성 팬들의 공격에 시달린다.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이 팬미팅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하자 팬들은 아이린 얼굴이 있는 굿즈를 자르고 불태워 인증했다. 가수 겸 배우인 수지가 유튜버 양예원씨가 과거 피팅 모델 스튜디오 아르바이트로 입은 성폭력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청원 글에 동의했다는 내용의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다음 날인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연예인 수지의 사형을 청원합니다’라는 청원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가까이 있던 ‘수지 사형 청원’은, 비제이(BJ) 철구의 인터넷 방송을 시청한 일로 논란이 된 ‘에프티(FT)아일랜드’ 멤버 이홍기의 사형 청원이 시작되고 나서야(즉, 남성 연예인의 사형 청원 글이 올라오고 나서야) 나란히 삭제되었다.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말도 페미니스트라는 말도 ‘패션‘이나 ‘유행‘이라고 부르기에는 생업의 안위를 걸고 하는 위험천만한 행위다. 크리스핀처럼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는 말은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말이 진부할 정도로 널리 쓰인 뒤에나 가능해진다.

최근 한국의 페미니즘 관련 논의에서 중요하게 떠오르는 주장은 여성들이 더 많이 공직에 진출하고, 관리직에 올라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핀은 이런 생각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한다. “어떤 분야든 여성이 그 분야의 ‘문화를 변화시킨다’는 관념은 속기 쉬운 거짓말이다. 더욱이 당신은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시스템을 세운 가부장들의 특징을 보여야 할 것이다.” 현대 페미니즘이 권력이 있는 여성을 본질적으로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는데, 그 예는 상원의원 시절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폐지해 빈곤한 여성과 아이들에게 극심한 손해를 끼쳤던 힐러리 클린턴이다. 그래서? 크리스핀의 책을 다 읽은 뒤 나는 묻고 싶다. 그래서?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아무 흠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거나,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거나, 권력을 갖지 않는 것인가? 안주하지 말고 더 급진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찬성하지만, 다수의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대통령이 된 트럼프를 비난하기보다 힐러리 클린턴을 비난하기가 더 수월한, 그 외의 사례들에서도 여성만 도마 위에 올린 모습을 보니 어리둥절해진다. 게다가, 한국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말을 여성이 할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안다면, 크리스핀의 이런 도발은 그녀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 역으로 입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 급진적이 되자. 그 주장만을 받아들인다.

이다혜 작가, 북칼럼니스트



<연합뉴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 제사 크리스핀 지음. 유지윤 옮김.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작가인 저자가 오늘날의 페미니즘을 강렬하게 비판한다.

그는 페미니즘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원래 페미니즘이 가진 급진성은 점점 사라지고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 껍데기만 남았다고 말한다.

이른바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이 지배문화의 가치는 그대로 둔 채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에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몇 명인지, 의대 졸업생 중 여성이 몇 명인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북인더갭. 200. 13500.

 

<서울경제신문>

 

오늘날 페미니즘은 껍데기만 남았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제사 크리스핀 지음, 북인더갭 펴냄)= 페미니즘 사상가로 유명한 저자가 본래의 취지를 상실한 오늘날의 페미니즘을 강렬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원래 페미니즘이 가진 급진성은 점점 사라지고 그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는 껍데기만 남았다고 지적한다. 지적인 액세서리와 같은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적 문화의 부당함은 외면한 채 100대 기업에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몇 명인지, 의대 졸업생 중 여성이 몇 명인지 등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냉철하게 직시하고 가부장제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3,500


<외신들> 


이 가차없이 비판적인 책에서 저자는 21세기 페미니즘에 기름을 끼얹고는 유쾌하게 외친다. “페미니즘아, 까맣게 탄 지구를 떠나라!”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는 제목은 한편으로는 거짓말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도발에 가깝다. 왜냐하면 저자는 뼛속까지 페미니스트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은 그 급진성과 분노에서 3세대 넷페미가 아니라 2세대 페미니즘에 근거한다. 저자는 이른바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을 가장 경멸한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여야 한다고 새겨진 600달러짜리 티셔츠를 입고서 정치적 영웅심리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페미니즘 말이다. 저자가 보기에 그런 페미니즘은 살아남기 위해 초남성적 세계를 모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먼저 돈이면 다 되는 페미니즘, 남성과 자본에 기대는 페미니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디언(Guardian)

 

진보를 현상유지와 동일시하는 최신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혁명적인 페미니즘을 요청한다. 엘르(Elle)


매우 신선한 주장이자 어떤 질문도 제기되지 않는 페미니즘에

균형을 잡아주는 시도다. 뉴요커(The New Yorker)

 

유리천장을 깨는 게 문제가 아니다.

쇳덩어리로 구조를 깨부수는 것이 관건이다. 커커스리뷰(Kirkus)

 

간명하고 전투적이면서도 참신하다.

양심의 도전에 호소하는 책.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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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크리스핀 Jessa Crispin

 

1978년 미국 캔자스 주의 링컨에서 태어났다.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작가로 온라인 매거진 북슬럿(Bookslut)을 창립하고 편집자로 활약했다. 웹진 북슬럿뉴욕타임즈등 주요 매체에서 주목을 받았고 그녀의 서평은 가디언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재 뉴욕타임스』 『가디언』 『워싱턴포스트의 기고자로 있으며 페미니즘과 책에 관련된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죽은 숙녀들의 사회(The Dead Ladies Project), 창조적인 타로(The Creative Tarot)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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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각 분야에서 페미니즘의 요구가 거세지는 시기에 오히려 오늘날의 페미니즘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매우 색다르고 도발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미국 페미니즘 사상가 제사 크리스핀(Jessa Crispin)의 신작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는 자기역량 강화에 몰두하는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을 끝내고 가부장제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남성들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넘어서 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냉철하게 직시하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도대체 페미니즘은 무엇을 한 것인가?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Too)운동이 전세계로 확산된 지금, 우리에게도 페미니즘은 더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페미니즘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정치·문화·사회 전반에 걸쳐 페미니즘은 하나의 큰 주제로 자리잡고 있다. 문제는 페미니즘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잡으면서 원래 페미니즘이 지닌 급진성은 점점 사라지고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제사 크리스핀은 현재 유행하는 페미니즘을 가차없이 비판하면서 이를 보편적 페미니즘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보편적 페미니즘은 2세대 페미니즘의 급진성을 내버리고 좀더 친근한 버전의 페미니즘을 만들었다. 이는 여성이 삶에서 받는 억압을 정치·사회적으로 맥락화하는 대신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으로 치환한다. 가령 안드레아 드워킨 같은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는 성()과 결혼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보편적 페미니즘은 자기를 꾸미고 계발하여 사회에 나서는 사람은 누구나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함으로써 그 급진성의 자리에 자기역량 강화라는 헛된 의식을 심어놓았다. 저자는 이러한 개인적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이 지배문화의 가치체계는 그대로 둔 채 페미니스트라는 이름표만 따온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페미니즘은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에 여성 CEO가 몇명인지, 의대 졸업생 중 여성이 몇명인지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그 여성 CEO가 아이들과 여성들을 착취한다고 해도, 또 힐러리 클린턴 같은 여성 정치인이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국제개입에 찬성한다고 해도 그리 놀라지 않는다.(1)

보편적 페미니즘이 여성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꿈을 내세워 더 많은 여성들을 포섭하는 동안, 여성들은 사회적 가치들, 즉 가족이나 이웃, 돌봄의 가치들을 희생해야만 했다.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이 치열한 경쟁이며 추락한 직업 안정성, 어마어마한 학자금 대출이라면 도대체 페미니즘은 무엇을 한 것인가? 여성들이 가정과 돌봄, 공동체 같은 여성의 가치들에 남성의 자리를 마련하는 대신, 경쟁과 가부장적 가치 같은 초남성성의 세계에 들어가고 말았다는 저자의 지적은 그래서 뼈아프게 다가온다. 이제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도전한 페미니스트들을 혐오하고 그 대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위해 강력하고 세련된 중산층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페미니스트를 추앙한다.(2)

 

남은 것은 각자도생, 역량강화뿐?

 저자가 보기에 이런 중산층 여성 페미니즘의 한계는 명백하다. 어느 정도의 돈과 권력을 얻은 여성들은 더이상 모두의 평등을 위해 싸우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 가령 육아문제에서 이들은 모든 여성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기 아이들을 사립학교 같은 좀더 괜찮은 교육기관에 맡기는 일에 더 몰두한다. 건강보험과 의료, 공공주택 등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시급한 문제들은 페미니스트의 관심사에서 멀어져갔다. 그 결과 페미니즘에 남은 것은 각자도생이자 역량강화뿐이다.(3)

역사적으로 가부장제는 남성 가장의 권력과 재산을 위해 여성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제도적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가부장적 기업, 가부장적 국가로 이어졌다. 이 시스템은 권력과 돈의 논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항상 누군가를 착취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여성혐오 같은 현상은 그저 여성에 대한 막연한 혐오가 아니라, 동성애혐오나 빈곤혐오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비인간화여 정상/비정상을 구분하려는 가부장제의 구조로 봐야 한다. 문제는 페미니즘이 돈과 권력에 접근하면서 가부장제에 맞서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에 적극 참여한 것이다. 이로써 페미니즘 덕분에 더 평등한 세상이 온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불평등한 세상에 여성만 더 많아진 결과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4)

이 책에서 가장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부분은 이른바 남자들과의 싸움에서조차 페미니즘이 돌아볼 것이 많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우선 그 싸움의 심리적 기제는 투사(投射)’일 경우가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즉 남자들을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대책 없으며 골치 아픈 사이코패스로 치부해버림으로써 여성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쉽게 안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하나 싸움의 기제는 분노. 여성혐오 발언이나 성희롱에 관련된 남성들에 대한 페미니즘의 대응은 흔히 욕이 난무하고, 시위가 조직되며, 결국 해당 남성이 해직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는 여성의 마음속에는 이른바 리스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여성이 겪은 모든 불의와 모욕, 나약했던 순간들이 기록돼 있으며 이 목록은 분노문화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터져나오는 분노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남성들은 끊임없이 등장하는가? 저자는 이런 분노가 개개인을 솎아내는 기능을 할 뿐 여성혐오를 구조적으로 뿌리 뽑는 역할은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처벌에 집중하는 분노문화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과 폭력은 보상하고 연민과 보살핌의 가치는 깎아내리는 이 시스템 자체와 싸워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5-6)

 

낭만적 사랑을 넘어서 새로운 상상력으로

페미니즘이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는 분노문화만이 아니다. 오히려 더 결정적인 한계는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라는 제도 밖으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만약 한 여성이 낭만적 사랑과 결혼의 구조 밖에서 살기로 결심하다면, 그녀에게 남은 선택은 고독한 삶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성 다수가 사랑과 결혼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외의 삶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인데, 이는 새로운 양육 공동체나 한부모 육아 같은 문제를 상상하지 못한 페미니즘 탓도 크다. 지금까지 여성들은 낭만적 사랑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자기역량 강화에 주력해왔다. 낭만적 사랑에 기대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미래의 배우자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돈과 직업이 경쟁인 것처럼 사랑도 경쟁이기 때문에 사랑과 섹슈얼리티에서 이득을 보는 여성은 이를 지키기 위해 경쟁에 나선다. 페미니즘은 결국 여성들이 낭만적 사랑의 복합체 밖에서 살아볼 만한 인프라와 상상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7)

여성의 안전 문제와 관련해 페미니스트들이 분노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여성들은 이 문제로 고통을 받았고, 그 고통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러나 여성의 안전은 지난 수세기 동안 남성들의 선전도구로 이용당해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성들은 전쟁에 나서고 싶어할 때마다 자신들의 적이 여성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를 부각해왔다. 또한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여성의 안전을 이용했다. 무조건 여성들만 피해자라는 인식도 위험하다. 여성도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남성을 함정에 빠트릴 수 있다. 도덕적·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것이 꼭 정의로운 방식은 아니다. 페미니즘은 시민적 정의와 더 올바른 싸움에 눈을 떠야 한다.(8)

이 책의 역자가 지적하듯이 과연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한국에서도 똑같은 맥락으로 읽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 막강하다는 한국의 아이돌들조차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회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이 그간 논의돼온 페미니즘에 얼마간 균형추를 달아주고 새로운 질문들을 던져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를 인정하고 직시하는 일은 올바른 길을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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