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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dmb 책 소개 프로그램인 <내 손안의 책>에 방영된 <곰스크로 가는 기차>

 MBC 베스트극장 방영분으로 스토리를 소개했습니다.

무엇보다 엄태웅 채정안 님의 풋풋한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감상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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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2쇄에 돌입했습니다.
정말 감격이고, 모두 눈밝은 독자들의 입소문 덕분입니다.
그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아래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알라딘, Yes24, 교보, 인터파크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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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의 무시무시한 현상학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좀 독특한 여행소설이다. 그러니까 여행이야기란 무릇 여행을 떠나서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야 한다. 그 과정이 험난했든 아니면 나름 괜찮았든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여행이 아예 초반에 중단되고 그것이 소설의 핵심 스토리가 된다. 말하자면 여행이 멈추고서야 소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소설의 원제는 ‘곰스크로 가는 여행’(Reise nach Gomsk)이 아니라 ‘곰스크로 가지 못한 여행’이라고 해야 한다. 왜 주인공은 곰스크로 가지 못하는가? 우리가 꿈꾸던 곳으로 가지 못하게 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령 그곳으로 떠날 돈이 없을 수도 있고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만 ‘의자’ 때문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나는 이 소설에서 ‘의자’라는 상징이 ‘곰스크’라는 상징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주 나중에야―어쩌면 책을 다 만든 후에야―깨달았다. 그렇다, 인생은 의자 하나를 어쩌지 못해 꿈을 날려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 의자는 그럼 누구의 것인가? 그것은 아내의 것이라고 소설은 서술한다. 여기서 개입되는 오해 하나. 그럼 인생에서 배우자는, 또는 결혼은 이른바 내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되고야 만다는 것인가?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소설과 부부관계는 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홍상수 영화에서 질리도록 반복되는 ‘연애질’이 막상 작품의 주제와는 별 상관없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의 영화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사랑인데, 막상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섹스에 불과하다는 무서운 현상학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은 마치 대단한 이상을 추구하는 듯한 인생도, 알고 보면 우리 주위의 여러 현상에 붙들려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전해준다. 결국 그런 너저분한 현실의 대표격인 의자야말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며 우리가 미성년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뒷골목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규석 작가가 주인공과 의자의 다리를 기묘한 긴장구도 속에 배치한 삽화를 보내왔을 때 깊은 공감을 느꼈고, 당연히 이 그림을 표지화로 선택했다. 최규석 작가는 이 소설이 전혀 따듯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한다. 나는 그의 의견이 옳다고 본다. 따듯하기는커녕, 이 소설은 현상과 이상 사이의 을씨년스러운 갑을관계를 담고 있다. 어떤 곰스크(이상)도 의자(현상)를 괄호치고는 완성될 수 없다는.

87년체제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90년대 초반에 이 소설을 처음 접한 나는 어쩌면 저 곰스크를 사회변혁의 이상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그런 꿈들이 천대받아서는 안되겠지만, 지금이라면 그런 꿈들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먼저 의자 하나를 제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는 바라고 나는 믿는다.

북인더갭 대표 안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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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북인더갭의 첫 북트레일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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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열차라는 게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막 결혼식장을 빠져나온 부푼 가슴의 두 남녀가 미지의 그곳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에겐 기차가 가장 잘 어울린다. 신혼열차라… 당신은 촌빨의 극치(!)라며 웃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당신이 유토피아라 생각했던 그곳에서 벌써부터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건 현실이다. 신혼열차가 아닌 비행기나 자전거, 혹은 최신형 자가용 헬기를 타고 여기를 떠난다 해도 ‘거기’에 닿자마자 만나게 되는 건 ‘현실’뿐이다. 이래도 계속 웃을 수 있는가.

한 남자의 목표는 곰스크로 가는 것이다. 한 여자의 목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안타깝다. 그녀가 어린아이였을 때도 소녀였을 때도 추상적인 것을 꿈꿀 만한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할머니들처럼) 불균형의 시작이다. 한 남자는 점점 화를 내기 시작한다. 한 여자는 먼지투성이의 방을 살만하게 꾸미기 시작한다. 아슬아슬해진다. 한쪽은 고독과 무료함 속에서, 한쪽은 옷장과 안락의자 곁에서 외롭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상한 커플이다. 아니 이상한 삶이다.

그런데 이 이상함이 낯설지는 않다. 그것이 ‘마지막 기회’였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이 남자는 거짓말쟁이 아니면 이기주의자, 둘 중의 하나다. 그 남자를 향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다’고 반격하는 이 여자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겁쟁이거나 합리주의자, 둘 중 하나다. 이런 사람들 많이 봐왔는데, 끼리끼리 잘 만났다.

남자는 좀더 친절했어야 했다. 왜 곰스크라는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하는지, 왜 꼭 ‘너’와 함께 떠나야만 하는지 간절히 설명해야 했다. 여자는 좀더 거칠었어야 했다. 왜 내가 너랑 곰스크라는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하는지, 왜 준비도 안된 채로 거기서 새 삶을 시작해야 하는지, 한번쯤은 내질러줬어야 했다. 그랬다면 차라리 싸움은 빨리 끝났을 수도 있다.

삶은 대부분 그렇게 흘러간다. 말이 안 통해서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르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흘러간다. 어딘가 불공평하고 밑지는 듯하게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안락함을 얻었고 고정적인 수입을 얻었다. 결과적으로는 어떤가.

결국에는 이 이상한 삶을 두고 아름답다고, 말하게 된다.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들이 어떤 한정된 곳에서, 이를테면 거실이나 침실, 혹은 잘 정돈된 정원 같은 데서, 바로 그곳에서 울려오는 어린 자녀의 웃음소리 같은 것을 꿰뚫고 쩡 소리를 내며 부딪칠 때면,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삶조차도 결국에는 아름답다고 고백하게 된다. 뭐야 이건, 가슴을 통째로 후려치는 이 고통은 뭐야, 여긴 곰스크가 아니잖아, 기차는 떠났잖아, 우린 더이상 젊지도 않잖아, 당신과 나는 안주하며 나이를 먹어가잖아,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잖아!

이러한 소통불능 상황에 이어지는 건 분노와 고독뿐이다. 하지만 균열의 틈을 타고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실핏줄 같은 동경은 늘 ‘거기’를 꿈꾸게 한다. 동시에 오래전부터 ‘여기’에 있었던 먼지알갱이들도 괴력을 발휘하며 우리를 붙잡기 시작한다. 유한하구나, ‘여기’와 ‘거기’를 모두 아우를 수 없는 게 삶이라는 거구나, 그래서 한쪽 어깨가 늘 무거웠던 거구나. 불안함과 불균형, 안타까움과 슬픔, 고독과 절망의 순간을 하나로 버무려 일상으로 녹여내는 삶을 그래서 슬프고 아름답다 말하는 거였구나.

당신도 이쯤에선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삶이라는 게 뻔하지, 중뿔난 삶이 어디 있나. 한번 더 촌빨의 극치로 생각을 몰아가야 한다. 나는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내 인생이 누구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는데…? 헛소리.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교장선생님의 한마디를 차라리 잊을 수 있다면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 우리의 거짓된 울분을 도려내고도 남을 만한 폭언이자 진실이다. 당신은 당신이 원한 삶을 살았다고, 당신 삶은 의미없는 삶이 아니라고, 당신이 원하지도 않았다면 당신은 이곳에 내리지도 않았을 거라고…. 잔인하다. 그러니까 교장님의 말뜻인즉, 마누라와 애 탓하지 마라, 너는 니가 곰스크로 가길 평생 원했다 말하지만 너는 정원이 딸린 작은 집에서 일가를 이루고 사는 삶을 정말로 원했다, 너는 당장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니가 원했던 삶은 곰스크가 아니었단 말이다, 지금의 이 모습이었단 말이다.

설마.

그렇다면 이렇게 가정해볼 수도 있다. 완벽한 거짓말쟁이는 교장선생님이라고. 그러면 동경에 찬 삶을 꿈꿔온 우리의 주인공 ‘나’는 평범한 인물로 전락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나’와 지금 숨쉬는 나를 동일시하며 묘한 연대의식을 느꼈던 나도 계속 나를 속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진짜 거짓말쟁인지는 끝까지 알 수 없다.

아이를 가지면서 말발까지 세진 여자의 의미심장한 펀치도 위력적이다. ‘인생이 의미를 가질지 아니면 망가질지는 오직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왜 직시하지 않는 거죠?’ 그런 건가. 정말 내 인생의 의미는 나에게만 달려 있는 건가. 그렇다면 여자는 자신의 삶을 직시하며 여기에 머무른 것인가. 다른 어떤 곳을 한번도 꿈꿔보지 못했으면서, 다른 곳에 가보지도 못했으면서 어떻게 여기가 우리의 자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자신있는 삶을 살아왔다면 왜 더 강할 수 없었던 거지?

의심하기 시작하면 모든 말에는 다 거짓말이 섞여 있는 듯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지나쳐 남자가 다락방으로 올라가 틀어박히는 마지막 장면만으로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다. 그것이 쪽팔림이었는지 낭패감이었는지, 당신들이 뭘 알어, 하는 분노였는지, 막연한 후회의 감정이었는지. 그러니까 각자 ‘고집 센 어린아이처럼’ 외롭게 사는 게 인생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설명 안 해도 술술 통하는 소통불능의 경지까지 두 사람이 같이 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여기까지 같이 온 사람 아닌 그 누구도 당신의 고독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균형과 외로움을 동반한 아름다움은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이상한 아름다움. 기다리던 기차를 떠나보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아름다움, 누군가에게 왜 자꾸 거짓말 하며 사니, 하며 불시의 질책을 받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아름다움, 말이 안 통하네, 하면서도 일체감을 느끼며 같이 살게 되는 혼란스런 아름다움.

아직도 신혼열차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 간단히 말할 수 없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와 ‘거기’의 차이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여전히 실실 웃고 있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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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yulim님의 리뷰/ 교보 알라딘


속되지 않은 꿈을 찾는 일이 가능하리라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조악한 복사본으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처음 읽었던 것도 그 때, 스무 살 무렵이었다. 당시의 나는, 어쩌면 우리들 대부분은 속세에 뛰어들 용기를 내기엔 지나치게 겁이 많았고, 속세 너머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 확신하는 데만큼은 겁이 없었다. 막연하고 불투명해 대충만 설명해도 폼 나고 가치 있는 삶의 지향으로 보이던 저마다의 ‘곰스크’는 그 시절 얼치기 인문학도나 게으른 문학 청년들에게 적절한 피난처이자 알리바이였다.

곰스크로 가는 차표를 살 용기는커녕 차표 살 여비 모을 부지런함도 없이 이십대를 보냈던 나는 겨우 밥벌이를 할 직장을 찾았고 잠시 ‘곰스크’를 잊었다. 그리고 ‘대략 엇비슷하게 현실적이 되어’ 살아가면서도 술자리 치기를 빌어 ‘곰스크’로 가지 않은 선택의 아쉬움을 읊조리는 왕년의 우리들을 가끔 만날 때면 ‘곰스크로 떠난 것도 인생이고, 남은 것도 인생이다. 결국은 당신이 선택한, 바라마지 않았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닌 것처럼 굴지 말고 만족하라’ 따위 충고를 던지곤 했다. 선택은 선택이다. 물릴 수 없는 것은 물릴 수 없다. 현명하지만 동어반복일 뿐인 충고. 난 애저녁에 곰스크로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은 주인공에게 늙은 선생님이 던지는 충고를 습득했었나보다. 그건 나 자신을 위안하는 충고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군대 훈련병 시절부터 위장 군기의 대명사로 불리었던 인간이었다. 그 충고는 어쩌면 ‘곰스크’를 포기하고 남기 위한 변명이 아니라 언젠가 떠나는 선택을 했을 때를 위한 변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난 주인공처럼, 아니 주인공보다 훨씬 안정된 삶과 예측 가능한 미래를 두려워했다. 결국 ‘곰스크’를 향해 떠났다. 삼십대 중반이 되기 전의 일이었다. 비교적 안정되었던 직장을 포기하고 위대한 드라마 한편 남기겠다고 작가가 되는 지망생의 길에 들어선 거다. 돈 버는 작가가 아닌 지망생인 한 내 밥벌이와 갑자기 들이닥치는 신산한 인생의 짐을 책임져야 하기에 이러저러한 임시직을 거치며 현재도 ‘곰스크’와는 거리가 먼 생계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 사이 고질적인 게으름과 여전한 용기 없음, 태생적인 무능함으로 여러 차례 꿈의 좌절을 겪어야 했다.

난 지금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 조금 늦게 고백하자면 난 이 책 옮긴이의 골방 후배이며, 옮긴이의 말 속 ‘이따금씩 만나면 정말 거짓말처럼 또다시 곰스크를 이야기하고 우리의 못다 이룬 꿈과 그 대신 얻은 아내며 아이들에 대해 수다를 떨어대는’ 우리들 중 한 사람이다. 그들은 나에게 곰스크로 떠난 용기를 진심으로 격려하고, 얼마간 부러워하며, 얼마간은 그들이 대리 만족할 만큼 충분히 이상적인 ‘곰스크’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나를 안쓰러워해주는 것도 같다. 난 피식 웃으며 다시금 늙은 선생님의 충고를 반복하거나 생계형 인생의 고단함을 하소연한다. 떠난 이가 남은 이에게 하는 게 고작 시시한 넋두리라니.

우, 난 지금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 아직도 난 곰스크행 급행열차의 차표를 사모으고 있거나 어디로 가는 지 분명치 않은 열차를 타고 있거나 그곳에 도착하긴 했지만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주문을 건다. 곰스크의 희망을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나 또한 비록 평범하지만은 않은 나름의 방식으로 정착을 했지만, 오래된 곰스크의 갈망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근 이십년 만에 다시 읽은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더 이상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한 남성 가장의 정신승리법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어쩌면 곰스크행 헛발질을 꽤 오랬동안 하고 있는 신세 탓이리라. 그렇기에 이 길지 않은 중편을 읽고 작가가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더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곰스크에서 돌아와 내린 승객들에게 왜 곰스크에 대해 묻지 않을까? 물으면 그들은 무슨 얘기를 할까?

가령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한발 더 나아간다. 청춘 시절 록밴드 멤버의 꿈을 향해 몸을 던진 주인공은 고향으로 돌아와 친구들을 만난다.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택한 친구들은 그에게 묻는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니 행복하니? 단란주점에서 술손님 비위 맞추기 위해 벌거벗고 기타치는 처지의 주인공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떠난 자도 남은 자도 지나치게 힘없이 그려지긴 했지만 어쩌면 그 장면이 곰스크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점이리라. 곰스크는 세상 저 너머에 있지 않다. 곰스크로 떠나서도 우린 거칠고 비루한 현실을 살아야 한다.

떠나지 않은 이라면 어떨까? 오래 전 나의 독서가 주인공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치우쳤다면 이번 독서에선 오히려 주인공의 아내에게 더 애정이 갔다. 저 답답한 남편 만나 고생이라고. 어쩌면 주인공의 관념 속 ‘곰스크’보다도 아내가 그곳 정착지에서 곰스크로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십수년 전 이 책의 옮긴이인 선배는 내가 발로 쓰다만 소설을 보고 “모든 우화는 비극이다”라는 멋들어지지만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던 전언을 남겼다. (그 소설에는 바이올린이 나왔고, 자전거가 나왔고 중국집이 나왔다. 소재만으로 낭만적 우화가 떠오르지 않는가?)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한 그 전언을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폼나게 적용해 보고 싶다. 늙은 선생님의 위로에도 이 소설은 비극적이다. 그건 이 소설이 삶의 디테일을 (어쩌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갖지 않은 우화이기 때문이다. 전언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모든 코미디는 디테일에서 나온다.” 곰스크로 끝내 떠나지 못한 그들 부부의 삶의 속살을, 정착지에서의 좌충우돌한 삶을 그려본다면 그들의 인생이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을 거다. 근원적으로는 결국 곰스크에 도달하지 못할 운명인, 우리 모두의 비극적 인생을 코미디로 구원하는 길은 삶의 디테일, 순간에 대한 천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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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학면 톱 12. 25. http://bit.ly/dV7bPe 

‘미지의 세계’를 갈망하는 인간의 서글픈 숙명

독일 작가 프리츠 오르트만(1925∼1995)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그의 아름다운 중편소설 제목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익숙한 이들은 제법 있을 테다. 독일어 교재에 실린 이 작품이 알음알음 전파되어 연극 무대에 올려지기도 하고 TV드라마(MBC 베스트극장·황인뢰 연출·황경신 극본)로도 각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소설이 한국에서 우리 언어로 선보인 적은 없었다. 독일에서 이 작품집이 절판된 상태였던 데다 적극적인 출판 의지를 가진 이들도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10여년 동안 편집자로 일하다 일인출판사 ‘북인더갭’을 꾸린 안병률(40)씨가 직접 번역하고 펴낸 오르트만의 소설집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반가운 이유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있다. 남편은 아버지 대부터 늘 곰스크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성장한 사내다. 하지만 아버지는 생전에 곰스크에 가지 못했다. 사내는 결혼을 하자마자 아내와 함께 벼르고 벼르던 곰스크행 기차에 오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감춘 아내는 마지못해 남편을 따라간다.

“우리는 점점 익숙한 곳에서 멀어지고 있어요. 이 여행은 끝이 없을지도 모르죠. 언젠가 들은 남의 얘기 말고 곰스크라는 도시에 대해서 들은 말이 또 있나요? 그곳은 당신이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들은 그 곰스크와 다른 도시일지도 모르잖아요?”

아내는 남편을 따라가면서도 끊임없이 귓전에 불안한 입김을 쏘이며 말을 멈추지 않는다. 여행 둘째날, 낯선 곳의 한적한 역에서 기차는 두 시간 정차한다고 승무원이 말해주었다. 제대로 식사도 못하던 아내는 플랫폼에 발을 내딛자마자 얼굴에 생생한 홍조가 떠올랐고, 남편의 손을 잡아 끌어 길고 부드러운 분지에 자리 잡은 마을의 초원으로 나아간다. 장렬한 석양 속의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있던 남편은 기차가 떠날까봐 조바심을 내면서 아내의 손을 이끌지만 그네는 “그만 두세요, 이미 늦었어요”라고 속삭인다.

◇우리는 늘 다시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것 같은 기대에 기대는 운명인가. 그 서글픈 숙명의 소설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덧붙인 만화가 최규석씨의 삽화. (오른쪽)

다시 곰스크행 차표 값이 마련될 때까지 부부는 마을의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숙식을 해결한다. 아내는 신바람이 나서 안락의자를 장기투숙하는 여관방에 들여놓는데 남편은 내내 못마땅하다. 언제든지 기차가 오면, 차표가 마련되면, 다시 떠나야 하는데 안락의자는 웬 말이며 여행가방의 옷들은 왜 다 꺼내서 걸어놓는가.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아내는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싸우고 개척하려는 수컷들에 비해 어디에서든 머무는 곳에서 보금자리를 꾸미고 새끼를 키우려는 모성본능의 상징으로 그 아내는 등장하는 듯하다. 결국 남편은 그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맘을 독하게 먹고 오랜만에 달려온 곰스크행 기차에 오르려는 순간, 미적거리는 아내마저 버리고 떠나려는 순간,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고 다시 포기하고 만다. 오지의 작은 마을 교사직을 제안받았고 아내의 적극적인 권유로 늙은 전임 교사처럼 그도 그곳에서 늙어간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오지 않는 고도를 끊임없이 기다리는 사내들이 등장한다. 곰스크행 기차에서는 정작 자신을 기다리지도 않는 미지의 어떤 곳을 향해 평생 그리움을 품고 사는 사내가 나온다. 오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는 대상을 속절없이 갈망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서글픈 숙명이 이 중편에는 아프게 각인돼 있다. 당신도 오늘 여장을 꾸리고 드디어 곰스크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물론 ‘곰스크’는 상징적인 지명일 따름이다. 정작 그 곰스크에 가면 어디론가 다시 떠나고 싶은 또 다른 곰스크가 당신을 유혹하고 괴롭힐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늙은 전임교사의 이런 서글픈 대사를 음미해야 한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프리츠 오르트만의 작품집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는 이 표제작 외에도 ‘배는 북서쪽으로’ ‘양귀비’ ‘그가 돌아왔다’ 등 모두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국민일보> 12. 18. 문학면 Top  http://bit.ly/f0du2U 

1990년대 대학가 풍미한 ‘곰스크로 가는 기차’ 번역본 나오기까지


 

1. 1992년 봄 서울 청운중학교 교생 실습실은 오슬오슬 추웠다. 서강대 독문과 4학년이었던 안광복(40)씨는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독일어 사전을 뒤적이고 있었다. 송요섭 교수의 ‘중급 독문강독’을 수강하던 그는 교생 실습 때문에 중간고사를 치를 수 없었고 송 교수는 시험 대신에 교재로 쓰고 있던 텍스트를 번역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던 것이다. 과제로 하는 번역은 재미없다. 그러나 그는 점점 텍스트에 빠져들었다. 쉽고 아름다운 문장. 가슴을 아리게 하는 감미로움. 번역은 어느 덧 과제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교생실습이 끝나고 다시 캠퍼스로 돌아왔지만 번역은 계속되었다. 여기엔 23살 젊은이의 치기도 있었다. 텍스트를 번역해 당시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생일선물로 주고 싶었던 것이다. 텍스트는 독일 작가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북인더갭)였다.


2. 세월은 흘러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그의 삶에서 잊혀졌다. 군 입대 즈음 ‘곰스크로 가는 기차’ 번역물을 선물했던 여학생과의 인연도 끝나고 제대 후의 삶도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 무렵 신촌 대학가에 그가 타자기로 친 번역물이 나돌았다. 누군가는 PC통신에 번역물을 올리기도 했으며 그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최초 소개자로 세상에 알려졌다. 한 방송국에서는 단막극으로 만들겠다며 연락을 취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숨가빴던 대학원 수업과 그리스 유학 준비, 그리고 취업으로 이어지는 바쁜 일상 속에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다시 떠올릴 여지가 없었다.


3. 2010년 가을, 그는 한 출판사에서 메일을 받았다. 최초의 소개자로 알려진 그에게 이 소설에 대한 짤막한 해설을 맡기고 싶다는 원고 청탁서였다. 그때 그는 불현듯 자신이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주인공의 삶과 자신이 닮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그리스 유학을 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번역하는 고전문헌학자가 되겠다는 패기만만한 청춘의 꿈을 접고 마흔 살의 고등학교 철학교사가 되어 있었다. 유학을 준비하던 27살 때 3년만 돈을 모아 유학을 가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에게도 사랑은 찾아왔고 가정을 꾸려야 했다. 그는 이제 두 명의 아이를 거느린 가장이 되었고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학구열만큼은 감출 수 없어 모교에서 뒤늦게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는 지금도 책장에서 손때 묻은 그리스어 사전과 플라톤 전집을 치우지 못하는 영원한 철학도다. 그리스는 그에게 곰스크였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 텍스트의 최초 번역자라는 소문은 소문에 불과합니다. 사실 누가 최초의 번역자인지는 알 수 없지요. 번역본도 여러 종이 나돌았으니까요. 소설 출간을 계기로 제가 최초 번역자라는 부담감에서 풀려났으면 합니다.”


4. 저작권 계약을 맺고 이번에 정식으로 출간된 소설의 번역자는 안광복씨가 아니라 그와 비슷한 시기에 연세대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출판사 대표 안병률(40)씨다. 그 역시 90년대 초반, 연세대 문학동아리에서 번역 사본을 돌려 읽으며 토론을 벌인 마니아 가운데 한 명이다. 이 소설을 쓴 독일작가의 다른 작품까지 어렵게 찾아내 번역을 마친 그는 국내 최초 소개자로 알려진 안광복씨를 수소문해 해설을 맡겼던 것이다. 대체 20년 전 대학가의 수많은 청춘남녀들은 무엇 때문에 이 소설에 열광했던 것일까. 안병률씨는 “정말 위대한 시인 아니면 소설가가 될 줄 알았던 우리들은 하나같이 그럭저럭 먹고사는 샐러리맨이 되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곰스크란 단어는 불안한 미래와 암울한 현실의 반대급부이자, 개인의 이루지 못한 꿈을 넘어 우리 앞에 놓인 미래를 상징하는 고유명사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5.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기차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목적지는 곰스크. 남자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들어온 꿈의 장소로 평생에 꼭 한 번 가야할 운명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 중 우연히 내리게 된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내와의 갈등 끝에 결국 곰스크로 가는 꿈을 접고 만다.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운명, 이루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 꿈. 이것이 이 소설에 담긴 강렬한 역설이자 이 소설의 매력이다. 다른 수록작 ‘럼주차’ ‘양귀비’ ‘붉은 부표 저편에’ 등도 인생의 순간순간들이 실은 평생과 대결하고 있다는 심오한 미학을 담고 있다.


6. 프리츠 오르트만(1925∼1995)은 생전에 아주 적은 작품만을 발표한 작가다. 아마도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8편이 거의 전부인 듯 하다. 독일에서조차 그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 독일 북부 해안가인 프리슬란트 지방에서 태어나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성장했고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에서 전쟁포로생활을 했으며 이후 영국과 독일에서 공부하고 터키 이스탄불에서 독일어교사로 근무했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부인의 주소가 스페인으로 되어 있다는 게 최근에 확인된 정보일 뿐, 그는 사진조차 공개되지 않은 베일 속 작가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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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2. 18. [책꾸러미] http://bit.ly/hPePzp

곰스크로 가는 기차… 프리츠 오르트만 | 북인더갭


1980년대 말~90년대 초 대학가에서 알음알음 읽히기 시작해 드라마와 연극 등으로 공연됐던 소설이 처음으로 정식 번역돼 출간됐다. 막 결혼한 부부가 기차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목적지는 곰스크. 이 도시는 사내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들어온 꿈의 장소로 평생에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곳이다. 그러나 여행 중 우연히 내리게 된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아내는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사내는 아내와의 갈등 끝에 결국 곰스크로의 꿈을 접고 만다. 유토피아를 추구하면 할수록 실제 인생은 그곳에서 더욱 멀어질 수도 있다는 역설, 어쩌면 유토피아는 현실에서 갈 수 없는 곳이 아니라 당신이 일궈온 이곳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안병률 옮김.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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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12. 18. [문학 새책]


곰스크로 가는 기차 http://bit.ly/g5YggO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기차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목적지는 곰스크. 남자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들어온 꿈의 장소로, 평생에 꼭 한번 가야 할 운명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중 우연히 내리게 된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내와의 갈등 끝에 결국 남자는 곰스크로의 꿈을 접게 된다.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최규석 그림·안병률 옮김/북인더갭·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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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12. 18. [문학 새책]


곰스크로 가는 기차 http://bit.ly/fBkOUU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한 신혼부부의 이야기로 국내에서 드라마, 연극 등으로 꾸준히 공연된 표제작이 수록된 독일 작가의 단편소설집. 올해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자인 만화가 최규석씨가 삽화를 그렸다. 안병률 옮김. 북인더갭ㆍ202쪽ㆍ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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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2. 25 [새로나온 책]  http://bit.ly/htFhv6

곰스크로 가는 기차(프리츠 오르트만 지음·북인더갭)

곰스크행 기차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 신혼부부가 우연히 도중의 작은 마을에 내린다. 남편은 곰스크에 꼭 가고 싶어 하지만 아내는 마을에 정착하기를 원한다. 곰스크는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장소. 출간도 되기 전 국내에서 드라마로, 연극으로 만들어져 주목을 받았던 소설. 1만2000원.


<뉴시스> 12. 14. [신간 소개]


유토피아…U-Topia? You-Topia!  http://bit.ly/hawMXn 

서울=뉴시스】백영미 기자 = “당신은 이미 당신이 원한 삶을 살았다.”


소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인생에 물음표를 던진다.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곰스크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여행에 오르는 과정을 전하며 독자에게 인생의 진정한 목적지, 유토피아를 묻는다.


유토피아의 의미는 ‘세상에는 없는 땅(U-Topia)’이다. 소설 속 유토피아로 등장하는 곰스크는 남편이 어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들어온 꿈의 장소다. 평생에 꼭 한 번 가야 할 운명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사내는 여행 중 우연히 내리게 된 작은 마을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내와 갈등하다가 결국 곰스크를 향한 꿈을 접는다. 소설은 역설적으로 유토피아를 추구하면 할수록 실제 인생은 그 곳에서 더욱 멀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내는 작은 마을에서 정원이 딸린 집을 얻고 능력에 걸맞는 교사직을 물려받았지만 마음은 곰스크로의 열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마을의 늙은 선생님은 “당신은 이미 당신이 원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작가는 곰스크는 현실에서 갈 수 없는 유토피아가 아닌, 바로 지금까지 일궈온 ‘당신의 영역(You-Topia)’이라고 귀띔한다.


소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독일어 교재에 실린 소설의 번역본이 사본 형태로 학생들 사이에 돌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그 후 MBC TV 베스트극장 ‘곰스크로 가는 기차’로 제작되며 대중적 관심을 끌었다.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최규석 그림· 안병률 옮김, 202쪽, 1만2000원, 북인더갭


positive1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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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80년대말에서 90년대초 대학가에서 알음알음으로 조용히 알려진 소설이다. 처음에는 독일어교재에 실린 소설의 번역본이 사본 형태로 학생들 사이를 나돌면서 마니아층이 형성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 마니아층에서 배출된 작가들이 여러 매체에 이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MBC 베스트극장 「곰스크로 가는 기차」(황경신 극본, 엄태웅 채정안 주연)였다. 「샴푸의 요정」의 황인뢰 PD가 연출한 이 단막극에서 시작된 대중적 관심은 이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연극(2009) 등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나만 알고 있는 기차여행이 있었다!

독일어교재에 실렸을 뿐인 소설이, 그것도 미출간 상태에서 이처럼 문화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한번 읽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스토리,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묘사, 극적인 캐릭터 등으로 빛나는 소설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빛나는 이 소설만의 장점은 우리 인생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과 성찰일 것이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간단한 줄거리를 가진 소설이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기차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목적지는 곰스크. 이 도시는 사내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들어온 꿈의 장소로, 평생에 꼭 한번 가야 할 운명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중 우연히 내리게 된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내와의 갈등 끝에 결국 사내는 곰스크로의 꿈을 접고 만다.

이 소설에서 곰스크로의 여행은 누구에게나 있는 인생의 진정한 목적지, 곧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 유토피아의 의미는 세상에는 ‘없는 땅’(U-Topia)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바로 이 소설의 강렬한 역설이 있다. 유토피아를 추구하면 할수록 실제 인생은 그곳에서 더욱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주인공의 삶이 그러하다. 작은 마을에서 정원이 딸린 집을 얻고 자신의 능력에 어울리는 선생직을 물려받았음에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곰스크로의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마을의 늙은 선생님은 말한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원한 삶을 살았다”고. 어쩌면 이 장면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유토피아의 진정한 의미가 밝혀지는지도 모른다. 곰스크는 현실에서 갈 수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바로 지금까지 일궈온 당신의 영역(You-Topia)이라는 진실이.

생의 편에서 추구된 사랑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서 유토피아의 참 의미가 성찰됐다면,「배는 북서쪽으로」는 이 목적지에 가닿는 것을 방해하는 세상의 탐욕을 짚어낸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목적지를 잃고 유령선처럼 바다를 떠도는 배는 “돈”이라는 자신의 항로를 따라가는 이 세계를 함축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외침처럼, 사람에게는 돈 말고도 저마다의 진정성이 있고 목적이 있다. 그 외침은 세상이 아무리 돈과 권력을 향해 질주하더라도 인간만큼은 그 길을 강요받을 수 없음을 항변한다.

오르트만의 소설에서 돈과 권력의 반대편에는 항상 살아있는 인간의 사랑이 빛을 발한다.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에서 생의 의미를 옹호하는 화가, 「양귀비」에서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평생 부끄럽게 간직하는 아들의 모습은 이 작가가 얼마나 생의 편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럼주차」와 「붉은 부표 저편에」 「그가 돌아왔다」 역시 살아 움직이는 생의 한 단면을 프리슬란트(독일 북해지역) 지역의 풍광과 더불어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이 작품집의 가장 큰 매력은 여러가지 해석과 상상을 가능케 하는 열린 구조에 있다. 처음 대학가에서 자발적으로 소개된 이후 2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유도 아마 이 작품집이 우리 인생에 던지는 지속적인 질문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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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출간되었습니다.  
출간 전부터 진행된 <나만 기억하고 싶은 기차여행은?>
이벤트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아래와 같이 당첨자를 발표합니다.

당첨자: 글 써주신 모든 분^^(총8명)

당첨되신 분들은 북인더갭 이메일 mokdong70@paran.com
주소와 연락처를 보내주시면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기차여행에 관한 아름다운 사연 보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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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기억하고 싶은 기차여행은?"

본인이 경험한 기차여행도 좋고,
소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기차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을 감상한 추억도 좋습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경험을 140자 이내로
아래 댓글로 달아주시면 (아래의 'comment'를 누르고 작성해주세요^^)
그중 다섯 분을 뽑아 출간 즉시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보내드립니다. 

발표: 12월 15일 이곳에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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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을해 2010.11.30 09:48 신고

    서른즈음, 엄마와 함께 남쪽 강진으로 기차여행을 떠났던 기억. 줄곧 백수로 지내던 노처녀 딸과 환갑 즈음의 소녀틱한 엄마가 다산초당과 김영랑 생각를 돌아보며 검은 나비 한 마리를 마음에 새겼던 여행. '(다산이란 사람은)귀향와 이 시골에서 20년 가까이 공부를 열심해 했다니 너도 열심히 해봐' 뭘요 엄마?...

    • 북인더갭 2010.12.15 11:29 신고

      다산초당과 김영랑 생가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검은 나비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집니다.

  2. 이균영의 소설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 기형도의 시 <조치원> 두편에서의 기차가 각별하게 떠오릅니다. <조치원>에서 낙향하던 사내가 기차 안에서 달걀을 까다가 손톱을 다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3. 은실네 2010.12.02 00:40 신고

    기차여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로맨스의 묘미를 보여줬던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떠오르네요. 청춘이 있었다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사랑이야기가 아닐까요. 왜 내겐 그런 경험이 없었을까 아쉬워하다가 지금의 남편과 기차를 몇번 타봤나 떠올려보니 무려 다섯번이었다네요. 그나마도 왜 난 기억이 가물가물한지..그닥 로맨틱하지 않아서 일까요,출산의 후유증? 아님, 무료한 일상에 추억도 묻힌 걸까요.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을 기차여행은 이제 곧 떠날겁니다. 언제든 준비가 된다면~!

    • 북인더갭 2010.12.15 11:27 신고

      비포 선라이즈! 기차여행에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영화죠.

  4. 나미니 2010.12.03 13:38 신고

    젊디젊은 스무살~ 친구들과 겨울바다를 보러가자며 없는 돈 탈탈털어 동해바다로 가는 막차에 올라 꼬박 8시간 이상을 서서가던 배고팠던 여행이 생각나는군요. 서서간들 어떠하리 춥고 배고프지만 않는다면ㅋ...달걀 하나 못 사먹고 굶주림에 도착한 작은 어촌마을 추암!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그곳. 다시 한번 타보자. 녑야!, 수기야! 어여와라 막차시간 놓칠라~~~

    • 북인더갭 2010.12.15 11:26 신고

      스무살이라면 쇠도 씹어먹는다는 그 나이 아닌가요? 좋은 추억이셨겠어요.

  5. Hunny 2010.12.06 11:28 신고

    몇 년 전 삼남매가 전주에 가기 위해 승용차로 길을 떠났는데... 갑자기 차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다행이 근처에 신탄진으로 빠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기차여행이 시작되죠. 좌석 하나, 입석 둘... 우리는 당시 모두 건강했기에 나이와 성에 관계 없이 '평등' 원칙을 내세워 한 사람당 자리에 15분씩 교대로 앉아서 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나름...괜찮았죠.

    • 북인더갭 2010.12.15 11:25 신고

      차가 고장이 나지 않았다면 떠나지 못했을 여행이군요. 기차는 이렇게 갑자기 타야 더 추억에 남는 거 같아요.

  6. 20여년전 고등학교 동창과 부산으로 겨울바다 여행을 갔던 기억이 나네요 막 20대를 맞은 우리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동경 여행지인 부산으로 가는 밤기차에 올라 잠 한숨 안자고 들뜬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던 기억이 오늘 내리는 눈을 보니 소로록 떠오릅니다 어두운 겨울밤 밖의 풍경은 보이지 않았으나 기차 창문에 어린 친구의 모습과 간간히 만나는 밖의 불빛이 따스했습니다 그당시 남친이 있던 친구는 보디가드겸 자신의 남친도 같이 동행하게 했는데 속모르는 이들은 연인 사이에 눈치없이 끼어갔다며 저를 나무랬지요 정말 친구와 나 사이에 그 남친이 끼어든건데 억울해라~~
    어이 친구 잘 살고 있지?

    • 북인더갭 2010.12.15 11:23 신고

      겨울밤 기차여행 너무 낭만적이네요. 저는 뜨뜻한 우동 생각이 갑자기...^^

  7. gagamel75 2010.12.14 13:20 신고

    딸들은 대개 자라면서 엄마와 끊임없는 말다툼과 신경전을 벌이기 마련인데-사실 서른도 중반에 접어들고 나니, 그 모든 다툼들도 엄마도 나도 혈기왕성하고 젊을 때의 일이라는 게 새삼 서글프지만-2006년 여름, 엄마와 크게 한판(!)을 치르고 난 뒤 며칠을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다가, 이대로는 내가 못 견디겠어서, 기차표 사가지고 엄마에게 내밀었어요. 영월 동강과 천문대, 인디아나존스라도 나올 것 같았던 고수동굴, 말 그대로 청록빛 강물에 둘러 싸인 청룡포...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어느새 엄마 어깨에 기대 잠들었던 기억.

  8. mega_toy 2010.12.14 13:25 신고

    오래전에 타보았던 소래역 기차 너무 가볍고 느린 그기차는 쓰러지면 승객이 내려서 세웠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전 확인못했어요^^ 일본에선 작은역사의 기차역도 관광상품화 시켜 유지해 나가는데 우리도 이러한 추억을 살릴수 있는 기차역이 많이 남았으면 합니다~ @mega_toy

    • 북인더갭 2010.12.15 11:19 신고

      아 소래역 기차 저도 너무 타보고 싶었는데요. 작은 간이역 너무 좋죠?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찍었다는 반곡역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9.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꿈에도 그리던 책을 선물로 받게되다니
    산타할아버지께 선물 받은듯 너무 기쁨니다
    앞으로 착한일 많이 하고 살겠습니다 ^^
    북인더갭 자주 뵙고 싶네요 번창하세요

    • 북인더갭 2010.12.15 11:30 신고

      오히려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부디 좋은 독서 되시길 바랄게요.

  10. 나미니 2010.12.16 15:55 신고

    아싸! 자갸~ 나 당첨이래...
    이벤트 응모해서 첨 타보는거라 넘 가슴이 떨리네요...^^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신 북인더갭 관계자 여러분 감솨요.
    정말 정말 열씨미 읽고 틈나면 도장찍을게요.
    또 이벤트 얼렁 열어주세요(기대할께용).
    그럼 수고하세요.


 

내가 최초로 곰스크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십대의 벼랑에 매달려 있었다.
겁도 없이 곰스크,라고 발음하며
조금은 짓궂은 마음으로 타인의 표정을 살피던 시절이었다.
누구는 곰스크를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라 했고
누구는 말하지 못한 꿈이라 했으며
또 누구는 아무말 없이 슬픈 미소를 지었지만,
곰스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내게 곰스크는 곰스크 그 자체인 동시에
현재진행형으로 달려가는 기차였고 거대한 물음표였다.
수시로 행방불명이었으나 삶의 난폭한 구절마다
기적소리를 내며 달려오곤 했다.
어두운 다락방에 숨어 또다시 멀어지는 기차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발목을 잡는 건 행복해지려고,
최소한 불행해지진 않으려고 시작한 일들이었다고.
그리고 상처가 되는 건 아마도 사랑이나 꿈이 저지른 짓들이리라.

황경신_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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