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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06 김조을해 장편 <힐> 언론서평
  2. 2015.06.29 작가의 말
  3. 2015.06.28 저자 약력
  4. 2015.06.28 추천사 _최윤
  5. 2015.06.28 독특하면서도 아름답다! _최윤

김조을해 장편 <힐> 언론서평

2015.07.06 14:26 | Posted by 북인더갭

<경향신문> 2015. 7. 4.

 

[책과 삶] 딴생각 통제하는 제국수용소에서도 진실은 살아남는다

김조을해 지음 | 북인더갭 | 280| 12500

 

휴양지의 고급 리조트처럼 쾌적한 힐 공동체제국을 거스른 사람들을 수용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물자가 풍족하고 산책로와 체력단련실, 스파까지 마련돼 있다. 힐은 수용자들이 스스로 싸움을 포기하도록 점잖게 기다리면서 쉬어가며 삶을 정돈하라고 비열하게도 명령하는 교화기관이다.

 

작가 김조을해(46)의 첫 장편소설 <>은 가상의 나라 제국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가 수용소 힐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방언으로 글을 쓴다거나 학생에게 책을 선물하는 일, 정신병을 앓는 일 같은 게 제국의 교화 대상이다. 이에 맞서 인간 정신의 자유와 다양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판타지가 시적인 언어로 풀려 나온다.

 

 

힐 공동체 동관 803호에 들어온 청년 마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속국인작가 리간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본국인’, 곧 제국인이며 동생 욘데는 어머니의 고향인 남쪽의 원시부족에서 입양해 왔다. 마기는 최근 제국 병원에서 숨을 거둔 어머니가 제국행정어로 쓴 글을 국제표준어로 번역하는 작업 중에 힐에 끌려왔다. 애초에 리간이 처음 글을 썼던 남쪽 부족의 언어, 방언본을 국제표준어본과 함께 출간하려던 게 문제가 됐다.

 

힐은 형기가 정해지지 않는 곳이고, 마기는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감금 프로그램이 가동될 것이라는 위협을 받는다. 개인 필수면담과 필수강연에 참석하는 것 외에는 자유시간이지만 힐은 호텔식 감옥일 뿐이다.

 

성정체성을 의심받아 아내의 권고로 힐에 온 큐선생, ‘일주일 후면 나갈 수 있다는 거짓말에 수차례 속고 살아 온 여자 세벡 등 다른 수용자들이 마기의 위안이 되어준다.

 

제국은 마기의 시도가 의미없는 출간이자 제국에 대한 공격이라며 그만두길 요구하지만 마기는 굽히지 않는다.

 

가슴에서 먼저 터져나온 거칠지만 뭉클한 글은 방언으로 씌어진 글입니다. () 힘없이 사라져가는 한 부족이 자부심을 얻었다 해서 나라에 큰 위협을 가하겠습니까, () 그들의 피를 물려받은 작가를 기억하게끔 도와주고 싶은 겁니다.”

 

동생 욘데도 마기 이전에 힐을 거쳐갔으나 실종 상태임이 드러난다. 원하는 대로 남쪽으로 떠난 것인지, 제국에 의해 감금돼 있는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욘데는 소수민족 언어가 현대 제국행정어의 뿌리임을 밝히고 어머니 고향의 자장가와 동시, 노동요, 옛이야기를 방언대로 정리해 아이들에게 읽혀 왔다. 마기는 욘데가 가 있을지 모를 남쪽을 이정표 삼아 희망을 갖는다.

 

남쪽을 노래하듯 그리워하는 마기의 판타지장면은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이제 없는 이상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리간과 욘데가 태어난 남쪽의 부족은 제국에서 미개한 원시인 취급을 받지만 짝에게 자신이 지은 사랑의 글을 읽어줘야만 부부가 될 수 있는 족속이다. 음악을 사랑하고 전쟁을 모르며 느려터진 여유를 아는 사람들이다.

 

남쪽, 북쪽 하는 지칭은 한국의 분단을 연상시키는데, 제국과 힐이라는 공간은 현실의 남북한 체제의 모순만을 집약한 것 같아 보인다.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강요하며 그에 어긋나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모든 물질이 풍족하지만 삶의 신비와 거룩함에 대해 묻지 않는 곳이 제국이다.

 

김여란 기자

 

 

 

 

<조선일보> 2015713일자

 

열대야 식혀줄, 장편이 왔다

이색 소재·서사 장편 잇단 출간

 

한국 소설이 장편(長篇)의 계절을 맞았다. 본격 문학 작가들이 최근 이색 소재와 서사를 갖춘 장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경남 한산도(閑山島)에 사는 중진 작가 유익서는 전통 옻칠 공예의 미학을 다룬 소설 '세 발 까마귀'(나무옆의자)를 냈다. 지난 몇 년간 장편소설 공모에서 연거푸 당선된 젊은 작가 장강명은 요즘 한국 청년들의 현실 비판을 반영한 '한국이 싫어서'(민음사)를 내놓았다. 유익서 소설이 한국적 미학에 애정을 표현한 반면 장강명 소설은 한국적 삶에 환멸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묘한 대조를 이룬다.

 

스페인 문학자 구광렬(울산대 교수)1980년대 멕시코 감옥에서 시작하는 소설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새움)를 출간했다. 젊은 작가 김조을해는 가상세계의 수용소를 그린 소설 ''(북인더갭)을 선보였다. 해외를 무대로 하거나 판타지를 상상하는 것은 요즘 한국 소설의 새 흐름이기도 하다. 구광렬 소설에서 멕시코는 현실 공간이면서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가상 도시처럼 남미 현대사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김조을해 소설은 환상 문학이면서도 오웰의 소설 '1984' 같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계보에 속한다.

 

유익서의 '세 발 까마귀'는 경남 통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예술가 소설이다. 옻칠 공예를 현대 미술에 응용해 세계 미술 시장에 내놓을 한국적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서양 미술은 중세를 정점으로 미학적 아우라를 점점 잃어오지 않았는가"라며 현대 미술을 비판한 뒤 "옻칠과 자개의 특성을 살려 벽화의 전통을 구현하자"고 제안한다. 작가는 "전통의 계승은 풍요로운 샘"이라고 강조했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주인공은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라고 자조하는 오늘의 청춘을 대변한다. 주인공이 호주로 떠나 고생 끝에 정착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결국 한국적 삶에 안주하지 못해 호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다. 작가는 행복을 '자산성 행복''현금 흐름성' 행복으로 나눈다. 취업을 비롯해 현실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은 그로 인한 기억을 행복의 자산으로 삼아 힘들게 생존한다. 그런 성취의 기억이 없는 사람은 순간순간의 행복을 끝없이 추구하는 '현금 흐름성' 행복을 지향하게 된다. 한국에선 '현금 흐름성' 행복을 얻기가 힘들다는 게 이 소설의 전언이다.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매는 거랑 똑같지 뭐'라고 주인공이 한마디 날리며 한국을 떠난다.

 

구광렬의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는 멕시코 감옥에 억울하게 갇힌 한국인 유학생의 인생 유전을 다룬다. 주인공이 지옥 같은 감옥에서 탈출한 뒤 멕시코 반란군에 합류해 겪는 모험담이다. 작가가 멕시코 유학 체험을 바탕으로 원래 스페인어로 쓴 소설이다. 출간을 하려 했으나 원고를 잃어버렸다가 기억을 되살려 우리말로 복구했다고 한다. 한국과 남미의 정치적 유사성을 반영하며 쓴 분노의 소설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할 것,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라는 칸트의 행복론을 인용해 소설 주인공이 파란만장한 모험에 뛰어든 동기를 에둘러 표현한다.

 

김조을해의 ''은 시대와 장소가 불분명한 가상현실을 담은 환상적 리얼리즘을 펼쳐놓는다. 정체불명의 제국(帝國)이 인간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교화하기 위해 세운 수용소를 무대로 삼았다. 수용소 같은 현실을 벗어나 이상향을 찾아가려는 이야기다. 그 밑바탕엔 분단된 한반도에서 원초적 고향을 찾으려는 '실향민 의식'이 깔려 있다. 작가는 황해도에서 월남한 조부를 둔 피란민 3세대라고 한다. 분단과 전쟁 이전의 고향을 향한 실향민 가족의 무의식이 이 소설의 뿌리가 됐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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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2015.06.29 10:18 | Posted by 북인더갭

내 본명은 김남순이다. 황해도 은율에서 남으로 피난와 무사히 정착한 것을 기뻐하며 할아버지께서 돌림자인 홍洪자 대신 남南자로 손주들 이름을 지어주셨다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새로울 것도 없는, 우리 집안처럼 6・25때 살 길을 찾아 남으로 피난온 실향민들의 삶이 어쩌면 나의 첫 장편소설 『힐』의 중요한 단서였던 것 같다.


사람들이 늘 꿈꾸던 남쪽, 하지만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남쪽, 남쪽의 어느 평화로운 부족, 그 부족을 미개하다는 이유로 굴복시킨 제국, 그러나 괴물 같은 제국에 결코 무릎 꿇지 않으려는 한 가족의 이야기. 처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 이 핑계 저 핑계로 거의 6년을 붙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게으름의 끝판왕이다. 2013년에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지 못했다면 아직도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첫 장편이 나온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해주셨던 소설가 최윤 선생님, 그 따뜻한 격려에 감사드린다. 삐딱하고 뚱한 딸을 무한대로 신뢰해주고 응원해주신 부모님, 불효녀는 웁니다… 두 분의 넘치는 사랑에도 마음깊이 감사드린다.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해도 섭섭한 내색 한번 안 하시는 시부모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아이가 아닌, 나의 최고의 여행친구이자 영화친구, 어딘가 나를 닮았지만 어른인 엄마보다 더 여유롭게 웃을 줄 아는, 중학생이 된 아들 성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형제들과 조카들도, 모두 고맙다.


소설을 써놓고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만 해놓는 게 내 취미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돼버렸다. 그러하기에 편집자로, 동업자로, 친구로, 연인으로 복합적이고도 치열하게,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도운 남편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이 차마 새삼스러울 따름이다. 


나를 기억하며 내 소설을 기다려준 다정한 친구들에게, 제국을 향해 전의를 불사르며 이 순간도 투쟁하는 용감한 전사들에게, 또한 누군가 희생하며 닦아놓은 길을 생각 없이 뒤따라간 나와 같은 무임승차자들에게, 모두를 격려하고 축복하며, 부끄럽고도 부족한 나의 첫 장편 『힐』을 바친다.     

 

2015년 6월    
김조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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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2015.06.28 16:45 | Posted by 북인더갭

김조을해


저자 김조을해는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아주대 행정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봄 『파라 21』 신인공모에 단편 「야곱의 강」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문예중앙』, 웹진 『문장』 등에 작품을 발표했다.

장편소설 『힐』로 201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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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_최윤

2015.06.28 16:35 | Posted by 북인더갭

남다른 발상, 당찬 관찰력

은근한 기이함이 빛을 발하는 소설!

 

김조을해의 소설은 평범함을 가장하면서도 은근히 빛나는 기이한 장점이 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마는 끈기가 엿보이는 한편, 독자들을 당기고 풀어놓는 감정의 리듬을 축조하는 능력이 있다. 작품에 고유한 언어에 대한 고심과 평범한 듯한 주제를 이끌고 가는 남다른 발상도 눈에 띈다. 또한 과장적인 안간힘을 하지 않고도 작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이 작가는 터득하고 있는데, 그것은 기법이 아니라 인간과 현실에 대한 조용하면서도 당찬 관찰력에서 나왔기에 설득력이 있다. 현란하지 않은, 그러나 범상하지 않은 소설가의 탄생을 축하한다.


최윤 (소설가, 서강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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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면서도 아름답다! _최윤

2015.06.28 16:28 | Posted by 북인더갭

은근한 기이함이 빛을 발한다! _최윤

 

  독특하면서도 아름답다는 최윤 작가의 상찬을 받으며 지난 2004파라 21로 등단한 작가 김조을해의 첫 장편소설 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리조트처럼 꾸며진 가상의 수용소 을 배경으로, 인간 정신을 박탈하려는 세력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남매의 스토리를 힘있게 끌어나간다. 장편 은 피난민 3세대의 내면 깊이 자리잡은 냉전의 상처와 근원적 고향상실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역작이다.

 

지금 여기 힐만한

판타지 공간이 또 어디 있겠어요?

 

작가 김조을해의 첫 장편소설 은 가상의 수용소 을 배경으로 한다. 이미 풍요가 이뤄질 대로 이뤄진 제국에서 힐은 수용소가 아니라 마치 리조트와 같은 외양을 갖추고 있다. 아름다운 건물과 산책로, 체력단련실에 스파까지 갖춘 힐은 인간이 디자인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되고 이상적인 교화기관이다. 힐의 이념은 구속과 감시를 통한 교화가 아니라, “스스로 쉬면서 삶을 정돈하고 결국은 정신을 포기하게끔 만드는것이다.

 

반사회적 인물들이 수용되는 이곳 힐에 주인공 마기가 입소하면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마기는 본국인(本國人) 아버지와 속국인(屬國人)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다. 그의 어머니는 원시부족에 가까운 속국 출신의 작가로서 국제적인 명망을 얻지만 제국의 감시 속에 일찍 숨을 거두고 만다. 마기가 힐에 수용된 이유도 그가 어머니의 유작을 소수부족 방언으로 번역하려 한다는 혐의 때문이다. “스스로 싸움을 포기하도록 점잖게 기다리는 힐에 맞서 마기는 시종일관 자신의 정신을 꺾지 않는다.

 

길을 벗어나 시간을 뛰어넘었다 떠들지 마십시오. 시간을 단축했다면 언젠가 그만큼의 고통과 부작용이 꼭 나타납니다.” (240)

 

이 소설은 주인공 마기의 판타지와 힐의 판타지가 충돌하는 장면이 큰 축을 이룬다. 힐의 판타지는 시민의 정신을 제국의 통치권에 묶어두는 것이다. 힐은 그런 판타지를 위해 설립된 휴양지이자 병원이며 훈련소이기 때문이다. 반면 마기의 판타지는 어머니의 고향을 회복하는 것이다. 비록 고향은 제국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마기의 판타지는 아름답게 그곳을 되살려내고 있다.

 

강가에서는 기쁜 일들을 이야기했고 아기들을 씻겼습니다. 그렇게 하면 강물의 힘이 세져 바닷물에 섞여도 혼돈의 바다를 이길 거라 믿었습니다.” (177)

 

이렇듯 이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은 고향에 대한 마기의 판타지에 녹아들어 있다. 마기에게 남은 가족은 이제 늙고 병든 아버지와 행방을 알 수 없는 동생 욘데뿐이다. 사건은 동생 욘데가 먼저 힐을 거쳐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마기를 상담하던 힐의 직원 에보스가 누군가에게 피습당하면서 점점 더 긴박하게 흘러간다.

 

정신과 가슴에 새겨넣은 걸

제도가 어떻게 빼앗겠어요?

 

장편 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꼽으라면 단연 욘데가 될 것이다. 주인공 마기의 여동생이자 입양아인 욘데는 어머니 리간의 작품을 부족방언으로 번역해 아이들이 따라 부르게 한다. 그저 따라 부르게만 했으므로 그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제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기막힌 방법이었다. “욘데는 굳이 제국을 상대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상대한다.”

또한 그녀는 천부적인 총명함과 빛나는 상상력으로 부족방언의 변천사를 해와 달과 별과 같은 그림으로 정리해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제국은 이런 욘데의 천재성을 이용하고 싶어 힐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욘데는 아무도 모르게 힐에서 종적을 감추고 만다. 그녀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실마리 하나를 암시하는 인물이 바로 에보스다. 열정에 대한 강연으로 청중을 감동시키는 솜씨로 볼 때 에보스 역시 욘데와 마찬가지로 원래 명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보스는 결국 제국에 굴복한 정신이다. 힐의 용어를 빌리자면, 그는 머리를 다친 사람이며 머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으로, 제국의 순화교육에 의식 모두를 빼앗긴 사람이다. 그러니 욘데 역시 에보스처럼 될 위험에 처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욘데의 행방에 관해서는 끝까지 함구한다. 다만 그녀가 남으로갈 것이라는 암시를 남길 뿐이다.

 

나도 함께 가도 될까요?

 

일견 미래의 판타지 형식을 취하는 이 소설은 사실 한국사회의 역사와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그 뿌리를 타고 내려가다보면 우리는 분단된 나라에서의 난민의 정체성이라는 무거운 주제의식과 마주치게 된다. 피난민 3세대로서의 작가의 정체성은 이번 소설을 구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작가의 말에서 드러나듯, 이 소설은 6·25 때 살 길을 찾아 남으로 피난온 실향민들의 삶이 중요한 단서가 되어 씌어졌다.

힐을 벗어나 남으로향하고 싶어하는 욘데와 마기, 세벡,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에게서 독자들은 그러한 단서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이란 물리적 남쪽이 아니라, 제국의 간섭을 받기 이전, 그래서 분단도 전쟁도 없었던 원초적 고향을 상징한다고 보는 쪽이 옳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무엇이 됐든, 이른바 피난민 3세대의 내면 깊이 새겨진 냉전의 상흔, 그리고 그들의 무의식 깊이 자리잡은 근원적 고향상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설가 최윤이 지적하듯이 작가의 현란하지 않은 주제의식이 그저 범상한 형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남다른 발상과 참신한 관찰력, 고유한 언어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는 점이다. 그 점에서 은 우리 문학이 기다려온 하나의 수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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