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반언어/책 소개

카를 크라우스 <언어와 반언어> 책 소개

북인더갭 2026. 8. 12. 17:37

지난 세기 서구 문화를 다룰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작가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생소한 카를 크라우스의 아포리즘과 에세이를 한국 최초로 번역한 작품집 언어와 반언어가 출간되었다. 카를 크라우스는 잡지 횃불(Die Fackel)을 창간해 언론과 법, 예술의 위선을 신랄하게 공격하여 시대의 논쟁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벤야민, 아도르노, 브레히트 등 당대 거장들의 존경을 받았다. 비판과 풍자를 언어유희로 버무리는 데 탁월한 크라우스의 글쓰기는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의 세계를 보편적인 예술정신으로 비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1부에는 크라우스의 촌철살인의 사유가 빛나는 아포리즘을 모았고 2부에는 시대와 일상의 풍경을 아이러니한 감각으로 포착한 짧은 에세이들을, 3부에는 저널리즘, 예술, 전쟁 등을 깊이 파헤친 크라우스의 대표적 장편 에세이들을 수록했다.

 

깊은 사유가 전하는 다성적 울림

카를 크라우스를 저명한 필자로 만들어준 잡지는 1899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본인이 직접 창간한 횃불이었다. 1911년 이후로 크라우스 자신의 글만 수록한 사실상의 1인 잡지로 운영된 횃불은 수많은 작가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았고 언론과 제도의 허위를 신랄하게 공격한 결과 끊임없이 고소 고발에 휘말리기도 했다. 횃불을 애독했던 발터 벤야민은 침묵, 지식, 정신의 깨어 있음이 논쟁가 크라우스의 특성을 구성한다고 말했고, 아도르노는 언어를 심판함으로써 사회를 심판하는 작가로서 크라우스를 높이 평가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시대가 손으로 자신의 숨을 끊으려 할 때, 크라우스가 바로 그 손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책의 1부에는 카를 크라우스의 핵심 사상과 문체의 정수가 잘 드러난 아포리즘을 실었다. 신문 문예란으로 대표되는 상투적 글쓰기에 대한 크라우스의 강렬한 비판이 눈에 띈다. 크라우스에게 있어 문예란을 쓴다는 건 대머리에 컬을 만드는 것과 같다. 즉 장식적 글쓰기는 모국어의 샘에서 발을 씻는행위와 다름없다면서 그 물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이런 비판의식의 이면에는 글쓰기에 대한 크라우스의 본질적이고 예술적인 성찰이 자리잡고 있다. 글이란 사유의 필연적인 육화이어야 하지 의견의 사회적 표출이어선 안 된다. 이처럼 그의 아포리즘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은 절실함을 담아 온몸으로 씌어진 글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한 문장으로 진실을 초월해야 한다는 자신의 정의에 걸맞게 크라우스의 아포리즘은 깊은 사유에서 비롯된 다성적인 울림과 쓰디쓴 유머를 간직하고 있다.

2부에 실린 짧은 에세이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카를 크라우스가 마주했던 언론, , 일상의 모습들이 간결한 필치로 묘사돼 있다. 횃불은 사실상 반()언론 매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저널리즘의 위선과 맞서 싸운 잡지였다. 횃불의 주 공격 대상이 됐던 빈의 일간지 신자유신문제국의 군주를 제외하고는 가장 영향력 있는매체라고 불릴 정도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언론사였다. 그러나 이 신문조차 크라우스에게는 겉으론 고상한 역할을 자처하지만 뼛속 깊이 위선에 젖은 신문일 뿐이었다. 크라우스는 이 신문에 가짜 제보를 직접 투고해 언론이 사실 확인조차 거치지 않고 센세이션에 집중하는 현상을 꼬집었는데, 에세이 지진에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명예십자훈장은 당대의 법에 대한 크라우스의 정신을 보여준다. 한 성매매 여성이 명예훈장을 찬 채 유흥가에 나타나자 당국은 단지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로 여성을 체포해 벌금을 부과한다. 법제도에 균열이 발생할 때 사회는 약자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의 편으로 기운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묘사되고 있다. 크라우스는 낮에는 취침을 하고 밤에 일어나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뒤집힌 생활방식에 대한 찬사에는 그런 일상이 잘 그려져 있다. 세상의 이목과 언론의 호들갑을 피해 은둔하는 모습을 다룬 비버 모피, 점점 상업화돼가는 시대에 정신이 마주한 위기를 포착한 포스터의 세계, 북극의 발견도 주목할 만한 글이다.

 

가짜 뉴스에 대한 예언자적 고발

책의 3부에는 크라우스의 언론관과 예술관을 좀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대표 장편 에세이 3편을 실었다. 크라우스가 언론을 끊임없이 비판한 이유는 단지 오보나 교양있는 척하는 태도 때문이 아니었다. 언론이 전달자를 넘어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씌어진 에세이 이 위대한 시대에에서 크라우스는 신문은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선동을 넘어선 사건 그 자체임을 간파하며 언론이 잔혹행위에 관한 거짓을 퍼뜨리면 그 잔혹행위가 실제로 발생한다는 끔찍한 사실에 주목한다.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사건들이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꿰뚫어본 것으로, 가짜 뉴스가 왜곡된 현상을 만들어내는 지금의 현실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회를 향한 크라우스의 비판은 그야말로 신랄했지만 그 중심에는 진정한 예술에 대한 강한 염원이 있었다. 크라우스는 무엇보다 언어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연극에서도 스펙터클한 극적 효과보다는 언어적 측면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한 당시만 해도 한물간 익살극 작가로 알려졌던 네스트로이를 재평가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대표적인 에세이가 바로 네스트로이와 후세.

네스트로이는 우리에게 낯선 작가지만 관용어와 방언, 여러 계급의 다양한 구어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살려내는 놀라운 언어감각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크라우스가 보기에 네스트로이는 언어로 사물을 사유하기 시작한최초의 독일어권 작가이며 언어를 경직된 경련에서 해방시키고 모든 표현마다 사유를던져준 풍자가다. 한마디로 언어에 사유를 결합한, 거의 철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작품이 바로 네스트로이의 희극이라는 것이다. 이는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언어에 맞서 언어예술의 고유한 기원을 지키려 했던 자신의 입장을 네스트로이라는 거장의 거울에 비춰본 것이라 할 만하다.

크라우스의 대표적 에세이로 꼽히는 하이네와 그 결과들은 프랑스의 문예란을 독일에 도입한 장본인 하이네를 통해 신문 문예란의 언어가 모국어를 얼마나 세속화시켰는지를 비판한 글이다. 크라우스가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장식적 언어 속에서 정보와 정신적인 것이 범벅이 되는 현상이었다. 이는 다분히 하이네다운 현상으로서 서정시에다 목적이 담긴 이야기를 뒤섞어 미사여구로 치장하는 경향이 하이네를 모방한 문예란 필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고 크라우스는 통탄한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 시인 하이네를 주저없이 비판하는 태도도 놀랍지만 그의 문체를 저널리즘과 연결시켜 분석한 시각은 감탄을 자아낸다.

현란한 문체와 언어유희 때문에 쉽게 번역될 수 없었던 크라우스의 작품을 한국에서 처음 번역한 옮긴이는 얼핏 치기 어린 독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참된 진정성을 깨닫는 순간 위대한 풍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면서 크라우스의 풍자정신이 우리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