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반언어> 옮긴이 서문
독일어문학,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 문학을 전공했고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번역했던 나로서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활동했던 문인들에게 관심이 없을 수 없었다. 그 중 카를 크라우스는 빈의 문화를 다룬 책마다 등장하는 작가였고, 문제적 작가로 비중 있게 소개되는 인물이었으나 막상 그가 집필한 책들이 번역되지 않아 과연 어떤 작가이길래 이러한 주목을 받는지 늘 궁금했다. 우리가 아는 거장들의 평가 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카를 크라우스가 발행한 잡지 『횃불』Die Fackel의 애독자였던 발터 벤야민은 “침묵, 지식, 정신의 깨어 있음이 논쟁가 크라우스의 특성을 구성한다”고 말했고 아도르노는 “언어를 심판함으로써 사회를 심판하는 작가”로서 크라우스를 높이 평가했다. 빈 출신의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벤야민과 마찬가지로 『횃불』의 충실한 독자였으며 자신의 철학을 형성하는 데 크라우스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한 바 있다. 또한 크라우스를 존경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시대가 손으로 자신의 숨을 끊으려 할 때, 크라우스가 바로 그 손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듯 당대 최고 지성들의 칭송을 받았던 카를 크라우스는 대체 누구일까? 크라우스는 187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이친Jitschin에서 태어났다. 제국의 수도 빈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빈 대학에 진학했지만 학위를 마치진 않았다. 크라우스를 저명한 필자로 만들어준 잡지는 1899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본인이 직접 창간한 『횃불』이었다. 창간 이후 12년 동안은 페터 알텐베르크, 에곤 프리델, 아돌프 로스, 릴리엔크론, 쇤베르크 등의 글도 실었지만 1911년 이후로는 크라우스 자신의 글만 수록한 사실상의 1인 잡지로 운영되었다. 1936년 지령 922호 발간에 이르기까지 『횃불』은 수많은 작가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았고 법과 제도의 위선, 1차 세계대전의 무익함 등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특히 이 잡지는 빈에서 발행된 명망 높은 일간지 『신자유신문』Neue Freie Presse에 맞서 그 보도 경향과 문예란 등을 끊임없이 풍자하고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횃불』은 크라우스의 거의 전부라 해도 무방하며 그의 에세이와 아포리즘은 대부분 이 잡지에 수록된 것을 나중에 편집한 것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1차 세계대전을 다룬 반전 희곡 『인류 최후의 나날』Die letzten Tage der Menschheit, 아포리즘 모음집 『언어와 반언어』Sprüche und Widersprüche, 에세이 「하이네와 그 결과들」Heine und die Folge 「네스트로이와 후세」Nestroy und die Nachwelt 등이 있으며 그의 전집은 1952년부터 순차적으로 주어캄프Suhrkamp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본서는 주어캄프 판 카를 크라우스 저작집Karl Kraus Schriften을 원본으로 삼되(일러두기 참조), 가급적 저자의 대표적인 글과 현재 독자들에게 읽힐 만한 글을 골라 수록했다.
오직 ‘풍문으로’ 전해지던 카를 크라우스의 글을 직접 번역하면서 이 작가가 당대의 엄청난 작가들에게 존경과 주목을 받은 몇 가지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 중 무엇보다 절실하게 다가온 것은 크라우스의 풍자정신이다. 우리말로 풍자라고 하면 조롱을 동반한 웃음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제대로 된 풍자라면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이 있는 동시에 고결함에 대한 강한 의지가 동반돼야 함을 크라우스의 글은 잘 깨우쳐준다. 시인 김수영이 쓴 시구 중에 “풍자가 아니면 해탈”(「누이야 장하고나!」)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풍자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기법인지를 예감한다. 풍자가 본질을 벗어나는 순간, 해탈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풍자는 섣불리 다룰 수 없는 장치이며 자기만의 중심을 유지하지 않고는 성공하기 힘든 기법이다.
사실 크라우스가 풍자하는 대상은 지진에 대한 대중의 호들갑에서 하인리히 하이네의 서정시까지 그 범위가 상당히 넓으며, 얼핏 치기 어린 독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냉담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독설의 이면에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참된 진정성이라 부를 만한 정신적 기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진정성은 세상의 얄팍함과 위선을 향해 있으며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의 세계를 공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크라우스의 풍자 대상이 된 세계는 대체로 법, 저널리즘, 그리고 예술 세 분야로 나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명예십자가」는 당대의 법에 대한 크라우스의 풍자정신을 촌철살인의 짧은 글로 보여준 에세이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선 당국의 허가를 받은 여성은 경찰에 단속되지 않고 성매매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매매를 허가받은 한 여성이 명예십자가 훈장을 찬 채 유흥가에 나타나자 당국은 여성을 체포해 벌금을 부과한다. 단지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였다. 결국 성매매 합법화는 허울뿐인 제도이며 당국은 권위적인 부르주아 남성들 편이라는 사실이 이 판결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크라우스는 법 같은 사회제도에 작은 균열이 발생할 때 과연 사회는 누구의 편을 드는지를 날카롭게 고발한다.
『횃불』은 사실상 반反언론 매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저널리즘의 위선과 맞서 싸운 잡지였다. 『횃불』의 주 공격 대상이 됐던 빈의 일간지 『신자유신문』은 “제국의 군주를 제외하고는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라고 불릴 정도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언론사였다. 그러나 이 신문조차 크라우스에게는 검열을 의식해 정부의 견해를 대변하는 매체로 비춰졌고 겉으론 고상한 역할을 자처하지만 뼛속 깊이 상업적 이해에 젖어든 신문일 뿐이었다. 크라우스는 이 신문의 위선을 폭로하기 위해 이따금 ‘가짜 제보’를 직접 투고해 신문에 실리는지를 ‘실험’하곤 했다. 본서에 실린 에세이 「지진」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목격할 수 있다. 수도 빈에 지진이 있었다면서 체험담을 너도나도 언론에 제보하는 와중에 크라우스는 토목기사를 가장해 자신이 ‘우주적 지진’을 감지했다는 내용을 『신자유신문』에 투고하고 이 제보는 그대로 신문에 실린다. 이는 전문가적 역할을 내세우는 언론이 사실확인조차 거치지 않고 센세이션에 집중하는 현상을 통렬하게 꼬집은 것이다.

크라우스가 언론을 끊임없이 비판한 이유는 단지 사소한 오보나 교양있는 척하는 태도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론이 전달자를 넘어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씌어진 에세이 「이 위대한 시대에」에서 크라우스는 “신문은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선동을 넘어선 사건 그 자체”임을 간파하며 “언론이 잔혹행위에 관한 거짓을 퍼뜨리면 그 잔혹행위가 실제로 발생한다”는 끔찍한 사실에 주목한다.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사건들이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이처럼 크라우스는 언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사실이 왜곡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그런 현상을 끊임없이 비판했다. 크라우스 자신이 예술가였던 만큼 이런 비판적 관점은 예술에까지 이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신문의 문예란이다. 크라우스의 대표적 에세이로 꼽히는 「하이네와 그 결과들」은 프랑스의 문예란을 독일에 도입한 장본인 하이네를 통해 문예란의 언어가 독일의 언어를 얼마나 세속화시켰는지를 비판한 글이다. 크라우스가 문예란에서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정보와 정신적인 것이 장식적 언어 속에서 뒤섞이는 현상이었다. 이는 다분히 하이네다운 현상으로서 서정시에다 목적이 담긴 이야기를 뒤섞어 미사여구로 치장하는 경향이 하이네를 모방한 문예란 필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고 크라우스는 지적한다. 그래서 하이네의 경향은 “저널리즘이 먹고사는 위대한 유산”이 되었으며 “노래해야 할 곳에서 보고하는” 실용문학의 정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문예란은 저널리즘화된 문학, 오염된 문체, 문학 없는 비평의 어리석은 산실이 됨으로써 객관성과 창조성 모두를 상실했다는 게 크라우스의 주된 비판이다.
법과 제도, 그리고 저널리즘을 향한 크라우스의 비판은 그야말로 신랄했지만 그 이면에는 진정한 예술에 대한 강한 염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크라우스는 무엇보다 언어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장식을 건축의 적이라고 표명한 건축가 아돌프 로스와 마찬가지로 언어를 망치는 주범으로 얄팍한 기교를 꼽았다. 크라우스는 연극에서도 스펙타클한 극적 효과보다는 언어적 측면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가 셰익스피어와 네스트로이 등의 희곡을 자기만의 이야기노래Sprechgesang로 만들어 직접 낭독했다는 사실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또한 크라우스는 당시만 해도 한물간 익살극 작가로 알려졌던 네스트로이를 재발굴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대표적인 에세이가 바로 본서에 소개된 「네스트로이와 후세」이다.
네스트로이는 우리에게 매우 낯선 작가이지만 관용어와 방언, 여러 계급의 다양한 구어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포착해내는 놀라운 언어감각을 가진 작가로 알려져 있다. 네스트로이 서거 50주년을 기념해 씌어진 이 글은 네스트로이 언어의 독특한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낸다. 크라우스가 보기에 네스트로이는 “언어로 사물을 사유하기 시작한” 최초의 독일어권 작가이며 “언어를 경직된 경련에서 해방시키고 모든 표현마다 사유를” 던져준 풍자가이다. 또한 네스트로이의 언어들은 “시대와 동떨어진 채 동시대성과 맞서는 지속적인 이의제기”로, “언어유희를 통해 삶에 더 잘 대처하게 만드는 사유의 과정”이다. 한마디로 언어에 사유를 결합한, 거의 철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작품이 바로 네스트로이의 희극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상업적이고 대중적 언어에 맞서 언어예술의 고유한 기원을 지키려 했던 크라우스 자신의 입장을 네스트로이라는 거장의 거울에 비춰본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독보적이어서 지독하게까지 느껴지는 크라우스의 글을 우리 독자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마음은 보람차면서도 두려울 수밖에 없다.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현란한 문체와 독특한 언어유희 때문에 번역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는 크라우스의 글이 과연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단 하나의 언어도 헛됨 없이 촘촘하게 빚어낸 크라우스의 언어를 최대한 우리말로 풀어보고자 했으나 넘어서기 힘든 한계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크라우스가 세상에 맞서 전하고자 했던 촌철살인의 풍자정신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원고를 꼼꼼히 읽고 조언해준 김조을해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크라우스가 「비버 모피」의 말미에서 씁쓸하게 언급했듯이, 새 책 하나를 펴냄으로써 나는 이 도시에서 더욱 잊혀지는 계기를 마련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나의 소명이자 신의 섭리인 것을.
2026년 8월
안병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