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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감수성/편집자 리뷰

공동체의 감수성_편집자 리뷰

by 북인더갭 2022. 11. 16.

남편들 다 출근하고 지금 9신데 아침 일찍은 무슨, 월요일 아침 8시에 재활용품 수거 차량 온다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요.”

 

구병모의 소설 네 이웃의 식탁22쪽에 나오는 대사다. 공동주택의 대표격인 인물이 공동체의 약속을 안 지킨 다른 인물을 향해 짜증이 잔뜩 나서 내뱉고 있다. 이 공동체는 잘 굴어갈 수 있을까처음부터 불안해 보인다.

 

2022년이 끄트머리를 향해 가고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동안 공동체의 감수성을 검토하는 내내 나는 뭔가 찔렸다. 뼛속까지 개인적인 내가 원고를 제대로 검토하고 있는 건가. 머리로만 책을 만들면 안 되는데

 

나에게 공동체란 낱말은 묘한 부담과 의무로 먼저 다가온다. 그런데 이러한 공동체를 사업으로 만들어 시민의 참여와 민주화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관의 의지와 민의 복잡한 현실은 끈질기게 충돌한다. 공동체의 본질을 아무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참 외로운 존재다. 그래서 누구나 친밀함을 간절히 원한다. 그런데 이 친밀함이란 또 얼마나 예민하고 미묘한가. 본문에서 저자(구현주)가 인용한 로버트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이란 책이 그래서 인상깊다. 미국에서 볼링을 즐기는 인구는 여전한데 리그나 클럽에 참여하는 인구는 줄었다고 한다. 볼링을 모여서 치지 않고 혼자 친다는 소리다. 이 별 거 아닌 현상을 통해 퍼트넘은 유대와 결속이 깨지고 공동체가 쇠퇴하는 미국사회를 진단해낸다. 결국, 나라를 구하거나 체제를 전복하려는 어마무시한 열정과 유대가 아니라, 가끔 만나 볼링이나 치는 헐거운 친밀권에서 시작해 공론장으로까지 친밀권을 확장시키는 게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분석이다.

 

과연, 이 자연스런 확장과 전환이 현실에서 가능할까. 관이 나서서 깨우쳐주며 따라오너라하는 방식은 자생력이 없다. 하지만 민이 친목도모를 위한 수준에서 자기들끼리만 즐거운 공동체에 안주하면 민주사회는 고사하고 소외와 배제만 깊어진다. 참 어렵다.

 

내가 속했던 교회공동체에서도 소그룹 모임을 통해 서로 깊은 은혜와 교제를 나누었다. 하지만 우리안에 갇힌 나머지 다른 소그룹에 속한 성도들은 알지도 못했고 애써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교회공동체의 목회 비전을 공공의 관심으로 확장시킬 수 없었고, 건강한 비판도 가할 수가 없었다. 당장의 안정과 친밀함에 만족했으니까. , 부끄럽다. 그래서 어쩌라고?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저자 구현주도 독자들이 더 큰 질문에 이르길 원할 뿐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좋다. 젊은 연구자의 이러한 배짱과 비판의식이 맘에 든다. 이 조심스럽고 촘촘한 밀도가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다니 놀랍다. 연구자로서 갈고닦은 이론이 복잡한 현장을 아우르는 활동가의 넓은 시각으로 포섭되는 미덕도 탁월하다. 북인더갭이 발굴한 사회학계의 새로운 아이돌 저자답다!

 

굳이 솔루션 비슷한 거라도 대안을 제시하라 들이대신다면, 제목에 내건 감수성을 들이대겠다. 감수성은 생명을 일깨워준다. 타인의 아픔과 수치와 불평등과 분노를 일깨워준다. 민주주의를 이뤄준다. 감수성이 밥 먹여준다.

, 네 이웃의 식탁에 나오는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의 입주자 공동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12세대 모집에 4세대가 입주했는데, 소설 끝자락에 가면 한 세대만 남는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으니 독자님들이 찾아보시라. 공동체 만들기에 실패했단 소리인가? 그것도 모르겠다. 이십여종의 서류에다 모종의 자필 서약서를 써야 입주할 수 있는 관 주도의 좀 이상한 공동주택이었다는 점만 힌트로 드리겠다.

 

끝으로, 지난봄 산 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의 편집자 리뷰를 쓰면서 텃밭을 시작한다고 떠벌렸었다. 생초보 농부가 애쓴 결과를 보고하겠다. 모든 물가가 뛰면서 야채값도 무섭게 뛴 올해 내내 상추나 오이, 고추를 돈 걱정 없이 충분히 먹었다! 상추는 식구들이며 이웃들에게 조금씩 나눠주었다. 음하핫, 그뿐이랴, 지금 밭에서는 김장무와 서리태의 포스가 작열이다. 게다가 텃밭을 돌보며 만난 옆 동 주민과 말을 텄고, 경험 많은 그 주민으로부터 쑥갓이나 깻잎을 얻어 심기도 했으며, 서로의 농작물을 조금씩 바꿔 먹기도 했다. 이건 정말 비현실적인 체험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텃밭의 감수성이 아닌가 싶다.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시며, 독자님들이 공동체의 감수성에 푹 빠져보시길 김실땅은 그저 바랄 뿐이다. 그럼, 올해 장사(?)는 끝났으니 내년에 새로운 책으로 또 뵙겠다.^^

 

북인더갭 김실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