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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1990년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수원에 있는 학교까지 국철을 타고 다녔다. 환승역의 대명사인 신도림역의 소음과 인파는 지금도 공포스럽다. 집으로 가기 위해 2호선으로 갈아탄 나는 늘 안도의 숨을 내쉬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아줌마를 힐끗 쳐다본 기억이 난다. 그 아줌마는 전철문이 닫히기 전 필사적으로 계단을 내려와 전철에 몸을 실으려 했지만 아줌마 코앞에서 문은 야속하게 닫히고 말았다. 전철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전철을 놓친 아줌마는 무안하지만 억울하다는 얼굴로 승강장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저 아줌마 어떡하면 좋아나야말로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아줌마가 안 돼보여서 눈물까지 핑 돌았다. 그때 나는 탈모가 시작될 만큼 근심 걱정을 안고 사는 대학교 3학년생이었는데, 모두가 그랬듯이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미래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타인의 스쳐가는 허탈한 표정 하나에도 울컥했던 것 같다.

 


 여기서부터 배제당하면 안 되는데, 나는 더 노력해야 되는데, 나를 더 계발해야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듯이 나도 높은 연봉에 넓은 집과 큰 차를 소유해야 하는데아마도 나는 만나보지도 못한 마거릿 대처라는 영국 할머니의 망령에 사로잡혔던 게 분명하다. 그리 하여 아마도 병원엘 찾아갔다면 당신은 우울증입니다라는 진단도 그자리에서 어렵지 않게 받아냈을 것이다.

 

지방대라는 말보다 더 차별적으로 들렸던 수도권대, 그리고 특징없는 행정학과, 거기다 용모가 단정치 못한 여대생그때 아무리 경제가 호황이어도 이 정도면 빌빌거리기 딱 좋은 캐릭터였다. <차브>들처럼 감히 마약에 손을 대지도 않았고, 강심장이 못돼 십대에 아이를 갖지도 않았고, 패거리로 다니며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지도 않은 나는 대학생인데다 자존심은 있어서 스스로를 잉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어쩐지 누군가 나를 깔볼까봐 늘 공격적인 태세로 이십대를 보냈다.

 

나의 옛 모습이지만 참, 못났다. 나는 당신들처럼 허접 쓰레기가 아니야, 라고 늘 다짐하며 수원행 열차를 기다렸지만 결국 나는 있지도 않은 사다리를 타고 기어올라 다른 클래스에 내 삶을 안착시키고 싶어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상이 요구하는 삶이었고, 옳고 그른 걸 따지는 건 촌스러울 뿐 아니라 구차해보였기 때문이다. 가난하면 가난할 수밖에 없도록 니가 무능력하고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서로를 비난했다. 그러면 편리했다. 사회의 은폐된 구조적인 악은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타인의 삶을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매스컴과 정치인들이 떠드는 대로 생각없이 사는 건 정말 완전 편리한 삶의 방식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전철을 놓친 어떤 아줌마에게 다음 전철이 곧 오니까 앉아서 좀 쉬면서 기다리세요.’라고 위로하고 싶었던 내가 찌질해 보였다. , 못나기도 했지만 그래서 내 이십대가 아직도 짠하기도 하다.

모독당한 인간 존엄을 위하여라고 적힌 겉표지의 문구만으로도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내가 당한 것은 모독이 아니라 나의 탐욕에 기인한 어리석음이었지만,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건 경쟁과 비난이 아니라 협력과 평등임을, 또한 상식적이고도 친절한 말 한마디임을 <차브>를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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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이 책의 원제가 되는 ‘차브’(Chav)라는 단어를 나는 2011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 실린 서평기사에서 처음 접했다. 당시 나이 26세에 불과한 청년 오언 존스가 쓴 이 책은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지구의 소금’이라 칭송되던 노동계급이 어떻게 ‘지구의 쓰레기’로 전락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낸 이 책은 그해 최고의 정치학 도서로 선정되면서 확고한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2005년을 전후해 ‘차브 패션’이란 신조류가 국내 복식업계에 소개됐다는 사실을 뒷날 전해 듣긴 했지만, 영국 하위집단의 패션 트렌드를 일컫는 ‘차브’의 용례는 당시의 한국 언론에겐 여전히 낯선 것이었다. 당시 나는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진행되는 체계적 배제와 소수자의 고립화 문제에 ‘꽂혀’ 있었다. 주간지 『한겨레21』의  와이드 기획을 준비하기 위해 관련 논문과 저널을 검색하다 말 그대로 우연히, ‘차브’와 조우한 것이다.


당시 국내에선 ‘차브’에 견줄 만한 신조어 ‘잉여’가 유행하고 있었다. 『월간 잉여』라는 잡지가 창간됐고, 패기만만한 20대의 잡지 발행인은 이름난 몇몇 ‘2030 논객’들과 함께 주간지 외고 담당의 섭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 이미 40줄에 들어선 내게 잉여는 그다지 호감가는 용어가 아니었다. ‘정규군 사회’로의 편입 기회를 봉쇄당한 20대가 스스로를 얕잡고 조롱하는 말이 ‘잉여’라 여겨진 탓이다. 그 자학과 체념의 냄새가 나는 싫었다. 스스로를 ‘공돌이’‘공순이’라 낮춰 부르던, 20대 시절 불우했던 옛 친구들의 무력감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했기 때문이다.


잉여는 말 그대로 ‘재귀성’이 강한 용어다. 누군가를 ‘잉여’라 부르기보다, 스스로를 ‘잉여’라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달리 ‘차브’는 사회적 타자를 지시하는 배제의 언어이며,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경멸의 언어다. 잉여의 배후 감정이 체념이라면, 차브란 언어 뒤에 똬리튼 정념은 혐오다. 잉여가 상승 기회를 박탈당한 중간계급 2세들의 자기연민의 표현이라면, 차브는 몰락한 노동계급 2세들에 따라붙는 저주의 꼬리표다.


이런 이유로 차브의 의미값에 근접한 우리말은 잉여보다는 ‘양아치’‘쓰레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학교를 뛰쳐나와 골목 어귀나 놀이터를 어슬렁거리는 10대 청소년들, 역한 냄새를 풍기며 공공장소 주변을 배회하는 노숙인, 엄연한 주인이 있는 사유공간을 점거한 채 망루를 세우고 악다구니를 쓰는 철거민들은 또 어떤가. 이 몰락한 노동계급의 후예들을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범죄시·불온시하기 시작했다.


‘차브’라는 언어의 분류학적 기원을 찾다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영미권의 언어가 ‘언더클래스’(underclass)다. 197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마약·범죄·10대 임신 같은 도시적 병리현상을 열거한 뒤 “미국 도심에 호전적이고 위협적인 언더클래스가 출현했다”고 썼다. 언더클래스에 속하는 대부분의 구성원은 청소년과 소수민족이며, 미국 대도시의 음습한 이면에는 통제되지 않고 고립돼 있으며 호전적인 하층계급이 존재하고 있다는 게 기사의 핵심 메시지였다.


1982년에는 이들의 존재 양태를 △장기간 복지에 의존하는 수동적 빈민 △학교를 중퇴하고 마약을 상용하는 거리의 범죄자들 △지하경제에 의존하는 사기꾼과 매춘부들 △장애를 지닌 알콜 중독자 및 노숙자들로 구분한 『언더클래스』라는 논쟁적 저서가 출간됐다. 이를 계기로 미국 사회과학계에선 언더클래스의 규모와 동태를 둘러싼 연구가 유행했는데, 다양한 논의 속에서 합의된 사실은 언더클래스가 단순한 빈곤층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의존적이고 무기력하면서 범죄의 유혹에 노출된 타락한 빈민’이었고, 따라서 ‘보호받을 자격이 없는 빈민’이었다.


빈곤을 타락과 범죄의 언어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도 감지되기 시작한다. 지난 2012년 봄, 경찰이 한 유력 신문의 후원 아래 시작한 ‘주폭(酒暴)과의 전쟁’이 전형적인 예다. 캠페인 3개월 뒤 주폭 단속의 성과를 홍보하는 이 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주폭 300명 잡았더니 살인 31% 줄었다’였다. 기사의 요지는 경찰이 주폭 단속을 시작한 뒤 3개월간 강력범죄 발생 건수를 셈해보니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살인은 31.2%, 강도는 36.6%, 성범죄는 5.9% 줄었다는 것이었다.


통계의 유의미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 보도는 국가와 유력 언론이 거리의 주취자를 예비 범죄자로 공식 인증하는 것이란 점에서 문제가 간단치 않았다. 나아가 이 기사는 주폭 단속이 사실상 예비 범죄자에 대한 예방 구금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마저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눈여겨볼 지점은 단속된 주폭들의 사회적 처지였는데, 단속 초기 구속된 주폭 피의자 100명 가운데 82명이 무직자였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절대다수가 집이 없거나 사는 곳이 일정치 않은 40~50대 실업자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이 저지른 범죄라는 것도 식당·주점 등에서 행해진 업무방해(구걸, 무전취식) 같은, 평소였으면 훈방이나 합의로 마무리됐을 경범죄가 주종이다.


주폭 단속에서 보이는 하층민 일탈자에 대한 처벌과 낙인찍기는 그 기원이 1980년대 영국 대처리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는 없다. 존재하는 건 개인뿐”이라는 대처의 말은 빈곤과 일탈의 책임을 사회가 아닌 개인에게 묻겠다는 정치적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그 선언에 담긴 통치 이데올로기는 보수당 집권기 다음과 같은 조처와 상황들로 현실화됐다. 하층민 범죄에 대한 검경의 의도적 이름 붙이기→선별적 정보 유출→보수신문들의 경쟁적 보도→충격과 공포 확산→법질서 회복을 위한 공권력 투입 여론 형성.


스튜어트 홀(Stuart Hal) 같은 연구자들에 따르면, 오늘날 하층민들이 공권력의 표적이 되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가 직면한 ‘정당성 위기’와 결부돼 있다. 고용(노동)이 성장의 함수가 되지 못하는 사회(‘고용 없는 성장’ 사회)에서 실업은 일시적 단계가 아닌 영구 상태가 된다. 사회는 그들의 기여 없이도 충분히 존속할 수 있다. 사회의 부를 키우지는 못하면서 비용(공공지출)만 증가시키는 그들은 ‘존재 자체가 민폐’인 쓰레기로 취급된다.


문제는 이 쓰레기(구조적 하층민) 양산 시스템을 변화시킬 능력과 의지가 오늘날의 국가엔 없다는 점이다. 국가는 이제 지배를 정당화할 근거를 다른 데서 찾게 되는데, 다름 아닌 내부의 위험요소를 격리하고 세척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민폐적 존재인 하층민들은 범죄시되고 격리된다. 이 일련의 절차 속에서 “궁핍의 언어로 씌었던 이야기는 타락의 언어로 다시 쓰인다.”(지그문트 바우만)


가난이 타락과 범죄로 재정의되는 순간, 가난한 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부채감은 사라진다.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의 수순은 ‘추방’이다. 추방은 물리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식적 추방’으로 이어지는데, 인식의 영역에서 추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눈앞에서 사라지면 관심에서도 멀어지며,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도덕적 공감은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추방된 자들이 아무리 고통과 부당함을 호소해도 ‘헛소리’와 ‘소음’으로 취급될 뿐이다.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식이 사라질 때 싹트는 것은 ‘무결점 사회’를 향한 유혹이다. 잘 가꿔진 잔디밭 위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잡초를 깡그리 제거해버리고 싶다는 욕망. 이것은 아우슈비츠를 만들어낸 전체주의적 열망과 동일한 것이다.


‘차브의 정치학’에 우리 사회의 ‘잉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신자유주의라는 운명의 보편성, 그 개인화와 배제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한, 격리되고 추방되어야 할 쓰레기들(양아치들)의 목록에는 가혹한 소비사회의 규준과 척도에 미달하는 개인 누구라도 기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차브는 가혹한 경쟁에서 상처받고 뒤처질 위험에 처한 우리 사회 모든 잉여들의 잠재적 미래를 지시하는 대명사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의 전반부(1~4장)는 안병률이, 후반부(5~8장)는 이세영이 번역했다. 차브 현상의 문화적 배후를 밝히는 4장은 전문번역가 박유신 씨의 도움을 구했다. 발행인이자 편집자, 공동 역자로서 더딘 작업을 참고 기다려준 안병률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14년 10월 30일
옮긴이를 대표하여
이세영 씀

 

 


Comment

<한겨레> 2014. 11. 14

 

차브-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안병률 옮김 / 북인더갭·17500

 

대처리즘으로 산업노동자 사라지자

판매원·간병인 등 비정규직이 메워

이들을 조롱하는 차별적 언어 차브

무능과 복지 의존하층민 악마화

 

차브(Chavs)란 말은 본디 아이를 뜻하는 집시 언어인 차비(chavi)에서 유래된 말이다. 영국에선 이것이 슈퍼마켓 계산대의 계산원이나 패스트푸드점의 점원 또는 청소부 등 급증하는 무식쟁이 하층계급을 뜻하는 경멸적인 언사란다. 축구선수인 데이비드 베컴이나 웨인 루니, 가수 겸 모델 셰릴 콜 같은 노동계급 출신의 유명인들도 종종 차브라는 놀림을 받는단다.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노동조합 활동가 출신 오언 존스(30)2011년에 발표해 영국 안팎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차브>는 중간계급 이상 영국인들이 이 차별적인 말을 구사하며 하층계급을 공격하는 행태를 노동계급의 악마화라고 했다. 그해 여러 매체에서 최고의 정치학 도서로 뽑히기도 했다는 이 책은 이 영국 노동계급 악마화의 실상과 그 주체 및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파헤치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1장에 2007년과 그 다음해에 상류층과 하층계급 여자아이가 실종된 사건이 등장한다. 영국 언론들은 상류층 아이 실종 사건에 대해선 발생 2주 만에 유명인들의 동정과 관심을 포함한 1100여개의 기사를 쏟아냈다. 현상금도 150, 260만파운드로 뛰었다. 정치인들은 노란 리본을 달았고 텔레비전은 사건 발생지인 포르투갈에 중계반까지 보내 현지 상황을 생중계하는 등 나라 전체가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하층민 아이 실종건에 대한 기사는 그 3분의 1에 그쳤고 아무도 리본을 달지 않았으며, 현상금도 25000파운드로 했다가 나중에야 5만파운드로 올렸다. 3주 뒤 하층민 아이 실종 사건이 현상금을 노린 엄마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언론이 흥분했다. 언론은 엄마가 속한 복지금이나 타먹는 하층계급 찌꺼기인간 이하들을 싸잡아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차브로 상징되는 영국 중상층의 하층민에 대한 계급 혐오, 대처가 주도한 중상류의 하층민에 대한 계급전쟁이 초래한 계급간의 격심한 경제적 격차와 불평등에서 비롯됐다. 이게 <차브>의 핵심 내용이다.

지은이가 마거릿 대처의 십자군전쟁이라고도 한 대처리즘 시작 당시 영국 노동자의 절반은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었다. 그가 집권한 다음해인 198013주를 끈 철강 노동자 파업, 그리고 1년간을 맞서 싸운 1985년 광부들의 총파업 등을 힘으로 무너뜨린 대처의 신자유주의 혁명, 영국 제조업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노동당의 복지국가 정책을 계급 증오를 조장하고 탐욕과 질투의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또다른 권력을 얻으려는계급전쟁이라 비판한 대처가 이른바 영국병의 치유책으로 들고나온 것은 노동조합 독재와 계급이 없는 사회였다. 그의 뜻대로 광부, 부두 노동자, 자동차 생산 노동자 등 영국 노동계급을 지탱해온 세 기둥이 무너졌고 영국 제조업도 무너졌다. 대처는 영국이 중간계급 사회가 됐다고 주장했다.

대처의 노동계급 억압은 대처와 함께 시작됐지만 대처와 함께 끝나진 않았다. “1997년 신노동당이 압승했을 때 제조업은 영국 경제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2007년 토니 블레어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때는 고작 12%에 불과했다.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700만명에 육박하던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했지만 오늘날 그 수는 250만을 조금 상회할 뿐이다.” 제조업의 몰락과 중상류 계급에 엄청난 돈을 안겨준 금융업, 신용·정보경제로의 과도한 경사에는 그 자신 우리 모두는 중간계급이라고 한 블레어 정권의 정책도 한몫했다. 블레어는 새로운 영국은 실력사회라며 사회 같은 것은 없다. 개별적인 남자와 여자, 가족이 있을 뿐이라고 했던 대처와 다를 바 없는 얘기를 했다.

 

2007년과 2008년 영국에서 각각 발생한 매들린 매캔(왼쪽)과 섀넌 매슈스 납치 사건. 중간계급 출신의 상징처럼 떠오른 매들린에 대해선 영국의 온 언론이 나섰지만 이른바 차브집안의 섀넌에겐 빈약한 관심만 보였다. 언론들이 내건 현상금의 차이도 극명했다. 특히 섀넌의 실종이 현상금을 노린 엄마가 꾸민 일로 밝혀진 뒤 영국 언론에서 이 사건은 하층계급 전체를 악마화하는 소재가 됐다. 각 회사 누리집 갈무리

결과는 참혹했다. 일자리가 사라지자 노동계급도 가족도 해체되기 시작했다. ‘바닥을 향한 경주가 시작됐다. 산업노동자가 사라진 자리를 대형 할인마트 판매원, 콜센터 직원,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자, 경호원, 간병인, 중소 자영업자와 같은 저임·저숙련 일자리들이 차지했다.

삶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실력, 열망(의지)이라고 정치인들은 주장했다. 언론도 거기에 가세했다. 대부분이 중간계급 출신인 국회의원들의 평균 연봉과 경비는 전체 인구 중 상위 4% 안에 들어간다. 기자들도 최상위 100명 중 절반 이상이 상층계급이 가는 사립학교 출신이다. 하층민 생활에 대한 관심도 공감능력도 없는 그들에게 가난은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계급 불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 부족과 가정 파괴(부적절한 양육), 약물 남용 등 개인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였다. 그들은 영국에 더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은이가 보기에 영국은 더욱 선명하게 계급으로 나뉜 사회가 됐다. 보수당은 부자 감세가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며 그 결과 부가 쌓이면 그것은 낮은 곳으로 흘러넘쳐 하층민도 살찌운다는 트리클 다운효과를 일찍부터 주장했으나, 실제로 도래한 것은 오히려 서민층만 각종 부담을 더 많이 지고 질적 이득은 상류층이 독식하는 트리클 업이었다. 지금 영국은 상위 1%가 국가 전체 부의 23%를 차지하고, 하위 50%는 고작 6%를 차지한다. 상위 1%의 부는 주로 현금자산인 데 비해 하위 50% 부의 상당 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같은 빚이어서 불평등은 지표보다 더 끔찍하다.

정치인과 언론이 하층민을 차브라고 모욕하고 조롱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내세우는 것은 주로 무능한 하층민이 일할 생각은 않고 여러 편법을 동원해 복지예산이나 타먹으며 나라경제를 좀먹고 있다는 것인데, 공인회계사 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 예산에서 1년에 엉터리 복지금으로 나가는 돈이 10억파운드 정도인 데 비해 기업가 등 상층계급의 탈세로 빠져나가는 정부 예산은 1년에 그 70배가 많은 700억파운드나 된단다. 수입 대비 세금부담 비율도 가난뱅이들이 중간계급 부자들보다 더 높다.

결과적으로 계급을 없앤다던 대처의 신자유주의 혁명은 중상층계급이 도발한 무자비한 계급전쟁이었다. 대처와 보수당, 언론 등 중간계급이 차브라는 차별적 용어를 통해 하층민의 무능과 복지 의존을 강조하고 조롱한 것은 그 계급전쟁의 초점을 흐리기 위한, 의도된 위장전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량실업 공포와 보수당의 정체성 정치앞에 계급 정체성이 흔들린 노동계급 중 상당수는 노동당에서 이탈했고, 또 상당수는 기대를 접고 투표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노동당은 권력을 빼앗겼다. 야당 분열까지 보수당을 도왔다. 노동계급이 직면한 대표의 위기가 오늘날 영국 정치 최대 이슈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지은이는 정치세력으로서 좌파의 미래는 노동계급 내부에 정치적 기반을 재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경향신문> 1115

노동계급 멸시·서민증세의 영국서 한국을 본다

우익 포퓰리즘의 부상과 대중의 정치적 소외, 비관주의와 냉담함은 영국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도

위기에 처한 건 노동계급의 미래만이 아니다우리 모두의 미래가 위태롭다

 

차브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안병률 옮김 | 북인더갭 | 428| 17500

 

1980년대 영국에서 광부 노조의 격렬한 파업 투쟁이 진행될 무렵 탄광촌에서 자란 아이가 발레를 배우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마침내 발레 무대에 데뷔하는 빌리의 힘찬 도약을 보여주며 끝난다. 영화적인 과장임을 고려하더라도 빌리의 성공은 영국 노동자 계급 자녀들의 일반적인 운명과는 거리가 멀다. 2000년대 이후 현실의 빌리들은 예술적 재능을 실현하기는커녕 영국 중산층과 언론으로부터 차브라 불리며 경멸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차브(chavs)’는 영국에서 노동계급을 가리키는 단어다. 2005년 콜린스 영어사전에 등재됐을 때만 해도 캐주얼 스포츠 복장을 한 젊은 노동계급이라는 가치중립적 단어였지만 지금은 공영주택에 거주하는 폭력적인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변질됐다. 일상적인 용법에서 차브는 폭력, 게으름, 청소년 임신, 인종주의, 술주정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과 결합하며 “‘프롤레타리아또는 가난하기 때문에 쓸모없는 인간’”이란 뜻을 지니게 됐다.

 

영국 노동당 연구원과 노조 활동가로 일한 영국의 신예 정치평론가 오언 존스는 <차브>에서 노동계급에 대한 영국 중산층의 혐오를 잘 보여주는 아동 실종 사건을 소개한다. 20072월 네 살 소녀 마들렌 매캔이 실종됐다. 20082월에는 열 살 소녀 섀넌 매튜스가 실종됐다. 두 아동 실종 사건에 대한 영국 사회의 반응은 판이했다. 의원들이 노란 리본을 매달고 다국적 기업들까지 웹사이트에 마들렌 찾기광고를 올렸던 것과는 달리 섀넌의 실종에 대한 영국 사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저자는 두 가정의 계급 차이를 그 배경으로 지목한다. 마들렌의 부모는 의사로 일하는 중산층이었던 반면, 섀넌의 어머니는 5명의 남자에게서 7명의 아이를 낳은 무직자였다. 두 달 후 섀넌의 실종이 보험금을 노린 어머니의 자작극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노동계급에 대한 영국 사회의 대대적인 혐오 발언이 쏟아졌다. 한 보수당 의원은 국가 지원에 의존해 살면서 둘 또는 셋, 또는 그 이상의 자녀를 갖는 사람들에게는 강제불임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 언론들은 섀넌이 살고 있던 영국의 대표적 낙후지역인 웨스트요크셔 듀스베리를 어떤 도덕도, 동정도, 책임감도 없으며 사랑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쓸모없는 식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묘사했다. 노동계급에 대한 혐오는 보수 성향 정치인이나 보수 언론만이 아니라 자유주의 성향의 중간계급 사람들 사이에도 퍼져 있다. BBC 1의 한 프로그램에서는 아나운서가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에게 부모가 되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공영주택에 사는 주민들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청중은 야유를 보내는 대신 박수를 쳤다. 저자는 이처럼 영국 사회에 만연한 노동계급 혐오를 노동계급의 악마화라고 규정한다.

 

차브현상은 노동계급을 비인간적인 언어로 매도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화. 그것의 문제점은 사회적 문제의 희생자들을 문제의 원인제공자로 만들고 전례없이 상승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당연시하게만든다는 데 있다. 저자는 문제의 진짜 원인제공자는 정치라고 보고, 정치의 책임을 추궁한다.

 

듀스베리는 한때 섬유산업이 번성했던 곳이다. 기계 및 제조업 분야 일자리가 넘쳤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아성이었던 영국의 다른 제조업 중심 지역과 마찬가지로 듀스베리의 산업기반은 지난 30년 동안 철저하게 붕괴했다. 그 결과 노동계급은 일자리를 잃고, 그들이 살고 있던 공영주택은 게토화했다. 빈곤은 도덕적 일탈 행위와 범죄율 증가로 이어져 차브라는 경멸적 용어에 일정한 현실적 근거를 제공했다.

 

그 배경에는 대처 총리와 보수당이 노동계급을 상대로 수행했던 계급전쟁이 자리 잡고 있다. 대처는 계급은 공산주의의 개념이라며 사회 같은 것은 없다. 개별적인 남자와 여자, 가족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대처가 계급 간 불평등과 적대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아니다. 대처의 진짜 의도는 사회에서 정치경제적 힘으로 존재하는 노동계급을 지워버리고 그것을 개인들, 또는 기업들의 집합으로 대체하며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 투쟁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와 보수당은 노동조합을 두들겨 쓰러뜨렸고, 부유층의 세금부담을 노동계급과 빈곤층에 전가했으며, 기업을 정부의 규제에서 풀어주었다”. 노동계급은 1984년 탄광파업에서 패배함으로써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쇠락했다.

 

당명에서 드러나듯 노동계급에 뿌리를 둔 노동당도 다르지 않았다. ‘3의 길을 내세우며 집권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은 노동계급을 집토끼로 여기며 중간계급의 표를 잡는 데 노력했다. 그들은 또 전통적인 계급정치를 포기하고 성소수자, 소수인종, 여성 등에 주목하는 정체성의 정치나 국제 이슈에 집중했다. 노동당에 환멸을 느낀 노동계급은 투표장에 가지 않거나 노동당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빈틈을 차지한 건 극우 성향의 영국 국민당이다. 국민당의 조세정책은 소득세를 없애고 부가가치세를 높이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는 손해이고 부자들에게는 이익이 되는 정책이다. 그럼에도 국민당은 노동계급의 일상적인 문제들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고 지역사회에 밀착함으로써 자신들을 백인 노동계급의 수호자로 포장한다. 저자는 우익 포퓰리즘의 부상과 대중의 정치적 소외, 비관주의와 냉담함은 영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위기에 처한 것은 노동계급의 미래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위태롭다고 말한다.

 

책은 2011년 영국에서 출간돼 그해 최고의 정치학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책 내용에서 기시감을 느낄 한국 독자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문화일보> 1114

빈부격차 왜곡패자를 조롱하다

2007년 영국에서 두 건의 여자 어린이 실종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마들렌이라는 아이가 침대에서 잠을 자다 실종됐고, 몇 개월 뒤 섀넌은 수영 교실에서 돌아오다 사라졌다. 딸의 장난감을 끌어안고 안전하게 돌아오길 간구하는, 방송에 비친 눈물겨운 엄마 모습도 같았다. 하지만 영국 사회의 대응법은 너무 달랐다. 마들렌 실종 2주일 후 영국 언론이 쏟아낸 기사는 1148, 제시된 현상금은 260만 파운드(447000만 원)였다. 언론은 물론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작가 조앤 롤링 등 저명인사들이 현상금 기부에 참여했다. ‘마들렌을 찾아 주세요라는 광고가 기업 웹사이트를 장식했고 의원들은 노란 리본을 달았다. 반면 섀넌에 대한 관심은 너무 미미했다. 기사량은 마들렌의 30%에 불과했고, 광고는 찾을 수 없었다. 현상금은 25500파운드(4390만 원)에 불과했다. 액수로만 보면 마들렌의 목숨값은 섀넌보다 100배나 많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마들렌은 쾌적한 레스터셔의 의사 집안 딸이었고, 섀넌은 잉글랜드 북부 가난한 듀스베리 지역에 사는 5명의 남자에게서 7명의 아이를 낳은 무직자 엄마 캐런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섀넌 사건이 현상금을 받기 위한 엄마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캐런은 물론, 듀스베리 지역과 캐런처럼 복지수당을 받는 실직자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과 경멸이 쏟아졌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복지예산으로 놀고먹는 비도덕적 계급에 국가가 너무 관대하다고 비판했고 이들에 대해 강제 불임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노동당 연구원 출신의 저자는 이 두 사건의 극명한 차이가 영국 사회에서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차브(Chav)악마화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돈을 목적으로 딸을 유괴한 엄마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층 계급의 경우, 개인의 잘못이 언제나 계층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확대되고, 왜곡된 이미지를 강화하며 결국 이들에 대한 복지정책 축소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차브. 아이라는 뜻의 집시어인 차브는 2005콜린스 사전에 처음 등재될 당시엔 스포츠 복장을 한 젊은 노동계급과 그들의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하지만 그 뒤 의미는 공영주택에 거주하고, 복지예산을 축내면서, 일하지 않고, 하루 종일 TV 리모컨이나 돌리는 하층 계급으로 변했다. 근면한 중산층과 달리 폭력적이고, 게으르고, 성적으로 난잡하며 대책 없이 아이를 낳는 이들이다.

 

계급에 대한 혐오야 인류 역사에서 반복돼온 것이지만 차브 악마화는 이들이 사회 전체의 공인된 놀림감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누군가 퀴어(남자 동성애자), 파키(파키스탄인) 같은 성차별, 인종차별적 단어를 쓰면 얼굴을 찡그리거나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진보 지식인조차 차브에 대해서는 거리낌없이 공개적으로 놀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에선 차브 현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일 신문, TV, 영화, 소셜네트워크 등에 차브가 등장한다. 차브스컴(Chavscom·차브쓰레기)이라는 사이트에는 차브를 헐뜯는 캐리커처가 가득하고, 백만장자 코미디언이 차브 차림을 하고 시트콤에 나와 시청자를 웃긴다. 힐튼호텔 창업주 손자인 리처드 힐턴이 차브를 걷어 차요. 차브 파이팅(Chavs Fighting)’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시작한 피트니스클럽 짐박스는 성업 중이다.

 

저자는 이 같은 차브는 19801990년대 마거릿 대처 보수당 정부와 토니 블레어 신노동당 정권의 잘못된 정책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대처 정부가 추진한 거대한 탈산업화로 제조업이 붕괴되고 이 과정에서 노조는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이어 신노동당은 우리는 모두 중간계급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누구든 노력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줬다. 이에 지역에서 존경받던 노동계급은 사라졌고, 이들이 비숙련 일자리 등으로 내려앉으면서 사회의 골칫덩이인 차브가 됐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에서 ‘199’ 시위가 벌어지며 탐욕적 금융자본을 비판하고, 세습자본주의 문제를 규명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차브 역시 고도화된 자본주의 체제 내 빈부격차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차브가 단순한 빈부격차 문제를 넘어서는 것은 가난의 문제에 개인적 열망 부족과 게으름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념화 작업이 한번 더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는 중산층 vs 차브라는 양극 구도가 굳어진 데다 반전운동·이슬람공포·여성권리·성적소수자 운동 같은 정체성(Identity) 이슈가 계급 문제를 대체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언론과 정계에 포진한 중산층 엘리트들은 자신과 다른 삶을 경험한 적도 없고 관심도 없다. 이에 저자는 차브 현상은 패자에게 퍼붓는 승자의 조롱이라며 새로운 노동계층의 연대, 국제적 차원의 운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차브는 영국 사회의 문제이지만 불평등 문제,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크다. 경제적 빈부격차가 왜곡된 문화적 외피를 입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라는 지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진영을 넘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2011년 당시 스물일곱 살의 젊은 운동가가 내놓은 이 책은 뉴욕타임스 최고의 논픽션’, 가디언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영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동아일보> 1115

 

[책의 향기] 노동계급 차브는 왜 혐오 食客으로 전락했나

 

차브(Chav)’는 영국의 하층계급을 지칭한다. 영국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또는 영국의 중산층 이상이 생각하는 차브는 대체로 낡은 공영주택에 살며 변변한 직업 없이 정부의 복지예산을 타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이 있다 해도 슈퍼마켓 점원, 콜센터 직원처럼 비숙련 노동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물론 그 자녀들도 폭력적 성향을 띠고 10대에 아이를 낳는 것이 흔한 일이다. 일종의 사회적 기생 집단’ ‘폭력과 일탈 집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차브는 피해야 할 존재이자 조롱, 무시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영국의 헬스클럽 체인 짐박스차브 파이팅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폭력적 성향의 차브와 길거리에 마주쳐도 주눅 들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체력과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여행사 액티버티즈 어브로드는 여행지에서 차브와 만나지 않도록 일정을 짰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이 같은 차브 혐오’ ‘차브 왕따현상은 대중문화에서도 반복 재생산된다. 유명 TV 드라마 리틀 브리튼에선 야비하고 뚱뚱한 싱글맘으로, 차브스컴 같은 웹사이트에선 짝퉁 브랜드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허영심 많은 캐릭터로 묘사된다.

 

한때 캐주얼 스포츠 복장을 한 젊은 노동계급이란 멋진 의미를 가졌던 차브가 왜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까.

 

저자는 대처(보수당)와 토니 블레어(신노동당)의 합작품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대처는 영국병을 고친다는 이유로 탄광 노조를 굴복시키고 산업의 틀을 제조업에서 금융 정보 엔터테인먼트 등 비제조업으로 바꿔 나갔다. 또 국유 기업을 민영화했다. 이 같은 제조업의 폐기는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안정적 소비층이었던 노동계층의 몰락을 의미했다. 1990년대 집권한 신노동당 역시 노동자들의 편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중간계급이란 구호로 누구나 노력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줬다. 하지만 다수 노동계급을 먹여 살릴 산업이 없어지고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상황에선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대형 할인마트 판매원, 콜센터 직원, 간병인 등 비정규직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이 바로 차브의 원천이 됐다.

 

영국 정부는 차브가 복지급여를 부정으로 타내고 있다며 이에 대한 적발 의지를 강력히 내비치고 있다. 장애수당을 받는 사람은 1963년엔 50만 명이었지만 2009년 무려 260만 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실제 노동 능력이 제한되는 장기 질환자는 17.4%에서 15.5%로 줄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장애수당을 대책 없이 퍼준 것은 바로 정부다. 장애수당 수급자는 1990년대 초반 경기 후퇴의 여파로 가파른 급증세를 보였는데 존 메이어 총리가 물러나기까지 약 80만 명이 늘었다. 이는 정부가 장애수당을 실업자 수치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또 부유층의 탈세가 차브의 복지수당 부정수급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이 책은 사회 양극화 속에서 몰락한 노동계급의 비극을 수많은 인터뷰와 르포를 통해 보여주며 대처리즘과 신노동당의 제3의 길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다. 올해 30세가 된 젊은 저자는 차브를 구하려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며 정부의 공공주택 건설 등이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제시한다. 영국의 심각한 양극화는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 저자의 해법이나 대안이 우리 실정에도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양극화에 따른 부작용이 더 커지기 전에 대처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던진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한국일보> 1115

 

"복지금 타먹는 찌꺼기..." 하층민 경멸 풍조 어디서 시작됐나

 

 

노동조합 활동가인 저자

하층계급 공격 행태 적나라한 고발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돌린

80년대 대처리즘이 온상 주장

 

 

차브(chavs)는 영국에서 무식쟁이 하층계급을 뜻하는 신조어다. 영국사회에서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차브를 공격하는 법’ ‘차브를 마주치지 않는 루트가 담긴 여행상품등 이들에 대한 비아냥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주류인사들은 차브를 복지 식객이라며 비난하고 조롱한다. 그렇다고 차브가 불한당이거나 세금에 의지해 살아가는 식충이는 아니다. 청소부, 슈퍼마켓 계산원, 패스트푸드 점원 등 평범한 노동자다. 그럼에도 이들은 더러운 돼지취급을 받는다.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과 웨인 루니, 가수 셰릴 콜도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브라고 놀림 받는다. 이 단어는 2008년 옥스퍼드 사전에 정식 등재됐다.

 

이 믿기 힘든 현상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2011년 출간 즉시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차브-영국식 잉여 유발 사건이 한국어로 발간됐다. 저자는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노동조합 활동가 오언 존스(30)로 영국인들이 차별적 말을 쏟아내며 하층계급을 공격하는 행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영국 가디언, 미국 뉴욕타임스 등에서 그 해 최고의 정치학 도서로 뽑힌 이 책은 노동자 계급을 악마처럼 묘사하는 사회현상과 그 이면에 깔린 정치적 의도를 파헤친다.

 

저자는 두 소녀의 실종사건을 토대로 영국사회가 노동계급에 가지고 있는 인식을 드러낸다. 2007년 상류층 여자아이가 실종되자 영국 언론은 2주 만에 1,100여개의 기사를 쏟아냈다. 현상금도 260만파운드가 걸렸다. 정치인들은 노란 리본을 달았고 텔레비전은 사건 발생지인 포르투갈에서 현지 상황을 생중계하는 등 온 나라가 실종아동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됐다. 하지만 2008년 하층민 여아 실종 사건에 대한 기사는 그 3분의 1에 그쳤고 현상금도 25,000파운드로 책정했다. 3주 뒤 하층민 아이 실종 사건이 현상금을 노린 엄마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언론은 그것 보라복지금이나 타먹는 하층계급 찌꺼기라는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책은 노동자에 대한 전 사회적 경멸이 대처리즘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1980년대 탈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다수 노동계급을 먹여 살렸던 제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소수가 이익을 독식하는 금융 산업이 득세했다. 그 결과 단단했던 노동계급이 사라지고 비정규 일자리(노동유연화)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계와 언론은 삶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의지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란 정치인과 기자들은 노동계급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함에도 가난을 사회 문제가 아닌 무책임한 출산, 의지 박약 등 개인 문제로 치환했다. 여기에 열심히 노력하면 모두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사탕발림과 노동계급을 없애고 모두 중산계급이 되자는 정치구호가 맞물려 노동자 상당수가 노동당이 아닌 보수당에 투표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저자는 결국 노동계급 내부에 정치적 기반을 재건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는다.

 

영국 사회를 진단했음에도 매 구절이 피부에 와 닿는 책이다. 꼼꼼한 취재와 날카로운 사례 분석 등 르포르타주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나 길거리 노동자를 가리키며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자식을 타이르는 한국 사회가 영국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국민일보> 1114

 

<손에 잡히는 책>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층계급 혐오 부추겼나

차브/오언 존스/북인더갭

 

[손에 잡히는 책]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층계급 혐오 부추겼나 기사의 사진

 

하층계급, 무지한 사람이란 뜻인 차브(Chavs)’2005년 옥스퍼드 사전에 신조어로 등재됐다. 어린이를 의미하는 19세기 집시 언어에서 유래했는데, 하층계급을 폄하하거나 싸구려 문화를 즐기는 세대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 영국의 젊은 정치평론가 오언 존스(30)2011년 이 책을 통해 차브 현상을 수면 위로 띄웠다. 당시 영국에선 길거리에서 만나는 차브를 공격하는 법’ ‘차브를 마주치지 않는 루트가 담긴 여행상품등 이들을 향한 비아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저자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차브를 먹잇감으로 이용해 계급 혐오를 부추겼다고 주장한다. 복지 예산을 축내면서 노동을 회피하고 TV 리모콘을 돌리며 소파에서 빈둥거리는 차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 이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영국은 탈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단단했던 노동계층은 사라지고 비정규 일자리가 넘쳐나게 됐다. 다수 노동계급을 먹여 살렸던 제조업을 정리하고 소수가 이익을 독식하는 금융 산업에 전념한 결과다. 책은 가난을 동정하던 사회가 가난을 조롱하는 사회로 변해가는 현실을 섬세하고 날카롭게 짚어낸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여러 군데 보인다. 미국 뉴욕 타임즈의 최고 논픽션’, 영국 가디언지의 올해의 책으로도 꼽혔다. 이세영·안병률 옮김.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서울경제> 1115

 

차브누가 이들을 잉여족으로 만들었나

 

우리에게 '88만원 세대', '잉여인간' 등 특정한 계층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있듯, 영국에서는 2005년 옥스퍼드 사전에 '차브(Chavs)'가 새롭게 등재됐다. 무지한 사람이라는 뜻의 차브는 19세기 집시언어에서 유래한 말로, 하층계급을 폄하하거나 싸구려 문화를 즐기는 세대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젊은 정치 평론가로 영국 하층계급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불리는 '차브 현상'을 연구하던 저자는 2011년 출간한 이 책을 통해 차브를 수면 위로 띄운 동시에 계급 혐오와 불평등의 현실을 폭로했다.

 

그렇다면 차브는 누구인가? 대체로 더러운 공영주택에 살면서 정부의 복지예산을 축내는 소비적인 하층계급과 그들의 폭력적인 자녀들이 '차브'로 정의된다. 저자는 이를 두고 언론과 정치인들이 차브를 먹잇감으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차브를 복지 정책에 빌붙어 노동을 회피하는 폭력적인 집단으로 그려 혐오주의를 불러일으킨 것. 영국의 대중문화에서도 차브를 허영심 많고 야비하면서 뒹굴거리며 TV나 보는 하층계급으로 묘사한다.

 

저자는 1980~90년대 영국이 대처 정부 이후 탈산업화를 시작하면서 노동계급이 흔들리고 비정규 일자리가 늘어나던 상황을 주목한다. 다수 노동계급을 먹여 살리던 제조업 등을 구조조정하고 소수가 이익을 독식하는 금융산업에 집중한 결과 '차브'가 양산됐고 이들을 위한 복지 수당을 아까워한 이들이 '차브 혐오주의'를 조장했다는 분석이다. 17,500.

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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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 존스 Owen Jones

 

 

1984년 영국 셰필드에서 태어나 그레이터 맨체스터주() 스톡포트에서 자랐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으며 노동당 연구원, 노동조합 활동가로 일했다. 2011년 영국 하층계급의 현실을 파헤친 차브(Chavs)를 펴내 영국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조명을 받았다. 차브는 그해 출간된 최고의 정치학 도서로 평가되면서 가디언올해의 책에 추천되었고, 뉴욕 타임스선정 최고의 논픽션 10권에 선정되었다. 현재 가디언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있으면서 뉴 스테이츠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등에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차브』 『기득권층(The Establishments)이 있다.

 

 

이세영 옮긴이

연세대 신학과와 같은 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2서울신문에 입사해 사회부, 국제부, 정치부를 거쳤다. 2008한겨레로 옮긴 뒤에는 문화부 학술담당과 한겨레21부 사회팀장을 지내며 사상, 문학, 건축 등으로 관심영역을 넓혀왔다. 현재 한겨레정치부 기자로 야당을 출입하면서 서울이란 도시공간의 정치적 무의식을 분석하는 책을 집필중이다.

 

안병률 옮긴이

연세대 독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창비, 민음사에서 문학, 인문교양 에디터로 일했다. 현재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 『특성 없는 남자(1·2)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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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Chavs)는 영국의 젊은 정치평론가 오언 존스(Owen Jones)2011년 화제작으로 <뉴욕 타임스>  최고의 논픽션, <가디언> 올해의 책에 선정되면서 영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큰 조명을 받은 책이다. 영국 하층계급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불리는 차브현상을 규명하면서 저자는 점점 더 가혹해지는 계급 혐오의 이면에 보수당과 신노동당 정부를 거치며 형성된 제조업의 몰락, 불평등의 심화, 노동조합 약화 같은 정치경제적 이슈들이 숨어 있음을 파헤친다. 이 책은 강렬하면서도 충격적인 계급 혐오와 불평등에 대한 보고서다.

 

도대체 차브는 누구인가? 영국의 언론과 미디어에서 정의하는 차브는 대체로 더러운 공영주택에 살면서 정부의 복지예산이나 축내는 소비적인 하층계급과 그들의 폭력적인 자녀들을 뜻한다. 이 책에서 오언 존스는 차브에 들러붙은 이런 혐오스런 식객이미지와 사투를 벌인다. 먼저 이 책은 차브라는 캐리커처가 어떻게 노동계급을 악마화하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가령 영국의 헬스클럽 체인 짐박스는 차브 파이팅이라는 수업을 개설하여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차브를 향한 공개적 폭력을 선동하며, 액티버티즈 어브로드라는 여행사는 기분 좋은 해외여행에서 되도록 차브와 마주치지 않는 루트를 상품화한다.

 

특히 1장에 소개된 섀넌 매튜스의 사례는 오늘날 영국에서 차브가 어떻게 언론과 정치인들의 먹잇감이 되는지를 자세히 소개한다. 지난 2000년대 후반 영국에선 마들렌과 섀넌이란 여자 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다. 마들렌은 상류층 출신으로 포르투갈의 유명 휴양지에서 사라진 반면, 섀넌은 잉글랜드 북부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인 듀스베리 모어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런데 언론과 유명인들의 동정과 관심은 거의 마들렌에게 쏠렸다. 게다가 섀넌 실종사건이 친어머니 캐런 매튜스와 동거남이 거액의 현상금을 노려 꾸며낸 사건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불똥은 캐런이 대표하는 집단, 그러니까 지역의 하층민 차브들에게로 튀었다. 기자들과 정치인들은 캐런 매튜스와 지역민들을 인간 이하의 복지 식객으로 사납게 몰아붙였다.

 

이런 차브 혐오주의는 영국의 대중문화에서도 짙게 감지된다. ‘차브 사용법류의 책들이나 차브스컴 같은 웹사이트는 차브를 슈퍼마켓의 계산원 같은 직업을 가지고, 10대에 아이를 낳지 못하면 바보 취급을 당하며, 짝퉁 유명브랜드를 주렁주렁 걸치고 다니는 캐릭터로 묘사한다. 아마 차브 혐오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리얼리티 TV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빅 브라더에 출연한 제이드 구디는 시청자와 평론가들로부터 하류계층의 더러운 돼지 취급을 받다가 급기야 암 선고를 받았는데 일부 언론은 그녀가 죽기 직전까지 인기를 위해 암환자인 척한다는 등의 모함과 비방을 멈추지 않았다. 세계적인 TV드라마 리틀 브리튼의 비키 폴라드는 야비하고 뚱뚱한 싱글맘이야말로 영국 노동계급의 전형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차브 혐오의 한축을 담당했다. 웨인 루니 같은 노동계급 출신 축구선수들은 종종 차브의 전형으로 조롱당하며 한때 노동계급의 자부심으로 여겨졌던 축구는 이제 거대기업의 시녀이자 중간계급의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듯 복지예산이나 축내면서 노동을 회피하고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TV리모컨이나 돌리는 하층계급으로 묘사되는 차브 캐리커처에 맞서 저자는 이들 차브의 역사가 80~90년대 대처 정부의 보수당, 그리고 신노동당의 잘못된 정치 때문임을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바는 제조업의 몰락이다. 잘 알려진 대로 영국은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섬유, 탄광, 자동차 등 한때 잘나가는 제조업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대처가 집권하면서 거대한 탈산업화가 시작되었고, 영국은 금융과 정보, 엔터테인먼트 같은 비제조업 쪽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처는 노동조합을 강하게 탄압했고, 광부노조를 힘으로 굴복시킴으로써 노조가 더이상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한 90년대 집권한 신노동당은 더이상 노동계급의 당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는 모두 중간계급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노동 유연성을 강조했고 누구든 실력만 있으면 중간계급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대처 시대의 산업 구조조정으로 이미 좋은 일자리는 거의 사라진 상황이었으며 그에 따른 결과는 참혹했다. 한때 존경받는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안정된 소비층을 형성했던 노동계급은 사라지고 대형 할인마트 판매원, 콜센터 직원,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자, 경호원, 간병인, 중소 자영업자 같은 저숙련 일자리들이 주류를 차지했다. 이들 신 직업군은 바로 오늘날 끊임없이 경멸당하는 차브의 직업군과 일치한다.

 

흔히 정치인들은 노동계급 개개인의 게으름과 열망없음이 차브 같은 부류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결정적인 원인은 다수 노동계급을 먹여살리는 산업들을 구조조정하고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금융 같은 산업에 올인한 정부가 제공한 것이다. 게다가 차브를 식객으로 몰아붙이는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은 하층민 사회를 경험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영국 총리 제임스 캐머런 같은 부류는 대부분 사립학교 출신에다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를 나와 부모의 재력과 연줄 덕분에 무급 인턴으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난 40년간 노조와 산업에 전쟁을 선포하고 소득세와 법인세를 낮춤으로써 부자들에게 돈을 퍼주었으며, 서민들의 세금(부가가치세 같은)은 올리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한바 상층의 부가 아래로 떨어진다는 낙수 효과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 보수당과 신노동당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차브를 헐뜯는 주된 이유는 부당한 복지수당 지급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정수급 건을 조사해본 결과 대부분은 식비나 난방비 등을 보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직업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해마다 수백만 파운드가 부유층의 탈세로 날아가는 상황에서 여타 서유럽에 비하면 매우 낮은 액수의 수당을 받는 극빈층에게 이빨을 드러낼 일인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층계급이 노동을 회피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싱글맘이나 싱글대디의 대부분은 일자리를 원하지만 불안정한 파트타임을 빼고는 일자리가 없을 뿐이다.

 

이 책은 불평등 현상이 결코 영국에 뒤지지 않는 한국 사회에도 큰 경종을 울린다.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의 제조업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또한 지난 20년간의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일자리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고 이에 따라 판매직, 서비스업, 임시직 등의 비숙련 노동이 크게 늘고 있으며 영세 자영업으로의 유입 인구도 엄청나다. 인권 모독에 가까운 차별대우와 욕설에 노출된 콜센터 직원, 상품 판매원, 비정규 임시직의 문제가 대두된 것도 어제 오늘의 아니다. 이 책이 지적하는바, 우리 사회 역시 양질의 일자리 마련, 서민 감세와 부유층에 대한 증세,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정당한 조직화가 다시 논의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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