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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층/언론이 본 기득권층'에 해당되는 글 1

  1. 2017.04.03 <기득권층> 언론보도...한겨레, 경향, 조선, 중앙, 국민, 서울, 세계 외

<한겨레> 2017331일자

 

나라에 빨대 꽂은 신귀족, 그들은 누구?

 

차브쓴 정치평론가 오언 존스

정재계 언론기득권 이면 해부

 

고소득 직업군 전락한 정치인들

좌우·여야 없이 민주주의 파괴

 

비비시 셜록까지 좌편향 몰이

지금의 한국과도 판박이로 닮아

 

전작인 <차브>(Chavs, 2011)에서 권력과 부를 독점한 영국의 소수 상류층이 벌여 온 하층계급(차브)에 대한 무자비한 계급전쟁의 실상을 파헤친 오언 존스(33)는 후속작 <기득권층>(The Establishment, 2014)에서 지금의 영국 사회 실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수백 수천명이 푸드뱅크에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인데도 상위 1천명의 부자가 5200억 파운드를 움켜쥐고 있다. 나라를 경제 파탄의 수렁에 밀어넣는 데 일조하고, 공적자금 1조 파운드로 구제받은 재계 엘리트들은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 () 언론은 정보를 알리거나 () 권력자를 비판하기는커녕 소수 거부들의 야심, 편견, 적나라한 사익추구를 위한 장이 되고 있다.”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노동조합 활동가 출신의 정치평론가인 존스는 이런 영국을 한마디로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국가로 규정한다. 기득권자들만의 동맹을 강조한 말이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후세대는 분명 이런 상황이 어떻게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는지, 경악과 경멸을 금치 못할 것이라고 그는 썼다.

 

존스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상류층이 감행한 기획이라고 본다. 탈퇴 여부를 물은 주민 찬반투표에서 투표자 다수가 탈퇴 쪽을 택한 것은, 존스의 설명대로라면, 하층민과 이주민 등을 악마화하면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부추겨 계급전쟁의 실상을 호도한 결과다. 존스는 다시 재가동될 것으로 알려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운동도 독점적 특혜를 누리는 잉글랜드 중앙 기득권층으로부터의 소외에 대한 반발로 본다.


저자는 기득권층의 계급 이기주의를 여러 방식으로 설명한다. 기득권층은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권력집단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더 광범위한 인구로부터 보호하려는 방화벽을 구축한다. 기득권층은 또한 권력이 행사되는 공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망 전체를 뜻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소수 권력집단으로서 영국 기득권층의 연원을 존스는 우선 1947년 스위스에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주도하에 결성된 몽페를랭 소사이어티에서 찾는다. 자유방임 자본주의경제를 주장하며 국가의 개입을 악으로 본 하이에크와 미국 자유시장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은, 1930년대 대공황과 2차대전기의 전시계획경제를 거치면서 버림받은 소수 기인들의 파산한 이념 취급을 당했지만 화려하게 부활했다.


1970년대 들어 미국이 주도한 전후 고원경기가 끝나갈 때 우익 학생정치의 거점 세인트 앤드루스대학의 대학원생 매드슨 피리가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을 알게 되고 애덤스미스연구소를 차릴 무렵부터 사정이 달라진다. 1971년 베트남전쟁 개입으로 휘청거리던 미국이 브레튼우즈 체제를 해체한 뒤 석유파동의 충격파가 밀려왔다. 하이에크·프리드먼의 자유방임 시장주의 이념은 그 위기 속에서 부활했고, ‘사회주의 미늘톱니(역진 방지장치가 달린 톱니바퀴)’가 돼버린 영국 정치를 바꾸겠다던 마거릿 대처가 집권하면서 신자유주의로 거듭났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권 등장으로 신자유주의는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당시 미 공화당연구위원회에서 일하던 피리가 역미늘톱니라는 용어를 만들어냈고 영국의 경제문제연구소, 공화당연구위원회에서 갈라져 나온 에드윈 퓰너가 만든 헤리티지재단 등 우파 싱크탱크들이 역미늘톱니를 앞장서서 돌렸다. 존스는 하이에크 이후 지금까지 역미늘톱니를 부르짖는 이론가들을 선동자(The Outriders)로 명명하며 자세히 설명하는데, 이들은 정치인 카르텔, 언론 귀족, 경찰, 갑부와 세금포탈범 등을 잇는 사상·이념의 연결고리다.


신자유주의 경제하에 정치인들은 고소득 직업군으로 전락했다. 좌우도 없었다. 대처 정권 이후 영국의 정치인들은 부자 감세, 민영화, 반노조, 경제금융화에 앞장섰고, ·야 구분 없이 기득권을 형성해 무자비한 계급전쟁의 핵심 전사가 됐다. 노동당도 1990년대 말 토니 블레어의 3의 길과 함께 사실상 신자유주의(대처리즘)에 투항했다. 말년의 대처조차 그런 노동당 집권을 대처리즘의 종말이 아니라 번성으로 받아들이며 감격해 했다고 한다. 저자는 블레어 이후 영국 노동당을 신노동당이라고 일컫고, 레이건 정권 뒤 신자유주의를 이어받은 빌 클린턴의 미국 민주당도 신민주당이라 부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1997년 외환위기(IMF사태) 격랑 속에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한국의 집권당도 신민주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파손된 민주주의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 할 언론은 오히려 기득권층의 마이크가 돼버렸다. 키스 루퍼트 머독 등 정치적 동기를 가진 소수의 소유주들이 지배하는 영국의 주류언론을 두고 존스는 영국에 자유로운 언론은 없다고 단언한다. “여론조사 결과 영국인 대다수는 철도와 에너지 및 공익사업의 재국유화, 주택 임대료 제한, 생활임금 도입과 부자 증세를 바라고 있으나 이런 요구를 지지한 주류 신문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보수당 각료는 런던에서 좌파 교육을 받고 자란, 과잉 대표되는 좌경무리<비비시>(BBC)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텔레비전 드라마 <셜록>까지 좌편향의 증거라고 하는 등 우파가 끊임없이 <비비시>를 비난한 건 영리한 예방책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중도 내지 중도 우파인 <비비시>를 좌편향이라 외침으로써 좌클릭을 미리 견제하는 동시에, 실제 극우파나 우파인 자신들의 위치도 중립이나 온건보수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극우 내지 우파 언론, 정치인들이 <한겨레> 등을 좌파 언론으로 매도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 아니겠는가.

영국 사회 주요 세력을 이런 식으로 까뒤집어 살핀 뒤 존스가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며 내린 결론은 이렇다. “권력은 요구 없이는 그 무엇도 내주지 않는다.” “권력은 요구 없이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절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19세기 미국 흑인 노예였다가 사회개혁운동가로 거듭난 프레더릭 더글러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경향신문> 41일자

 

[책과 삶]영국의 민주주의는 선동당했다, 기득권자들에게

 

지금의 영국을 만든 건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처의 승리가 심어놓은 하나의 사고방식, 이른바 대안은 없다는 그 유명한 구호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무제한의 자유를 주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사고방식이 대처 집권 이후 영국을 휩쓸었다. 지금 영국 기득권층은 대처의 정신적 후예들이다.

 

스물여섯살이던 2011년 영국 하층계급의 현실을 다룬 <차브>로 주목받은 젊은 논객이자 가디언 칼럼니스트 오언 존스는 새 책 <기득권층>에서 기득권층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영국 기득권층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대처식의 사고방식이다. 존스에 따르면, ‘자유시장이라는 신념을 토대로 삼는 기득권층의 사고방식은 다음과 같다. “공공자산을 되도록 많이 영리사업으로 전환하고, 이전에 국가가 경제에서 담당해온 역할에 어느 정도 반대하거나 혹은 그런 국가개입을 적대시하며, 사익에 부과되는 세금의 감면을 지지하고, 어떤 형태이건 현 상태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조직을 격퇴한다.”

 

영국 기득권층을 구성하는 것은 선동자,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갑부들이다. 먼저 짚어야 하는 것은 선동자의 역할이다. 보수파와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처음부터 영국을 장악했던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유럽을 지배한 것은 사회민주주의였다.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이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전쟁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 자유방임주의를 신봉했던 유럽 우파들은 좌파의 힘에 짓눌려 있었다. 영국 또한 1945년 노동당 정부가 사회민주주의적 합의를 세운 이래 30년 가까이 사민주의적 정책이 시행됐다. 노조는 강력했고 주요 기업은 국영이거나 공영이었다.

 

보수당 정치인들조차 온정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던 그 시절, 우파 선동자들은 괴짜 취급을 받았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사상 투쟁을 전개했다. 경제문제연구소, 애덤스미스 연구소, 정책연구소 같은 싱크탱크가 거점이었다. 끊임없이 담론을 생산하고 언론을 통해 유포했다. “처음에는 숫자가 적었는데도, 이 선동자들의 업적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그들은 한때 구제받기 어려울 만큼 우스꽝스럽고 괴상한 착상이었던 것을 새로운 정치적 상식으로 만들었다.” 대처리즘의 초석인 민영화, 규제철폐, 부자감세 등의 정책이 이들의 입을 통해 영국 사회 안으로 침투했다. 19795월 대처가 집권했을 당시 영국 진보파는 이미 대처의 민영화 논리를 무너뜨릴 수 없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위축된 상태였다. 선동자들은 과격한 우익 사상의 지적 토대를 마련하고 그것으로 다수 대중을 사로잡음으로써 현재 영국 기득권층의 돌격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물론 선동자들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우파 이데올로기의 성채를 쌓아올린 것은 아니다.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들은 선동자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맺고 일종의 지배연합을 구축했다. 정치인은 민영화와 감세 정책을 내놓고, ‘팩트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 선정주의 언론인은 민영화 반대나 감세 반대를 헛소리로 몰아붙인다. 기업인들, 특히 금융자본가들은 이들의 자금줄이다. 영국 보수당의 가장 큰 후원자는 헤지펀드계의 일인자이자 보수당 공동 회계담당자인 마이클 파머다. 우익 싱크탱크는 보수파 거물들 및 소위 자유시장이라는 곳에서 기득권을 차지한 은행가들의 비밀회의소나 마찬가지다.

 

노동당의 변신이 보수파의 승리를 거들었다. 심지어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했을 때조차 진짜 승자는 보수파였다. 노동당은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도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당이지만 1994년 토니 블레어가 지도부를 장악한 후 3의 길이라는 명분으로 보수 이데올로기에 투항했다.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대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줬고 최저임금제 시행에도 주춤했다. 정당과 지역사회의 연계성도 약화됐다. 1950년대 노동당 당원은 100만명이 넘었으나 책이 출간된 2014년 무렵에는 20만명으로까지 떨어졌다.

 

저자는 기득권층이 영국 민주주의를 축소하고 박탈했으며, 나라가 아주 소수의 허세를 부리는 엘리트를 위해 돌아가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기득권층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탈환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저자는 정책부터 제도에 이르기까지 영국 사회의 현실에 기반을 둔 다양한 제안들을 내놓는데, 한국 독자 입장에서 유의미한 것은 진보파의 단점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기득권을 수호하는 이들은 과격한 개인주의의 독트린을 설파하지만 그들 자신은 많은 경우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함께 일하는 데 놀라울 만큼 잘 훈련되어 있다. 반면 기득권과 그 수호자들에게 반대하는 우리들은 연대를 설파하지만, 너무나 자주 개별적으로 행동하고 독불장군처럼 군다.”

 

 

<조선일보> 201741일자

 

영국 복지 부정수령액보다 엘리트의 세금 회피액이 20?

어수웅 기자

 

'로르샤흐 테스트'라는 심리학 검사가 있다. 좌우 대칭의 얼룩 잉크를 보여주고, 뭐가 떠오르는지 묻는다. 보는 사람의 편향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오기 마련. 누구를 기득권층(The Establishment)으로 보느냐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우익에게는 좌파가 기득권층이다. 1960년대 히피, 소위 68혁명 세대는 50년이 지나도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유주의를 아직도 유포하면서, 몽상적 혁명가에 머물러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영국의 좌파는 사립학교와 옥스브리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 출신의 끼리끼리 네트워크를 기득권으로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것은 번진 잉크의 문양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인 걸까.

 

이 책은 영국 가디언지의 정치칼럼니스트인 서른셋 오언 존스의 기득권층 비판이다. '기득권층' 역시 영국이 타깃이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의미 있다. 사례는 생생하고, 비판은 신랄하다. 옥스퍼드 역사학과 출신인 존스는 영국 노동 계층을 새로운 각도로 분석한 첫 책 '차브'(Chavs·2011)가 그 해 주요 언론들의 '올해의 책'으로 주목받으며 일약 스타가 됐다.

 

존스는 실직 이후 주당 71파운드(10만원)의 구직 수당으로 연명하던 브라이언의 사례를 든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느닷없이 '수당 중단' 제재를 받았다는 것. 고용주와 구직자를 연결해주는 정부 사이트에 주 5회 접속하라는 지시도 어기지 않았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구직 일기'까지 성실히 써서 제출했는데도 말이다. 집에 쌀 떨어진 지 3주 만에야 겨우 이유를 알게 됐다. 종이에 쓰는 구직 일기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온라인 다이어리'도 써야 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안내문에도 나와 있지 않았던 규정이었다. 영국에서는 2012년 통계로 그 해에만 86만 명이 복지 수당 제재 조치를 받았다고 한다. 전에는 제재가 최후 수단이었는데, 이제는 노동연금부가 가장 손쉽게 의존하는 방법이 됐다는 것.

 

반대의 사례로 존스는 영국 정부의 '기업자문단'을 든다. 43세에 영국 총리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이 2010년 집권했을 때 창설했던 자문기구. 구글 회장인 에릭 슈밋, 보다폰 최고 경영자인 비토리오 콜라오 등이 포함됐다. 세계 최고 기업의 대표이지만, 동시에 '조세 회피'로도 세계 최고 기업의 수장들이라는 것. 하지만 이 자문단은 기업 거물들이 총리와 핵심 측근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가 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물론 촌스럽게 정부와 기업 사이에 직접 파이프를 잇지는 않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10년간 18명의 전직 장관과 고위 관료가 영국의 4대 회계법인에 취직했고, 이 중에는 노동당 출신의 장관과 국세청장도 포함됐다고 폭로했다. 존스는 이 회계법인들이 구글과 보다폰의 조세 회피를 어떻게 도왔고, 어떤 방식으로 법망을 피하도록 치밀하게 설계했는지를 현미경으로 전달한다. 이렇게 영국 엘리트들이 납세를 회피한 세금이 연간 250억파운드에 이른다고 했다. 우리 돈 35조원이다. 반면 정부 보조금 부정 수령으로 낭비된 돈은 12억파운드. 기득권층 조세회피액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인데도 법은 사회적 약자에게 훨씬 더 가혹하고, 언론 역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주장이다.

 

존스가 정의하는 기득권층은 결국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 네트워크다. 정치인 카르텔, 언론, 경찰, 기업 임원, 재벌, 그리고 미국에 종속적인 외교 관료, 그리고 이들을 호위하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이념적 경호부대(Outriders)까지. 그래서 2017년의 영국이라는 단면뿐만 아니라, 현 기득권층을 완성시킨 기원과 뿌리 역시 존스의 관심이다.

 

그가 호명하는 인물은 매드슨 피리(Pirie·76) 영국 애덤 스미스 연구소장이다. 바닷가 마을에서 고기잡이 그물을 만들어 생계를 꾸리던 한미한 집안의 자제였지만, 1970년대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에서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을 공부하면서 '자유방임주의'의 신봉자가 된 인물. 애덤 스미스의 이름을 빌려온 연구소를 1976년 직접 설립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정부 개입을 죄악시하는 현 영국의 경제 정책은 이 연구소에서 사상적 토대를 얻었지만, 결국 오늘날 극단적 양극화의 씨앗이 됐다.

 

시작할 때 예로 든 로르샤흐 테스트처럼, 존스의 시각 역시 자신만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폭과 두께에 차이가 있을망정, 기득권층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도 없었고 말이다. 문제는 양극화와 불평등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완충지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다.

 

임계점이 멀지 않았다는 위험 신호가 지구 반대편 영국만의 일은 아니다. 다소 과격하고 선택적 인용도 없지 않지만, 이 땅의 지식 대중에게도 필요한 독서다. 산소가 부족하면 가장 먼저 격렬하게 움직인다는 '잠수함의 토끼'처럼.

 

<중앙일보> 41일자

 

[책 속으로] 기득권층의 천국, 영국을 해부하다

 

이스태블리시먼트(The Establishment)’는 우리말로는 흔히 기득권층·지배층으로 옮긴다. 영영사전을 찾아보면 어느 특정 그룹에서 권력이나 통제력을 지닌 구성원들”(웹스터 사전), “변화에 저항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정책이나 취향에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룹” (옥스퍼드 사전) 등으로 정의된다.


영국의 기득권층의 실상을 해부한 기득권층: 세상을 농락하는 먹튀의 귀재들(The Establishment: And How They Get Away With It)은 우리 독자들을 묘한 상념에 잠기게 만들 책이다. 영국은 프랑스·미국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본향이다.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된 것은 30년밖에 안됐다. 기득권층은 민주주의 원조 영국이나 민주주의 청년한국이나 도긴개긴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자부심을 느껴도 되겠다. 우리는 영국이 300년 동안 이룬 것을 30년에 해치웠다.


이 책을 읽은 영국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독자들 또한 분노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자꾸 오늘의 한국 상황을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저자는 기득권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부유한 엘리트가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는 제도적·지적 수단.” 전작인 차브(2011)에서 희생자들인 노동자들을 악마화 시키는 기득권자들을 맹공했다.


기득권층은 이런 내용을 담았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 중 하나다. 법이 부패를 보장하는 나라다. 알고 보면 영국은 정경유착, 회전문 인사의 나라다. 기득권층은 국민의 혈세로 망해가는 기업을 살린다. 또한 영국은 엄청난 친미 국가다. 영미동맹은 기득권층의 권력 기반이다. 황당한 일도 있다. 대형 회계 회사들은 정부가 세제 정책을 꾸리는 데 도움을 준다. 회사들의 제안이 법이 되고 정책이 된 다음에 그들은 기업들에게 합법적인 탈세기법을 일러준다.


영국 기득권층은 계속 진화한다. 영국 기득권층에게 출신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상이다. 공통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다. 사상에 답이 있다. 현재 영국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그는 오스트리아 출신 영국 경제학자·정치철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 그는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저자가 앞잡이(outrider)’라 부르는 하이에크의 후예들은 사회민주주의에 기반한 영국 기득권의 컨센서스를 대체했다. 정치인·관료·경찰·금융인·언론인·종교인 등으로 구성되는 영국 기득권층은 작은 국가·정부를 표방한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국가의 최대 수혜자다. 그들은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유권자의 꿈을 짓밟는다.

저자 또한 기득권층에 속한다. 그는 옥스퍼드대 출신이며 좌파의 아성 가디언의 칼럼니스트다. BBC에도 단골 출연한다. 하지만 그는 폭로하는 내부자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기득권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들 또한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이 점에서 영국 기득권층은 건강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과 영국은 역사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했다. 고구려·백제·신라 통일은 668,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통일은 1707년에 성취됐다. 민주주의 종주국 영국이 누리던 헤드스타트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 한국과 영국은 이제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 앞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국이나 한국이나 기득권층의 적폐를 쓸어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이대로 가면 기득권자들이 영국의 미래까지 조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S BOX] 기득권층이 잘한 건 없었나?

오언 존스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솔직히 이 책은 좀 편향된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을 싫어한다. 기득권층이 출간된 후 좌파는 찬사, 우파는 비판을 쏟아냈다. ‘저자가 너무 어려서 잘 모른다는 식의 치졸한 비난도 있었다. 일리가 있는 의문도 제기됐다.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이 존스에게 묻는다. ‘기득권층의 장점·강점, 잘한 것도 있지 않은가.’ ‘마거릿 대처가 등장하기 전의 영국은 과연 문제가 없었을까.’ ‘선진국 기득권층이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덕분에 수십억 세계 인구가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저자는 민주주의 혁명에서 해답을 찾는다. 대중의 활동과 노조의 강화 등을 통해 부()를 재분배하는 혁명이다. ‘나이브하다’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도 있었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국민일보> 2017331일자

 

기득권층은 누구이고 기득권은 어떻게 작동되나

다수에 맞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권력집단

자유방임주의 선동자들과 정계·재계·언론계 네트워크

그 사고방식에 재정적 상호연관과 회전문 인사로 결속

영국 사례가 아닌 금수저대한민국 기득권층의 실상

 

 

기득권층’/오언 존스 지음, 조은혜 옮김, 북인더갭, 528, 19500

 

기득권층은 누구이고 무엇인가, 어떻게 생겨났나? 도대체 기득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권력을 가진 자, ()를 가진 자, 지배계층, 엘리트 집단.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인 기득권층의 정의는 다양하다. 여기서는 다수에 맞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자들, 즉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소수 권력집단으로 규정한다. 정치가, 언론계 거물, 기업인과 금융업자 등이 포함된다.

 

기득권층이란 단어가 오늘날과 같은 용례로 쓰이게 된 것은 1955년 영국 보수 저널리스트 헨리 페얼리의 고정칼럼을 통해서다. 페얼리는 기득권층을 함께 어울리고 필요할 때 서로 돕는 권력자들의 관계망으로 봤다. 기득권층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 집단이다. 현재의 기득권층을 이루는 핵심 요소는 공유된 사고방식이다. 바로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일련의 사고방식이다.

 

그 사고방식의 기본은 이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 추구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비범한 기업인·금융인에게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시장이 알아서 최선의 길을 찾는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 각종 규제는 뛰어난 개인들의 재능 발휘를 방해할 뿐이다. 자유시장이라는 신념이 토대가 된 자유방임주의다. 이 뿌리에는 부와 권력을 체계적으로 최상층에 재분배하는 데 앞장서온 우익 이론가인 선동자들(The Outriders)이 있었다. 70년대 초만 해도 주변부였던 이들은 부자감세’ ‘규제철폐’ ‘민영화등을 외치며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를 거쳐 확고한 이데올로그로 자리 잡았다.

 

기득권층을 결속시켜 주는 것은 공통의 사고방식, 재정적 상호연관, 회전문 인사다. 이를 통해 오늘날 부와 권력의 집중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세상을 농락하는 먹튀의 귀재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 기득권층(The Establishment)’은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막대한 이권을 챙기는 네트워크인 영국 기득권층의 실상을 낱낱이 해부하고 정치경제적 폐해를 고발한다. 2011년 하층계급의 현실을 파헤친 차브(Chavs)’를 펴내 세계적인 조명을 받았던 영국 칼럼니스트 오언 존스의 작품이다. 영국 유력지 가디언’ ‘옵저버등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던 화제작이다.

 

책은 국가개입을 적대시하고 세금 감면을 지지하는 기득권층의 커넥션에 주목한다. 선동자들의 이론적 토대 위에 정치 엘리트, 기업 엘리트, 주류 언론인, 우익 싱크탱크 등이 강력한 연줄을 형성한다. 대기업 후원은 끈끈한 연결고리다. 정치적 동기를 가진 소수의 소유주가 지배하는 주류 언론은 기득권의 대들보다. 기득권층의 정책과 관념을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전파한다. 정계·재계·언론계 등을 서로 넘나드는 회전문 인사는 유착을 더욱 강화한다. 행정부도 기득권층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을 공유하며 공생관계를 구축한다.

 

기득권을 통해 작동하는 것은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 국가는 부자와 대기업을 지원하고, 필요하면 언제나 구제해준다. 탐욕으로 무너진 기업과 은행들에 제공되는 구제금융은 엄청나다. 사회적 해악임에도 기업들의 교묘한 조세회피는 끊임없이 이뤄진다. 반면 가난한 이들이 보조금의 수혜자로 국가에 의존하면 이들은 빈대밥벌레로 악마화된다. 그리고 최하층을 세금 낭비의 주범으로 몰아간다. 대중의 분노는 사회의 상부가 아닌 최하층에게로 굴절된다. 기득권층의 적인 노동조합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은 기본이다.

 

대안은 없는가. 저자는 민주적 혁명을 제안한다. 그 혁명은 기득권층의 성공으로부터 배울 때에 가능하다고 한다. 기득권에 맞설 설득력 있는 학문적 주장을 내세울 유능한 선동자들을 만들어내고 대항세력들을 조직화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파한다. 아울러 인터넷과 SNS는 주류 언론의 지배를 깨뜨릴 희망을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집단적 힘으로 사회정의를 성취하자는 것이다.

 

이는 영국에 국한된 사례가 아니다. ‘금수저로 거론되는 대한민국 기득권층의 실상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체념해선 안 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고 실제로 일어났었다.

 

박정태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jtpark@kmib.co.kr

 

 

<서울신문> 201741일자

 

기득권층 키워낸 우익 경제 카르텔

 

포털사이트에서 기득권층을 검색하면 영어 ‘Establishment’가 가장 먼저 나온다. 영국에서 특히 잘 쓰인다는 영어 표현이다. 왕족, 귀족이 여전하고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를 합쳐 부르는 말) 출신들의 끈끈한 커넥션이 존재하는 영국의 상황을 반영한 듯하다.

 

새 책 기득권층은 이 같은 영국 내 기득권층의 세계를 들춰내고 있다. 목차를 보면 대략 짐작이 간다. 정치인 카르텔, 언론 귀족, 갑부와 세금 포탈범 등 대충 일별해도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거대한 철벽 안에 소수의 사람이 있고, 그 주변을 검·경과 언론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 말이다. 우리나라 신문 만평에서 흔히 봤던 장면이다. 한데 독특한 게 있다. 1장에 나오는 선동자들이다. 이들이 누굴까.

 

영국 기득권층의 역사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기득권층이 짧은 시간에 확고히 뿌리내리려면 공신이 필요했을 터다. 저자는 이들이 선동가들’(The Outriders)이라 불리는 우익 이론가들이라고 본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의 자유방임주의자들과 자유주의 싱크탱크는 부자 감세와 민영화 등을 주장했고, 거물 사업가들은 이들에게 돈을 기부하며 활동을 도왔다. 여기에 정치인과 언론도 힘을 보탰다. 이 같은 지원을 등에 업고 자유방임주의자들의 사상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고, 기득권층 역시 구조화됐다는 게 책의 분석이다.

 

책은 영국의 사례가 중심이다. 영국과 웨일스 땅의 3분의1 이상, 그리고 시골 땅의 50% 이상이 36000여명의 귀족들 손에 있다. 성직자가 자동으로 입법기관에 들어가기도 한다. 영국 초등학교 4개 가운데 하나는 성공회에서 운영하고 성공회 주교는 당연직 상원의원이다. 저자는 이 같은 상황을 뒤집어엎기 위해서는 유능한 우리의 선동자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장점이 많은 책이긴 하나 이 대목은 선뜻 와닿지 않는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민주주의를 보다 앞당길 수 있는 장면들이 몇 차례 있었다. 한데 선동가가 없어서, 이론가가 없어서 우리가 끝내야 할 순간에 끝내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 싶다. 영국이나 우리나 현 상황이 탐탁지 않은 건 비슷하다. 하지만 해소, 혹은 완화를 위한 지향점은 좀 달라야 하지 싶다. 예컨대 기득권층에 대한 개념과 범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증오사회, 분노사회만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세계일보> 201741일자

 

권력 가진 소수집단 기득권층커넥션 해부

 

금수저 은수저로 거론되는 기득권층이 자주 여론의 도마에 오른다. 최순실 사태에서 비롯된 탄핵정국에서도 기득권층이라는 말은 흔하게 회자된다. 하지만 도대체 기득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저자는 기득권층에 대해 권력을 가진 소수집단이라고 풀이한다. 다수에 맞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자들이다. 즉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소수 권력집단이 바로 기득권층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영국을 예로 들면서 기득권층의 속성을 파헤친다.

 

왕족과 기사 작위를 갖는 신분 계층과, 사회 각 분야의 사립학교와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를 합쳐 부르는 말) 출신들의 끈끈한 커넥션이 존재하는 게 지금 영국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영국 기득권층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저자는 그 뿌리에 선동가들이라고 부르는 우익 이론가들이 있다고 본다.

 

선동가들의 선두에는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있었다. 하이에크를 비롯한 자유방임주의자들은 정부의 역할 최소화와 자유시장을 내세웠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싱크탱크는 부자 감세와 규제 철폐, 민영화를 주장했다. 거물 사업가들은 이들 싱크탱크에 거액을 기부하며 이들의 활동을 도왔다. 선동가들의 이념전파에는 후원금을 받은 정치인과 언론도 힘을 보탰다. 이들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를 거치며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저자는 기득권층 커넥션에 맞서려면 그들에 맞설 이론을 만들 새로운 선동자를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망에 공명하는 설득력 있는 학문적 주장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기득권층을 깰 핵심이라는 것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머니투데이> 201741일자

 

'기득권' 커넥션소수의 영웅놀이가 가능한 까닭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기득권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지만, 우리 삶에 생활 용어로 깊숙이 들어온 것은 전적으로 박근혜-최순실 사태덕분이다. 그들로 인해 안개처럼 자욱하던 용어의 추상성이 구체적 영향력으로 인지하고 체감할 수 있었다.

 

기득권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긴 어렵다. 문제는 우리가 기득권의 실체에 무지할수록 기득권층에겐 이득이라는 점이다. 하층계급과 소수의 탄압에 관심을 보여온 저자 오언 존스는 기득권을 권력을 가진 소수집단으로 정의한다. 다수에 맞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자들, 즉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권력집단이라는 것이다.

 

이 기득권층을 탄탄하게 만든 주역으로 저자는 우익 이론가들을 지목한다. 하이에크로 대변되는 자유방임주의 이론가들은 부자감세, 규제철폐, 민영화 등을 외치며 전후에 합의된 사회민주주의를 부정했고, 국가와 공공지출의 의미를 악마화하는 데 앞장섰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이를테면 영국의 납세자동맹 같은 단체는 납세자 권익을 옹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은 복지기금이나 노조전임자를 공격함으로써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했다. 마치 우리의 전경련이나 어버이연합 같은 단체의 성격과 비슷한 셈이다.

 

기득권층은 작은 정부를 외치며 자유시장 논리를 옹호하는 듯 보이지만, 국가 부조(扶助)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구글의 검색 엔진조차 국가의 연구개발에 의지한다.

 

대우조선은 어떨까. 자신의 탐욕 때문에 무너진 기업에 제공된 엄청난 구제금융 사례는 부자와 기업이 필요할 때 국가가 언제든지 나서서 그들을 구제해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동자를 비롯한 자유방임주의자들은 부자 기업이 아닌, 최하층을 세금 낭비의 주범으로 몰고 가기 일쑤다.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 이면에는 기득권층의 커넥션이 존재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정치인은 기업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고, 기업인은 대신 후원금을 대준다. 언론은 독자의 생각 대신 정치적 동기를 가진 소수 소유주의 생각에 좌우된다.

 

저자는 “1970년대 선동가들의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시작된 기득권층의 반민주적 권력은 이제 정계, 학계, 언론계, 금융계 등 전 영역에 걸쳐 확고한 세력으로 성장했다지금이야말로 민주세력이 새로운 씨앗을 키워 소수의 영웅놀이를 중단시키고 사회정의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경제> 41일자

 

[책꽂이] 기득권층은 민주주의에 위협인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대통령 탄핵. 이 무거운 현실을 마주한 국민들의 마음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래도 국민들 대다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부패한 권력, 잘못된 권력은 개인뿐 아니라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이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하게 됐다.

 

기득권층은 민주주의에 위협인가 도움이 되는 존재인가. 신간 기득권층은 이처럼 쉽지 않지만, 간과할 수 없는 무거운 질문에 대해 답하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책이다.

 

책의 저자는 기득권층이 민주주의에 위협적이라고 단언한다. 기득권의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기득권층이 악인지 선인지 가치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지만, 저자는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기득권은 소수에 의한 부와 권력의 독점을 정당화하고 보호하는 기관이나 관념으로 특정 지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기득권층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했고, 책을 통해 설명되는 기득권층의 행태를 보면 기득권층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이 된다는 말을 저자 개인만의 생각이라고 흘려들을 수는 없어 보인다.

 

저자는 기득권층의 번영은 전적으로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국가의 개입을 혐오하는 영국의 기득권층의 사례를 들며 기득권층의 사고에는 논리적 오류가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은행 긴급구제, 국가 재정으로 건립된 사회기반시설, 국가에 의한 사유재산의 보호, 연구와 개발, 막대한 공공재정을 들여 교육받은 인재, 국가보조금 등 이 모두가 오늘날 기득권층의 특징인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로 설명될 수 있는 것들의 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기득권층은 그들이 받아야 할 철저한 감시를 받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권력 있는 자들의 행동을 조명하는 언론 역시 기득권층과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며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70년대 선동가들의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시작된 기득권층의 반민주적 권력은 이제 학계나 정계, 언론계, 금융계, 공권력을 가릴 것 없이 전 영역에 걸쳐 확고한 세력으로 성장했다고 단언하며 지금이야말로 민주세력이 새로운 씨앗을 키워갈 때라고 주장한다. “권력은 요구 없이 그 무엇도 내주지 않는다.” 저자의 말은 대한민국의 지금의 현실에서 곱씹어 볼 만하다. 19,500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연합뉴스> 2017329

 

영국 기득권층 분석한 '기득권층'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2011년 영국 하급계층의 현실을 파헤친 책 '차브'(Chavs. 한국어판은 2014년 출간)로 주목받았던 영국의 칼럼니스트 겸 정치평론가 오언 존스(33)가 이번에는 영국 기득권층의 세계를 해부한 책 '기득권층'을 내놨다.

 

기득권층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 'The Establishment'은 특히 영국에서 잘 쓰이는 표현이다. 왕족이 있고 왕이 기사 작위를 내리며 사회 각 분야에서 사립학교와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를 합쳐 부르는 말) 출신들의 끈끈한 커넥션이 존재하는 영국의 상황을 반영한 듯 하다.

기득권층이란 표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1955년 영국의 보수 저널리스트 헨리 페얼리가 잡지 '스펙테이터'에 쓴 칼럼을 통해서다.

 

기득권층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존스는 다수에 맞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권력을 가진 소수집단을 기득권층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지금 같은 영국 기득권층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저자는 그 뿌리에 '선동가들'(The Outriders)이라고 부르는 우익 이론가들이 있다고 본다.

 

선동가들의 선두에는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있다. 하이에크를 비롯한 자유방임주의자들은 정부의 역할 최소화와 자유시장을 내세웠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싱크탱크는 부자 감세와 규제 철폐, 민영화를 주장했다. 거물 사업가들은 이들 싱크탱크에 거액을 기부하며 이들의 활동을 도왔다. 선동가들의 이념 전파에는 후원금을 받은 정치인과 언론도 힘을 보탰다.

 

기업가와 정치인, 언론의 후원을 받은 자유방임주의자들의 사상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를 거치며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고 기득권층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구조화되는데 기여했다.

 

저자는 정치인과 언론인, 금융인과 기업인 등 영국 기득권층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사람들의 커넥션을 신랄하게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득권층에 대항할 방법을 찾는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기득권층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 맞설 이론을 만들 새로운 선동자들을 내세우는 것이다.

 

저자는 영국 사회체계가 필연적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한다. 현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가장 효율적이고 완벽해서가 아니라 기득권층의 이론적 밑바탕이 된 선동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깊이 심어줬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의 선동자들이 그런 일을 해냈다면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선동자들의 사례에서 용기를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동자들을 버티게 했던 것은 자기 사상에 대한 신념이었다. 사람들의 경험과 열망에 공명하는 설득력 있는 학문적 주장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성공에 핵심적인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선동자들과는 달리 기득권층에 맞설 새로운 주장을 만들어내야 할 학자들이 너무 이질적이고 분열적이다. 저자는 분열된 이들을 한데 모아 유능한 '우리의 선동자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영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책에 등장한 기득권층의 모습은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행태와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준다.

 

북인더갭 펴냄. 조은혜 옮김. 528. 19500. zitrone@yna.co.kr

 

 

<뉴시스> 2017330

 

 

막대한 이권 챙기는 사람들 고발오언 존스 '기득권층'

손정빈 기자 | jb@newsis.com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2011년 하층계급의 현실을 파헤친 '차브'로 세계적인 조명을 받았던 오언 존스가 두번째 책 '기득권층'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막대한 이권을 챙기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파헤친 이 책에서 존스는 우리가 말로만 듣던 기득권층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다. 기득권층이 하나의 정치적 화두로 떠오른 지금, 이 책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소수 권력자들의 발생과정과 그들이 끼치는 정치경제적 폐해를 새로운 시각으로 진단하며, 이에 맞설 민주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 같은 단어가 흔하게 거론되는 지금, 누구나 기득권층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도대체 기득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마땅한 대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기득권의 실체에 대해 무지할수록 기득권층에겐 이득이라는 점이다.

 

70년대 선동가들의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시작된 기득권층의 반민주적 권력은 이제 학계나 정계·언론계·금융계·공권력 가릴 것 없이 전 영역에 걸쳐 확고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존스는 지금이야말로 민주세력이 새로운 씨앗을 키워갈 때라고 주장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수 선동자들이 확고한 신념으로 세상을 자기네 것으로 만들었듯이, 이제 민주단체와 노동조합, 반체제경제학자들이 힘을 모아 우리의 선동자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그저 소수의 영웅놀이가 아니듯, 이제 세계는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힘으로 사회정의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은혜 옮김, 528, 19500, 북인더갭

 

jb@newsis.com

 

 

<한국일보> 2017331일자

 

기득권층

 

오언 존스조은혜 옮김. 누구나 흔히 말하는 기득권층’, 그러나 그 실체를 물으면 대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무지할수록 기득권층에게 이득인 것이 문제라는 작가. 작가는 기득권층에게 혹독한 비판을 가한다. 북인더갭52819,500

 

<동아일보> 41일자

 

기득권층이 저지르는 폐해 진단

 

기득권층(오언 존스 지음·북인더갭)=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막대한 이권을 챙기는 기득권층의 네트워크를 파헤쳤다. 기득권층이 하나의 정치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이들이 끼치는 정치경제적 폐해를 새로운 시각으로 진단하고, 이에 맞설 민주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1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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