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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력서 사진을 찾아 나에게 보여준다.

정면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왜 그리 싫은 거냐, 나는?”

한주는 확실히 멋져 보인다. 이십대 초반으로까지 보일 정도다.

남들이 내게 어떤 권위도 부여하지 않아서 그런가. 내가 그들에게 어떤 권위도 강요하지 않아서 그런가.”

이력서용 사진 한 장에 누가 그런 복잡한 의미를 부여해?”

우스꽝스럽지?”

아니.”

잔인해 보이지. 여기 독을 품었거든.” 연금술사에게중에서


문득 라인장의 고향을 생각한다. 남의 고향을 내 고향처럼 뻔뻔스럽게 떠올려본다. () 언덕 위는 춥지 않다. 그늘 아래로 포근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새들도 지저귈 것이다. 세상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언덕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아 위아래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세상도 보고 하늘도 보며 나는 동명이존(同名異存)의 운명의 만남, 한 번도 꿈꾸지 못했던 공간에서의 다정한 인사, 그 감격에 찬 해후를 만끽할 것이다. 모든 일이 문제없이 풀릴 거라고 때마침 언덕이 속삭여준다. 마시멜로 언덕중에서

 

그 나라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한다. 남자는 태양이 내리쬐는 시간에 사랑을 하고 여자는 별이 빛나는 때에 사랑을 한다. 그들이 함께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왜 너의 시간 속에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여자는 남자에게 남자는 여자에게 수없이 묻는다. 아디오스 탱고중에서

 

치열한 싸움터이긴 해도 미리의 마음엔 유토피아에 가까운 곳, 공격적인 개성들이 최고의 속도를 내며 부딪히는, 그래서 상처를 주고 그 상처로 인해 성숙해나가는 로드센이란 싸움터가 하루 하루 그리울 것이다. 그곳에서 받은 상처와 분노뿐 아니라 상처와 분노를 극복하며 맛보았던 외로움과 오기가 그리울 것이다. 옛 노래 3비교감상학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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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책을 펴낸다. 소설집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야곱의 강(파라PARA 212004년 봄호)을 통해 소설을 사건도 없고 반전도 없이 이 모양 이 꼴로 쓰면서 소설가 지망생의 조급한 마음을 스스로 돌아보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이 작품으로 등단까지 했다. (심사를 맡았던 최윤 선생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못난 소리인 줄 알지만, 야곱의 강으로 등단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설가로서 여한이 없다. 소품임에도 표제작으로 선정된 마시멜로 언덕(미발표)은 무려 이십년 전에 쓴 작품이다. 오늘의 청춘들도 불안과 막막함의 언덕위에서 얼마나들 안타까우신가. 이렇게 보잘것없는 이야기를 소설로 써도 되나,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연금술사에게(문예중앙2005년 가을호)아디오스 탱고(웹진 문장20063월호)는 데뷔 초기에 발표할 기회를 얻었으니 운이 좋았다. 찰나의 아름다움과 강렬한 여운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단편을 읽겠는가.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꿈은 거창했지만 결과물은 부족했다. 이 모습 이대로 독자님들께 떠나보내며 변명을 보태자면, 그래도 그 부족함은 30대 초반이던 나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발표작의 경우, 소설 속 소재를 현재에 맞게 다소 수정했음을 밝힌다. 양해 바란다.)

모두 미발표작인 옛 노래 1옛 노래 3은 육아일기의 짧은 메모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숙성의 과정을 거쳐 소설로 변주된 뜻밖의 결과물이다. 요람에 누워 있는 아이와 일방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신발이 닳도록 뛰어노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작업을 이어갔다. 안 믿어질 수도 있겠지만, 인생과 예술의 비밀을 아이를 통해 많이 배웠다. 또다른 미발표작 누군가는 틀에 박힌 거룩한 신()이 아닌 생활밀착형신을 만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그런데 오십 평생을 모태신앙인으로 살아온 내가 누군가란 인물로 그려낸 절대자의 모습은 이렇게나 밋밋하다. 부끄럽다. 다음엔 더 잘 쓰겠다.

사실, 3년 전 펴낸 첫 장편 『힐』도 악성재고로 창고에 쌓여 있다. 읽는 이 하나 없는데 자꾸 소설을 쓰는 것, 즉 시장에서 소비자로부터 선택되지 못하는 상품을 자꾸 생산해내는 것, 이것이 내가 가장 오랜 시간 공들여 해내는 일이다. 뭣도 모른 채 나는 해답 없이 글을 쓴다. 의문과 혼돈에 휩싸인 채 글을 쓴다. 체제 안의 언어로 체제 밖의 이야기를 가공한다. 나는 이런 내 삶이 재미가 있지만 나의 재미를 타인에게 강요할 순 없다. 그래서 이 순간 이 글을 읽어주는 모든 분들께는 마음을 다해 감사할 뿐이다. 또한 열일곱의 인생을 치열히 살아내는 아들 성건과 남편, 가족들,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한다. 

새 책이 나오니 아빠 생각이 더 난다. 아빠가 계셨다면 정말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텐데. 나는 아빠에게 늘 대들던 딸이었지만 이래봬도 아빠의 판박이였다. 투쟁하듯 아빠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나의 더러운 성질 탓도 있겠지만, 아빠와 딸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가부장제란 구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빠로 인해 터득한 삶의 전투력은 쓸모가 있었다. 안 그랬으면 무명 소설가는 진즉에 소설 나부랭이 같은 건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멋진 아빠의 모습으로, 아빠가 기억하는 둘째 딸의 가장 사랑스럽고도 대견한 모습으로 아빠와 나는 다시 만날 것이다. 그날에도 나는 아빠한테 따져 물을 것이다. 아니 아빠, 그렇게 가버리면 어떻게 해, 내가 아빠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기나 해……. 

이 부족한 소설집을 2년 전 췌장암으로 고단한 삶을 마감한 나의 아빠 김요식(1937~2016)의 영전靈前에 바친다.  


2018년 가을
김조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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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을해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아주대학교 행정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남편, 열일곱살 아들과 함께 반경 4킬로미터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다. 읽고 쓰기를 좋아한다. 원고를 검토하며 책을 펴내는 일도 재밌어한다. 그 밖의 다른 일들은 대충하는 편이다.

2004파라PARA 21신인공모에 단편 야곱의 강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5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아 장편 을 펴냈다. 2018년 경기문화재단 창작집 출간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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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가장하면서도

은근히 빛나는 기이한 소설들! _최윤

 

 파라PARA 21(2004년 봄호)로 등단한 작가 김조을해의 소설집 마시멜로 언덕이 출간되었다. 등단작 야곱의 강을 포함해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모호함이란 틀에 갇힌 젊음을 변호하면서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으며, 권위의 파괴로 상징되는 예술의 생명력을 강렬한 캐릭터와 참신한 대화에 담아내고 있다. 또한 순수한 영혼을 향해 참회할 줄 아는 자로서의 모성, 절대자와 인간 사이의 끈질긴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원숙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다. 소설가 최윤은 고유한 언어에 대한 고심과 평범한 듯한 주제를 이끌어가는 남다른 발상이 돋보인다며 작가의 소설을 높게 평한 바 있다.


젊음, 그 모호한 공포와 사회의 부조리함

 이 소설집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는 사회와 마주하고 있는 청춘의 초상이며 다른 하나는 예술과 신()이라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다.

연금술사에게는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독특한 서사 속에 모호한 젊음의 공포가 기이하게 스며든 작품이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우리는 인사동의 한 한복집 앞에서 셔터 안에 갇힐 뻔하다 극적으로 탈출하는 주인공을 만난다. 그런데 장면이 바뀌면서 이 주인공은 남다를 것 없는 취업준비생으로 남자친구와 함께 카페에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다. 소설은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한번 셔터 안으로 갇힐 뻔하는 주인공을 남자친구가 구해주면서 끝을 맺는다. 이 소설에서의 공포는 대체로 모호하다. 주인공은 낙원상가에서 기이한 악기상을 만난 후 아무 근거 없이 순식간에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며 인사동으로 도망쳤다가 한복집 앞에서 이유 없이 나를 모욕하는 것들에 맞서게 된다. 얼핏 보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공포가 자소서를 쓰는 취준생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의아해지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모호한 공포가 바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과 묘하게 조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흔히 젊음은 모호하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 그런데 저자는 역으로 이 모호함은 다름아닌 사회의 또다른 모호함(부정확함)에서 기인함을 역설적으로 항변한다. 그래서 셔터 안에 갇히는 비일상적인 정황은 주인공들의 포기로 점철된 이십대가 빠진 함정과 절묘하게 상응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덧 주변으로 밀려난 청춘의 초상은 마시멜로 언덕으로 상징되는 노동세계로 옮겨온다. 언덕이 주는 목가적인 어감과 달리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서 있는 자리는 아이스크림을 제조하는 공장 라인의 맨 위칸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거짓말을 해놓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는 이 언덕에서 아래쪽 라인으로 포장 박스를 던지는 일을 한다. 이 공장에는 미색 블라우스에 촌스런 진주모양 단추를 단 라인장도 있고 자꾸 제품을 라인에서 놓치는 신참 여자도 있으며 늘 오른쪽 눈두덩이 멍들어 있는 화곡동 아줌마도 있다. 그리고 이 여성 노동자들은 엉덩이나 허벅지를 이마로 문대는 주반장의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 라인장은 를 좀더 따듯한 자리로 옮겨주고 나 역시 신참 여자를 도와주려 하지만 이 여성들의 작은 연대는 공장이 내지르는 기계의 소음에 묻혀버리고 그 때문에 온몸이 땡땡하게 붓는 일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춥지 않고 포근한 바람이 불어오는 (진짜) 언덕에서의 다정한 인사는 이 소외된 노동세계에서는 여전히 하나의 상상으로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아디오스 탱고는 쓸쓸한 실연의 보고서처럼 보인다. 물론 그렇게 보더라도 이 작품은 누구나 통과해야만 했던 슬픈 의례에 대한 공감 때문인지 몇번을 다시 읽어도 똑같이 눈물짓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드는 비밀은 사랑이라는 영역이 점점 현실의 영역으로 편입될 때 느껴지는 외로움을 실연의 시간 곳곳에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실연이란 사랑이 현실로 변화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불가능의 영역(사랑)을 가능의 영역(현실)으로 옮겨오는 지난한 과정 가운데 겪은 침묵과 외로움이었다는 작가의 성찰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싱싱한 예술세계와 신과 인간 사이의 끈질긴 기다림

 옛 노래 3비교감상학 시간은 다소 느리게, 그리고 사색에 잠겨 진행되는 앞의 작품들과 달리 청춘의 싱싱한 생명력이 스피드하게 전개되는 매우 경쾌한 스타일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하나의 단막극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로드센이라는 예술학교의 강의실에서 벌어지는 학생들간의, 그리고 학생과 교수와의 대화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작가의 특기, 즉 다양한 캐릭터를 인물 하나하나의 미세한 행동으로 잡아내는 관찰력과 마치 인물이 눈앞에서 말하는 듯 생생하게 다가오는 대화 처리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베토벤 연주를 두고 벌이는 로드센 예술학교에서의 토론 수업은 권위의 파괴, 개성의 확신이라는 점에서 생명을 관리하고 연장하여 노동세계에 정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서의 생명력이 그대로 꽃피고 자라나게 하는 수업을 상징한다. 이는 전체주의와 몰개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우리 학교의 현실에서 잠시나마 예술적 상상력이 맘껏 발휘되는 유토피아적 공간을 꿈꾸게 한다.

옛 노래 1겨울 순서는 모성의 세계를 다뤘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과 구별되지만 아이들의 영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또하나의 참신한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 아이를 잃고, 또 그 자신도 죽음을 앞둔 한 어머니의 참회록이다. 이 소설에서 모성이란 참회할 줄 아는 자로서의 어머니를 상징한다. 누구든 후회 없이 아이를 잘 키웠다고 말할 자신이 있을까? 겉으론 비겁하게 상황 탓을 하겠지만 우리 내면에는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동화는 어른들이 쓴 것, 그래서 기법과 속임수를 동원해 아이들을 통제하고 위협할 가능성이 큰 기제로 그려진다. 그러나 아이들은 동화를 순수한 영혼으로 받아들이고 자기의 방식대로 해석한다. 작가는 이 소설이 신발이 닳도록 뛰어노는 아이를 보살피며 쓴 육아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한다(저자의 말). 그러니까 이 소설은 우리가 애써 거부한 아이들의 영혼에 대한 참회록이자 그들에게 내미는 사과의 손길 같은 것이다.

둘 다 절대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야곱의 강은 같이 읽어도 좋을 작품들이다. 흥미롭게도 누군가에서의 절대자는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을 하고 등장한다. 그러나 절대자는 어떤 한 거룩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중학생에서 할머니까지 우리 주변 여러 인간 존재의 모습이 한 명의 몸 안에서 구현되는 친근한 존재로 상상된다. 또한 그 절대자가 하는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이 소설에서 누군가는 그저 같이 라면을 먹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장난 수도꼭지 같은 것을 고쳐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조차 포기하지 않는 절대자의 끈기있는 기다림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내면 속에 이미 존재하는 어떤 선한 가치들처럼 그려지는데, 이 소설에서 그 가치들은 현실에서 모습을 바꾸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절대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절대자와 인간 사이의 끈질긴 기다림이란 주제의식은 야곱의 강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폴란드의 거장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의 스토리를 액자처럼 품은 이 소설은 이미 찾아온 사랑 앞에서 끊임없이 망설이며 헷갈려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그려내고 있다. 사랑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어딘가 결여된 상태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다른 연애소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사랑을 절대자의 사랑과 미묘하게 연결시켰다는 데서 이 소설의 특징이 있다. 인생에서 이란 게 그저 인간의 판단이라면, 그래서 절대자는 오히려 그 은 아직 멀었다고 말하면서 끈질긴 기다림을 제안하는 자라면 사랑 역시 삶을 고통의 나락으로 빠트리는 그 순간 이후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냐고 저자는 되묻는 듯하다. 저자는 이 과정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요약한다.

 사랑에는 우리 삶의 모습을 관찰하는 눈이 있다고 생각해. 재미있지? 사랑은 우리를 관찰해. 더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 옆으로 사랑은 다가와주는 것 같아. () 그러니 토멕이 잃은 것과 그녀가 얻은 것을 합하면 0이 되는 거야. 사랑은 공평해.”(242)

소설가 최윤은 이 소설에 대해 잔잔한 사건 아닌 사건들을 통해 주인공의 내적 독백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만으로도 한 인물의 내적 성숙의 과정을 담백하고 그려내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어떤 강렬한 서사에 의존하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에 대응하는 여러 캐릭터의 독특함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참신하고 강렬한 대화, 무엇보다 현실 사회의 부조리와 날카롭게 대립하는 인간이라는 주제의식은 이 작품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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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송 신작 <세속성자> 출간 기념 북토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교회의 문제, 신앙의 문제 등으로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열려 있는 자리입니다.

10월 5일 7시 30분

합정동 빨간책방 카페(3층)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신청하시면 됩니다. 


http://bit.ly/secularsa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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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성자> 언론 서평 모음

2018.09.14 12:33 | Posted by 북인더갭

<한겨레> 2018. 9. 14.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교회를 세우자

 

어떤 거대한 권력 집단이 점점 몰락의 길을 걷더라도, 내부에선 항상 개혁의 움직임이 있기 마련이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채울 수 없는 지적 깨달음과 대안적인 삶에 대한 요구에 응답하고 있는 청어람아카데미가 그런 곳이다.


아카데미를 만들고 이끌어온 양희송 대표기획자는 지난 2013년부터 일요일에 교회에 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들을 위해서 5년간 상하반기로 나눠서 12주씩 수요일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가나안 성도란 교회에 다니다가 실망하거나 또는 냉담해져서 더는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마음 속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전체 개신교인 중 10~20%100~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세속성자>는 이 모임에서 양 대표가 성-속 이분법, 예배와 전도, 공공선과 같은 뜨거운 주제를 끌어안고 분투한 고민을 담은 결과물이다. 최근의 대안적인 기독교 담론을 충실하게 소화하면서도 현실적인 균형감각을 놓치지 않는 내공이 단단하다.

책에선 특히 고체-액체-기체교회 개념을 제안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는 고체교회는 기존의 교회당을 기반으로 한 교회를, ‘액체교회는 해변교회나 길 위의 교회처럼 성도들의 모임이라면 굳이 교회당이 없어도 된다고 보는 관점을 말한다. 그럼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기체교회는 뭘까. 그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보면서 이 개념을 떠올렸다고 한다. 핀란드, 덴마크 같은 나라들에선 교회나 교인을 찾기는 어렵지만 국가 자체가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해 있어 자유롭고 평등하면서도 삶의 질이 높다. 이런 기체교회와 같은 존재방식을 고체·액체교회와 공존하며 현실화하는 것이 기독교의 앞으로의 과제가 아니겠냐고 말한다. 필 주커먼이 <신 없는 삶>에서 했던 관찰과 통하는 바가 있다.

이 책이 나온 와중에 대형 보수 교단 중 한 곳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이 지난 11일 총회에서 양희송 대표가 이끄는 청어람을 비롯해 교회개혁실천연대, 좋은교사운동 등 그나마 합리적이고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기독교 단체들을 조사하겠다고 결정했다. 교인들이 이 단체들의 활동에 참여해도 되는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이렇게 샅샅이 찾아서 틀어막는 것이 사실 자기 숨구멍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이 올까?

김지훈 기자

 

 

<문화일보> 2018. 9. 14.

 

더 종교적인, 종교 밖 사람들의 삶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절이다. 세계적으로 이 같은 시대의 공통된 종교 현상은 ()종교화. 이미 종교 인구가 미미해진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상 개신교 국가로 불리며 여전히 그 영향력이 큰 미국의 경우에도 지난 25년간 종교가 없다고 하는 사람이 두 배나 늘어났다. 한국도 지난 2015년 통계에서 무종교인이 전체 인구의 절반(56.1%)을 처음 넘어섰다. 이들 무종교인은 젊고 교육수준이 높은 연령대에서 두드러져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제도 종교의 밖에서 새로운 형태의 신앙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구적으로 종교는 가장 끔찍한 살육을 벌이는 분쟁의 원인이다.

 

근래 국내 대형교회의 목회 세습과 일부 목회자의 잇따른 성폭력 사건, 불교 최대 종단 지도급 스님의 추문 등으로 이게 종교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종교의 행태를 비판하고 분석하는 책들이 적지 않게 출간되고 있다. 그중 사회학자인 필 주커먼 미국 클레어몬트 피처 칼리지 교수가 쓴 종교 없는 삶은 무종교 신념과 가치들을 살펴보는 저작이고, 신학자이면서 개신교 개혁운동가인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가 쓴 세속성자는 이른바 제도권 교회의 틀을 벗어나 새롭게 찾아나서게 되는 신앙적 지향에 대해 사색한 책으로 눈길을 끈다.

 

필 주커먼은 미국 내 다양한 인종과 직업, 연령대의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하고 많은 통계수치를 분석해 이 책을 펴냈다. 종교를 가진 많은 미국인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하거나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거나 무언가 결여된 삶을 살며, 무절제하고 오만하며 이기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이 있다. 이런 배타성과 편견은 무종교인을 더 늘어나게 한다. 저자는 무종교인들에 대한 혐오와 불신에서 깨어나게 돕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수많은 인터뷰와 자료를 통해 저자는 무종교인이 문제를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집단적 사고나 군중심리에 휘둘리지 않으며, 현세의 일들과 사람들에게 애착심을 갖는 태도를 지닌다고 말한다. 또 과학적 탐구를 좋아하고, 인간적 공감능력이 높으며, 성숙한 도덕성을 키우고 삶의 유한성을 고요히 받아들일 줄 아는 등 공통의 특색과 가치를 지녔다고 분석한다. 지구촌에 종교가 없는 사람들 대개는 종교를 파괴하지 않는다. 무종교인은 정치의 영역에서든 사적인 삶에서든 종교를 해결책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타 종교에 적대적인 국가나 사람은 오히려 종교국가나 종교인들인 경우가 흔하다. 저자는 무종교인을 변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무종교인들은 자신의 삶을 외부가 아닌 내면에 두고 끊임없이 성찰한다. 이들은 이분법적 사고보다 통합적 이성, 타인이나 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함으로써 배타적인 종교인들보다 더 종교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다.

 

세속성자의 저자는 이미 2014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을 펴낸 바 있다. 앞선 책이 교회 밖으로 나가는 가나안신자의 증가 원인에 대해 주로 다뤘다면, 이번 책에서는 이들의 실천적 신앙에 대해 말한다. 성스러움과 세속성, 믿음, 기도, 전도, 영성과 종교의 공공성 등 오랫동안 개신교 신자들이 가슴에 품은 의문을 다루고 있어 찬찬히 음미해볼 만한 책이다.

 

성자는 거룩한 사람을 뜻하고, ‘세속은 그 정반대에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세속성자는 형용모순이 되는 표현이다. 저자는 더 이상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에만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신앙적 양심에 호소하는 새로운 신앙인들을 세속성자라고 부른다. 교회는 세상 저 안쪽에 거룩하게 존재한다는 사고를 세속성자는 거부한다. 우리 시대의 세속성자란 교회의 집단적 실패에 맞서 스스로 정당한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개인들이다.

 

저자는 우리 삶의 전반을 차지하는 노동과 쉼을 영성에서 제외하고 홀로 거룩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인가라고 묻는다. 신앙을 삶과 유리해 일하고 소비하고 욕망하는 자본주의 가치 속에서 아무런 비판적 검토도 없이 맹목적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국 형제자매는 물론 스스로를 노예적 노동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근래 대형교회보다 작은교회를 지향하거나, 혹은 카페 등지에서 정해진 목회자 없이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책도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세속성자 수요모임5년간 경험을 토대로 쓰였다. 각 권 42018000, 25214000.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국민일보> 2018. 9. 21.


‘세속성자’(북인더갭)라는 제목부터 시선을 끈다. 어떤 사람을 세속성자라 부를까. 책 표지 하단의 ‘성문 밖으로 나아간 그리스도인들’ ‘A Secular Saint’라는 단어로 어림잡으며 책장을 펼친다. 어찌 보면 새로운, 그러나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독창적인 이름을 부여한 사람은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다.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지난 17일 만난 양 대표는 “어떤 톤으로 책을 쓸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내가 하는 이야기가 독자들의 질문이나 고민과, 가능하면 장애물 없이 잘 연결되도록 친절하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신교에서 ‘성자’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택했다. ‘성도’라는 말에 묻혀버린 ‘신앙의 개인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세속’이란 말에는 가나안 성도의 존재를 고려함과 동시에 신자들이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음에 좀 더 무게를 싣자는 의중이 담겨있다. 양 대표는 “로버트 웨버가 쓴 ‘A Secular Saint’란 책은 존재하지만 해외에서도 이런 개념을 담아 세속성자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없다”며 “작명의 독창성이 있는 만큼 가나안 성도처럼 세속성자란 말이 널리 쓰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2013년부터 가나안 성도들과 수요예배를 드리며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진행해 왔다. 절반은 가나안 성도, 절반은 교회 안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5년간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교를 나누며 형식적인 실험을 거쳐 새로운 예배형식을 갖춰나갔다. 설교 뒤 토론하며 삶과 신앙, 교회 문제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그는 “가나안 성도에겐 자기 정체성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에 우리가 이런 고민을 안고 어디까지 가볼 수 있을까 탐색해본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2016년 가을에 집중 논의한 것을 토대로 세속성자라는 개념 정의부터 시작해 믿음, 기도, 예배, 전도, 하나님나라, 교회론, 일과 신앙, 공공선이라는 주제까지 폭넓게 다룬다. 양 대표는 “가나안 성도에 대한 기존 논의가 교회를 이탈하는 종교사회학적 현상에 관한 것이었다면 여기서 진전해 교회론 구원론 예배론 등 이들이 고민하는 신학적·목회적 내용을 다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읽다보면 교회 안팎 구분 없이 적용 가능해 보이는 내용이 많다. 양 대표는 “모든 교회가 실험장이 될 순 없으니 누군가는 위험 부담을 지고서라도 실험을 해서 결과를 피드백해 줘야 기존 제도에 적용 가능한지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교회 안 성도들은 물론 기성 교회의 질서나 관행에 익숙한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어색하고 몸에 안 맞을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언러닝’(탈학습)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언러닝이란 이전에 배워서 익숙한 것 때문에 새로운 규칙이나 지식을 습득하기 어려울 때, 과거에 배운 것을 지워내는 것”이라고 했다.

기도 예배 교회 등 다양한 논의 중에서 기도에 대한 논의가 가장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도에 대해서는 저마다 분명한 자기 생각, 자기 기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책에서 “기도는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며 불가피하다”는 의미에서 ‘3不’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양 대표는 “기도의 주도권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있기에 우리의 기도가 노력과 상관없이 무용할 수도, 어긋날 수도 있다”며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당신의 열심의 수준, 곧 기도의 강도와 빈도가 결과를 보장한다는 주장이 넘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 결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과연 우리의 기도는 일반 종교의 수준을 뛰어넘는 기독교적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책 말미에 ‘세속성자’만큼이나 독특한 ‘기체교회’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양 대표는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과 무교회주의 영향을 받은 일본을 보며 떠올린 것”이라며 “교회나 교인을 찾아보긴 어렵지만 그 나라의 사회적 토대에 기독교적 가치와 영향력이 스며들어있는 기체교회는 불가능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성도들의 이탈을 정당화하고 가나안 성도 현상을 고착화하려 하느냐는 반발이 나올 법하다. 양 대표는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체제에 반대하며 자기 정체성을 세워나가도록 두기보다 세속성자라는 이름 아래 신학적 언어로 정체성을 세워나가자는 취지”라며 “그러면 이들과 더불어 꿈꿀 수 있는 다른 종류의 교회를 시도하거나 기존 교회와 연결하는 게 오히려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트리니티칼리지와 런던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복음과 상황’ 편집장을 지내고 한동대에서 기독교 세계관 강의를 하는 등 복음주의 진영에서 다양하게 활동해 왔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연합뉴스> 2018. 9. 15.

 

 '가나안 성도'란 교회에 나가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대형교회의 세습, 성추문, 비리 등으로 교회 밖으로 나가는 신도들이 늘고 있다.

 

이 책은 이들 '세상 속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세속성자'라 칭하며, 그들이 찾아 나선 신앙적 지향에 대해 탐구한다.

 

청어람아카데미 등을 통해 새로운 교회 생태계를 모색해온 저자는 가나안 성도를 위한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지난 5년간 진행해왔다.

 

이 모임에서 고민한 교회와 신앙, 삶의 문제들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시대의 기독교 신앙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살펴보고, 세상을 떠나 교회에서 살기보다는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세속성자의 참된 삶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이제는 신앙적 실천의 장이 교회냐, 사회냐 구분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우리의 교회론은 좀 더 유연하고, 포괄적이고, 새로운 상상력에 부합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북인더갭 펴냄. 252. 14천원.

 

<한국일보> 2018. 9. 14.

 

세속성자

 

양희송 지음. 대형교회의 세습, 성추문 등 사건 사고가 터져 나오는 때 한국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성벽 안은 신앙이요, 성벽 밖은 불신이라는 이원론을 깨고 오히려 성벽 내의 맹신을 드러내자고 주장한다. 그들을 세속성자라 부르자는 것. 북인더갭25214,000

 

<경향신문> 2018. 9. 15.

 

세속성자

 

대형교회들의 세습, 성추문, 비리, 소수자 혐오로 얼룩진 한국 기독교를 돌파할 해법을 모순형용처럼 들리는 세속성자에서 찾는 책이다.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성도들에 주목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과감히 성벽 밖으로 나가 새로운 신앙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양희송 지음. 북인더갭. 14000

 

<조선일보> 2018. 9. 15.

 

세속성자(양희송 지음)=성과 속의 이원론을 넘어 과감하게 성벽 밖의 신앙을 모색하는 성도들을 '세속성자'로 정의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새롭게 상상한다. 북인더갭, 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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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성자> 저자의 말

2018.09.10 09:32 | Posted by 북인더갭

들어가는 말



“그날 인류는 떠올렸다. 새장 속에 갇혀 있던 굴욕을…” 2013년 한국에서 대히트를 쳤던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은 이 의미심장한 내레이션과 더불어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식인 거인들의 공격을 피해 인류가 월 마리아, 월 로제, 월 시나로 불리는 3중의 방벽을 쌓고 살아가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첫 장면은 월 마리아의 50m짜리 거대한 방벽 위로 초대형 거인이 솟아올라 그 벽을 깨뜨려버리면서 대혼란에 휩싸이는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무너진 벽 틈새로 거인들이 쏟아져 들어와 사람들을 찢고, 밟고, 아무렇지 않게 살육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입니다. 주인공 에렌은 이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고, 사람들은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앞다투어 두번째 성벽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것 외에 무슨 다른 길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주인공은 독특한 발상을 합니다. 모두가 두번째 성벽, 혹은 그것이 실패하면 세번째 성벽 안으로 피신함으로써 생존을 도모하고자 할 때, 그는 인류가 살 길은 거인들이 돌아다니는 저 성벽 바깥에 있을지 모른다며 그곳을 조사하는 부대에 자원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성벽 바깥에 존재하는 잊혀진 역사를 장대하게 풀어나가며 시리즈를 이어갑니다. 

「진격의 거인」은 한국 개신교가 처한 상황을 너무나 실감나게 보여주는 하나의 우화로 보입니다. 성벽 바깥 ‘세상’에는 우리를 공격하는 식인 거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거인들의 이름은 사탄에 사로잡힌 ‘대중문화’나, 인륜을 파괴하는 ‘동성애’, 혹은 종교를 멸절시키는 ‘좌파’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워서 결코 이길 수가 없으므로 성벽 안쪽에 머무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상상을 초월하는 초대형 거인이 나타난 거지요. 그 앞에 우리의 성벽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유일한 대안은 더 안쪽의 성벽으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더 높은 성벽, 더 헌신된 훈련과정, 더 굳센 정통의 신학이 제2, 제3의 장벽 안에는 있을 것이므로, 그리로 피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오늘날 개신교의 상황판단이 대략 이렇지 않습니까? 

저는 이 책에서 기독교적 대안을 찾는 이들은 더 안쪽의 성벽으로 퇴각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성 바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엉뚱한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현실세계에 성벽을 쌓아 안팎을 성과 속으로 구분하고, 이를 분할통치하는 것으로는 이런 문제를 결코 풀 수 없을 것이며, 그리고 원래 기독교는 그런 것을 대안으로 여기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성벽 안쪽은 신앙이고, 성벽 바깥은 불신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거꾸로 저는 성벽 내의 불신 혹은 맹신을 드러내고, 성벽 바깥에서 성심으로 신앙하는 삶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신앙인을 ‘세속성자’a secular saint라는 개념으로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삶을 ‘굴욕’이라고 느끼는 이들을 불러내고자 합니다. 

이 책에는 2013년 1월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를 위한 수요예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세속성자 수요모임’이 지난 5년간 고민했던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 http://iChungeoram.com 참고). 우리는 매년 상하반기 12주씩 수요예배로 모였습니다. 언뜻 매우 실험적인 모임처럼 보이기도 했겠으나, 대부분 모임은 찬양-설교-기도로 이어진 느슨한 시간이었습니다. 설교는 성경의 한 책을 선정해서 한 장씩 ‘강해설교’를 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렇게 들여다본 책들이 다니엘서, 갈라디아서, 누가복음, 잠언-전도서, 요한복음, 히브리서, 아모스서에 이릅니다. 2016년 가을에는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며 ‘세속성자를 위한 12개의 질문’을 주제로 그간 우리가 화두로 삼았던 질문 12개를 하나씩 짚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그 모임의 직접적 결과물입니다. 

‘세속성자’ 이야기는 교회 울타리 바깥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나안 성도’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포이에마 2014 참고). 최근 몇년간 주목받았던 ‘가나안 성도’ 논의는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났는가, 교회를 떠나서 신앙생활이 가능한가, 교회는 대체 무엇인가 등 교회론적 질문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 답해나가다보면 기독교 신앙 전반을 재검토해보는 과정을 필히 거치게 됩니다. 익숙한 모범답안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질문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나안 성도’가 한국 교회의 교회이탈 현상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 개념이라면, ‘세속성자’는 가나안 성도가 촉발한 질문에 공감하는 이들이 결국 찾아나서게 될 신앙적 지향은 무엇인지 대답하려는 노력입니다. 이 논의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기독교 신앙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새로운 질문은 무엇이며, 새로운 대답은 무엇인지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처음에는 매주 전했던 설교를 잘 정리해서 묶어내자는 소박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원고를 정리하다보니 그것으로는 취지의 전달이 쉽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원래 원고를 들고 여러 날 고심을 했습니다. 결국 상당량을 다시, 혹은 새로 썼고, 순서도 흔들어서 재구성했습니다. 책 쓸 때마다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일생일대의 역작을 쓰자는 야망은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한두 마디 문장을 쓰다가 이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이런저런 학술적 논의와 신학적 함의를 일일이 다 추적해서 전말을 덧붙이는 것도 포기했습니다. 그랬더라면 논문이 여럿 나와야 했을는지 모르나, 그건 학자들과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겨드립니다. 이 책의 주장이 기존의 통념이나 교회의 목회적 형편과 어긋난다는 항변도 개의치 않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제기하고 싶었던 문제의식과 통찰만 잘 표현된다면 족하겠습니다. 배움이 깊고, 고민이 넓었던 분들에게는 더 파고들어볼 논점이 많이 눈에 띌 것입니다. 그것은 이 책 이후의 토론 과제로 돌려놓습니다. 일단은 지난 5년간 세속성자란 이름으로 모임을 해온 이들이 잠시 멈추어 서서 되새겨본 중간점검 기록으로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 ‘세속성자’는 모순형용입니다. ‘성자’saint란 글자 그대로 ‘거룩한 사람’을 뜻하는데, 당연히 ‘세속’secular의 정반대에 있는 존재입니다. 세속을 거부하고 떠난 덕분에 거룩함을 취할 수 있었던 이들을 우리는 성자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이란 마땅히 세속적 가치를 거부하고 거룩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렇다면 ‘세속성자’ 운운하는 것은 괜히 잘난 체해보려는 말장난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감히 그 모순형용을 잘 붙잡는 데에 기독교 신앙의 본령이 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우리의 통념과 경험에 충실하게 부합하는 이야기들이 사실은 여러 가지 오해와 왜곡에 기반했을 수 있고, 기독교 신앙은 오히려 역설적 긴장 앞에 설 때라야 진정한 면모가 드러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 긴장점을 쉽게 포기하는 순간,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 아닌 것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기독교 신앙이 지당한 말씀의 지루한 목록으로 대치되거나, 선한 얼굴로 성실하게 불법을 자행하도록 부추기거나, 품위있는 단어와 점잖은 문장으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일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 허무한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천착해야 할 기독교 신앙의 역설적 특성을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이 책의 구성상 각 질문에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주석을 따로 붙이지도 않았고, 학술적 인용을 세밀히 하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던지는 속 깊은 고민을 최대한 헤아려 그 갈증을 조금이나마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제1부는 ‘세속성자’란 명칭과 그 의미를 여러 갈래로 곱씹어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룩’과 ‘세속’의 맥락이 완전히 전도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이원론적으로 대응해서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거룩과 세속이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현대 사회에서 세속성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찬찬히 살피자는 제안을 던집니다. 제2부는 세속성자의 신앙생활을 다루었습니다. 세속성자로 살 때 믿음, 기도, 예배, 전도가 어떻게 달리 다가올 것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우리는 그간 이런 신앙 행위를 그 내용과 방향은 이미 다 정해져 있고, 우리는 다만 열정과 성실함을 발휘하면 되는 문제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고 들어가보면 신앙의 핵심적 실천들은 애초에 불가능한 범주들입니다. 신앙생활은 가능한 것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고,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는 문제입니다. 몇가지 신앙행위를 자주, 많이, 크게, 세게 하는 문제로 기독교 신앙을 환원시키고, 교회에서 이런 시스템을 성찰 없이 기계적으로 돌려서는 곤란합니다.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신앙이 무엇인지 사유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제3부는 세속성자 논의를 통과하면서 하나님 나라, 교회, 영성, 공공선 등이 어떻게 재정렬되는지를 살펴봅니다. 신학계에서는 제각각 별개로 다루고, 교회 내에서는 잘 언급하지 않는 주제들을 전면에 꺼내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저세상’the other world이 아니라 이 시대의 ‘새 하늘 새 땅’으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묻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광대한 스케일의 기독교적 논의가 단지 ‘교회를 키우자’는 단선적 결론으로 앙상하게 쪼그라드는 것을 볼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낍니다. 기독교 신앙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충분히 음미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신앙과 삶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나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분들은 만 5년을 넘기고 있는 ‘세속성자 수요모임’의 구성원들입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하는 이들도 있고, 한 가족 전체가 꾸준히 오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청년에서 중장년까지 고르게 오시고, 팟캐스트로 꾸준히 설교를 들어온 분들도 국내외에 적지 않습니다. 이분들의 얼굴을 늘 떠올리며 ‘세속성자’란 개념을 다듬어왔습니다. 이 책은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 덕분입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이 책을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보냅니다. ‘세속성자’ 가득한 세상을 꿈꾸어봅니다. 


2018년 9월 

신촌 청어람에서 양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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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성자> 저자 소개

2018.09.10 09:31 | Posted by 북인더갭


양희송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브리스톨의 트리니티 칼리지(BA)와 런던 신학교(MA)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월간 『복음과상황』 편집장 및 편집위원장을 지냈고, 한동대학교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다. 다양한 기독교 및 일반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랍 벨(Rob Bell)에서 존 스토트(John Stott)까지, 톰 라이트(Tom Wright)에서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까지 ‘복음주의 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개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한국교회와 사회의 다음 세대를 위한 인재발전소 ‘청어람아카데미’의 대표기획자로 있으면서 인문학, 정치사회,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 500여 회가 넘는 대중강좌를 기획 운영해오고 있다. 2011년에는 CBS TV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공동으로 기획했다. 2013년부터 ‘가나안 성도’를 위한 수요예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진행해왔고 이 모임에서 함께 고민한 교회와 신앙, 삶의 문제들을 『세속성자』에 담았다. 저서로 『다시, 프로테스탄트』,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이매진 주빌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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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교회들의 세습, 성추문, 비리 등으로 한국 기독교의 위상이 갈수록 추락하는 지금,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새로운 담론으로 모색한 책 세속성자』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는 성과 속의 이원론을 넘어 과감하게 성벽 밖의 신앙을 모색하는 성도들을 세속성자로 정의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새롭게 상상하는 귀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세속성자는 저자가 지난 2014년 출간해 한국 기독교계에 거센 파문을 일으킨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에 대한 실천적 대안 모색의 성격을 띤다. 가나안 성도가 교회론의 입장에서 교회란 무엇이며 왜 성도들이 교회 밖으로 나가는지를 물었다면, 이 책은 저자가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기획해 성도들과 함께하며 우리 시대 세속성자들이 찾아 나서게 될 지향을 모색한 실천적 탐구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세속성자란 무엇인가?

이 책은 한국 기독교의 상황에 대한 흥미로운 비유로 시작된다.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서처럼 한국 기독교는 교회 밖 거인들의 공격에 더 안쪽의 성벽으로 퇴각을 거듭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른바 더 헌신된 훈련과정, 더 굳센 신앙이라는 안쪽의 성벽으로 도망가는 대신, 과감하게 성 바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는다. 성벽 안은 신앙이요 성벽 밖은 불신이라는 이원론을 깨고 오히려 성벽 내의 맹신을 드러내고 성벽 밖의 신앙을 그려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신앙을 꿈꾸고 직접 실천하는 자들을 일컬어 세속성자라고 부른다.

저자는 세속성자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얼핏 모순형용처럼 들리는 이 말 속에 저자의 새로운 주장이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성자세속의 의미를 좀더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왜 성자인가? 흔히 성자라 하면 세속을 등진 순례자나 순교자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원래 성자(Saint)란 성도(Sanits)와 같은 말이되 그것이 복수의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여기에는 한국 교회에 만연한 집단주의를 벗어나 개인적 신앙양심의 회복을 강조하는 한 차원이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지적은, 그 집단주의 속에 도사린 한국 교회의 여러 실패 사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교회는 개인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매우 회의적이다. 오히려 교회는 내부의 갈등, 신앙에 방해가 되는 가르침으로 만연해 있으며 특히 대형교회들의 세습, 재정비리, 성추문, 정치권력에의 야합 등으로 세상의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런 위기를 이단, 종북, 이슬람, 동성애에 대한 혐오주의로 돌파하려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와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등장한 자발적 시민으로서의 성도들이 이런 제도권 교회의 문제에 맞서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주목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더이상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에만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신앙적 양심에 호소하는 세속성자가 등장한다. 우리 시대의 세속성자란 교회의 집단적 실패에 맞서 스스로 정당한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개인들이다(1).

그렇다면 세속 안에서 성스럽다는 것은 이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룩함에 대한 교회의 가장 흔한 대답은 아마도 불결한 것을 쫓아내야 한다는 정결함의 추구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가 추구한 거룩이란 안식일에 부정한 병자들을 고치고 밀밭을 터는가 하면 간음한 여인과 세리와 창녀들을 감싸는 것이었음을 항변한다. 세속성자의 거룩은 상식적 거룩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성문 밖에서 고난받기를 자처한 바보 같은 삶에 가깝다.(2).

저자는 이처럼 어디가 세속이고 어디가 거룩인지가 구별되지 않는 장면들에 주목한다. 가령 다윗의 증조할머니는 이방여인 룻이었고, 라합은 성판매 여성이었으며 욥 또한 이방인에 가까웠다. 이는 성과 속을 깨끗한 곳과 더러운 곳으로 구별하고 지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나아가자는 교회의 담론이 틀렸음을 말해준다. 오히려 성경은 이 공간을 시간의 흔적이 쌓인 공간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 교회에서 사는 삶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오는 시대의 가치를 따라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세속성자의 참된 삶이 되는 것이다.(3) 결국 거룩이란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늘 변하고 부패하고 결함에 노출된 상태를 인정하되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성육신과 부활을 제대로 담아내는 삶이자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사는 세속성자의 라이프스타일이다.(4)


세속성자의 믿음, 기도, 예배, 전도

이 책의 2부는 신자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본질적인 문제들, 즉 믿음과 기도, 예배와 전도를 세속성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해볼 수 있는지를 다룬다. 주목해볼 것은, 저자가 이 문제들을 한결같이 불가능의 영역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우선 믿음을 보자. 흔히 이야기되듯이 믿음은 자기확신의 문제가 아니며, 크다 작다로 구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믿음은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성경은 신앙의 주체가 자신의 한계를 처절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아브라함은 친족살해 미수범이며 야곱은 가정파탄의 피해자로서 착취에 시달리다가 결혼사기까지 당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어떤 교리를 수용하느냐 마느냐 하는 확신의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성 속에서 어떻게 싸워나갈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던 것이다.(5) 기도 또한 불가능성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다시 기도하는 모순에 처해 있다. 이렇듯 기도할 수 없는데 기도하고 있는 역설적 상황에서 우리를 건져주는 것은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기원하는 것이며 우리의 의지와 완전히 독립된 하나님의 의지 속에 거하는 것이다. 또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구체적인 일상의 행위이다. 기도하면서 성실히 악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세속성자의 기도는 탄식을 전달하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의 탄식에 동조하는 기도여야 하며 응답받는 기도가 아니라 응답하는 기도로 나아가야 한다.(6)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고투와 별개의 것이므로 예배 또한 원천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나 죽은 제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부끄럽지 않게 살자는 다짐이 동반되는 성찬이며 저 너머의 삶을 가리키는 이곳에서의 삶을 결단하는 것이다.(7) 우리 시대 교회의 전도는 마케팅이 되었고 선교는 전투처럼 되었다. 강제와 회유가 판치는 전도/선교의 현실에서 예수처럼 그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낮은 음성이 필요하다. 성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되 꼭 필요하면 말을 하라고 권했다. 그처럼 지금은 현존의 전도, 말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됨으로써 하는 전도가 필요한 때다.(8)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일상

3부의 핵심은 세속성자로서 어떻게 창조적 긴장을 유지하느냐 하는 실천적 과제다. 저자는 죽어서 갈 저세상이나 천당의 개념으로 쪼그라든 하나님 나라를 지금-이곳에서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나라는 종말을 맞아 한번에 휴거를 받는 게 아니라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 죄 짓고 빚진 자를 용서하며, 시험에 들기보다는 악에서 건짐을 받는 삶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를 우리의 일상에서 살아내며 하나님의 통치(바실레이아)를 이뤄내는 것이다.(9)

저자는 교회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기성찰과 자기갱신을 통해 종말론적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 순례자이자, 세상 속의 거류민으로서의 두 자의식을 창조적 긴장으로 견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교회는 세상 저 안쪽에 거룩하게 존재한다는 나이브한 사고를 세속성자는 거부한다. 교회는 멋들어진 건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는 곳에 존재한다. 성령의 운행이 이뤄지는 현장에 교회(에클레시아)는 존재하기에 저자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가 교회의 출발점이라고 고백한다.(10) 그렇다면 성령 안에 사는 삶은 도대체 어떤 삶인가? 우리 삶의 전반을 차지하는 노동과 쉼을 영성에서 제외하고 홀로 거룩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인가? 무조건 성실히만 일하면 만사해결인가? 저자는 희년을 꿈꾸는 안식과 해방의 길을 모든 그리스도인의 과제로 제시한다. 일하고 소비하고 욕망하는 자본주의 가치 속에서 아무런 비판적 검토도 없이 맹목적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국 형제자매는 물론 스스로를 노예적 노동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경고한다.(11)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교회의 존재 의미를 아프게 돌아본다. 세속성자 논의에서 사회 내의 하위범주로 기능하는 기구로 축소된 작금의 교회론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이제 고체교회를 넘어서 액체-기체 교회의 다양한 존재방식을 시도하자고 저자는 제안한다.(12)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고 관습과 전통을 뒤집어엎는 예수의 삶을 통해 인생의 최대치를 살아낼 것을 권면하며 저자는 당부한다. 때를 놓치지 마라.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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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스트인가? 그렇다고 생각해왔다. 당당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런데 저자인 제사 크리스핀이 왜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신랄하게 조목조목 짚어낼 때마다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지금보다 조금 더 잘 살고 싶고,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여야 합니다라는 문구의 가방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며, 억울하게 당했던 경험들을 가슴에 품고 칼을 가는 내 모습이 크리스핀이 비판하는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들과 겹쳐 보여서다. () 역자 또한 독자로서,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는 한 여성으로서, 크리스핀의 문제제기와 선언에 깊이 공감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수긍이 갔던 것은, 페미니즘이 여성들에게 대안적 삶의 가치를 제시하거나 대안적 삶이 가능하게끔 돕는 인프라는커녕 그런 대안적 삶을 꿈꾸는 상상력조차 만들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부분이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 유지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영어과에서 번역을 전공했다. KBS 라디오 PD로 근무하다 지금은 미국 LA에 거주하면서 번역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 국제행사 프로그램 및 기사 등을 번역했고 한국에 출간된 번역도서의 감수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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