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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없는 남자 4/책 소개

<특성 없는 남자> 1-4권 완간!

by 북인더갭 2024. 1. 26.

특성 없는 남자1-4, 무질 생전 출간본 완간!!!

20세기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 _차이트

세계 문명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책 100_노르웨이 북클럽

 

토마스 만과 카프카의 작품을 뛰어넘어 20세기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이자 세계 문명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책 100권에 선정된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4권이 출간되었다. 특성 없는 남자원서 1권을 번역한 1~3권에 이어, 원서 2권을 번역한 4권 출간으로 무질이 생전에 펴낸 전체 분량이 북인더갭에서 완간되었다. 특성 없는 남자는 미완성 소설로선 드물게 위대한 사유의 성좌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4권에서는 규율과 제도를 넘어 다른 도덕의 실험에 나서는 울리히, 아가테 남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유의 성좌, 미완성의 미학

이번에 발간된 4권은 소설의 3 천년왕국으로(범죄자들)를 옮긴 것으로 무질이 1932년에 펴낸 원서의 2권에 해당한다. 나치 정권을 피해 망명생활을 하면서 무질은 집필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1942년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사망함에 따라 특성 없는 남자는 영원한 미완성 대작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1500페이지에 이르는 대작 소설이 미완성으로 남은 데는 여러 사정이 있었다. 무엇보다 원서 2권이 출간된 이후 독일 나치에 의해 책이 금서 조치를 당하면서 저자가 망명길에 올랐고, 경제적 궁핍과 건강 문제로 더이상 소설 집필이 어려워진 탓이 컸다. 또한 무질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글을 수정하는 데 집착했는데, 이런 강박증 또한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특성 없는 남자가 미완성 소설로 머물렀다는 사실이 큰 결핍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밀란 쿤데라가 언급한 대로 이 작품은 소설인 동시에 위대한 사유이며 작품을 끌어가는 힘이 스토리의 전개에 있지 않고 사유와 형상화의 깊이에 있기 때문이다. 무질은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개성에 걸맞은 담론을 주도하도록 소설을 써나갔다. 그러다보니 이 소설은 각각의 인물들이 펼치는 사유의 성좌처럼 읽힌다. 무질이 가다듬은 빛나는 사유의 순간들 덕분에 소설은 영원한 지속성을 부여받는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의 매력은 오히려 끊임없이 완성을 지연시킨 사유의 깊이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성 없는 남자 3부는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 울리히가 평행운동의 소용돌이를 빠져나와 고향에 돌아가서 그간 잊고 있었던 여동생 아가테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오빠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몇가지 범죄적 사건을 저지르는데, 그중 독자들을 가장 충격에 빠트리는 행동은 아마도 아버지의 관에 가터벨트를 집어넣은 사건일 것이다. 이 사건은 그녀가 아버지의 권위로 상징되는 규율에 절대 짓눌리지 않는 새로운 도덕적 모험을 감행한다는 점, 또한 항상 머뭇거리는 오빠 울리히에 비해 직관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아가테를 등장시킴으로써 저자는 울리히 중심으로 이끌어가던 소설에 강력한 상대를 마주세운 것이다.

 

특성 없는 남자 3부의 핵심에는 두 남매가 나누는 도덕에 관한 대화가 자리한다. 아가테의 범죄 행위는 가터벨트 사건에서 멈추지 않고 아버지의 유언장 위조로 이어진다. 남매에게 범죄는 단순히 사회적 규율을 해치는 행위가 아니라 도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묻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 소설에서 범죄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 밖에서 자아를 재구성하는 남매의 실험적 공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도덕을 실험하는 소설

이 공간에서의 도덕은 우리가 흔하게 떠올리는 반듯한 질서의 세계와 전혀 다르다. 소설 속에서 실험된 도덕은 어떤 불가항력의 위대함에 짓눌린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유동하는 의지의 산물에 가깝다. 남매는 도덕을 제도나 법이 아니라, 인간이 추구하는 다른 상태로 본다. 울리히에게 다른 상태란 우리가 묶여 있던 규율에서 벗어난 꿈같은 상태를 의미하며 아가테에게는 선이나 악 같은 건 없고 오직 믿음만이, 또는 의심만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도덕의 모습은 이런 상태에서 한참 멀어져 있다. 울리히에게 현대의 도덕은 성취일 뿐이며 권력과 문명과 영광을 가져다준다면 빼앗고 속이고 죽여도 좋다는 규칙을 지지하는 국가에 의해 뒷받침되는 도구일 뿐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실행력은 마치 나폴레옹이라도 된 것 같은 자세로 겨우 아홉 개의 나무 핀을 넘어뜨리는 볼링 선수의 행동에 불과하다고 풍자한다. 아가테 역시 부르주아의 삶에 내재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속임수로 규정하며 그런 삶은 아이들의 무리를 상냥하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자신의 아이가 없다는 걸 깨닫고 불안에 빠져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판한다.

 

3부의 주요한 한쪽이 남매를 통해 실험되는 다른 도덕의 가능성에 있다면, 다른 한쪽은 1, 2부에서 이어져온 평행운동의 종말과 전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평행운동을 통해 영혼과 사업의 합일을 꿈꾸었던 아른하임이 갈리치아의 유전개발 사업의 배후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평화적 애국사업의 위상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른하임에게 배반당한 디오티마는 평행운동에 관심을 끊은 채 성과학을 통해 부부관계를 회복하는 일에만 매진한다. 군부의 지식인 슈툼 장군은 유전 사업과 군부의 이익을 조율하기 위해 막후에서 활동하며 외교관 투치는 이 모든 사태 뒤에 놓인 허울 좋은 평화주의의 모습을 비관적으로 관망한다. 겉으로는 모든 민족을 포용하는 듯 보이는 라인스도르프 백작의 내면 역시 적대적 민족주의와 다를 바 없는 전체주의로 기울어져 있다. 시인 포이에르마울이 외치는 평화주의조차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불길한 징조로 다가올 뿐이다.

 

지난 2013년 첫 권을 선보인 지 10여년 만에 무질의 생전 출간본을 완역한 데 대해 역자는 그간 지켜봐주시고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린다면서 뒤늦게나마 완간의 약속을 지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 기존 판본을 수정·보완하는 한편 무질의 사후 발간된 미완성 부분도 번역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무선본과 함께 발간된 양장본과 북인더갭 홈페이지에는 김조을해 작가의 편집자의 말과 상세한 로베르트 무질 연보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