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박힌 레시피를 던져버린 재야 셰프,
전호용의 맛있는 인생잡설
레시피를 던져버린 ‘재야 셰프’ 전호용의 신간 에세이 『네 맛대로 살아라』가 출간되었다. 이른바 떠들썩한 먹방과 셰프의 시대에 맛이란 화려한 레시피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나누는 관계에 좌우되는 것임을 그려낸 이 책에서 저자는 밥 주변을 서성이는 ‘B급 인생’들을 통해 우리가 점점 잃어가는 맛의 참된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내고 있다. 저자 전호용은 학창시절 가출하여 ‘숙식제공’이 가능한 레스토랑에서 처음 요리를 배운 후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조리사 자격증을 땄으며 술집 주방, 일식집, 분식집 등에서 세상의 온갖 요리를 섭렵한 독특한 이력의 셰프다. 서른일곱의 나이에 온갖 식재료에 담긴 비밀을 밝힌 『알고나 먹자』(2015)를 펴내 음식계를 깜짝 놀라게 했으며, 지난 2014년에는 1년 동안 야생에서 자기 손으로 거둬들인 음식만 먹고사는 과감한 실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맛이 중허냐, 먹는 사람이 중허냐?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 맛집이요, TV만 켜면 나오는 게 먹방에다 유명 셰프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이 풍요로운 맛의 시대에 우리는 뭔가 아쉬움을 느낀다. 어느 실직한 가장이 아내를 기다리며 끓여낸 소박한 김치찌개는 과연 그런 먹방의 어느 한자리에 끼어들 수 있을까? 혹시 지금 들끓는 요리 열풍에는 정작 중요한 맛의 맥락이 끊어진 것은 아닐까? 전호용의 신간 『네 맛대로 살아라』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맛이란 것 역시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런 맥락을 되찾지 못하면 요리란 그저 맛있고 보기 좋은 음식에 머물고 말 것이라는 진단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음식의 맛이 특별한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맥락’ 덕분이다. 아욱국 같은 음식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한끼 식사용이라는 생각은 가당치 않다. ‘그녀’에게 한끼 밥을 먹이기 위해 한줄기 한줄기 부드럽게 다듬고 쌀뜨물을 받아 아욱의 숨이 죽기를 기다리며 끓이는 그 시간은 감히 5분이라고 딱 자를 수 없는 의미를 갖는다(「네 맛대로 먹어라」). 떠들썩한 ‘와일드푸드 축제’에서 인파에 치여 구워먹는 옥수수나 감자보다는 동네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맛보는 컵라면 같은 것이 진정한 ‘와일드푸드’에 가까운 것도 맛에는 맥락이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밝은 미래」).
저자의 말을 곱씹어보면 밥은 남과 함께 먹는다는 의미에서 ‘사회적인 것’이다. 이 책에는 음식 주변으로 모여들어 서성거리는 여러 존재들이 등장한다. 식당 전단지를 돌려 먹고사는 용숙이, 오십줄에 접어든 육식 마니아 배달원 에그 조, 채식주의자 주방보조 아저씨, 몸을 녹여 농사를 짓는 홀로된 어미, 그리고 인디 음악을 즐겨 듣는 명견 마당쇠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버려지는 낙과(落果)처럼 못난 존재들이지만, 엄연히 ‘밥’을 둘러싸고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과 마주앉아 밥을 나누는 것은 바로 ‘내가 너의 호구가 되어주는’ 것이다(「용숙이」). 밥을 나눠 먹으며 타인을 챙기고, 보잘 것 없는 어느 한 생명이라도 보듬는 행위는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고 감히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저자에게 맛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맛 주변을 에워싼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선가 맛은 물신화되어 그 인간적인 맥락을 잃어버렸다. 단칸방에 석유풍로와 연탄불로 밥을 지어먹던 시절, 매캐한 석유냄새와 함께 식탁에 오르던 마법같이 황홀한 음식들이 있었다. 석유풍로에서 국이 끓고 달걀물 바른 소시지가 부쳐지는 사이 연탄불에선 들기름 바른 김이 구워지고 가까운 바다에서 잡아올린 숭어가 올라오며 밥솥 안에는 달걀찜이며 호박잎 등이 쪄진다. 그런데 아파트가 들어서고 방이 넓어지고 식구들이 뿔뿔이 일터로 흩어지면서 그 풍요롭던 식탁에는 각종 패스트푸드와 배달음식이 채워졌고, 식구들이 함께 나누던 밥의 온기마저 식어버렸다(「빈부빈부」). 결국 공동체의 상실이 맛의 상실을 낳았으며 우리는 이 풍요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매우 초라한 밥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레시피를 던져버리고 맛을 상상하라!
그러므로 세상에 떠들썩하게 넘쳐나는 레시피란 것에 대해 저자는 깊은 유감을 표한다. 혹자는 무슨 시크릿 레시피가 있어서 그것을 따라하면 ‘정답’ 요리가 나올 것처럼 말하지만,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네 맛대로 먹어라」). 레시피는 그저 방향을 제시할 뿐,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파가 없으면 양파로, 꿀이 없다면 설탕으로, 각 재료의 특성을 이용해 당신만의 음식을 만들면 그만이다. 오히려 한 가지 맛을 내려 고집하기보다는 단맛을 신맛과 연결해주는 ‘쓴맛’을 찾아내는 것, 다시 말해 설탕과 식초 사이에 ‘겨자’를 첨가하는 그런 실험이야말로 맛의 풍부한 변주를 즐기는 일이다(「맛의 스펙트럼」). 달을 쳐다보며 빵을 떠올리는 것처럼, 요리는 상상에서 비롯되고 완성된다. 그 점에서 맛이란 멋과 닮았다. 누구의 눈치를 봐서는 멋이 탄생할 수 없는 것처럼, 자기만의 이야기가 스며들지 않고는 맛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네 맛대로 살아라’는 저자의 조언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그처럼 숭배되는 레시피 대신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무수한 시간과 정성과 기다림이다. 예부터 콩나물시루를 요강 옆에 둔 것은 온가족이 요기를 해소할 때마다 물 한바가지를 끼얹어야 제대로 자라기 때문이었다(「여럿의 무심함을 먹고 자라는 콩나물」). 어디 그뿐인가. 미나리 한줌을 얻기 위해서는 춥디추운 날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속에 들어가서 거둬들이는 수고가 요구된다(「미나리 연연」). 토란대는 말린 것을 삶아 사나흘 물에 담가둬야 하며 고사리는 말리고 물에 불려 삶아 맑은 물로 씻어내야 하며 무청은 한겨울 바람 맞혀 말린 후 물에 불리고 삶은 것이라야 제맛이 난다(「그리고 기다릴 것이다」). 어쩌면 한국 음식은 세계 최고의 슬로푸드이며 우리 민족은 기다림의 민족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렇게 정성들여 키우고 기다린 대가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민망하다. 미나리 한박스에 7천원, 콩나물 한줌 값이 천원이 되지 못하는 시대는 처절하게 빛나는 노동의 가치가 무참하게 훼손되는 이 시대의 논리를 닮았다.
파는 밥에 담긴 진심 함량 25%
이 책에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저자 본인의 체험도 여기저기 녹아들어 있다. 지난 2014년 저자는 야생에서 오직 자기 손으로 거둔 것으로 1년간 연명한 적이 있다. 어느 셰프도 감행해보지 못한 이 전대미문의 시도에서 저자는 자연이 전하는 말에 귀기울이는 소중한 지혜를 터득했다고 한다. 처음엔 밥을 구하지 못해 20kg 이상 살이 빠지기도 했지만, 중반 이후엔 계절과 날씨, 밤과 낮의 변화에 적응하는 자신의 몸을 발견했다(「안수정등—달다」). 육체는 겉으론 쇠락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우면 서늘해지고 추우면 혈액 속에 지방을 축척해가며 다시 먹을 것을 찾아나서는 놀라운 에너지 재생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이 1년간의 실험을 끝낸 후 저자는 식당을 차려 자영업의 세계로 나아간다. 지금도 전주에서 심야식당을 운영하는 저자의 고백에서 우리는 밥을 팔아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으로서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돈을 받고 내주는 밥은 치사하며, 아무리 맛있고 저렴한 음식이라도 ‘파는 밥에 담긴 진심 함량’은 25%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그 나머지 75%는 계산과 구라인데 의아한 것은 그렇게 구라를 쳐서 팔아봐야 남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각종 세금과 임대료, 재료비까지… 도대체 이 사회의 부는 어디로 가는가? 저자는 되묻지 않을 수 없거니와 이는 아마 밥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의 동병상련일 것이다(「파는 밥에 담긴 진심 함량」).
또 하나 저자의 내밀한 고백은 각자의 밥을 버느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끊임없이 함께 미래를 꿈꾸고 속삭이는 ‘그녀’와의 이야기다. 계속 빚만 늘어가는 식당이지만 이들에겐 적은 돈을 모아 시골에 정착하여 땅에서 나는 것으로 먹고살겠다는 꿈이 있다. 그들의 예쁜 꿈을 맘속으로 응원하며 이들의 ‘연애 요리법’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 역시 이 책의 별미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