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8. 9. 14.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교회’를 세우자
어떤 거대한 권력 집단이 점점 몰락의 길을 걷더라도, 내부에선 항상 개혁의 움직임이 있기 마련이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채울 수 없는 지적 깨달음과 대안적인 삶에 대한 요구에 응답하고 있는 청어람아카데미가 그런 곳이다.
아카데미를 만들고 이끌어온 양희송 대표기획자는 지난 2013년부터 일요일에 교회에 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들을 위해서 5년간 상하반기로 나눠서 12주씩 수요일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가나안 성도’란 교회에 다니다가 실망하거나 또는 냉담해져서 더는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마음 속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전체 개신교인 중 10~20%인 100~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세속성자>는 이 모임에서 양 대표가 성-속 이분법, 예배와 전도, 공공선과 같은 뜨거운 주제를 끌어안고 분투한 고민을 담은 결과물이다. 최근의 대안적인 기독교 담론을 충실하게 소화하면서도 현실적인 균형감각을 놓치지 않는 내공이 단단하다.
책에선 특히 고체-액체-기체교회 개념을 제안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는 ‘고체교회’는 기존의 교회당을 기반으로 한 교회를, ‘액체교회’는 해변교회나 길 위의 교회처럼 성도들의 모임이라면 굳이 교회당이 없어도 된다고 보는 관점을 말한다. 그럼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기체교회’는 뭘까. 그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보면서 이 개념을 떠올렸다고 한다. 핀란드, 덴마크 같은 나라들에선 교회나 교인을 찾기는 어렵지만 국가 자체가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해 있어 자유롭고 평등하면서도 삶의 질이 높다. 이런 기체교회와 같은 존재방식을 고체·액체교회와 공존하며 현실화하는 것이 기독교의 앞으로의 과제가 아니겠냐고 말한다. 필 주커먼이 <신 없는 삶>에서 했던 관찰과 통하는 바가 있다.
이 책이 나온 와중에 대형 보수 교단 중 한 곳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이 지난 11일 총회에서 양희송 대표가 이끄는 청어람을 비롯해 교회개혁실천연대, 좋은교사운동 등 그나마 합리적이고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기독교 단체들을 조사하겠다고 결정했다. 교인들이 이 단체들의 활동에 참여해도 되는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이렇게 샅샅이 찾아서 틀어막는 것이 사실 자기 숨구멍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이 올까?
김지훈 기자
<문화일보> 2018. 9. 14.
더 종교적인, 종교 밖 사람들의 삶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절이다. 세계적으로 이 같은 시대의 공통된 종교 현상은 ‘탈(脫)종교화’다. 이미 종교 인구가 미미해진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상 ‘개신교 국가’로 불리며 여전히 그 영향력이 큰 미국의 경우에도 지난 25년간 종교가 없다고 하는 사람이 두 배나 늘어났다. 한국도 지난 2015년 통계에서 ‘무종교인’이 전체 인구의 절반(56.1%)을 처음 넘어섰다. 이들 무종교인은 젊고 교육수준이 높은 연령대에서 두드러져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제도 종교의 밖’에서 새로운 형태의 신앙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구적으로 종교는 가장 끔찍한 살육을 벌이는 분쟁의 원인이다.
근래 국내 대형교회의 목회 세습과 일부 목회자의 잇따른 성폭력 사건, 불교 최대 종단 지도급 스님의 추문 등으로 ‘이게 종교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종교의 행태를 비판하고 분석하는 책들이 적지 않게 출간되고 있다. 그중 사회학자인 필 주커먼 미국 클레어몬트 피처 칼리지 교수가 쓴 ‘종교 없는 삶’은 무종교 신념과 가치들을 살펴보는 저작이고, 신학자이면서 개신교 개혁운동가인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가 쓴 ‘세속성자’는 이른바 제도권 교회의 틀을 벗어나 새롭게 찾아나서게 되는 신앙적 지향에 대해 사색한 책으로 눈길을 끈다.
필 주커먼은 미국 내 다양한 인종과 직업, 연령대의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하고 많은 통계수치를 분석해 이 책을 펴냈다. 종교를 가진 많은 미국인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하거나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거나 무언가 결여된 삶’을 살며, 무절제하고 오만하며 이기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이 있다. 이런 배타성과 편견은 무종교인을 더 늘어나게 한다. 저자는 무종교인들에 대한 혐오와 불신에서 깨어나게 돕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수많은 인터뷰와 자료를 통해 저자는 무종교인이 문제를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집단적 사고나 군중심리에 휘둘리지 않으며, 현세의 일들과 사람들에게 애착심을 갖는 태도를 지닌다고 말한다. 또 과학적 탐구를 좋아하고, 인간적 공감능력이 높으며, 성숙한 도덕성을 키우고 삶의 유한성을 고요히 받아들일 줄 아는 등 공통의 특색과 가치를 지녔다고 분석한다. 지구촌에 종교가 없는 사람들 대개는 종교를 파괴하지 않는다. 무종교인은 정치의 영역에서든 사적인 삶에서든 종교를 해결책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타 종교에 적대적인 국가나 사람은 오히려 종교국가나 종교인들인 경우가 흔하다. 저자는 무종교인을 변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무종교인들은 자신의 삶을 외부가 아닌 내면에 두고 끊임없이 성찰한다. 이들은 이분법적 사고보다 통합적 이성, 타인이나 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함으로써 배타적인 종교인들보다 더 종교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다.
‘세속성자’의 저자는 이미 2014년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을 펴낸 바 있다. 앞선 책이 ‘교회 밖’으로 나가는 ‘가나안’ 신자의 증가 원인에 대해 주로 다뤘다면, 이번 책에서는 이들의 실천적 신앙에 대해 말한다. 성스러움과 세속성, 믿음, 기도, 전도, 영성과 종교의 공공성 등 오랫동안 개신교 신자들이 가슴에 품은 의문을 다루고 있어 찬찬히 음미해볼 만한 책이다.
‘성자’는 거룩한 사람을 뜻하고, ‘세속’은 그 정반대에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세속성자’는 형용모순이 되는 표현이다. 저자는 더 이상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에만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신앙적 양심에 호소하는 새로운 신앙인들을 ‘세속성자’라고 부른다. 교회는 세상 저 안쪽에 거룩하게 존재한다는 사고를 세속성자는 거부한다. 우리 시대의 세속성자란 교회의 집단적 실패에 맞서 스스로 정당한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개인들이다.
저자는 우리 삶의 전반을 차지하는 노동과 쉼을 영성에서 제외하고 홀로 거룩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인가라고 묻는다. 신앙을 삶과 유리해 일하고 소비하고 욕망하는 자본주의 가치 속에서 ‘아무런 비판적 검토’도 없이 맹목적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국 형제자매는 물론 스스로를 노예적 노동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근래 대형교회보다 작은교회를 지향하거나, 혹은 카페 등지에서 정해진 목회자 없이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책도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세속성자 수요모임’의 5년간 경험을 토대로 쓰였다. 각 권 420쪽 1만 8000원, 252쪽 1만 4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국민일보> 2018. 9. 21.
‘세속성자’(북인더갭)라는 제목부터 시선을 끈다. 어떤 사람을 세속성자라 부를까. 책 표지 하단의 ‘성문 밖으로 나아간 그리스도인들’ ‘A Secular Saint’라는 단어로 어림잡으며 책장을 펼친다. 어찌 보면 새로운, 그러나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독창적인 이름을 부여한 사람은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다.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지난 17일 만난 양 대표는 “어떤 톤으로 책을 쓸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내가 하는 이야기가 독자들의 질문이나 고민과, 가능하면 장애물 없이 잘 연결되도록 친절하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신교에서 ‘성자’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택했다. ‘성도’라는 말에 묻혀버린 ‘신앙의 개인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세속’이란 말에는 가나안 성도의 존재를 고려함과 동시에 신자들이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음에 좀 더 무게를 싣자는 의중이 담겨있다. 양 대표는 “로버트 웨버가 쓴 ‘A Secular Saint’란 책은 존재하지만 해외에서도 이런 개념을 담아 세속성자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없다”며 “작명의 독창성이 있는 만큼 가나안 성도처럼 세속성자란 말이 널리 쓰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2013년부터 가나안 성도들과 수요예배를 드리며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진행해 왔다. 절반은 가나안 성도, 절반은 교회 안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5년간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교를 나누며 형식적인 실험을 거쳐 새로운 예배형식을 갖춰나갔다. 설교 뒤 토론하며 삶과 신앙, 교회 문제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그는 “가나안 성도에겐 자기 정체성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에 우리가 이런 고민을 안고 어디까지 가볼 수 있을까 탐색해본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2016년 가을에 집중 논의한 것을 토대로 세속성자라는 개념 정의부터 시작해 믿음, 기도, 예배, 전도, 하나님나라, 교회론, 일과 신앙, 공공선이라는 주제까지 폭넓게 다룬다. 양 대표는 “가나안 성도에 대한 기존 논의가 교회를 이탈하는 종교사회학적 현상에 관한 것이었다면 여기서 진전해 교회론 구원론 예배론 등 이들이 고민하는 신학적·목회적 내용을 다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읽다보면 교회 안팎 구분 없이 적용 가능해 보이는 내용이 많다. 양 대표는 “모든 교회가 실험장이 될 순 없으니 누군가는 위험 부담을 지고서라도 실험을 해서 결과를 피드백해 줘야 기존 제도에 적용 가능한지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교회 안 성도들은 물론 기성 교회의 질서나 관행에 익숙한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어색하고 몸에 안 맞을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언러닝’(탈학습)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언러닝이란 이전에 배워서 익숙한 것 때문에 새로운 규칙이나 지식을 습득하기 어려울 때, 과거에 배운 것을 지워내는 것”이라고 했다.
기도 예배 교회 등 다양한 논의 중에서 기도에 대한 논의가 가장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도에 대해서는 저마다 분명한 자기 생각, 자기 기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책에서 “기도는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며 불가피하다”는 의미에서 ‘3不’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양 대표는 “기도의 주도권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있기에 우리의 기도가 노력과 상관없이 무용할 수도, 어긋날 수도 있다”며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당신의 열심의 수준, 곧 기도의 강도와 빈도가 결과를 보장한다는 주장이 넘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 결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과연 우리의 기도는 일반 종교의 수준을 뛰어넘는 기독교적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책 말미에 ‘세속성자’만큼이나 독특한 ‘기체교회’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양 대표는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과 무교회주의 영향을 받은 일본을 보며 떠올린 것”이라며 “교회나 교인을 찾아보긴 어렵지만 그 나라의 사회적 토대에 기독교적 가치와 영향력이 스며들어있는 기체교회는 불가능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성도들의 이탈을 정당화하고 가나안 성도 현상을 고착화하려 하느냐는 반발이 나올 법하다. 양 대표는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체제에 반대하며 자기 정체성을 세워나가도록 두기보다 세속성자라는 이름 아래 신학적 언어로 정체성을 세워나가자는 취지”라며 “그러면 이들과 더불어 꿈꿀 수 있는 다른 종류의 교회를 시도하거나 기존 교회와 연결하는 게 오히려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트리니티칼리지와 런던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복음과 상황’ 편집장을 지내고 한동대에서 기독교 세계관 강의를 하는 등 복음주의 진영에서 다양하게 활동해 왔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연합뉴스> 2018. 9. 15.
'가나안 성도'란 교회에 나가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대형교회의 세습, 성추문, 비리 등으로 교회 밖으로 나가는 신도들이 늘고 있다.
이 책은 이들 '세상 속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세속성자'라 칭하며, 그들이 찾아 나선 신앙적 지향에 대해 탐구한다.
청어람아카데미 등을 통해 새로운 교회 생태계를 모색해온 저자는 가나안 성도를 위한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지난 5년간 진행해왔다.
이 모임에서 고민한 교회와 신앙, 삶의 문제들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시대의 기독교 신앙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살펴보고, 세상을 떠나 교회에서 살기보다는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세속성자의 참된 삶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이제는 신앙적 실천의 장이 교회냐, 사회냐 구분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며 "우리의 교회론은 좀 더 유연하고, 포괄적이고, 새로운 상상력에 부합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북인더갭 펴냄. 252쪽. 1만4천원.
<한국일보> 2018. 9. 14.
세속성자
양희송 지음. 대형교회의 세습, 성추문 등 사건 사고가 터져 나오는 때 한국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성벽 안은 신앙이요, 성벽 밖은 불신이라는 이원론을 깨고 오히려 성벽 내의 맹신을 드러내자고 주장한다. 그들을 ‘세속성자’라 부르자는 것. 북인더갭ㆍ252쪽ㆍ1만4,000원
<경향신문> 2018. 9. 15.
세속성자
대형교회들의 세습, 성추문, 비리, 소수자 혐오로 얼룩진 한국 기독교를 돌파할 해법을 모순형용처럼 들리는 ‘세속성자’에서 찾는 책이다.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성도’들에 주목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과감히 성벽 밖으로 나가 새로운 신앙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양희송 지음. 북인더갭. 1만4000원
<조선일보> 2018. 9. 15.
세속성자(양희송 지음)=성과 속의 이원론을 넘어 과감하게 성벽 밖의 신앙을 모색하는 성도들을 '세속성자'로 정의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새롭게 상상한다. 북인더갭, 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