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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언덕/저자의 말

<마시멜로 언덕> 작가의 말_김조을해

by 북인더갭 2018. 11. 19.

두번째 책을 펴낸다. 소설집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야곱의 강(파라PARA 212004년 봄호)을 통해 소설을 사건도 없고 반전도 없이 이 모양 이 꼴로 쓰면서 소설가 지망생의 조급한 마음을 스스로 돌아보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이 작품으로 등단까지 했다. (심사를 맡았던 최윤 선생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못난 소리인 줄 알지만, 야곱의 강으로 등단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설가로서 여한이 없다. 소품임에도 표제작으로 선정된 마시멜로 언덕(미발표)은 무려 이십년 전에 쓴 작품이다. 오늘의 청춘들도 불안과 막막함의 언덕위에서 얼마나들 안타까우신가. 이렇게 보잘것없는 이야기를 소설로 써도 되나,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연금술사에게(문예중앙2005년 가을호)아디오스 탱고(웹진 문장20063월호)는 데뷔 초기에 발표할 기회를 얻었으니 운이 좋았다. 찰나의 아름다움과 강렬한 여운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단편을 읽겠는가.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꿈은 거창했지만 결과물은 부족했다. 이 모습 이대로 독자님들께 떠나보내며 변명을 보태자면, 그래도 그 부족함은 30대 초반이던 나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발표작의 경우, 소설 속 소재를 현재에 맞게 다소 수정했음을 밝힌다. 양해 바란다.)

모두 미발표작인 옛 노래 1옛 노래 3은 육아일기의 짧은 메모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숙성의 과정을 거쳐 소설로 변주된 뜻밖의 결과물이다. 요람에 누워 있는 아이와 일방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신발이 닳도록 뛰어노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작업을 이어갔다. 안 믿어질 수도 있겠지만, 인생과 예술의 비밀을 아이를 통해 많이 배웠다. 또다른 미발표작 누군가는 틀에 박힌 거룩한 신()이 아닌 생활밀착형신을 만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그런데 오십 평생을 모태신앙인으로 살아온 내가 누군가란 인물로 그려낸 절대자의 모습은 이렇게나 밋밋하다. 부끄럽다. 다음엔 더 잘 쓰겠다.

사실, 3년 전 펴낸 첫 장편 『힐』도 악성재고로 창고에 쌓여 있다. 읽는 이 하나 없는데 자꾸 소설을 쓰는 것, 즉 시장에서 소비자로부터 선택되지 못하는 상품을 자꾸 생산해내는 것, 이것이 내가 가장 오랜 시간 공들여 해내는 일이다. 뭣도 모른 채 나는 해답 없이 글을 쓴다. 의문과 혼돈에 휩싸인 채 글을 쓴다. 체제 안의 언어로 체제 밖의 이야기를 가공한다. 나는 이런 내 삶이 재미가 있지만 나의 재미를 타인에게 강요할 순 없다. 그래서 이 순간 이 글을 읽어주는 모든 분들께는 마음을 다해 감사할 뿐이다. 또한 열일곱의 인생을 치열히 살아내는 아들 성건과 남편, 가족들,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한다. 

새 책이 나오니 아빠 생각이 더 난다. 아빠가 계셨다면 정말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텐데. 나는 아빠에게 늘 대들던 딸이었지만 이래봬도 아빠의 판박이였다. 투쟁하듯 아빠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나의 더러운 성질 탓도 있겠지만, 아빠와 딸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가부장제란 구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빠로 인해 터득한 삶의 전투력은 쓸모가 있었다. 안 그랬으면 무명 소설가는 진즉에 소설 나부랭이 같은 건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멋진 아빠의 모습으로, 아빠가 기억하는 둘째 딸의 가장 사랑스럽고도 대견한 모습으로 아빠와 나는 다시 만날 것이다. 그날에도 나는 아빠한테 따져 물을 것이다. 아니 아빠, 그렇게 가버리면 어떻게 해, 내가 아빠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기나 해……. 

이 부족한 소설집을 2년 전 췌장암으로 고단한 삶을 마감한 나의 아빠 김요식(1937~2016)의 영전靈前에 바친다.  


2018년 가을
김조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