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에 구글지도를 띄워놓고 이탈리아 ‘에볼리’를 찾는다. 이국의 낯선 도시 이름이 쉴 새 없이 나오는 원고라니, 황홀하다. 그 낯선 도시를 내가 밟아본 것처럼 생생하고도 아련하게 상상한다. 그리고 그 상상이 구축된 지점에서 생각지도 못한 감동이 물밀 듯 밀려올 때, 즉 단순한 공간적 배경으로의 낯선 도시가 아닌, 삶이 이다지나 반짝거리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시공간을 초월해 깨닫는 순간, 나는 외쳤던 것 같다.
헐, 이 원고 대박!
한마디로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모조리 아름다운 것도 모자라, 저 깊은 사색과 날카로운 통찰력의 향연이라니.
호환, 마마, 전쟁보다 무서운 게 있을까? 있을 것이다. 아마도, 체념이 아닐까. 체념은 위대한 통치자다. 그 부정적인 영향력 앞에서는 누구도 온전할 수 없다. 가난도 빼놓을 수 없다. 가난은 가히 모든 불행의 처음과 나중이요, 원인과 결과다. 가난과 체념, 어떤 게 더 힘이 셀까. 참으로 가혹한 이중주다.
이성과 문명, 자본이나 정치, 혹은 지식이나 이론이 가닿을 수 없는 가난과 체념의 땅에 카를로 레비라는 유배자가 당도한다. 그는 병을 고치는 의사요, 그림을 그리는 화가요, 글을 쓰는 작가요, 파시즘에 반대하는 레지스탕스요, 공감의 감수성으로 사유하고 연민하는 단 한 명의 문명인이다.
‘안되셨군요! 로마에 있는 누군가에게 미움을 샀나보오.’(123쪽)
농부들의 ‘체념적인 형제애’가 물씬 묻어나는 이 한마디에 카를로 레비는 문명과 야만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는다.
마을의 공기 중에 아직도 정령이 떠다니고, 주술을 읊조리는 여자들이 모계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어느 궁벽한 마을, 귀족과 지주들은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났으며, 말라리아가 창궐해도, 다리가 무너져도, 염소 한 마리마다 세금을 매겨도 국가에 찍 소리 못하고 살아가는 체념의 농부들, 이탈리아 남부의 어느 절벽 한켠에 자리한 가난의 마을에는 여행자도 행상인도 찾아오지 않는다.
노파심에 말하는데, 제목에 ‘그리스도’가 나온다고 종교서적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또한 헷갈릴까봐 말하는데, 제목에 나오는 ‘에볼리’의 ‘리’자(字)가 읍면동리 할 때의 그 리(里)가 아니다. 썰렁한가? 내 말의 요지(?!)가 무엇이냐면, 에볼리는 제목에만 나오지 중간에는 한번도 안 나온다는 말이고, 그리스도도 제목에나 나오지 본문에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 근데 왜 제목이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 냐고? 그걸 알고 싶다면 님들아, 제발 이 책을 읽어다오!
이 책을 다 읽은 후엔, 님들도 카를로 레비처럼 그 땅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펴냈지만, 정말 사정없이 아름답다. 나는 그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북인더갭 김실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