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회』 『대한민국은 왜?』의 저자 김동춘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다음 행선지를 모색하다!
대한민국의 과거사와 노동, 계급 문제를 연구해온 사회학자 김동춘이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개혁 방향을 모색한 사회비평집 『대한민국은 어디로?』를 출간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여가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제2의 민주화를 향한 도약이냐 아니면 87년체제에 안주하느냐의 결정적 전환점에 서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로서 저자는 남북관계 등에서 이 정부가 거둔 놀라운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에는 못 미치는 사회개혁의 방향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다. 노동에 입각한 교육 문제 해결과 공정과 평등에 토대를 둔 사회개혁이 절실하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구시대를 넘어 제2의 민주화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대한민국이 가야 할 다음 행선지가 치열하게 모색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전환기에 서 있다는 인식은 최근 불거진 조국 법무무장관 임명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이른바 촛불정부의 집권으로 민주화가 이미 완성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판단과는 달리, 국민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세밀한 개혁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교육 문제에서 특히 그러한데, 대통령은 물론이고 충분히 개혁적인 교육감과 교육부장관이 집권하고 있음에도 교육에서의 불평등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 이번 임명 과정에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국가의 전반적인 개혁정책을 논한 1부와 교육 문제를 다룬 2부에서 민주화 이후 여전히 교육개혁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자는 교육 문제를 단순히 입시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이 사회의 노동, 계급 문제를 포괄하는 사회개혁의 문제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교육 문제와 노동 문제는 동전의 양면
저자는 한국 사회의 교육열을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용광로에 비유한다(30면). 어떤 이상적인 교육정책과 입시제도를 내놓더라도 학부모들의 교육열에 접근하는 순간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입시제도의 변경은 한번도 목표를 달성한 적이 없다. 어떤 ‘개혁적’ 교육정책도 금수저들의 명문대 싹쓸이 현상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은 그것이 학부모의 욕망과 대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저자는 자식들을 출세시키려는 그 욕망에 맞서지 말고 노동의 가치를 새롭게 제시하는 사회적 전환이 필요하고 주장한다. 우리는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가 사회적 계층이동의 문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부나 교육 당국이 이 문제를 그저 입시 문제인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된다. 학교가 ‘노동자 안 되기 전쟁터’가 된 이유는 전체 사회가 노동을 천시하고 혐오하기 때문이다(317면). 결국 교육 문제는 노동 문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으며 두 문제를 함께 사고하지 않고는 풀 수 없는 난제인 것이다(109면).
그런데 한국의 노동 현실은 어떠한가? 저자는 이 문제를 책의 1부와 5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다. 우리는 교육 문제와 노동 문제가 연결된 비극적 사건으로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기억하고 있다. 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군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144만원의 월급 중 100만원을 저축한 이유는 바로 대학에 가기 위해서였다(49면). 김군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서 저임금과 생명의 위험을 감수했지만 그의 희망은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그러나 만약 김군이 2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정규직이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굳이 대학에 갈 필요도 없었을 테고 그렇게 위험하게 일하다 죽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 외에도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자식을 노동자로 키우고 싶지 않은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한국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자는 10만명당 18명으로 한해 평균 2천여명에 달하며 이는 OECD 최고 수준이다(244면).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상당수의 자살자 역시 노동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노조조직률은 10% 안팎으로 미국 등과 더불어 OECD 최저수준이며 이마저도 기업별노조에 머물러 있다. 저자는 노조의 운명이 개별 회사에 달려 있는 기업별노조는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없을뿐더러 하청기업 비정규 노동자의 임금착취를 묵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249면). 결국 노조가 사회의 노동조건 개선 및 경영의 투명성 확보 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단체행동 감행시 노조원들은 형사처벌은 물론이고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내몰리는데 많게는 수백억에 달하는 이런 손해배상 청구로 배달호, 김주익, 최강서 등 많은 노동자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결국 노동가치를 존중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 교육문제 해결의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는 수시 확대니 자사고 폐지니 하는 지엽적 문제들에 너무 매달려온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계급적 성격을 파헤친 영화 <기생충>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철저히 지키면서 완성되었다는 소식은 그 점에서 매우 시의적이다(215면). 아직 국제노동기구가 권고한 기준도 허용하지 않는 정부는 이 영화의 제작과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학교 개혁의 문제도 더욱 과감하게 접근해야 한다. 당장 학교에서 버려진 90%의 학생을 공교육의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게 해야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인재로 자라날 가능성 있는 학생을 뽑는 대학이 일류대학이 되어야 한다. 서울대의 학부를 폐지하고 대학원대학으로 육성하며 국립대를 무상교육으로 통합운영하여 교수 이동을 활성화해야 한다(109면). 의대가 아니라 기초과학, 공학, 인문과학에 관심 가진 학생을 전폭 지원하고 전문대학을 키워서 양질의 기능인이 높은 사회적 대우를 받도록 해주어야 한다(78면).
제2의 민주화를 완성하는 사회개혁의 여정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로서 저자의 예리한 비판은 비단 교육, 노동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에게 이 정부의 의의는 김대중, 노무현을 잇는 민주정부 3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민주정부들이 하지 못한 사회개혁, 즉 제2의 민주화를 완성하는 데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제2의 민주화를 위한 국가 비전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업국가를 넘어서 사회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남북화해와 사회개혁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이룬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은 재벌대기업과 경제관료들의 논리와 사고방식이 국민 대다수의 사고방식을 지배한 시기였다고 평가한다(35면).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지난 20년 동안 기업국가의 틀 안에 있었는데 다행히 촛불시위와 탄핵이 국민들의 자기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했고 다시 공정과 정의의 가치가 살아 있는 나라, 즉 사회국가로의 전환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교육 문제가 그저 입시 문제가 아니듯, 사회국가로의 전환 역시 그저 한 분야의 개혁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가령 기업국가 체제 아래서 정부의 가장 큰 실패는 저출산 대책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출산은 성평등, 교육, 고용, 주거 등 거의 모든 사회적 문제가 집약된 것인데 노무현 정부 이후 2017년까지 거의 100조원 이상의 예산을 쓰고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122면). 그 이유는 정부가 성, 교육, 고용, 주거 문제에서의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부동산 부양과 사교육 심화 등을 부추김으로써 도저히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는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내놓은 성평등, 고용, 주거, 교육 정책 역시 여전히 근본적 사회개혁과는 거리가 멀고 겨우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지역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 붕괴의 원인은 수도권으로 돈과 사람이 몰려드는 데 있는데 정부는 철도, 공항과 도로 건설 등의 구태의연한 토건 사업으로 지역 발전을 꾀하고 있다(117면). 지방을 살리려면 교육 시설과 일자리를 지역에 유치하는 좀더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교육과 부동산이 계속 집중되는 한 지역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지식의 문제가 제기된다. 한국의 개념설계 능력 부족은 최근 부품, 소재 분야의 취약성을 파고든 일본의 공격으로 뚜렷하게 부각되었다(71면). 이는 당장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원천기술 개발과 그 기반인 기초과학 육성에 책임이 있는 대학이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결과다.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여 이윤을 추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외국이론의 수입 적용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개념설계 능력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저자는 수차례 강조하고 있으며(53면)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국립사회과학원 설립 등을 제안하고 있다(3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