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도 2년이 지났는데, 나는 정권초기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 제2기가 되어서는 안 되고 제2의 민주화, 즉 87년 민주화 이후 제대로 의제화되지 못한 사회경제적 개혁을 추진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등에서 놀라운 성과도 거두었지만, 국내의 사회개혁 작업은 거의 진전시키지 못했다. (5면)
한국에서 교육열은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와 같은 욕망의 덩어리이자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필사의 몸부림이며 그 어떤 것도 녹여낼 힘을 갖고 있다. 학부모의 욕망은 대입, 즉 학벌 문제로 집약된다. 교육정책에 관한 그 어떤 이상과 가치도 이 욕망 앞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고상한 담론이 되었으며, 그 어떤 입시제도의 변경도 애초의 이상이나 목표를 달성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획득, 계층 이동, 그리고 일자리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현장은 자식을 ‘노동자’가 아닌 ‘사’자 직업 혹은 관리자가 되게 하거나 세상에서 업신여김당하지 않고 살게 하고픈 학부모들의 전쟁터다. 교육은 곧 정치다. (30면)
교육 문제는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문제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어낸 세상을 사람이 못 바꾼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는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노동 문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땀 흘리는 노동자를 사람대접하는 일이 대학 문제, 곧 교육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이요 길이라는 것이다. 결국 문제 해결은 노동시장에서의 학력별 임금격차 축소와 차별 철폐,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고졸자 특례 채용의 활성화 등을 통해 대학 진학의 유인을 확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9면)
나는 한국의 뿌리 깊은 노동비하 관행, 노동을 오직 비용으로만 보는 이 사회 주류 지배층의 사고방식과 대학을 나와야 인간대접 받을 수 있다는 관행이 깊게 얽혀서 그(구의역 김군)를 죽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144만원의 월급 중 100만원을 저축해서 대학에 진학하려 했다. 그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노동조건을 감수한 이유는 생활비와 등록금이 필요했고, 메트로 자회사의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으며,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49면)
과연 한국에서 노조가 인정되고 있으며 노동기본권이 보장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87년 민주화로 한국에서는 산별 노조는 제외되고 기업 단위 노조만 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단결권도 절반만 인정된 상태다. 전체 피고용자의 10%만이 조직되어 미국과 더불어 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의 노조조직률을 기록하는 한국에서 애초부터 기업별 노조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절반의 노조였다고 볼 수 있다. 나는 한국의 기업별 노조는 ‘제도적 어용노조’라고 본다. 즉 노조는 회사의 경영에 일절 개입할 수 없고, 자신의 운명을 회사의 존립과 이익에 전적으로 의탁하고 있다. 더구나 이 기업 단위 노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 회사와 종속관계에 있는 다른 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착취를 묵인할 가능성이 있다. (248면)
그런데 2006년부터 2017년까지 100조원 이상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쏟았지만 그 돈은 거의 허공으로 날아갔다. 정책 효과로 따지면 노무현 정부 이후 역대 정부의 저출산 정책과 재정지출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책을 능가하는 총체적 실패다. 문재인 대통령도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기존 생각과 정책을 넘어서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내놓은 일·생활 균형, 안정되고 평등한 여성 일자리, 고용·주거·교육개혁 등의 정책도 여전히 ‘구두 신고 발바닥 긁는’ 대책 같다. (122면)
나는 ‘전관예우’라는 말을 기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것이 가장 불편하다. 그것은 권력형 범죄, 권력형 부패라 불려야 한다. 판사・검사 퇴직한 후 변호사 개업할 수 있게 한 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사법부의 조직 독립이 아니라 판사 개인의 독립과 사회적 대우를 보장해주되, 자기 판결에 책임을 지게 하고, 잘못하면 탄핵해야 한다. 판사의 직급을 과도하게 높게 만든 것도 시정되어야 한다. (3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