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여성에게 대학입학조차 허용되지 않던 시절의 강고한 편견을 ‘부수려’ 한 울프.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만든다는 주장을 ‘뒤집어서’ 물건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 바로 문제라고 지적한 케인스. 그들은 대상을 기술하는 언어들뿐 아니라, 그 근간인 사상도 나누었을 터다. (42쪽)
동물은 먹이를 자식에게 가져다주고 자신도 배불리 먹고 나면 그 이상으로 쌓아두지 않는다. 썩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순환원리 안에서 ‘지금, 여기’의 삶을 산다. 인간은 다르다. 화폐를 냉장고의 저장기능에 비유하지만, 기실 냉장고도 음식을 완전히 보존할 순 없다. 다만 썩는 속도를 늦출 뿐. 삶과 도시의 변화를 관찰하던 윌리엄스는 게젤의 이러한 생각과 사회신용운동을 자신의 시행에 담았다. 자발적인 ‘자연스러움’과 ‘순환’이라는 깨달음을 읊었고, 시의 형식에도 이런 생각을 적용해 순간의 변화를 추구하는 즉흥시를 여러 차례 시도했다. (86쪽)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다.’ 이 말은 이제 점점 현실로 굳어지며 새로운 격언이 된 것 같다. 대학입학 통계, 증여 재산, 소득 변화, 직업군 대물림 등 여러 분야의 사회학 연구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들 연구의 시작점이 된, 가난함은 되풀이된다는 뮈르달의 ‘누적과정’은 시인과 경제학자가 공유하고 있던 어떤 ‘눈’ 덕분에 세상에 드러난 이치일 것이다. 그 ‘눈’은 바로 낮은 세상에서 살아가며 키 작은 채송화 같은 꽃들을 바라보는 용기와 상상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94면)
우리말에서 밥·옷·집은 ‘짓는’ 것이지만, 땅은 ‘짓는다’는 동사를 쓸 수 없다. 헨리 조지의 주장은 이처럼 짓는 게 아닌 것은 제대로 된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땅, 나아가 환경과 자연을 공공재산으로 보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로 공공재산을 꼽았다. (...) 그의 이상과 해법에 큰 영향을 받은 시인 라자러스는 유대인 이민자를 지원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투신했다. 또한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양극화를 해결하고자 했다. 라자러스는 토지세를 도입하는 운동에 열정을 바쳤다. (16~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