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여행,
쇠락과 소멸 끝에 보이는 예술의 향연!
코로나19로 전 세계의 통로가 봉쇄된 지금, 어쩌면 여행은 언제 다시 가게 될지 모르는 기약없는 약속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기를 잘 이용하면 우리가 떠났던 여행을 되돌아보고 음미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골목 책방의 북텐더이자 사회학자인 노명우 교수는 『두번째 도시, 두번째 예술』에서 마치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 시간의 지층을 하나하나 파고들어가 세계적 예술도시에 묻혀 있는 예술의 사회사를 파헤친다. 이 시간여행은 관광 명소를 서둘러 찾아다니며 수없이 셀카를 찍어댔던 ‘첫번째 여행’에서 벗어나, 도시의 심층에 숨겨진 ‘두번째 예술’을 찾아나선 한 ‘예술인간’의 기록이다.
어느 예술인간의 도시편력기
저자가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독일 유학시절 언어의 장벽 때문에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 덕분이었다. 이때부터 저자는 베를린 근교의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언어의 세계를 벗어나 만국의 공통어로 기능하는 예술언어의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책을 싸들고 세계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향해 훌쩍 떠나는 저자가 첫번째 행선지로 삼은 곳은 시간의 맨 아래 지층인 기원전 3만 7천년의 프랑스 아르데슈 지방이다(1장). 1998년 12월 여기서 발견된 원시동굴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안에 그려진 말, 코뿔소, 사자 등의 동물 군상은 마치 살아움직이는 듯 생생했고 암석 표면의 성질까지 고려한 작화 기법은 현대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른바 쇼베 동굴이라고 불리는 이곳을 직접 찾은 저자는 인류 예술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로 보는 견해에 심각한 물음표를 던진다. 이미 기원전 3만 7천년에 인류는 고도의 예술적 성취를 이뤄냈으며 이는 예술의 기원이 언어와 같은 이성적 능력에 있지 않고, 오히려 경제적 유용성을 벗어나려는 욕망, 이른바 유희 욕망에 있음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알타미라나 라스코 동굴을 발견하는 데 기여한 동네 아이들의 호기심처럼, 어떤 이해관계를 떠나 존재하는 인간만의 예술적 본성이라 하겠다. 그런 본성은 언어의 세계에서는 ‘학생’에 불과하지만 예술의 세계에서는 당당한 주체로 나서는 ‘예술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
시간의 지층을 파고든 예술의 사회사
어떤 도시의 지층을 파고 또 파도 또다른 도시의 면모가 계속 등장한다면 그 도시는 단연코 이스탄불일 것이다(2장). 저자는 이 역사적 도시에서 예술의 두번째 본성, 즉 신성과 구원의 추구로서의 예술에 접근한다. 저자가 보기에 이스탄불의 맨 아래 지층에서 목격되는 것은 초기 기독교의 예술이다. 이 도시는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도시이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기념비적인 아야 소피아 성당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로마의 모든 성당이 지하의 카타콤이 지상으로 솟아오른 것이듯이, 예술의 본질은 죽음에서 소멸의 의미를 배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렇듯 죽음과 예술을 묵상하는 저자의 발길은 로마를 거쳐 라벤나로 이어지며 그곳 갈라 플라치디아의 마우솔레움(영묘)에서 마주친 아름다운 터키석 색깔 모자이크에서 절정을 이룬다. 죽음에 대한 신앙의 승리를 묘사한 이 찬란한 모자이크는 그러나 막상 이 작품을 의뢰한 권력자의 죽음까지 되돌이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죽음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쇠락과 소멸과 허무에 맞닿아 있는 것이며, 그래서 이스탄불이 품고 있는 몰락의 정서는 죽음처럼 불가해한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을 저자는 깨닫는다.
만약 천재들의 도시가 있다면, 피렌체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3장).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등등 다른 도시 같으면 단 한사람만 있어도 국보급 대접을 받았을 예술가들이 이 도시에서는 무더기로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유학 시절 피렌체에 왔다가 상인의 유혹에 고가의 가죽점퍼를 강매당했던 저자는 다시 이 도시를 찾아 유서깊은 거리를 걸으며 우리를 15세기의 예술세계로 이끈다. 저자는 이 도시의 두 후원 집단에 관심을 가진다. 하나는 이른바 피렌체 공화정을 대표했던 길드이고 다른 하나는 이 공화정을 군주국으로 바꾸었던 메디치 가문이다. 피렌체가 공화정이었을 때는 길드의 후원으로 「다비드」 상,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 두오모 돔 같은 걸작들이 탄생했다. 메디치 가문은 자신들이 축적한 막대한 부에 대한 나쁜 평판과 종교적 심판을 모면하고자 예술에 투자했으며 그로써 이 도시의 예술적 명성에 기여했다. 지금 봐도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막달라 마리아」(도나텔로) 같은 명작 역시 사회의 후원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음을 이 도시는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피렌체 예술가들이 누군가의 후원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중세 예술가들이었다면, 빈(비엔나)의 모차르트는 궁정의 후원을 거부하고 직접 시민과 만나길 원했던 최초의 예술가라 할 수 있었다(4장). 지금 같으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관객과의 만남을 위해 모차르트는 자신을 궁정예술가로 키우고자 했던 아버지와 결별했으며 또한 예술가를 일종의 하인으로 취급한 궁정과도 단호히 맞서야 했다. 저자는 모차르트의 이런 혁명적인 시도를 이후 빈에서 번성하는 ‘분리파’의 정신과 연결시킨다. 빈의 분리파 예술가들은 제국의 황제 요제프 1세가 주도한 링슈트라세의 의고전주의에 맞서 일체의 장식을 거부한 건축(아돌프 로스), 당대의 위선에 대한 처절한 풍자(카를 크라우스), 시대와 불화하는 전위적인 음악(쇤베르크) 등으로 나아갔다. 이른바 모차르트의 반역에서 시작된 현대 예술은 분리파에서 그 참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예술의 현대성과 자율적 미학의 반동
빈과는 달리 일찍부터 강력한 군주와 그에 맞서는 부르주아 사회를 구축한 파리는 남다른 예술세계를 가지고 있었다(5장). 파리의 예술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보다 현대성, 즉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끊임없이 대체하는 모더니티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혁명 이후 부르주아가 주도한 자본주의 질서는 유리 천장에 대리석 벽이 끊임없이 이어진 상품 미학의 세계, 즉 파사주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19세기 말 라탱지구를 중심으로 활약한 마네, 드가, 모네, 카유보트 등 일군의 보헤미안들은 부르주아적 예술을 상징하는 공모전을 거부했고 자신들만의 낙선전을 기획하면서 도시민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어설프게 귀족을 따라하는 부르주아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거부하는 댄디의 정신이 바로 보들레르의 정신이며 저자는 이런 파리의 현대성에서 지금도 어딘가 숨어 있을 예술가들의 흔적을 좇는다.
이처럼 구시대와 강력히 분리되고자 했던 빈의 예술정신, 그리고 부르주아적 위선을 떨치고 개성적인 세계를 펼치고자 했던 파리의 현대성은 현대 예술의 대표적인 흐름을 형성했다. 그런데 20세기초 베를린에서 형성된 정치적 파시즘은 현대 예술의 이런 성과들을 교묘하게 악용한다. 이른바 예술이 점점 자율성을 띠어왔다는 것이 현대 예술의 특징이라면, 파시즘은 이 자율성의 껍데기, 즉 아무 목적이 없는 듯한 형식만을 따온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베를린 올림픽을 뛰어난 영상미학으로 구현한 「올림피아」다. 이 기록영화에는 히틀러의 어떤 정치적 목적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사실의 인관관계를 미화함으로써 현실을 왜곡할 뿐이다. 이렇게 아름다움의 충동에 취해 관객을 무비판적 황홀 상태로 이끄는 방식은 히틀러를 그토록 매료시켰던 바그너의 음악에서 차용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세련되게 미화된 예술이라도 사회의 진정성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저자는 1942년 나치에 의해 봉쇄돼 아사자가 속출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주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을 파시즘 예술에 대한 시민 예술의 승리로 바라본다. 결국 나치는 패망하고 이후 베를린의 예술은 철저하게 인간의 만행을 기억하는 예술로 나아간다.
마치 중세 예술이 꽃피우기 직전 페스트에 휩싸인 피린체가 그러했듯 2020년 세계의 도시들은 팬데믹으로 숨죽이고 있다. 언제 다시 그 도시를 찾아갈 수 있을까. 그 희망을 붙들고 저자의 기약없는 시간여행은 서울에서, 모국어로 마무리된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전태일 동상까지 세계 도시에 대응하는 우리의 예술작품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저자는 예술 속에서 구원을 소망하고 영원을 꿈꾸는 인간들을 되새긴다. 저들의 열망이 세상 모든 도시에 영광과 쇠락의 흔적을 새겨놓았지만 중년의 사회학자 노명우는 조용히 읊조릴 뿐이다. 인생은 무상하다고, 하지만 인생과 예술은 소멸하기에 영원히 아름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