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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편집자의 말

산 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_편집자의 말

by 북인더갭 2022. 4. 13.

어려서부터 변두리에 살아서인지 후미진 골목이 편하다. 나무와 풀, 흙과 지렁이, 날벌레, 털 달린 짐승 등등은 내게 외계이자 낯섦이다. 나란 인간이 참 드라이하다고 나도 생각한다.

 

이런 내가 올초 우리 아파트 단지내 텃밭 가꾸기 공고에 마음이 흔들렸다. 마감 전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관리실이죠, 텃밭 가꾸기 신청하려고요충동적으로 통화를 마친 후, 몇몇 절차를 거쳐 2평의 텃밭을 배정받았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틈나는 대로 마당에 나가서 물을 주고 풀을 뽑는다. 고기를 먹는 것보다 땅을 어루만지는 편이 차라리 원기회복에 훨씬 유익하다. (…) 흙이 나를 순화시키고 나의 원기회복을 돕는다. 고맙다.
― 141쪽/ 나를 순화시키는 것

 

산 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의 저자 김진희 전도사의 생명력이 내게 전염된 게 분명했다. 사실, 서울을 떠나 시골로 가면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어른이야 그렇다 치고 아이는 어떻게 교육시키며, 밤낮 출몰하는 벌레랑 쥐는 어떻게 감당하느냔 말이다. 도서관도 마트도 큰 병원도 수제빵집도 초밥집도 없지 않은가. 나는 변화하기 귀찮단 말이다.

 

아무도 광야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 아무도 모험하려 하지 않는다. 붉게 펄떡이는 심장 대신 안락하고 폭신한 의자를 택한다. 아무도 진리를 실험하지 않고 아무도 도전하려 하지 않는다.
―177쪽/ 해명하지 않고, 진실하게, 그렇게

 

인간은 죄와 싸워 이길 수 없는 존재다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방패삼아 안주하고픈 유혹이 교묘하게 나를 사로잡는다. 광야에는 나보다 믿음이 더 쎄고, 더 홀리한 다른 누군가가 나갈 것이다. 굳이 내가 안 나서도 될 것이다. 하나님도 내가 무리하는 건 원치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죄를 지으면 얼마나 짓겠는가. 나도 분리수거 열심히 하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고, 층간소음도 잘 참는다. 이러한 자기최면을 서로 묵인해주며 사는 게 크리스천의 쿨한 매너 아니겠는가.

 

아니다. 김진희 전도사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전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혁명이다.
―248쪽/ 혼자서만 잘 살면

 

너 미쳤니, 라는 말을 결단의 순간마다 들어왔던 저자의 일갈답다. 저자가 신학교에 입학하겠다고 했을 때, 23세에 신학교에서 만난 지체장애 2급이자 나이도 열두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오지마을 안골에서 목사인 남편과 함께 정주목회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저자를 매번 똑같은 말로 비난했다. 너 미쳤구나, 완전 미쳤어!!!

원고를 검토하면서 모태신앙인인 나를 돌아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안 미쳤다. 미쳤다고 볼 구석이 1도 없었고 아주 멀쩡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으며 나름 쿨했다. 지금, 코시국이기도 하지만, 교회공동체를 떠난 상태로 혼돈과 고립감, 의혹과 무기력함에 휩싸인 채 2년 여를 보내고 있다. 교회공동체와 나 자신을 향한 쌍방향의 실망감에 참담할 지경이다. 나도 교회도 예수를 따르지 않았다. 아마 교회의 문화나 교회의 사투리(?), 내지는 그러한 라이프스타일이 내게 익숙했던 것 같다. 그런데 더 가관인 건 하나님의 사랑을 짜그라트린 장본인이면서도 하나님은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얼마나 이기적인 미침인가.

 

그러한 때 만난 산 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원고는 존재침묵으로 다가왔다.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 앞에 먼저 조용히 나아가 주님의 임재를 기다리도록 나를 안심시켰다. 비교하고 배제하고 혐오하는 세상에서 이 모습 이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우쳐주었다.

 

듣보잡 출판사 김실땅이 누리는 호사가 있다면 이런 거 아니겠는가. 거칠지만 아름답게 빛나는 원석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 글로 먼저 만나는 위로와 안부, 은혜와 공감의 신비의 행간 같은 거 말이다. 이 기쁨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리요!

 

하나님은 들쥐도 개구리도 이름 모를 야생화도 사랑하신다. 경쟁에 지친 아이들과 훼손당한 자연, 배움에 한이 맺힌 오지의 여인들은 물론 만물의 눈물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기억하신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저자 김진희 전도사를 안골로 보내셨을 것이다.

 

고난주를 지나 부활의 아침은 곧 다가올 것이다. 고난을 기념하고 부활의 주님을 기뻐하는 모든 독자님들을 안골로 초대한다.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는 각자가 알아내길 바란다. 우리가 걸어온 20년 세월 모퉁이마다 주님의 한결 같은 은혜가 깃들었던 것처럼, 안골교회의 20년도 기적의 연속이었음을 은혜와 감동 속에 발견할 것이다.

 

, 나의 텃밭엔 일단 상추를 심었다. 기온이 좀더 오르면 고추와 방울토마토도 심을 생각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잘 키워보겠다.

 

-북인더갭 편집자 김실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