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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저자의 말

산 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_저자의 말

by 북인더갭 2022. 4. 13.

내 나이 스물셋에 신학교에서 만난 열두살 많은 지체장애 2급 아저씨와 내면의 울림에 따라 결혼했다. 결혼 후 진짜 하고 싶은 일이 교사라는 걸 발견하고는 뒤늦게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꿈에 그리던 사립고등학교 교사가 되지만 교직생활 만 2년 만에 학교에 사표를 쓰고 예산의 강원도라 불리는 오지마을 안골로 삶의 적을 옮겼다. 

서울 태생으로 낯선 자연 속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동안 시골에서 평생 한글도 모르고 살던 촌부들, 문명과 문화로부터 소외된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나를 이곳으로 내려보내신 하늘의 뜻을 깨달았다. 요즘은 4년 전 또다시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20시간 이상 간병하면서 여전히 외적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것을 뚫고 나오는 강인한 영적 생명력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모든 영혼은 자신이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임을 미리 알고 선택해서 태어난다는 말을 수많은 영성가들에게서 들었다. 나는 몰랐으나 아마 내 영혼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 아무 가진 것 없고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좌반신이 마비된 남자와 사랑에 빠질 때부터… 이미 내 인생의 시나리오는 신의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결혼하기 직전 남편과 한 약속이 생각난다. 나는 미국에 공부하러 가고 싶어했는데 남편은 시골 가서 살겠다고 했다. 자기는 미국엔 절대 안 간다며… 연애할 때라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래? 그럼 그러지 뭐.” 그 말은 씨가 되고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아이들과 미친 듯이 교실에서 실존적 교감을 나누던 어느날, 남편은 죽기 전 하늘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시골로 목회를 하러 내려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도대체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처음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편 말을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과로로 피로가 누적되기 시작했고,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즈음 아산에서 열린 전국교사세미나에  참여했다가 어느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충격적인 체험을 했다. 나는 주저없이 시골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아산에서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학교에 사표를 냈지만 갑작스런 사표는 결국 반려되었고 6개월 후에야 서울을 떠나 충남 예산(예산이 어디 있는지 몰라 내려오기 전 지도를 찾아봐야 했다) 오지마을 안골에 내려오게 되었다. 


이 책은 2001년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안골에 정착하면서 펼쳐지는 이 모든 이야기는 하늘의 섭리가 켜켜이 조각된 거대한 모자이크를 정확하게 맞춰가는 순간들의 모음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야기는 진행중이다.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의 이유를 20년 동안 알게 된다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 있을까? 2천년 전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 쓴 증언이 신약성서라면 안골교회 이야기를 통해 신약성서는 지금도 여전히 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