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말
이 책은 공동체의 이론과 현장을 연결하는 시도다. 정책 이론의 레토릭과 현장의 다양한 결과들이 혼재된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 특히 현장은 왜 이론처럼 되지 않는지 답답해하는 활동가들에게, 그리고 사업 현장의 이면을 들추어볼 기회가 없었던 연구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또한 ‘공동체’라는 주제를 불편하고 식상하게 (혹은 막연히 좋다고) 느끼는 이들의 공동체 감수성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본문은 누군가에게는 경험하지 못해 생소한 공동체,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익숙한 공동체에 던지는 일곱 가지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나는 독자들이 명쾌한 답을 찾기보다 더 많은 질문을 품었으면 한다. 공동체를 다시금 느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공동체의 감수성이 이 책을 덮고 난 이후에도 계속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대부분의 연구는 가능성을 묻기보다는 공동체의 형성과 성장에 대해 막연히 낙관적 시각을 갖는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의 생략이 있었다. ‘오늘날 도시에서 공동체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고, 그다음 단계인 공동체 ‘만들기’에 몰두해왔다. 나는 묻지 않았던 질문, ‘오늘날’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가능한가를 질문함으로써, 공동체 만들기에 잇따르는 다른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56면)
현대 도시사회의 지배적 특성은 게젤샤프트에 가까워서 친밀한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어렵지만, 그래도 여전히 게마인샤프트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사회에 부분적 수정을 가하며 공동체 만들기를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62~63면)
공동체를 안착시키는 것인가, 공동체 만들기 지원제도를 안착시키는 것인가. 이들은 공동체 만들기 지원제도가 안정화될 때 공동체도 활성화될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제도의 꾸준한 시행이 제도가 설정하는 목표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제도의 연차가 쌓이면서 사업제도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보는 견해는 지나친 낙관주의다.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이 달성하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가 ‘민주주의’이니,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 또한 중요하지 않겠는가. (127면)
이처럼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지 못한 계층이 참여에서 배제·제한되는 구조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자본의 편중을 가져온다. 퍼트넘도 인정하듯이, 사회적 자본은 “거래할 밑천을 이미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가장 많이 주며 그들의 이익을 스스로 강화시켜주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마을공동체 사업이 오히려 사회적 자본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위험도 있다. (143면)
공동체주의 가치를 시민 공동체에게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행정제도에서 구현해야 한다. 행정과 사회 전반은 물질주의적 가치를 따르면서, 마을공동체 안에서만 공동체주의가 작동하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마을공동체가 더 강력한 물질주의적 가치에 전이될 위험이 크다. 때문에 ‘좋은 사회를 만들 좋은 시민을 키워내는 일’보다 ‘좋은 시민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사회 만들기’에 논의가 더 집중돼야 한다. (218면)
블랑쇼가 오염된 의미를 벗어서 ‘버림’으로써 공동체에 적합해질 수 있다고 보았던 것처럼, 공동체의 현장도 ‘공동체를 버려야만 공동체가 된다.’ 공동체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우리’에서 나와야 한다. 공동체 만들기가 공론장으로 전망을 갖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열린 공open’을 실현해야 한다. 잘되는 공동체는 문이 늘 열려 있다. (2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