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더갭의 첫책 <곰스크로 가는 기차>!
독일 작가 프리츠 오르트만의 소설집으로 지난 12월 10일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내가 스무살 무렵 문학동아리에서 골방생활할 때 처음 읽었고
그후 이십여년간 틈날 때마다 나를 고통에 빠뜨리는 소설이다.
스무살의 골방에서 건져내 이제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셈인데,
자세한 이야기는 <옮긴이의 말>에서 좀더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소설집에 삽화를 그린 최규석 씨의 작업실에서
작품을 좀 소개할까 한다.
작품 구상중인 최규석 작가. <습지생태보고서> <공룡 둘리...> 때부터
그의 팬이긴 했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좋아하게 된 것은
<사이시옷>에 실린 <창>이라는 단편에서부터였다. 이 작품이 인연이 되어
창비에서 <대한민국 원주민> <100도씨> 편집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그를 얼핏 보면 거칠 것 같지만
실은 내면에 깊이있는 생각이 늘 꼬리를 무는 신중한 작가다.
나는 그게 최규석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삽화를 좀 보기로 하자. 이미 완성돼 화면에 떠 있는 두편의 삽화가 보인다.
바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들어갈 두 장면이다.
왼쪽에 거의 주저앉을 듯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는 사람이 남자주인공이다.
오른쪽에는 집앞 정원에서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주인공의 아내와 아이들이 보인다.
마음을 쥐어뜯는 들판의 풍경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
두번째 삽화에서 창틀 안쪽의 시점이 너무 마음에 든다.
저것이 바로 이 소설에서 일관된 주인공의 시점이다.
내 가족이 아름답고 소중하기는 하지만
뭔가 그것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는,
나는 이곳에서 전혀 다른 슬픔에 빠져 있다는 항변을 전해준다.
어떻게 그리는 것인지 작업방식이 궁금했는데
작가가 컴퓨터에서 바로 그리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스케치를 먼저 하고,
지우개로 지우기도 하면서, 그림을 완성해나간다.
사진 위쪽으로 어렴풋이 배 한척이 보인다.
내가 이 소설집에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 다음으로 좋아하는 작품
<배는 북서쪽으로>의 한 장면이다.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는 배 한척. 처음에 저 배는 평범한 여객선이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유령선처럼 변한다.
그러니까 저 배는 목적지를 상실한 이 세계의 함축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저자는 인간은 늘 진정한 목표를 찾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말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스케치한 그림을 바탕으로 컴퓨터에서 삽화를 완성한다.
화면에 보이는 그림은 <곰스크>의 주인공들이 안락의자를 사이에 두고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이다.
이 안락의자라는 모티브는 이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곰스크가 이 세계를 뛰쳐나가려는 주인공의 원심력이라면,
안락의자는 그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을 본 남자들은 자기가 바로 작품의 주인공이라는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항상 멀리 떠날 수밖에 없는 수렵의 본능이
<곰스크>라는 곳에 대한 향수로 작용한 탓일까? 여전히 미스터리다.
최규석 작가에게 <곰스크>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묻는다.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게 그림이었어요?
뭐 떠나고 싶은 곳, 그러니까 곰스크 같은 거 없었나요?"
늘 그렇듯이, 엉뚱한 대답이 돌아온다.
"노는 거죠." (웃음)
그건 그렇고 이 작품 뭘 보고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한 것인지 궁금했다.
내가 아는 한, 그가 내키지 않은 작품에 선뜻 나설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작품이 전혀 따듯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애들과 부인을 지나쳐 그냥 골방으로 올라가버리잖아요.
그게 좋더라고요. 정말 따듯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역시 포스 작렬인 눈빛. 지난달 삽화 청탁을 수락할 즈음
최규석 작가는 결혼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니까 결혼과 거의 동시에
이 작품을 맡은 셈인데, 공교롭게도 이 작품의 주인공들 역시
결혼식을 마치고 곰스크로 여행을 떠나는 부부였다.
그것도 작품 내내 아웅다웅하는 부부였으니
그의 마음이 좀 싱숭생숭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신부한테 이 소설 얘기해줬어요?"
"아니요."
왠지 그가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