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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덕후극 _미들 마치/02. 4-9장

고전소설 덕후극_미들마치_02(4-9장)

by 북인더갭 2024. 1. 29.

고맙습니다, 큰아버지. 전 그분을 지금까지 만난 어떤 분보다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으니까요.”

(도로시아는 커소번 신부를 지금까지 세 번인가 만났는데, 설마?)

 

너보다 무려 27년이나 위다. () 한데 그 사람한테는 상당한 재산이 있어. 교회와는 별도로 말이다. 대단한 수입이지. 하지만 () 몸도 그렇게 튼튼한 편이 못 된다.”(71)

 

판단력은 물론 각 방면의 지식이 저를 능가하는 사람을 남편으로 택하고 싶어요.”

미들마치 BBC 미니시리즈(1994)-커소번 신부

 

도로시아는 자신의 삶을 한 남자의 보조자로 세팅하는 중이다.

도로시아가 꿈꾸던 삶의 이상과 미래의 도전은

중년의 성직자 겸 학자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부모를 일찍 떠나보낸 도로시아로서는 아버지 같은 남편을 원했을 수 있다.

가르쳐주고, 바로잡아주고, 울타리가 되어줄 존재를 꿈꿨을 수 있다.

또래의 남성들은 시시하고 가볍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장 속에서 주인을 숭배하며 즐겁게 짹짹 울어대는 작은 새로서의 삶이

여성으로서 최고의 삶이라고 세상이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도로시아야, 배우자란 존재는 너보다 각 방면에서 월등히 뛰어날 필요가 없단다.

나는 네가 시간을 두고 함께 살고싶은 사람을 찾았으면 진짜 좋겠구나.

네가 상상한 부부의 세계를 너는 어쩌면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일을 저지르려고 하니)

 

그래도

 

세상이 아무리 개떡 같다 해도 그렇지,

열아홉 처녀의 맹목적인 선택을 놓고 그 누구도 냉정하고 진지하게 충고하지 않는다.

부모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알아듣게 타일렀을까?

, 타인의 삶을 이다지나 기계적으로 존중해도 되는가. 화가 다 난다.

 

커소번 씨, 저를 마음에 두시어

당신의 아내로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신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도가 커소번 신부에게 보낸 청혼수락 편지 첫머리다.

이 소설을 더 읽기 싫어지는 위기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도로시아는 깨지고 넘어지고 돌고 돌아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내가 예언한다.

 

 

당신네 여성의 위대한 매력은

자기를 희생하는 강렬한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능력 때문에 우리는 여성이야말로

우리 남성의 생활을 완성하고 완결시키는 적임자임을 인정합니다.”

 

 

어이없음이 하도 강렬하여 86쪽에 나온 위의 대사에 줄을 다 쳤다.

타인의 희생과 노동력에 기생해서 연구랍시고 해온 입이라고 말은 잘한다. 배운 것들이 이래서 더 무섭다.

 

 

(철없는 처녀가 그릇된 판단을 하면 알아듣도록 타일러야지 그걸 찬미랍시고 떠드냐.

하긴,

상대방이 성인이 될 때까지 몇 개월이라도 기다렸다 청혼할 위인이면 왜 비난을 받겠어.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완성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궤변?

뮤즈의 도움 어쩌구 하며 젊은 피 빨아먹지 말고,

점잖은 척하면서 재미 볼 거 다 챙기지 말고!

앞길이 구만리 같은 인생을 눈곱만큼도 안 헤아리는 걸 보니

미성년자 학대범 맞네!)

 

 

아이고, 그 누구 탓도 아니다.

도로시아가 맹물이로다, 우리의 도로시아는 환상의 새 예루살렘 성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아내로 순교할 다짐으로 이미 정신이 나갔다.

6주 이내에 그들은 결혼하기로 한다.

 

 

미들마치, 시작부터 빡친다. 그런데 도로시아의 선택이었다.

누구의 꾐이나 억압에 굴복해서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미성년이지만 당당히 선택했다.

 

 

그 아가씨(도로시아)는 커소번 씨와 약혼을 했답니다아~~~

 

미들마치 BBC 미니시리즈-도로시아&커소번

 

이제 이 어이없는 소식은 미들마치 지역 곳곳에 즉,

새신부 브룩이 사는 팁턴은 물론

새신랑 커소번의 교구와 저택이 있는 로윅,

그리고 제임스 체텀 경의 영지인 프레싯까지 넘실넘실 흘러넘칠 것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영국 국교회 신부들은 결혼할 수 있음)

 

 

당치도 않은 일이야. 커소번이라니, 미라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제임스 체텀 경은 들고 있던 말채찍까지 놓친다.

조지 엘리엇은 역시 소설가다.

상처 입은 훈남 귀족의 심정을 어찌 이리 유쾌하고도 쫀득하게 표현해내다니.

다행이도 제임스는 복수나 음모 따위로 인생을 낭비할 사람은 아닌 듯 보인다.

현실적인 사람이니까. 그러나 그 상처와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남편을 숭배하며 가르침을 받기로 작정한 도로시아 즉,

가스라이팅을 기꺼이 당할(!) 준비를 마친 도로시아는

여러 사람에게 충격을 선사하는 중이다.

 

 

특히 제임스 체텀 경은 도도의 큰아버지인 브룩 씨를 향해 이를 간다.

그러면서 연인도 아내도 될 수 없는 도로시아에게 차차 냉정한 거리를 둔다.

도도의 동생 실리아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편, 도로시아 가족은 새댁의 살림 점검 차 커소번의 교구인 로윅을 방문한다.

도도가 커소번의 아내로서 살아갈 집. 거실, 서재, 부엌, 그리고 침실

실내를 둘러본 그들은 다같이 야외로 나가 정원을 산책한다.

 

 

그 순간어느 벤치 앞,

 

 

훌륭하게 세월을 견뎌낸 멋진 고목을 한 청년이 스케치하고 있다.

안 그래도 동생 실리아는 젊은 남자를 방금 전에 보았다고 호들갑이었다.

그야말로 탐스러운 연갈색 고수머리의젊은 남성 등장.

커소번 신부는 미지의 청년을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미들마치 BBC 미니시리즈(1994)-윌 레이디슬로

 

 

친척 청년인데, 이종 조카뻘 됩니다. () 이모님의 손자가 되는 아이입니다.”

 

타이밍도 잘 맞춰 나타났다. 해외로 떠나고 싶어 하며 그림을 즐겨 그리는 자유영혼. 존재감 폭발.

 

그 남자의 이름은 윌 레이디슬로.

 

다음 회 읽기: https://bookinthegap.tistory.com/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