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는 로마로 허니문여행을 보내놓고,
조지 엘리엇은 서브 스토리에 해당하는 미들마치 지역의
<병원 전속신부 투표 건>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주변 인물들의 개성을 더 깊게 보여준다.
(도로시아와 커소번은 잠시 잊어도 됨)
먼저, 빈시 씨 댁 만찬에 참석한 의사 리드게이트.
그 자리엔 미들마치의 상류층들이 꽤 모였다.
누구에게 투표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병원 개혁에도 영향이 있기에 리드게이트는 고민 중이다.
리드게이트는 개인적으로 페어브라더 신부를 좋아한다.
서재엔 ‘알코올에 절인 해충과 청파리와 나방으로 가득한 서랍들뿐’인 오타쿠 신부이지만
페어브라더 신부는 솔직하고 담백하다. 이제껏 병원에서 무료로 일했던 전임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지역 의료 서비스를 위한답시고
신부님에게도 월급을 주기 시작하면서,
지들 맘에 드는 신부를 그 자리에 앉히고 싶은 것이다.
페어브라더는 사태를 보는 눈도 예리하다.
“나는 (은행가) 벌스트로드를 여러 가지로 반대합니다.
나는 그가 속한 무리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종의 세속적인 영적 파벌주의로 뭉쳐 있어요.
그들은 정말로 자기들 이외의 사람들을 자기들을 천국으로 보내기 위해
양분을 공급하는 불운한 시체들로 바라보고 있어요.…
나는 모범적인 신부가 아니에요.
하나의 멋진 대용품일 뿐이죠.”(300-301쪽)
(페어브라더 신부의 날카로운 이 대사를 읽기 전까지
벌스트로드라는 은행가를 주목하지 못했다.
복병으로 숨어 있던 인물이 갑자기 치고 올라오는 느낌.
신부의 촉에 걸린 걸로 보아 지나가는 인물이 아닌 듯.
종교지도자도 돈으로 찜쪄먹는 자본의 위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구나.)
“벌스트로드가 당신을 내쫓으려는 이유가 뭡니까?”
“내가 그의 의견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죠.
그는 그걸 영적 종교라고 부릅니다. 저는 거기에 쓸 시간이 없어요(…)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당신은 우리 가운데 정착하려고 온 항해자와 같은 사람이고,
반대쪽에서 내 신념을 지지할 겁니다.”
과연 누가 병원 전속신부로 뽑힐까.
만찬장의 응접실에선 역시 썸을 타는 선남선녀가 포착된다.
언제까지 지루한 투표 이야기만 하겠는가.
리드게이트는 로저먼드에게 다가가 잠깐이지만 그녀를 독점한다.
보아하니, 외과의사 리드게이트는 로저먼드에게 반했다.
로저먼드는 아름다웠다. 사랑에 빠지기에 아주 안전한 여자였다.
하지만 리드게이트는 ‘앞으로 5년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또한 만찬은 그를 피로하게 했다. 만찬이 유쾌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렇게 밤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낭비였다.
전염성 열병에 대한 새로운 연구 논문을 읽어야 했다.
11시가 못 되어 그는 만찬장을 나왔다.
그러나 로저먼드는 달랐다.
로저먼드는 그와 나눈 대화나 그때의 상황을 로맨스의 감정으로 해석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게다가 많은 신사들이
‘참으로 멋진 아가씨야. 그녀를 차지하는 남자는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 사실을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풍경과 시장바구니와 친구의 초상을 그렸고,
음악을 연습했으며, 완벽한 여성의 표준이 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력했으며,
언제나 한 사람의 청중을 의식했다.’ (286쪽)
아, 이쯤 되니 갑자기 로저먼드가 불쌍해 보인다.
과연 ‘완벽한 여성의 표준’이 무엇이란 말이냐 ㅠㅠ
(로저먼드야, 걍 너님 하고 싶은 거 하며 하루를 보내지 그러니…
너무 소모적이지 않니? 왜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가둬버렸니?
이 모든 게 너님이 하고 싶은 거라면... 더 할 말이 없다만…)
시간이 흘러, 병원 총회가 있는 금요일. 리드게이트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은행가 벌스트로드 씨는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용납 못하는 사람이다.
또한 벌스트로드는 미들마치에서 자선을 가장 많이 베푸는 사람이지만
베풀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 베풂을 권력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구둣방집 아들을 도제로 보내는 비용에는 후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 아들놈이 주일마다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지도 철저히 감시했다.
(종교인의 탈을 쓴 압제자의 자선이구만.
이 돈을 받으면서 과연 구둣방집 아들은 신의 자비를 느꼈을까.
초딩 때의 유행어 ‘치사빤쓰’라는 말이 문득 떠오름.
탐욕스런 종교인이 생사람 잡고 앉아 있네.
벌스트로드라는 인물이 점점 요주의 인물로 떠오르는 느낌)
의사로서 편하게 일하기 위해선 권력가가 미는 사람에게 한 표 던져야 했다.
돈이 있어야 뭐든 수월하게 운영할 게 아닌가.
그렇지만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을 위해, 개혁을 위해 은행가 눈치 보며 맘에 들지 않는 신부에게 한 표?
득표수가 동점인 가운데 리드게이트는 조금 늦게 병원에 도착한다.
리드게이트는 투표지를 받아든다.
그러곤 바로, 페어브라더의 경쟁자 ‘타이크’라고 적어 낸다.
(고민은 왜 한 거지? 어차피 타이크를 찍을 거였으면서?)
그나저나, 로마로 신혼여행을 떠난 신혼부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아돌프 나우만이라는 독일 미술가는 흥분에 빠졌다.
로마 바티칸 미술관에서 아리아드네 조각상 뺨치게 아름다운 한 여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 여자를 내 손으로 그리고 싶다!
근데, 뭐? 네 친척이라고? 뭬라? 네 아주머니 뻘 된다고?
아돌프 나우만의 영국인 친구인 윌 레이디슬로는 슬슬 화가 난다. 왜! 왜!
“화를 내다니, 웃기지 마. 난 그녀를 꼭 한 번밖에 안 만났어. 그것도 불과 2-3분간.
아저씨가 그녀를 소개해줬지. 내가 영국을 떠나기 바로 전이지만,
그 무렵 그 사람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
두 사람이 로마에 올 줄은 미처 몰랐는걸. (…)
대관절 넌 그 부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그릴 작정이야, 응?
그 사람의 목소리는 내가 본 그 사람의 어떤 외관보다도 신성했어.”
“알았어, 알았어. 질투하고 있군.
너의 아주머니라! 아저씨와 조카라니 비극이군, 정말로!”
“그 부인이 내 아주머니라는 말을 한번만 더 하면 나우만,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러면 어떻게 불러야 하지?”
“커소번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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