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1월의 어느 날,
부부는 반년에 가까운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새신부 도로시아는 자신의 내실에서도 묘한 위축감을 느낀다.
창밖의 풍경 또한 눈으로 덮인 창백한 언덕뿐.
부부가 되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저 언덕을 함께 산책하리라 소망했던 도로시아는
차마 창밖을 내다보기조차 힘들다.
그런데 그 방에서 도로시아를 위로하는 초상화 속의 한 여인.
여자의 얼굴은 매우 섬세하다. 하지만 표정은 고집스럽다.
그리고 어딘가 친밀하다.
“그것은 그녀의 소리를 들어줄 귀가 있고,
또 그것을 응시하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줄 것만 같았다. (…)
화면의 색이 짙어지고 입술과 턱이 커지면서 머리털과 눈은 빛을 떨칠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남자 얼굴로 바뀌어 뚫어지도록 그녀를 응시하며 환하게 웃었다.”(468쪽)
도로시아는 초상화를 보며 누구를 떠올리는 걸까…
하지만 큰아버지며 동생 실리아가 당도하면서 시끌벅적해진 집안.
동생 실리아 덕분에 내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그런데 신혼여행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얼굴이 괜히 빨개지는 실리아.
유부녀가 된 도로시아는 자매의 촉으로 다정스레 묻는다.
“정말로 무슨 중요한 소식이 있는 거니?”
실리아는 언니가 신혼여행 간 사이에 제임스 체텀 경과 약혼을 했다고 고백한다.
“이보다 더 좋은 결혼은 없을 거다. 키티, 제임스 씨는 선량하고 훌륭한 분이야.”
도로시아는 진심으로 기뻤지만 묘한 우려가 뒤섞인 헷갈리는 심정으로
동생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준다.
한편, 결혼을 통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만 생각하고
자신이 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던 커소번도
심사가 괴롭긴 마찬가지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육체도 건강하지 못한 커소번에게는
병적인 의지와 소심한 정신만 남았다.
『신화학전해』를 완벽하게 연구하기 위해 그는 말 그대로 모든 에너지를 다했다.
소논문집을 발표한 후 독자의 반응을 초조하게 살피거나,
부주교가 이걸 읽었을까 안 읽었을까 의심하거나,
자신의 글을 신랄하게 비평한 지인에게 어찌 복수할지 등등에
늘 심사가 날카로웠다.
그러니 소화불량은 기본값이었고, 늘 우울했고, 늘 불안했다.
즉 ‘학문이 있어도 영감을 모르고,
야심이 있으면서 항상 소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어서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477쪽)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결혼도 아내도 성가셨다.
자신의 연구를 돕는답시고 나서는 아내도 맘에 안 들었다.
이전의 습관이 훨씬 편했고 그래서 그 시절이 그리웠다.
변하고 싶지 않았다.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커소번에게 불편한 편지가 도착했다.
“이리로 찾아오고 싶다는 그(윌 레이디슬로) 편지의 의견은 거절하지 않으면 안 돼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요사이 쭉 계속된 잡다한 일에서 벗어나,
특히 밑도 끝도 없이 부산을 떨어 눈앞에 있기만 해도
이쪽이 피곤해질 것 같은 손님들에게…”(480쪽)
로마에서 참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한 이후
도로시아는 차라리 감정을 억제하기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그때의 혼란과 상처가 지울 수 없는 충격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도로시아는 또 모욕감을 느꼈다.
나는 아내가 아닌가? 저 사람은 나의 남편이 아닌가?
그런데 왜 나를 존중하지 않는가?
사사건건 왜 명령인가? 왜 짜증인가?
도로시아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마치 제가 당신이 설복하지 않으면 안 될 상대이기라도 한 듯한 말투시군요.”
“이 일에 대해서는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합시다.
내게는 이런 논쟁을 할 여가도 없거니와 힘도 없으니까.”
커소번의 손이 떨렸다. 서재 안에는 평온을 가장한 삼십여 분이 흘렀다.
그때 탕, 뭔가가 떨어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놀란 도로시아는 소리가 난 쪽으로 눈을 돌렸다.
책장용 발판 위에 서 있는 커소번의 손에서 책들이 탕, 탕 바닥으로 떨어졌다.
커소번은 고통스런 얼굴로 몸을 구부렸다.
도로시아는 남편에게 달려갔다.
커소번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호흡곤란으로 헐떡이는 남편을 보고는
도로시아는 하인을 부르기 위해 미친 듯 초인종을 눌렀다.
마침 실리아와 제임스가 집에 도착했고,
제임스는 의사 리드게이트를 불렀으며,
실리아는 가여운 언니, 하며 언니를 걱정했다.
(아픈 사람은 형부인데 언니를 걱정함. 형부를 걸렀다는 소리임?)
제임스 체텀 경 또한 미래의 처형인 도로시아를 보며 생각했다.
‘주위 사람이 구원의 손길을 뻗으려고도 하지 않아
미숙한 처녀가 그런 식으로 무모하게 자기 운명을 결정하게 만든 것은
잘못이었다.’(485쪽)
(그건 동감이다, 체텀 경)
“그렇습니다. 어떠한 종류든 정신의 동요를 피하고,
과도한 공부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합니다.”(492쪽)
의사 리드게이트가 말한다.
“연구를 그만두어야 한다면 얼마나 낙심을 하실까요?”
“…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심장)병 자체가 더 급속하게 악화되는 일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환자 중에는 간혹 사망하는 일도 있습니다.”
눈물이 도로시아의 뺨을 적신다.
“아아, 선생님은 잘 알고 계시지요, 그렇죠?
삶이나 죽음에 대해서 모두 알고 계실 거예요. 제발 가르쳐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쳐 주세요.
그이는 평생 괴로운 연구를 했어요. 그리고 앞날에 희망을 걸고 계세요.”
눈물은 이제 폭포같이 쏟아져내렸다.
아무도 없는 서재.
윌이 로마에서 보낸 편지가 여전히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도로시아는 이 편지를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이 편지가 발단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이는 더 화가 났던 게 아니었을까…
도로시아는 자신을 괴롭혔다.
어쨌든 당장은 답장을 쓸 여력도 그럴 정신도 없었다.
그래, 답장은 큰아버지께 대신 좀 써달라고 부탁하자.
커소번 씨는 병상에 있고, 그래서 지금 손님을 면회할 수 없는 상태라고,
그렇게 좀 전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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