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그레이 가향차로 더 유명한 찰스 그레이 백작은 1830년 영국 총리직에 오른다.
1832년, 그는 선거구를 조정하고 중산층, 상인에게까지 선거권을 확대시키는
첫 선거개혁법을 단행한다.(The Reform Act 1832)
소설에도 일명 ‘10파운드 세대주안’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연 임대료가 10파운드 이상인 세대주나 그에 준하는 주택을 소유한 자에게 선거권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846쪽)
치사한 ‘개혁’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이나 노동자 계급에게 선거권이란 아직 먼 이야기다.
(선거권에 대한 추가 배경설명은 10화의 내용을 참조하길 바람.
1903년에 여성 참정권에 인생을 바친 우리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등장하고,
1928년에야 보통선거가 이뤄짐)
이러한 와중에, 후보자 추천일을 앞두고 브룩 씨도 선거 유세를 준비 중이다.
반년동안이나마 지주로서 여러 개혁을 하면서 상대편의 공격에 잘 맞섰다고 브룩 씨는 자신하고 있다.
정견 발표의 날이 다가왔다.
긴장도 풀 겸 브룩 씨는 셰리주를 좀 마셨다.
눈앞이 흐려진다, 사람들이 킥킥거린다, 버벅거리는 브룩 씨.
연설은 당연히 엉망진창, 대실패로 끝났다.
윌도 하숙방에 처박혀버렸다. 브룩 씨가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그의 조수도 웃음거리가 되었다.
미들마치를 떠나야 하나? 런던으로 가서 법률 공부를 할까,
그래서 개선장군처럼 돌아와 도로시아에게 청혼을 할까.
혼자가 된 도로시아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체면을 완전히 구긴 브룩 씨와 윌은 같은 생각에 이른 것이다.
“나는 자네가 무언가 다른 일을 하기를 늘 기대했네. 자네는 일단 프랑스로 여행을…”
그러나 윌은 영문도 모른 채 쫓기듯 미들마치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 프레드 빈시도 학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돌아왔다.
성직에는 관심도 없는 프레드는 (대학 공부 시키느라 허리가 휜 아버지야 불같이 화를 내겠지만)
메리가 청혼만 받아준다면, 이 시골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간만에 나타난 사람은 프레드만이 아니다.
고인이 된 커소번에 비하면 애교꾼이라 할 만한 빌런 래플스라는 사내도 다시 미들마치에 나타났다.
11화에서 이미 말했지만, 환전상을 꿈꾸는 조슈아는 상속 받은 저택을 날름 팔아버렸다.
돈 많은 은행가 벌스트로드가 스톤관의 새 주인이 된 것이다.
페더스톤 영감이 죽은 지 15개월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11화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그 종이가 문제였다.
술병 입구를 막았던 그 종이에 적힌 서명은 다름 아닌 ‘니콜라스 벌스트로드’였다.
그런데 그게 왜?
즉, 래플스와 벌스트로드는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는 사실.
벌스트로드로서는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자신의 새 저택에서 딱 만난 것이다.
이거야말로 신의 섭리인가?
벌스트로드의 과거는 아무도 몰랐다. 미들마치 출신도 아니다.
그런데 은행가 벌스트로드는 운명, 용서, 신의 섭리, 신의 조화를 갈망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는 인물이었다. 그 이유는 현재 래플스만이 아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는 내 의붓아들 땅이거든.”
“조슈아 리그 페더스톤 씨가 자네의 의붓아들이라면, 그 사람은 여기에 없네.
지금은 내가 이곳 주인이야.”
“자네가 그 과부와 결혼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자네를 두고 젊은 닉이라 불렀던 거야. (…)
나는 그 뒤 다시 한번 새러를 찾아보았어.
그 사랑스러운 아가씨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이 꺼림칙했기 때문에 말이야.
그 아가씨는 찾지 못했지만 그녀의 남편 이름을 알아내 적어 두었지.
그런데 한심하게도 그 수첩을 잃어버리고 말았어.(…)
그건 그렇다 치고 그 여인과 아이의 소문을 듣거든,
닉 자네한테 알려 주겠네.
아무튼 그녀는 자네의 의붓딸이니까.”
새러는 누구일까? 그 과부는 누구고?
협박은 확실해 보이는데 터무니없는 협박은 아닌 것 같다.
벌스트로드가 누군데 헛소리를 듣고 앉아 있겠는가.
어쨌든 래플스라는 사나이는 벌스트로드에게 100파운드를 삥 뜯어내고는 스톤관을 떠나면서
가물가물하던 그 이름을 갑작스레 떠올린다.
레…레…이디슬로, 맞아, 레이디슬로였어!
한편,
재혼을 해야 한다, 아니다 그런 일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이제 과부의 상복을 벗어야 한다,
아니다 적어도 1년은 입어야 한다, 실내에서 쓰는 과부용 실내모라도 벗어라,
아니다 그건 도리가 아니다…
수많은 참견과 지적질을 벗어나 자신의 저택 로윅으로 돌아온 도로시아.
1년 6개월의 결혼 생활이었다.
지난겨울 스무살이 되었지만 모든 게 아주 오래 전 일 같았다.
방방마다 돌아다녔다. 싸늘했다. 어두웠다.
이윽고 도로시아는 서재에서 ‘커소번 부인용 경개일람표’ 라고 적힌 자료집을 발견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자료집, 참고문헌, 학술적인 메모, 논문과 관련된 끄적거림… 뿐이었다.
남편으로서의 친밀하고 애틋한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아내를 위해 남겨둔 ‘다정한 말’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단 한 줄도 없었다.
(아, 이거 남편이 아니네, 괴물 같은 직장상사라도 이러진 않을 거임!)
“저는 이것을 쓸 수 없습니다.
자기가 믿을 수 없는 일에 희망도 없이 종사함으로써 혼마저도 당신께 복종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 도로시아”(912쪽)
도도는 이렇게 메모한 종이와 함께 자료봉투를 가차 없이 봉해버렸다.
(도로시아, 그럴 때는 한바탕 욕을 박아줘야지! 조지 엘리엇 같은 대작가가 욕도 할 줄 모르나?
아, 실망이야. 거친 쌍욕이 이런 상황에서 나와줘야 되는데)
막연히 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 마침 윌이 상복을 입은 도로시아를 찾아온다.
“가까운 시일에 런던으로 가서 법정 변호사가 될 공부를 할까 합니다.”
“당신에겐 그토록 많은 재능이 있잖아요.”(918쪽)
조심히 이별을 준비하는 두 사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것이 불행하다고는, 저는 지금껏 느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빈곤이 우리를 가장 소중히 하는 것에서 떼어 놓는다면,
그렇다면 빈곤은 문둥병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요.”(922쪽)
서로가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애타게 걱정하는 두 사람.
‘돈에 쪼들려 돈 많은 여자를 찾는 사기꾼’으로 나를 몰아가겠지…
윌은 천박한 세상이 경멸스러웠다.
(윌은 커소번 아저씨가 어떤 유언을 남겼는지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렇게 마음이 힘든데, 알게 된다면ㅠㅠ)
“뜻하지 않는 데서 괴로움이 찾아와 우리의 손을 묶고,
이야기하고 싶어 못 견디겠는데도 말을 못 하게 하는 그런…”
마침, 하인이 나타난다. 제임스 체텀 경이 방문했다고.
윌과 마주친 체텀 경은 그깟 레이디슬로 따위, 하는 태도로 윌을 대한다.
처형 ‘도로시아의 신성함’을 더럽히려는 자가 여기까지 찾아왔군, 하는 경멸의 태도로 대충 인사한다.
(이른바, 여자의 재혼을 속으로는 반대하는 꼰대 제부님의 갑질)
“부인, 이만 작별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감정을 억누른 채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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