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지 엘리엇은 윌을 멀리 떠나보내고,
도로시아도 요크셔 지방으로 땅을 알아보게끔 떠나보낸다.
그러곤 로저먼드와 리드게이트의 ‘쩐의 전쟁’에 다시금 초점을 맞춘다.
(16화에서 이들은 이미 1차전을 치렀다)
“하인은 한 사람만 두고 긴축된 생활을 합시다. 왕진용 말도 한 필로 참읍시다.”
“소원이시라면 다른 하녀들도 해고하시죠.”
“우리는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했어요.
그렇다면 사태가 잘 풀릴 때까지 어떻게 해나가지 못할 것도 없을 거요.
자, 그 일 그만두고 이리 와요.”
급화해 모드. 남편은 아내를 무릎에 앉힌다.
(이해가 안 되는 장면. 싸우다말고 뭐하는 거임? 어이가 없네???)
‘여성은 연약한 것이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균형이 깨지기 쉽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리라.’(1098쪽)
남편은 부인을 진지한 대화상대로 애초부터 인정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배우자를 나보다 열등한 존재로 치부하면서 어르고 달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후진 사람이다.
“렌치(미들마치의 또 다른 의사 이름)는 번창하고 있음에도 돈을 절약하고 있단 말이오.”
“여보, 그렇담 당신도 번창하시면 될 게 아니에요.(…)
당신은 환자의 비위를 맞추려고 좀더 노력하셔야 해요.
그리고 다른 의사들처럼 약을 처방해 주시는 게 좋아요. (…)
별난 방법을 써서 잘될 턱이 없어요.”
리드게이트가 참지 못할 건 불 보듯 뻔하다.
“사업상 무엇을 할 것인가, 알겠어? 로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나라고.
그건 부부간의 문제가 아니야.”
여전히 남편 무릎에 앉은 채 로저먼드는
벌스트로드 고모부에게 전염병 병원에서 일하는 봉급을 받아내라고 또 한마디한다.무보수가 말이 되냐고.
남편은 불같은 성질을 억누르며 말한다.
무보수로 일하며 맘껏 연구하기로 한 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라고.
그러곤 깊이 숨겨두었던 말을 이제야 꺼낸다.
“네드 플림데일 군이 소피 톨러 양하고 결혼할 모양이오. (…)
미들마치에서는 좋은 집이 비는 경우가 좀처럼 없어요.
그 사람들에게 말하면 기꺼이 우리의 집을 가구째 떠말아 줄 테고,
집세로 상당한 돈을 치러줄 거라고 생각해.
경매인 트럼불에게 부탁해서 플림데일에게 말해달라고 해도 되고.”(1100쪽)
로저먼드는 이제야 남편의 무릎을 떠난다.
“집을 내놓자고요? 가구까지 다?”
로저먼드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또 같은 소리를 내뱉는다.
“차라리 미들마치를 떠나요.”
그러나 리드게이트도 열 받았다.
“가봤자 빈털터리야!”
“이게 다 당신 탓이에요.”
“그게 왜 내 탓이기만 하지?”
“큰아버지인 고드윈 경에게 부탁도 안 해보고 집부터 내놓다니요.”
(이 부부, 부인과 남편을 대표하는 완벽히 전형적인 인물들인데도 참 흥미진진하다.
조지 엘리엇의 능력이겠지.
배우자를 어린애나 반려동물처럼 대하면서 남편은 아내를 깊이 배려하는 남자는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하겠지.
만족을 모르는 허영심에 빠진 아내는 세상에 자기처럼 불행한 새신부는 없다고 생각하겠지.
첨부터 어째 불안해 보인다 했어…)
집을 내놓는 문제는 당분간 서로 피했다.
리드게이트는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성에 자신도 긴장한 상태고,
로저먼드는 남편 몰래 뭐라도 해보려고 네드 플럼데일 집에 찾아가기로 맘을 먹는다.
사실 네드라는 청년은 로저먼드 주위를 맴돌던 동네 하찮은 총각 중 하나였다.
당연히 로저먼드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살림집은 어디로 정하실 참이세요?”
그런데 네드의 엄마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성 베드로 광장에 있는 집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로저먼드는 집으로 가는 길에 경매인 트럼불 씨를 만난다.
트럼불 씨는 직업상의 촉으로 이 부부의 어려움을 당연히 눈치챘지만 내색은 전혀 안 한다.
“트럼불 씨, 제가 여기 온 것은, 저희 집 문제를 그 이상 진전시키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리기 위해서예요.(…)
네드 플림데일 씨는 집을 이미 빌리셨대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천파운드가 필요했다.
그런데 부부가 힘을 모아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이 부부는 서로를 비난하며 서로의 문제해결 방식을 한심하게 여길 뿐이다.
리드게이트는 ‘실행이 불가능한 욕구를 내세우는 로저먼드의 정신 상태’를 한심하게 여겼고,
로저먼드는 귀족 친척에게 사정 한번 안 해보는 남편의 헛된 자존심을 한심하게 여겼다.
설상가상, 부인이 경매인 트럼불을 몰래 찾아가
없던 일로 해달라고 했던 사실까지 뒤늦게 알아낸 남편은 완전 빡쳤다.
남편은 당장 덤벼들 듯 소리쳤다.
“몰래 내 명령을 거역하고 나를 우롱할 권리는 없어.”(1115쪽)
그러나 어쩌나, 로저먼드는 남편의 큰아버지 고드윈 리드게이트 경에게 이미 정성어린 편지도 몰래 부친 상황이었다.
이렇게 간절히 편지를 써보내면 조카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진 않으시겠지.
당연히 남편에게는 비밀이었다.
답장만 와봐라, 내게 고맙다고 절을 하고도 남을 테니.
로저먼드는 확신하며 답장을 기다렸다.
“어쨌든 지금은 트럼불 씨한테 가지 마세요. (…)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오늘밤은 아빠와 함께 식사하기로 돼 있어요.”
한해가 저문다.
산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크리스마스 만찬회와 신년 축하 파티가 한창이다.
식사를 하면서도 리드게이트는 죽을 맛을 참는 표정이었고,
로저먼드는 여전히 우아했지만 남편에겐 상당히 무관심했다.
빈시 씨도 사위한테는 곁을 주지 않았다.
이미 미들마치에서는 개업 의사 주제에 신혼살림부터 지나치게 호화롭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아마도 북부에 산다는 준남작 친척이 뒤를 봐주는가 보다고 동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속내를 숨기려는 듯 리드게이트는 아무 이야기나 산만하게 늘어놓았다.
페어브라더 신부는 말하는 그의 눈빛을 주시했다.
리드게이트는 평소와 다르게 전반적으로 멍해 보였다. 안면 신경통인가? 사업이 힘든가?…
‘아편을 마셨는지도 모르겠다.’(1084쪽)
연초의 번거롭고 형식적인 일들은 다 지나갔다.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리드게이트도 인정했다.
그래, 큰아버지한테 가보자.
아내에겐 아직 말을 안 했지만 곧 출발할 생각이다.
그런데 집으로 가니 로저먼드가 다른 날과 다르게 밝은 얼굴로 남편을 맞는다.
“여보, 어서 들어오세요. 당신 앞으로 편지가 와 있어요.”
남편은 편지 봉투를 뜯고 읽기 시작했다. 로저먼드는 희망에 부풀었다.
남편이 놀랄 걸 생각하니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살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아아, 남편은 편지를 부인 앞으로 내던졌다.
“당신이 계속 이렇게 비밀스러운 행동을 한다면, 이제 당신과 함께 살 수 없어…”
남편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편지를 주워 확인하는 로저먼드의 얼굴빛도 창백해졌다.
“잘 있었나, 부탁할 일이 있더라도 아내에게 편지 같은 걸 쓰게 하지는 말게.
이러한 방법은 그야말로 완곡한 감언甘言으로 꾀는 것 같아.
설마 자네가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네.
나는 사무적인 일에 대해서는 여자에게 편지를 쓰지 않네…”(1123쪽)
리드게이트는 미쳐 날뛰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내가 하려고 결심한 일을 이야기하면 당신은 언제나 동의하는 척하고는 뒤에서는 따르지 않아.
그러한 일이 이미 몇 번이나 있었어.”
“저는 삶의 흥미를 잃었어요. 당신과 결혼한 탓에 이 고생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당신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당황하여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말리고 싶었을 뿐이에요.”(1128쪽)
아, 나도 진짜 맘이 안 좋다…
근데, 돈도 안 빌려줄 거면서 큰아버지라는 사람도 참 웃긴다. 부부싸움에 기름을 끼얹네?
서로 물어뜯으며 살라고 훈수를 두는구나.
어렵다는 조카 부부를 싸잡아 모욕을 주는 게 귀족의 배려방식인가?
능력 없는 남편이라고 조카를 개무시하고, 사무적인 일로는 여성과 편지를 주고받지 않는다니,
완전 싸가지가 바가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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