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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덕후극 _미들 마치/24. 85-종곡

고전소설 덕후극_미들마치_24_85-종곡

by 북인더갭 2024. 4. 22.

우리의 주인공들은 먼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도로시아는 스물의 나이에

인생의 쓴맛과 단맛, 냉탕과 온탕, 천국과 지옥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행복하게 딴딴따다~ 웨딩마치를 울렸으니

소설은 이제 끝난 건가? NO!

조지 엘리엇은 미들마치의 부차적인 인물들에게도 행복의 길을 열어주었다.

 

공동체를 위하는 도로시아가 주인공으로 버티고 있지 않은가.

미들마치에서는 웬만해선 행복하다.

 

먼저, 은행가 벌스트로드와 그의 부인 해리엇.

 

래플스의 죽음으로 공동체에서 고립된 재산가 벌스트로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부인 해리엇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두 달 사이에 마치 경쟁을 하듯 늙어버린 중년의 부부.

 

나한테 부탁할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해요.”

 부인을 염려하며 입을 연 벌스트로드.

 

며칠이 지났다. 해리엇은 오빠 빈시 씨네를 방문하고 돌아와서야 대답했다.

 

여보, 가능하다면 오빠 아이들(프레드와 로저먼드 남매)한테 무언가 해주고 싶어요.”

 

착한 고모다.

프레드나 로저먼드나 어렵고 난처한 상황이니 자신의 조카들을 도와달라고.

미들마치를 떠날 때 떠나더라도 조카들에게 기반을 마련해주고 떠나면 좋겠다고.

 

그 일환으로 가스 씨(메리네 아빠, 즉 프레드의 미래의 장인)가 거절한

스톤관 관리를 이번에는 부인 해리엇이 성사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가스 씨는 안 그래도 바쁘니,

가스 씨의 조수로 일하는 프레드가 스톤관을 맡는 게 자연스럽지 아니한가.

(그러면서 이야기는 메리와 프레드로 자연스레 확장된다)

 

케일러브 가스 씨는 이 놀라운 계약 건을 큰딸 메리에게 먼저 알린다.

지금으로 치면 엠제트 나이에 이모부의 간병인으로 일했던 메리에게도

좋은 소식이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K-장녀뺨치는 브리티시-장녀메리가 행복해지면 나도 좋겠는데.

 

메리, 농담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미들마치 BBC 미니시리즈 - 메리와 프레드

 

 

스톤관에서 간병인이 아닌 전권을 쥔 관리인 가족이 되어

사랑하는 프레드랑 알콩달콩 살면 메리도 고생한 보람이 있겠지!

좋은 소식을 메리에게 전해들은 프레드의 얼굴이 붉어진다.

 

진지하게 말해 줘. 아까 말한 것은 모두 정말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너는 행복하다고 말이야

다시 말해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이야.”(1401)

 

(아유, 얘들아~ 오글거린다, 좋아 죽는구나, 젊었다~)

 

이들은 부부가 되어서도 이렇게 오글거리며 잘 살았다고 종곡부분에 나온다.

이론가인 동시에 실제적인 농업 경영자로

채소 재배와 가축 사육 경제에 관하여라는 저서까지 출판하며

프레드는 이름을 날렸다고.

그뿐인가. 메리도 세 아들을 위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라는

제목의 아동도서를 출판했다고.

와우, 성실하고도 멋진 부부.

 

 

이어지는 커플은 리드게이트와 로저먼드.

그들의 위기도 당연히 끝났다. 먼저 리드게이트 소식.

미들마치를 떠나 해안도시와 런던 사이를 철 따라 왕래하며 개업의로서 그는 성공했다.

사회를 위해 전염병 질병을 연구하려던 꿈은 접었지만,

그 시절 수입이 짭짤한 통풍 질환을 연구해 돈 좀 벌었다나.

그러나 50세에 디프테리아에 걸려 인생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니.

안됐네.

 

미들마치 BBC 미니시리즈-로저먼드&리드게이트

 

아이 넷을 두었지만 여전히 빛나는 미모를 과시하는 로저먼드.

남편이 남긴 생명보험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나이는 많지만 돈 많은 다른 의사를 만나는 설정으로

로저먼드 가족의 이야기도 마무리된다.

 

 

그리고, 미들마치를 들썩거리게 한 우리의 도로시아와 레이디슬로 부부.

도로시아는 사회를 위해, 남편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 인물이라는 건 이제 다 아는 사실.

그 경향이 더 극대화 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레이디슬로는 말 그대로 열렬한 사회운동가가 되어 의회로 진출했다고.

도로시아는 아내로서 또 엄마로서의 정체성에 만족한 삶을 살았고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다며 일관되게 겸손했다는 사실.

(물론, 제부인 제임스 체텀 경은

도로시아의 초혼이나 재혼을 끝내 실패로 간주했다고 함)

 

미들마치 BBC 미니시리즈-윌&도로시아

 

도로시아의 초혼과 재혼,

즉 도로시아의 삶은 미들마치의 전설로 남아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토록 넘치는 정의감과 다정다감함, 그리고 선한 의지에 찬 인물이었지만

도로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은 19세기라는 시간 속에서는 한정돼 있었다.

조지 엘리엇은 이러한 도로시아의 삶을

아무리 내적 생명이 강렬할지라도,

그것을 에워싼 외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없다고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을 위해 변명한다.

 

그래도 도로시아에게는 외부를 향해 저항하기 위한 도구로 돈이 있었다.

치사한 전남편의 유산은 날아갔다 해도 큰아버지가 남긴 재산도 좀 있었고,

도로시아가 낳은 아들이 큰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았으니

대대로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받을 유산조차 없는 사람들에게(특히 여성들에게)

19세기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사회적으로는 영국 서프러제트의 목숨 건 투쟁으로

1928년에야 21세 이상의 모든 남녀에게 선거권이 주워졌다.

그 이전의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유령이나 투명인간이었던 셈.

공적인 이상향을 펼칠 기회조차 없었다는 소리이다.

언감생심 그런 꿈조차 못 꿨을 것이다.

  

그런 척박한 시절에

쾌적한 주거와 직업 교육, 의료 서비스 등등

지역 공동체를 품어 안는 주인공 도로시아의 등장만으로도

미들마치라는 상상의 도시는 내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내 유산으로 내 새끼나 내 집안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뭐가 문제인가.

 그런데 조지 엘리엇이 창조해낸 주인공은

지역 사회에 유익을 끼치고자 몸부림에 몸부림을 친다.

사랑 이야기에다 부부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듯 보이지만,

이들의 삶을 세팅한 사회와 구조를 향해 조지 엘리엇은

소설로 분명히 저항했다.

조지 엘리엇에게 존경어린 박수를 짝짝짝 보낸다!!!

조지 엘리엇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

그 많은 인물들의 캐미를 살려내는 깊이 있는 문장들,

무엇보다 소설가다운 냉철하고도 쫀득한 유머!

나는 완전, 정말, 진실로 추앙하는 바이다!!!

 

조지 엘리엇 & 로윅 주변 일러스트- by Caitlin Kuhwald

 

그래서 이 방대한 소설을 마무리하는 조지 엘리엇의 마지막 문장이

내 맘에 더욱 뜨겁게 와닿는 게 아닐까.

 

이 세상에서 선이 늘어나는 것은,

일부는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않는 행위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이 서로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은 이유의 절반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데서 신실한 일생을 보낸 뒤,

찾아오는 이도 없는 무덤에서 잠든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1413)

 

 

 

 최종 회 읽기 : https://bookinthegap.tistory.com/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