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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여성들/책 소개

<다시 만난 여성들> 책 소개

by 북인더갭 2024. 11. 25.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꿈꾸게 했고 또 다른 삶을 열게 했던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사유가 주는 공감과 감동을 기록한 에세이 『다시 만난 여성들』이 출간되었다. 저자 성지연은 자신의 삶을 개척한 28명의 여성들을 골라 다시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술가에서 사회·자연과학자까지, 정치가에서 소설 주인공까지 저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여성들의 저서와 평전 그리고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문학 작품 등을 다시 꺼내 읽으며 이들의 치열했던 삶이 전해주는 위로와 응원을 차분하게 되새겨낸다.


저자가 다시 만난 여성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잔 다르크에서 이태영까지의 ‘시대와 맞선 여성들’(제1부), 마리 퀴리에서 박래현까지의 ‘정신을 빛낸 여성들’(제2부), 제인 에어에서 김지영까지의 ‘삶을 사랑한 여성들’(제3부)이 그들이다. 쉰을 넘긴 이후 젊은 시절에 만났던 생의 멘토들과 이렇게 다시 조우하는 것은 뜻밖의 즐거움과 깨달음을 안겨주는 일이다. 『다시 만난 여성들』은 시대적 제약에도 꺾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간 여성들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시대와 맞선 여성들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미투 운동 이후 ‘백래시’와 ‘갈라치기’가 두드러져 왔다. 이런 상황 아래 제1부에서 저자는 베티 프리단, 수전 팔루디, 리베카 솔닛 같은 페미니스트들을 다시 만남으로써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돌아본다. 베티 프리단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저서 『여성의 신비』에서 전후 미국사회의 ‘행복한 주부’라는 상이 사회적 공모로 만들어진 신기루임을 비판하고, 여성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이런 신기루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을 찾음으로써 실질적 성평등을 이뤄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수전 팔루디는 1980년대 미국에서 불임, 우울증 등을 앞세워 일하는 여성들에게 가해진 뉴라이트의 반격을 ‘백래시’로 규정하고,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성평등을 무력화하려는 반페미니즘 성향이 도사리고 있다고 고발했다. 여성의 주체적인 발언을 가로막는 ‘맨스플레인’이란 말로 유명한 리베카 솔닛은 여성에 가해지는 남성의 다양한 폭력을 비판하고, 지속가능한 성평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모색했다.


시대적 제약에 맞선 이런 선구적 여성들을 모범 삼아 저자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주목한다. 여러 통계 자료는 우리나라의 성평등 현실이 아랍권 국가인 튀르키예에도 미치지 못하는 세계 최하위권 수준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리베카 솔닛이 강조하듯 페미니즘이 남성들의 권리를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 아님을 힘주어 말한다. “딸, 어머니, 아내가 평등하고 인간적으로 대우받는 것은 아버지, 아들, 남편이 바라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왜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지를 잘 표현한다. (제1부 2, 4, 5장)


페미니즘을 앞세운 건 아니지만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헤쳐나간 여성들 또한 저자는 눈여겨본다. 평화를 위해 깃발을 들고 전장으로 뛰어나간 국민영웅 잔 다르크, 예술의 사회적 참여를 감동적으로 전달한 가수 존 바에즈, 그리고 옳은 일과 좋은 일을 탁월하게 결합시킨 정치가 앙겔라 메르켈이 그들이다. 이들의 삶과 실천은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성장하는 여성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1부 1, 3, 6장)


저자는 시대적 제약에 맞섰던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 또한 펼쳐 보인다. 명성황후는 망국의 책임을 황후에게 돌리려 한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돼 왔지만, 한편으로는 당대의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속에서 외교적 균형감각을 지닌 인물로 평가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화가 나혜석은 우리 현대사에서 문제적인 인물이다. 가부장제가 강고했던 그 시절 나혜석이 도덕적 비난을 의식하지 않고 여성으로서의 자기 개성에 따라 살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선언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광복 후 197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유일한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이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인 여성들을 법적으로 변호했을 뿐 아니라 호주제 폐지 등을 통해 성평등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더없이 훌륭한 법조인이었다는 사실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제1부 7, 8, 9장)

정신을 빛낸 여성들
제2부에서는 정신을 빛낸 여성들과의 만남이 이어진다. 먼저 저자는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이뤄낸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마리 퀴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적지 않은 차별을 받았지만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며 20세기 최고의 자연과학자로 우뚝 섰다. 제인 구달 역시 아프리카 현장 연구가 어려움을 안겨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동물들을 연구하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함으로써 생물학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일궈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역사를 파헤치고 소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성을 이론화해 인간성 회복을 위한 정치철학적 기틀을 마련했다. (제2부 1, 2, 5장)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여성 학자들의 사상적 모험도 저자는 주목한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오늘날 사랑의 초상이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권력이 같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랑이 여성에게 불평등하고 아픈 것으로 다가온다고 진단한다.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21세기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과잉 경쟁, 작은 정부, 사회적 불평등 등이 우리 시대의 외로움을 낳게 했고, 이 외로움이 때때로 적대감을 강화시켜 극단주의 정치를 부추긴다고 분석한다. 이런 일루즈의 진단과 허츠의 분석으로부터 저자는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연대와 돌봄의 가치를 이끌어낸다. (제2부 6, 7장)


정신을 빛낸 인물들 가운데 여성 예술가들을 빼놓을 수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일상과 역사의 가치를 모두 소중히 하고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질문을 던진 시인이었다. 존재하는 것들의 경이를 일깨우는 쉼보르스카 시를 통해 삶을 긍정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메리 올리버는 삶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새로운 용기를 선사하는 시인이었다. 널리 알려진 시 「기러기」에서 볼 수 있듯 우리 인간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있다는 올리버의 발견에 저자는 지지를 보낸다. 화가 박래현의 삶 또한 이채롭다. 박래현은 몸이 불편한 남편 김기창 화백을 돌보면서도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적극적으로 일궈나간 화가다. 일과 가정의 양립과 균형을 자신의 생활은 물론 예술에도 반영한 박래현의 치열한 삶에 저자는 공감을 표한다. (제2부 3, 4, 9장)


오스트리아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는 정신의 또 다른 빛을 보여주는 이 책의 보석과도 같은 부분이다. 유럽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다음 우리나라 남해안에 위치한 소록도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한센병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돌본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우리 인간 가슴 속에 존재하는 선의를 증거한 인물들이다. 두 사람이 평생을 걸쳐 실천한 종교적 사랑이 흐트러질 수 있는 삶의 중심을 다잡게 해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2부 8장)

삶을 사랑한 여성들
제3부는 안네 프랑크를 제외하면 소설 속 여성들과의 만남을 다룬다. 저자가 쉰을 넘겨 다시 만나는 주인공들은 젊은 시절 첫 만남의 순간과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샬롯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에서의 제인 에어는 기구한 여성이라기보다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가는 여성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또 연인 로체스터의 부인 메이슨은 사랑의 장애물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남성주의의 피해자로 볼 수 있다고 재해석한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의 안나 카레니나는 가공의 주인공이지만 친숙한 인물이기도 하다. 결혼의 구속을 벗어난 사랑을 꿈꾸다가 불행한 결말을 맞는 안나 카레니나의 삶을 도덕적으로만 재단할 순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제3부 1, 2장)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에서의 앤은 자기 생각과 감정에 충실하며 자기 삶을 개척해간 활기찬 소녀다. 주인공 앤처럼 힘겨운 인생의 모퉁이와 마주치더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꾸어보라고 저자는 넌지시 권유한다.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는 허구가 아닌 실제의 인물이다. “내가 여자라는 것, 내면의 강인함과 무한한 용기를 지닌 여자라는 걸 나는 잘 알아!” 나치의 핍박을 피해 은신처에 갇힌 소녀 안네 프랑크의 외침만큼 이 책의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는 말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든 역경을 딛고 자신만의 의미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제3부 3, 4장)


패멀라 린든 트래버스의 동화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에서의 메리 포핀스는 신기한 마법사이자 당당한 유모다. 이 동화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담고 있고, 포핀스의 당당한 태도에서 순종적 여성관을 벗어난 당당함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사랑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주인공 테레자의 우연한, 그러나 운명적인 사랑을 다시 읽으며 저자는 통속과 순수가 공존하는 우리 시대에서의 사랑의 다양성과 주체성을 재발견한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여성의 가사노동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티타가 만드는 특별한 요리들은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의 다른 노동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제3부, 5, 6, 7장)


저자가 고른 우리 소설의 두 주인공은 박완서의 소설 『엄마의 말뚝』에서의 기숙과 조남주 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의 김지영이다. 기숙은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변화하는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어머니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저자는 이런 기숙의 삶을 성찰적으로 돌아봄으로써 모성에 지워진 짐을 넘어선 남녀평등이 실현된 사회를 꿈꾼다. 김지영의 삶은 어렵게 공부하고 취업한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사회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우리 사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김지영들의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요구되고, 여기에 더해 여성들의 응원뿐 아니라 남성들의 응원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저자는 역설한다. (제3부 8, 9장)


■ 차례

책머리에

1부 시대와 맞선 여성들

1. 잔 다르크, 나라를 구한 국민 영웅
2. 베리 프리단,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을 이끌다
3. 존 바에즈, 인권과 반전을 노래하다
4. 수전 팔루디, 백래시에 대한 적극적 비판 
5. 리베카 솔닛, 실현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여성해방
6. 앙겔라 메르켈, 여성 정치가의 모범
7. 명성황후, 긍정과 부정의 두 얼굴
8. 나혜석, 선각자의 고난과 용기
9. 이태영, 4천년을 기다려온 변호사

2부 정신을 빛낸 여성들

1. 마리 퀴리, 꺾이지 않는 마음
2. 제인 구달, 동물 사랑과 자연 사랑의 실천
3.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일상의 놀라움을 깨우다
4. 메리 올리버, 위로와 용기를 전하다
5. 한나 아렌트, 소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6. 에바 일루즈, 21세기 사랑의 사회학적 해석
7. 노리나 허츠, 외로운 세기의 경제학적 분석
8. 마리안느와 마가렛, 지상에 내려온 천사들
9. 박래현, 한국 미술의 삼중통역자

3부 삶을 사랑한 여성들

1. 제인 에어,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해
2. 안나 카레니나, 사랑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3. 빨간 머리 앤, 꿈을 잃지 않는 삶을 위하여
4. 안네 프랑크, 그럼에도 삶을 사랑하다
5. 메리 포핀스, 동화에서 걸어 나와 말을 걸다
6. 테레자, 사랑의 무게를 견뎌내기
7. 티타, 일과 사랑, 모두를 위하여
8. 기숙, 자기 이름으로 기억되는 엄마
9. 김지영,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