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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여성들/편집자 리뷰

<다시 만난 여성들> 편집자 리뷰

by 북인더갭 2024. 12. 9.

아침에 깨자마자 티브이를 켜는 일은 거의 없다.

눈 뜨자마자 핸드폰도 웬만해선 만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주는 예외였다.

내 거실에 예외상태가 난무했다.

나만의 변화는 아닐 것이다.

 

11월 말, 북인더갭은 신간 다시 만난 여성들을 펴냈다.

에세이스트 성지연 님의 성실하고 꼼꼼한 텍스트를 검토하면서,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많이 배웠다.

일단, 50대 중반의 같은 또래 필자님을 만나서 반가웠다.

또한 중년으로 떠밀린 당혹감을 읽는 이’,

독자의 정체성으로 돌파한 필자님의 내공도 인상 깊었다.

 

저자는 본문 속에서 나는 고독해요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동아>에 연재된 내용을 검토할 때부터

나는 묘한 느낌적인 느낌으로 성지연 님의 글을 읽었다.

아름답고도 치열한 삶을 살아낸

20명의 실존여성과 8명의 소설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찾아 읽으면서,

아마도 저자는 중년의 균열과 내면의 들끓는 파고를 스스로 돌아보았을 것이다.

담백하고 차분한 톤이지만,

한 꺼풀 뒤엔 부글부글 뭔가가 끓고 있다고나 할까.

 

나는 사실 늘 의문이었다.

왜 여성들은 안간힘에다 젖 먹던 힘,

심지어 죽을힘을 다해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고 평가받을까.

사람들 사는 것처럼, 헐렁하고, 다소 삐딱하고, 내 것도 챙기고,

내 삶을 만끽하며 살고 싶은 게 인간 아닌가.

그렇게 살기에도 인생은 짧지 않은가.

근데 왜 여성은 사회와 가정, 그리고 관계가 주는 긴장과 강요를

슈퍼우먼의 포스로 감내해야 하는가.

왜 뭔가 하나라도 더 포기하고 이를 악물고 버텨야 위대하다 추켜세우는가.

 

저자가 만나본 본문 속의 여성들도 분노와 고독, 좌절을

영혼 속에 갈아넣으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안 그러면 세상이 껴주질 않으니 방도가 없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어려서부터 칭송해온 퀴리부인 언니도

연구실에서는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당도 없이 그저 연구를 묵인해주는 현실을 존버했다.

탄자니아에 가서 침팬지를 연구하고 싶었던 제인 구달 언니 경우도 기가 차다.

그 당시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혼자 갈 수 없다는 당국의 지침에 따라

엄마와 동행한다는 조건 아래 연구를 시작했다.

화가 박래현 언니는 숨길 수 없는 천재적인 예술혼을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김기창의 아내라는 타이틀이 늘 앞섰다.

예술가의 고유한 창작물 앞에 누구 마누라라는 꼬리표는 왜 따라붙는가.

슬퍼서 좀 웃긴다.

얼마나 고독했을까.

 

이들의 고독을 저자는 피하지 않고 반복학습했다.

읽는 이의 내공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 고독 속에 길이 나는구나

나의 고독은 아직 멀었구나, 그들 덕분이었구나,

내가 지금 이렇게 떠들 수 있는 것도 전부다

 

서로 위로하고 존중하고 응원하지 않으면

인간은 외로워 죽는다.

같이 공부하고 질문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머리를 다친다.

끔찍스럽다.

 

읽는 행위가 저항의 시작일 수 있다.

성지연 님의 다시 만난 여성들을 한 꼭지씩 읽어가며

언니들의 삶을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다.

나라를 구한 잔 다르크 같은 어마무시한 전사부터

허구를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82년생 김지영까지,

위인도 아니고 위대한 명예남성도 아닌,

고독과 좌절 속에서도 날마다 저항하며 삶을 개척한

역사 속의 숱한 언니들을 저자는 함께 기억하자고

제안한다.

 

스스로가 초라해 보일 때, 사람들이 나만 공격하는 것 같을 때,

뒤처지지 않기 위해 허둥거릴 때,

그러다 결국 나만 당하는구나빡이 쳐서 다 뒤집어엎고 싶을 때,

그럴 때 스스로의 마음을 어떻게 리셋하는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

 

성지연 님은 아마 읽던 책을 놓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난 생각해보니,

괜히 세면대나 변기를 닦는 것 같다.

내다버릴 거 없나, 하며 서랍이나 장롱을 뒤지기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동네 익숙한 거리를 걷거나

열거하면서도 좀, 좀스러운 것 같다.

하지만 빡친다고 계엄령을 때리는 사람에 비하면야.

 

읽으며 사유하며 쓰며 외치며 서로를 응원하며,

올 겨울을 안전하게(!) 나길 바란다.

 

북인더갭의 올해 장사는 이 혼돈의 정국 속에서 일단 마무리하겠다.

물론 기다리시는 독자님들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좋은 책을 들고서

새봄에 찾아뵐 것을 약속드린다.

 

올해도 함께해주신 독자님들께

마음 깊이, 진심으로, 참으로 감사드린다!!!

우리 모두 머리를 다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