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이자 서평가로서 조지 오웰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책 『좋건 싫건, 나의 시대』가 출간되었다. 그간 소개되지 못한 오웰의 에세이와 리뷰를 선별해 번역한 책으로, 좌우를 떠나 시대와 예술이 품은 인간적인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 오웰의 시도가 돋보이는 산문집이다. 이념의 본질을 꿰뚫어보면서 도전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오웰의 산문은 극단적인 대립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전해준다.
탁월한 에세이스트, 오웰
조지 오웰은 『동물 농장』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등을 쓴 소설가이자 르포 작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에세이스트로서도 탁월한 작가다. 『나는 왜 쓰는가』 등 몇 권의 에세이집이 국내에 소개되었으나 중복된 내용이 많아 오웰 에세이의 폭넓은 세계를 감상하기엔 아쉬운 점이 있었다. 새롭게 선보이는 『좋건 싫건, 나의 시대』는 오웰의 4권짜리 방대한 산문 전집에서 아직 소개되지 않은 에세이와 리뷰 등을 선별해 번역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리라 기대된다.
에세이라고 하면 ‘수필’, 즉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이 장르를 처음 고안한 몽테뉴 이래 에세이의 원래 의미는 사유의 ‘시도’ 내지는 ‘실험’을 뜻한다. 그러므로 좋은 에세이는 한 개인의 도전적인 사유를 전개한 글이며 누구보다 실험정신 넘치는 사유를 전개했던 조지 오웰은 당대의 탁월한 에세이스트 중 한 명이었다.
1부에 실린 에세이들은 오웰의 대담한 구상을 담고 있다. 현 시대의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새로운 단어들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는 제안은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이상적이지만 현실 언어에 갇힌 우리들에게 흥미로운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준다(「새로운 단어」). 대중 연설에 구어체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참신하고 도전적이다. 정치권에서 울려 퍼지는 구호들은 얼마나 메마르고 이해하기 어려운가. 오웰은 정치 연설에 우리가 흔히 쓰는 ‘입말’을 도입하여 쉽게 대중에게 다가가는 언어를 만들 수 있음을 유쾌하게 조명한다(「프로파간다와 대중 연설).
사회민주주의와 유럽연방을 향한 구상은 이상주의자로서의 오웰의 면모를 더욱 잘 보여주는 글이다(「유럽연방을 향하여」). 오웰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 연방을 이루어 패권국과 맞서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구상을 제시하는데, 이런 구상은 후일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발전과 유럽연합(EU)의 탄생을 예견한 글이라 할 만하다. 놀라운 점은 오웰의 도전적 사유 뒤에는 늘 탄탄한 현실주의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방이라는 실험을 제안하면서도 그 실험이 제국주의의 한계에 머무는 것을 강하게 경계하는 태도(「흑인은 제외하기」)에서 우리는 균형잡힌 현실주의를 목격한다. 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소비에트 전체주의의 극악한 범죄를 눈감아줘선 안 되며 권력 추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형식의 과두제 불과하다는 지적(「파국적 점진주의」) 역시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에 발 딛고자 한 오웰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지난 세기 중반에 쓰인 글들이지만 오웰의 산문은 지금 읽어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오웰의 현재성은 도전적인 실험정신 덕분이기도 하지만 좌우의 이념을 떠나 인간적인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 노력도 큰 몫을 했다. 현재 세계 정치는 극우 세력의 부활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런 위기는 한국에서의 계엄 사태에서도 목격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본질을 깊게 사유한 오웰의 에세이는 큰 울림을 남긴다. 오웰은 극우 이념의 본질을 돈과 권력에 대한 추앙과 연약한 것들에 대한 혐오에서 찾는다. 시인 예이츠가 ‘소수의 손아귀에 집중된 부’에서 귀족주의의 영광을 소환할 때 그 이면에서 파시즘의 숨겨진 정체를 간파하는 장면은 압권으로 다가온다(「W. B. 예이츠」). 또한 극우는 몇몇 미친 사람의 선동의 결과가 아니라 혐오에 동조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다수의 심리가 결합된 결과라고 오웰은 일갈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은 혐오를 인정하지 않고는 파시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영국의 반유대주의」) 반유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과 히틀러에게 매료됐던 순간을 고백하기도 한다(「서툰 악인처럼 보였던 히틀러」).
위선을 넘어 인간적 목소리로
문학예술에 관한 에세이들에서 오웰은 시대와 예술 모두를 중요시하는 균형잡힌 태도를 유지한다. ‘시대’를 바라본 작가로서의 조지 기싱에 대한 평도 읽어볼 만하지만(「조지 기싱」) 제임스 조이스를 오로지 예술적 기법에 몰두했던 작가로 평가하는 글도 인상적이다(「『율리시스』에 대하여」). 결국 오웰이 견지하려 했던 것은 좌우의 이념을 떠나 예술적 기법과 시대적 내용 모두를 담아낸 문학이며, 이런 태도는 「유럽의 재발견」 「예술과 프로파간다의 최첨단」 같은 에세이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의 2부에는 오웰이 쓴 서평들이 실려 있다. 서평가로서의 오웰은 그간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오웰 특유의 아이러니한 비판정신은 서평에서도 돋보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왕성한 독서가로서의 오웰이다. 오웰은 멜빌, 스탕달, 엘리엇, 조이스 같은 대가들의 문학작품은 물론 전쟁이나 전체주의를 다룬 인문서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다. 오웰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을 피하면서 작품을 시대와 연결지어 분석한다. 가령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산업주의 이전 미국의 강인하고 새로운 정신을 읽어내며, 스탕달 소설의 주제를 계급혐오에서 찾기도 한다. 또한 아무리 대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비판적인 견해를 신랄하게 피력한다. T. S. 엘리엇의 후기 시들을 우울한 파시즘으로 후퇴해버린 시들로 비판하며(「엘리엇의 헛발질」) 위인 숭배에 감춰진 이기주의자로서의 칼라일의 면모 역시 가감없이 지적한다(「과잉된 명성에 가려진 이기주의자」).
오웰의 서평은 책 자체에 대한 평도 흥미롭지만 제국주의, 전쟁, 교회와 자본주의 같은 방대하고도 예민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 더욱 시사적이다. 특히 오웰은 진영의 가면을 쓰고 진실을 배반하는 위선을 뼈아프게 지적한다. 그런 위선은 전쟁을 대하는 시각에서 잘 드러나는데 우파는 대의를 따르는 척하면서 기득권을 지키려 하며 좌파는 이념에 몰두한 나머지 전체주의의 민낯을 외면하고 만다고 토로한다(「좌나 우나 전쟁을 준비하는 이유」). 오웰은 독재와 전제정치는 오래 이어질 것이며 자유를 갈구하는 인간 본성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전제정치가 주도하는 미디어의 강력한 영향력을 예언하면서 우리 사회가 언론, 교육 등의 집단 암시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전례 없는 독재자들」).
이 책의 옮긴이는 조지 오웰이 “오만 가지 스피커가 똑같은 소리를 낼 때 단 하나의 인간적인 목소리를” 낸 작가라면서 이 책을 통해 시대와 예술, 좌와 우를 아우르는 에세이스트로서의 조지 오웰을 만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