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학생 시절 조지 오웰에 관해서는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관심도 크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동물농장』이나 『1984』 같은 소설, 그리고 반공주의 성향을 가진 영국 작가라는 것 정도가 전부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중 속속 출간된 오웰의 르포와 에세이를 접하면서 필자의 시각은 180도 달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페인내전에 기자로 참여했던 헤밍웨이 정도를 용기있는 작가로 꼽던 필자는 스페인내전뿐 아니라 탄광촌, 런던과 파리의 밑바닥 생활까지를 두루 체험한 조지 오웰의 글을 보고는 상당한 감동을 받았다.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최하층 생활, 때로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장에서 오웰은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으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전체주의 모두를 고발하고 있었다.
20세기의 작가들 대부분이 지식인층에 속하며 대체로 관찰자의 입장에서 부르주아 세계를 비판한 것에 비해 오웰은 지식인이면서도 전쟁과 하층계급의 생활을 겪어낸 매우 드문 작가다. 몸소 체험한 바가 자연스럽게 글에 스며든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가령 탄광에 들어가 좁은 갱도에서 탄을 캘 때의 고통을 묘사한 장면(『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라든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하루하루 끼니를 때울 일용직을 찾아다니는 장면(『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현장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 아니면 쓰지 못할 생생한 묘사로 기억된다.
묘사만 생생한 것이 아니다. 오웰의 산문은 사유의 명징함으로도 깊은 인상을 준다. 정치와 문학예술을 다루는 에세이에서 오웰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비판할 것은 가차없이 비판하는 사유를 감행한다. 특히 스탈린주의와 친소련파들이 불러온 역효과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나 예술은 근본적으로 프로파간다에 다름 아니라는 과감한 선언 등(『나는 왜 쓰는가』)은 큰 울림을 남긴다.
우리에게 에세이라고 하면 보통 수필을 의미하며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글’ 정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장르를 처음 고안한 몽테뉴에 따르면 에세이는 사유의 ‘실험’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좋은 에세이는 내면의 풍경을 마음 가는 대로 풀어놓는 글이 아니라 시대의 여러 문제를 향해 도전적인 사유를 전개하는 실험이어야 한다. 조지 오웰은 온몸을 던져 시대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어떤 위선도 없이 시대의 문제와 대결했던, 실험 정신 넘치는 에세이스트였다. 이 책 『좋건 싫건, 나의 시대』에서도 에세이스트로서의 오웰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1년 전쯤 대학 도서관에서 오웰의 에세이 전집을 찾아냈다(Sonia Owell, Ian Angus ed.,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 1-4, A Harvest Book 1968). 총 4권으로 이뤄진 전집에는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에세이는 물론, 편지, 대담, 서평 등이 실려 있었다. 편집자이자 번역가로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우선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에세이와 서평을 중심으로 글을 선별했고, 지금 시대에 읽어도 손색이 없을 글들을 택하여 번역했다(필자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이 책에 실린 글들 중 4개(「자전적 메모」 「유럽연방을 향하여」 「유럽의 재발견」 「서툰 악인처럼 보였던 히틀러」는 한국에서 번역된 적이 있다. 하지만 절판 등으로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고 다시 소개해도 좋을 만한 현재적 의미가 있는 글들이라 이 책에 포함시켰다.).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에세이스트로서 오웰이 감행한 실험 정신과 비판 정신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1부에 실린 에세이들은 오웰의 대담한 구상을 담고 있다. 언어가 우리의 시대와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새로운 단어들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는 구상은 어찌 보면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이상적이지만 그 실현 여부를 떠나 현실 언어에 갇혀 있는 우리들에게 흥미로운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준다(「새로운 단어」). 대중 연설의 프로파간다에 구어체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참신하고 도전적이다. 연일 정치권에서 울려 퍼지는 구호 같은 언어들은 얼마나 메마르고 이해하기 어려운가. 오웰은 정치 연설에 우리가 흔히 쓰는 ‘입말’을 도입하여 쉽게 대중에게 다가가는 언어를 만들 수 있음을 흥미롭게 조명한다(「프로파간다와 대중 연설).
민주적 사회주의와 유럽연방을 향한 구상은 이상주의자로서의 오웰의 면모를 보여주는 글이다(「유럽연방을 향하여」). 오웰은 유럽의 민주적 사회주의 국가들이 연방을 이루어 패권국과 맞서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구상을 제시하는데, 우리가 목격하듯 이런 구상은 이후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발전과 유럽연합EU의 탄생을 예견한 글이라 할 만하다. 놀라운 점은 오웰의 도전적 사유 뒤에는 늘 탄탄한 현실주의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유럽연방이라는 실험을 제안하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그 실험이 제국주의의 한계에 머무는 것을 강하게 경계하는 태도(「흑인은 제외하기」)에서 우리는 그러한 현실주의적 면모를 목격한다. 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러시아의 극악한 범죄를 눈감아줘선 안 되며 권력의 추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형식의 과두제 불과하다는 지적(「파국적 점진주의」) 역시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에 발 딛고자 한 오웰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문학예술에 관한 에세이들에서 오웰은 시대와 예술 모두를 중요시하는 균형잡힌 태도를 유지한다. 영국 시인 예이츠의 귀족적이고 신비주의적 성향에 숨겨진 파시즘적 경향을 분석한 글도 인상적이며(「W. B. 예이츠」), ‘시대’를 바라본 작가로서의 조지 기싱에 대한 평도 읽어볼 만하다(「조지 기싱」). 오웰이 견지하려 했던 것은 좌우의 이념을 떠나 예술적 기법과 시대적 내용 모두를 담아낸 문학이며, 이런 태도는 「유럽의 재발견」 「예술과 프로파간다의 최첨단」 같은 에세이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의 2부에는 오웰이 쓴 서평들이 실려 있다. 서평가로서의 오웰은 그간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오웰 특유의 아이러니한 비판 정신은 서평에서도 유감없이 빛을 발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왕성한 독서가로서의 오웰의 면모다. 오웰은 멜빌, 스탕달, 엘리엇, 조이스 같은 대가들의 문학작품은 물론 전쟁이나 전체주의를 다룬 인문서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다. 오웰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을 피하면서 작품을 시대와 연결지어 분석한다. 가령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산업주의 이전 미국의 강인하고 새로운 정신을 읽어내며, 스탕달 소설의 주제를 계급혐오에서 찾아내려 한다. 또한 오웰은 아무리 대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신랄할 정도로 비판적인 견해를 솔직하게 피력한다. 그리하여 T. S. 엘리엇의 후기 시들은 개인에서 탈출해 우울한 파시즘으로 후퇴해버린 시들로 비판되며(「엘리엇의 헛발질」) 위인 숭배에 감춰진 이기주의자로서의 칼라일의 면모 역시 가감없이 지적된다(「과잉된 명성에 가려진 이기주의자」).
오웰의 서평은 전쟁, 전체주의, 제국주의 같은 지난 세기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흐름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본질적 측면들을 잘 간파한 덕분일 것이다. 오웰은 권력에 대한 추앙과 연약한 것들에 대한 혐오가 파시즘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인식한다. 그리하여 독재와 전제정치는 오래 이어질 것이며 자유를 갈구하는 인간 본성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전제정치가 주도하는 미디어의 강력한 영향력을 예언하면서 우리 사회가 언론, 교육 등의 집단 암시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전례 없는 독재자들」).
이 책을 번역하는 와중에도 유럽과 중동에선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민주주의 국가로 불리는 나라에서조차 극우 세력의 득세가 이어졌으며 심지어 대한민국에서는 계엄령이 포고되어 전 국민을 정신적 공황에 빠트렸다. 오웰이라면 이런 사태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아마도 몇명의 미친 지도자가 세상을 불행에 빠트렸다는 식으로 진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웰이라면 현대 사회가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먼저 바라보자고 제안했을 것 같다. 세상에 분노하긴 쉽지만 “오만 가지 스피커가 똑같은 소리를 낼 때 단 하나의 인간적인 목소리를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웰은 끊임없이 그런 목소리를 낸 사람이었고 이 산문집에서 누구라도 그 목소리를 듣는다면 옮긴이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좋건 싫건, 나의 시대』라는 제목은 이 책을 같이 편집한 김조을해 작가와 머리를 맞대고 지어본 제목이다. 이념과 성향, 계급과 종교, 성별을 떠나 오웰이 주목한 것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제부터는 히틀러만 파헤칠 것이 아니라 히틀러를 추앙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바라볼 일이다.
2025년 6월
안병률
안병률_ 옮긴이 소개
노안이 왔으나 숨겨진 텍스트를 찾는 데는 열심인 사람
원고를 마주하는 순간을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
연세대 독어독문학과와 동대학원 석사를 졸업했고
성공회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특성 없는 남자 1-4』 『곰스크로 가는 기차』 『차브』(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