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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는 위험한가/언론이 본 바그너

바그너가 위험하다고? 언론이 본 <바그너는 위험한가>

by 북인더갭 2012. 8. 21.

<한겨레> 8월 18일

바그너에 ‘파시즘 딱지’ 이의있소

철학자들 “통일성 강제” 비난에 바디우, 음악서 ‘불확실성’ 발굴

“총체성 분리된 순수예술” 재해석

 

19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꼽히는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사진)는 서구의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에게 줄곧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 주된 내용은 그의 음악이 독일 민족 신화에 대한 숭배와 고통에 대한 감상적 극화 등으로 파시즘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비판과 공격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필리프 라쿠라바르트는 <무지카 픽타>에서 “원(原)파시즘적인 정치의 미학화”라는 말로 바그너를 비판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급진주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75)는 <바그너는 위험한가>라는 자신의 책에서 기존 비판들과 다른 맥락에서 바그너를 재평가하자고 주장한다. <비미학> 등을 통해 진리를 만들어내는 절차로서 예술과 철학의 관계 등을 따져물어온 지은이는 바그너 재평가를 통해 현대 예술, 특히 음악이 오늘날 철학·이데올로기에서 차지하는 구실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펼쳐낸다.

 

바디우는 먼저 니체·아도르노 등 기존 철학자들이 바그너를 비난한 내용들을 두루 살핀다. 특히 아도르노가 <부정변증법>에서 제시한 예술관이 비판에 주된 근거를 제공한다고 본다. 아도르노는 차이를 무시하고 ‘일자’(the one)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동일성’ 논리를 비판했다. 곧 ‘아우슈비츠’ 같은 고통의 체험을 화해나 구원과 같은 어떤 ‘개념’으로 섣불리 연결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도르노를 비롯한 비난자들에게 바그너는 “대중에게 통일성을 강제하고 타자성을 녹여버린” 동일성 논리에 빠진 음악가다. ‘무한선율’ 등 인위적 통일성을 만들어낸 그의 음악 이론과 독일 민족 신화 집착에는 동일성에 대한 강요가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서사에 종속시키고 기술공학적 장치들을 동원해, ‘순수예술 종결자로서 총체화와 신화화, 기술공학적 효과에 의존하는 대중예술의 시작점이 됐다’는 비난도 따른다.

 

바디우는 이런 비난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에, “바그너 스스로도 몰랐던 두 번째 바그너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디우는 우리 시대에 순수예술이 부활할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그것은) 총체성의 미학화로서의 순수예술이 아니라 오로지 총체성에서 분리되는 한에서의 순수예술로서 새로운 유형의 위대함”을 말한다. 마치 영웅화 없는 영웅주의, 전쟁 패러다임에서 빠져나온 위대함같이 동일성 논리에 빠져들지 않은 새로운 위대함을 발견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관점에 따라 바디우는 바그너 음악 속의 역설들을 새롭게 찾아낸다. 바그너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에서 시인이자 음악가인 주인공 작스는 자신의 예술적 권위와 사랑하는 여성에 대한 우월한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지은이는 여기서 작스의 결심이 대본이나 서사 등 어떤 동일성 전개에 근거를 둔 필연적인 변화가 아니라, 음악 자체를 따라가며 만들어진 예측 불가능한 변화임을 주목한다. 이는 동일성 논리에 저항하는 바그너 음악의 한 성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경우 이졸데를 기다리는 트리스탄의 긴 기다림을 표현하긴 했지만, 결국 이졸데가 찾아오게 만들어 ‘구원’이라는 궁극적 피날레를 형상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이졸데의 도착에 트리스탄이 할 수 있는 일은 죽는 것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기다림의 해결이 아닌 기다림 자체를 보여준다고 반박한다. 곧 목적론적인 시간 구성만 있다는 아도르노의 비판과 달리, 바그너 음악 속에서 고통의 경험과 분열된 주체, 불확실성에 따른 변화 등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은이는 “바그너에겐 그 뒤에 포기된 어떤 새로운 스타일의 발명 같은 것이 있었다”며, “(그는) 여전히 미래의 음악을 대표한다”고 말한다. 그의 모든 것을 파시즘의 원조로 비난해 묻어버릴 것이 아니라, 총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했던 음악적 시도 등을 되살려 순수예술의 새로운 시작에 기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불가능 딱지가 붙은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해낸다는 차원에서, 바디우의 바그너 연구는 또다른 급진주의 정치적 기획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사상적 동지인 슬라보이 지제크 역시 책 뒤에 붙은 독립적인 발문에서 바그너 음악을 주체와 주인의 관계로 풀이한 독특한 ‘바그너론’을 펼치고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서울신문> 8월 18일

 

바그너 다시 보니 순수예술의 거장

 

독일 철학자 니체는 책 ‘바그너의 경우’에서 음악가 바그너를 두고 “바그너가 도대체 인간이란 말인가. 그는 오히려 질병이 아닌가. 그는 음악을 병들게 했다.”면서 독설을 쏴댔다.

 

20대 청년 니체가 50대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와의 첫 만남 이후 “그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탁월하고 신성한 존재”라 추앙했던 것을 생각하면 니체의 변심은 엄청난 반전이다. 명확하지 않은 신의 존재와 가치판단의 혼동을 겪으며 급기야 “신은 죽었다.”고 한 니체에게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 등 신화적 요소가 가득 담긴 오페라를 내놓는 바그너가 체질에 맞았을 리 없다.

 

새로운 독일의 시대정신을 만들려는 이상에 젖은 니체에게 바그너의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반유대주의 사상은 실망스러운 행보였다. 니체는 “내가 혐오하는 모든 것을 향해 바그너는 한 발짝씩 내려가고 있다. 반유대주의까지도.”(‘니체 대 바그너’ 중)라면서 바그너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후 새롭게 바그너를 숭배한 인물, 히틀러가 등장했다.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였던 배경도 작용했겠지만, 민중들이 열렬히 신봉하는 바그너의 음악은 히틀러가 지향하는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데 더없이 적절했다. 히틀러가 가두행진을 할 때 경건한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틀어 히틀러가 순례자이며 선지자라고 믿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이유로 철학자와 예술가 사이에서 바그너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면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다. 위대한 거장이거나 파시즘의 화신인 것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군이 베트남 해안마을을 폭격할 때 울려 퍼지는 ‘발퀴레의 기행’과 같은 파괴적인 제국주의적 음악이거나, 결혼식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결혼행진곡’처럼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바그너의 음악 성향과도 비슷하다.

 

모로코 출신으로 프랑스 철학계를 이끄는 알랭 바디우가 내놓은 ‘바그너는 위험한가’(Five Lessons on Wagner, 슬라보예 지젝 발문, 김성호 옮김, 북인더갭 펴냄)는 새로운 바그너를 꺼내든다. 바그너에게는 충분히 비판받을 만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바그너는 동일성의 원리에 빠진 전형적 음악가이고, 음악적 통일성과 총체성을 강제했다는 것이 대다수의 인식이다. 하지만 바디우는 바그너의 작품 속에서 총체성에 저항하는 표지, 완벽한 결말의 회피, 다수의 해석 가능성을 여는 경향 등이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또 바그너를 순수예술의 종말이라고 표현하지만, 오히려 총체성에서 분리된 순수예술로서 바그너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바디우는 키치와 할리우드식 스펙터클이 지배하는 시대에 맞서 니체, 하이데거, 아도르노, 라쿠라바르트에 이르는 서구 사상의 이론을 살피면서 바그너 상(象)을 재정립한다.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한 해 앞둔 시점에서 바그너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데도 좋다. 1만 65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경향신문> 8월 18일

 

나치 조력자 바그너에 대한 새로운 해석

 

리하르트 바그너는 위대한 음악가로 꼽히기도 하지만 파시즘의 화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바그너 스스로가 반유대주의자이기도 했지만, 훗날 히틀러가 바그너를 추앙함으로써 그 이미지는 굳어졌다. 나치 군대가 행군할 때,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학살할 때도 그의 음악이 쓰였다. 이런 바그너의 면모는 니체, 하이데거, 아도르노, 라쿠라바르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 예술가들에게 뜨거운 논쟁거리가 돼 왔다. 비판자들은 바그너의 오페라가 예술작품 내의 모든 차이를 통일성에 종속시켰고, 그것은 신화화된 독일 민족의 이념과 맞물리면서 나치 지도자들에게 전유당했다고 말한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알랭 바디우도 이 논쟁에 가세했다. 그는 바그너에게 쏟아진 비판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바그너 안에서 어쩌면 바그너 자신의 견해와 다를지도 모르는 동일성에 대한 저항, 분열된 주체의 옹호 등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거의 독립적인 완결성을 지닌 슬라보예 지젝의 발문도 함께 실렸다. 황경상 기자

 

 

<동아일보> 8월 18일

 

바그너 음악이 위험하다고? 순수 지키고 자유를 열었다

 

후기구조주의에 맞서 보편성과 주체를 강력히 옹호해온 프랑스의 노철학가 알랭 바디우가 가장 논쟁적인 클래식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미학을 새롭게 조명했다. 바디우는 ‘사도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보수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던 바울을 보편적 진리에 대한 신념을 실천한 주체적 사상가로 새롭게 조명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는 ‘순수예술의 종결자’ 내지 ‘닫힌 총체성의 예술가’로 비판받는 바그너에게서 ‘순수예술의 마지막 거장’이자 ‘총체성의 닫힌 구조에서 자유로운 열린 예술가’의 면모를 끌어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한국일보> 8월 18일

 

바그너를 위한 변명

나치 꼬리표 떼고 순수예술 거장 재평가

 

매년 여름 바그너 오페라를 상연하는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의 올해 개막작 주인공이 나치 문신 스캔들로 급작스레 물러났다. 바그너가 나치와 가까웠다는 세간의 평가 때문에 바그너의 후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바그너는 수많은 예술가는 물론 철학자들에게도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곡가다. 특히 아도르노를 비롯한 서구 철학자들은 바그너를 총체 예술의 원류이자 순수예술의 종말로 본다. 이에 프랑스의 영향력 있는 철학자인 바디우는 바그너에 대한 재정립을 시도한다. 그는 오히려 바그너를 총체성에서 자유로운 순수예술의 마지막 거장으로 평가한다. 저자가 다른 여러 학자들과 함께 연 바그너 관련 세미나의 자료를 모아 정리한 책으로 슬라보예 지젝의 발문도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김성호 옮김. 북인더갭ㆍ336쪽ㆍ1만6,500원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매일경제> 8월 18일

 

거장과 파시스트 사이, 바그너가 있다

 

바그너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파시즘의 화신`과 `위대한 거장`이라는 극단적 평가 사이에 있는 바그너를 철학적ㆍ예술적 시각에서 검토하고 재정립한다. 니체, 하이데거, 아도르노, 라크라바르트에 이르기까지 서구 철학을 통해서 바라보는 바그너는 어떤 인물일까. 아도르노를 비롯한 서구 철학자들은 바그너를 전형적인 동일성 논리에 빠진 음악가라고 평가했다. 반면 바그너를 순수예술의 마지막 거장을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탄호이저` 등 분열된 주체를 옹호하는 음악으로 순수예술의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북인더갭 펴냄.

 

 

<아시아경제> 8월 20일

 

◆바그너는 위험한가=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바그너 재정립에 도전한다. 바그너는 지금껏 파시즘의 화신과 음악적 거장이라는 극단적 평가 사이에 놓여 있었다. 바그너는 반유대주의자였다. 그를 숭배한 히틀러가 바그너를 나치 식 영웅주의로 전용하며 바그너는 더욱 논란의 대상이 됐다. 바디우는 니체와 하이데거, 아도르노 등 바그너를 두고 논쟁을 벌인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서양사상사를 검토하는 한편 바그너를 순수예술의 마지막 거장으로 정의하며 철학과 예술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내보인다. 철학계의 '슈퍼스타' 슬라보예 지젝이 발문을 썼다. 알랭 바디우 지음. 김성호 옮김. 북인더갭. 1만 6500원.

 

 

<서울경제> 8월 18일

 

■바그너는 위험한가(알랭 바디우 지음, 북인더갭 펴냄)=프랑스 철학의 거장인 저자가 '파시즘의 화신' 혹은 '위대한 거장'이라는 극단적 평가를 받아온 바그너에 대한 재정립을 시도했다. 바그너를 동일성 원리에 빠진 전형적인 음악가로 규정한 서구철학의 압도적 비판과 달리 저자는 그의 음악에서 다수의 해석 가능성을 열어두는 경향이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1만6,500원.

 

 

<헤럴드경제> 8월 17일

 

▶바그너는 위험한가(알랭 바디우 지음, 김성호 옮김/북인더갭)=하이데거, 아도르노 등 서구 철학이 바그너를 바라보는 시각은 상반된다. 대중에게 음악적 통일성을강제하며 차이를 없애버리는 작가이자 독일 민족의 신화와 공모한 원조 파시스트이며 고통을 감상적 스펙터클에 종속시키는 작가로 평가한다. 바그너의 경우, 한편으로는 미학적이고 철학적이며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이란 얘기다. 바디우는 바그너를 순수예술의 종말로 보는 견해에 다른 입장을 취한다. 오히려 순수예술의 마지막 거장이며, 그 점에서 ‘총체성에서 분리된 순수예술’로서의 바그너가 다시 호출돼야 한다며 그는 새로운 바그너를 그려낸다. 슬라보예 지젝의 발문도 실려있다.

 

 

<연합뉴스> 8월 16일

 

프랑스 철학을 이끄는 거장으로 평가받는 저자가 '파시즘의 화신' 혹은 '위대한 거장'이라는 극단적 평가를 받아온 바그너에 대한 재정립을 시도했다.

서구 철학은 바그너를 동일성 원리에 빠진 전형적 음악가로 규정해왔다.

음악적 통일성을 강제함으로써 차이를 부정하고, 나치의 독일 민족 신화에 봉사했다는 것이 주된 비난이다.

하지만 저자는 바그너에 대한 압도적인 비판과 달리, 그리고 심지어 바그너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의 음악에는 완전한 해결에 저항하는 표지들, 즉 다수의 해석 가능성을 열어두는 경향이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바그너를 순수예술의 마지막 거장으로 호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북인더갭. 336쪽. 1만6천500원. 임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