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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도 망하지 않아/착해도는 어떤 책?

지속 가능한 로망을 위하여 <착해도 망하지 않아>

by 북인더갭 2012. 11. 28.

<골목사장 분투기> 저자 강도현이

지속 가능한 로망을 꿈꾸는 이들에게 보내는 착한 경영 이야기

 

대한민국 자영업의 적나라한 생태계를 고발한 화제작 <골목사장 분투기>의 저자 강도현이 프랜차이즈에 지배당한 거리 구석구석에 숨은 동네카페들을 찾아 그들의 착한 경영에 숨겨진 비밀을 들려주는 신작 <착해도 망하지 않아>를 펴냈다. 전작에서 말하지 못한 대안과 해법 마련의 성격을 띠는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실무자들을 만난 현장기록으로, 자영업으로서의 ‘카페’ 날것의 모습과 카페 운영자들의 희로애락, 무엇보다 사회를 향해 강력하고도 착한 힘을 발휘하는 ‘카페’라는 위대한 공간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홍대를 나와 동네로 잠입하라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억대 연봉을 받던 저자가 카페 주인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카페의 로망을 이루기 위해서? 아니면 커피의 오묘한 맛과 향기에 빠져서? 둘 다 아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 이런저런 시민운동에 참여해오던 저자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적 목표를 추구해나가는 공간의 꿈에 사로잡혀 홍대앞에 카페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적자 내지 않고 좋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저자는 마침내 대망의 오픈을 이룬다. 그러나 무모한 시작에 대한 대가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문을 연 지 얼마 못 가 적자에 허덕였고 개인적으로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위기까지 체험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지막 SOS를 치는 마음으로 아무 친분도 없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트윗을 날렸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희망제작소의 컨설팅을 받게 된다. 컨설팅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우선 이득도 없이 임대료만 비싼 홍대에서 탈출하라는 것. 그리고 소셜카페로서 원래의 목표를 확립하라는 것. 마지막으로 이미 착한 카페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동네카페들을 방문하라는 것. 이제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저자는 두말 없이 홍대를 뒤로 하고 이 카페들을 찾아 ‘희망 기행’에 나선다.

 

인테리어나 부동산이 아니라 사람이다

큰길가의 좋은 상권에서 세련된 인테리어로 ‘품격’을 판다는 프랜차이즈 세상에서 과연 동네카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떠난 카페 기행에서 저자는 놀랍고 감동적인 카페들과 하나하나 마주한다. 제일 먼저 만난 곳은 수원 ‘우리동네’ 카페. 카페로는 대한민국 최초로 노동부에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우리동네’의 안병은 대표는 정신과 의사이면서 카페를 운영하는 독특한 경영자다. 이미 수원 일대에서 여러 직영점을 둘 정도로 성공을 거둔 안대표는 카페 창업의 제1순위로 인테리어나 부동산이 아닌 ‘사람’을 꼽는다. 결국 운영자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 인테리어도 정해지고 위치도 정해진다는 것인데 안대표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카페였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동네’는 독특한 인테리어로 마음이 아픈 분들의 쾌적한 일터가 돼주고 있다.

 

두번째 카페 ‘신길동그가게’는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윙(W-ing)센터에서 운영하는 동네카페다. 윙센터 최정은 대표는 사회복지단체가 해오던 자활 ‘프로그램’이 너무 지겨웠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인문학 공부하기. 수유너머 등의 도움을 받아 실시한 인문학 공부에서 이들은 ‘신체의 능동’(스피노자)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시혜에 기대지 않고 노동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만들기 위해 카페를 창업했다.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 어떤 자활 ‘프로그램’에도 변하지 않던 이들이 목소리를 높여 책을 읽기 시작했고 노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가 세번째로 소개하는 카페는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카페 ‘작은나무’다. 자본주의적 경영의 한계가 어느 때보다 부각되는 시기에 ‘작은나무’는 마을 협동조합이 어떻게 대안적 카페를 꾸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200명이 넘는 출자자들의 힘 덕분에 카페는 아이들을 돌봐줄 수도 있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또한 마을공동체의 각종 행사와 회의의 장소를 제공하고 편한 쉼터 구실을 하기도 한다. ‘작은나무’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위기를 견뎌낼 힘이 있고 그러면서도 공동이익을 감당할 수 있는 훌륭한 협동조합 모델이다.

 

착해도 망하지 않아, 고객과 나눌 이야기가 있다면

안산의 ‘행복한카페’는 개인이 꿈꿔볼 수 있는 소박함을 간직한 카페다. 이 카페의 진은아 대표는 애초에 장애인 고용이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복지관에서 일하던 진대표는 서비스를 제공할 뿐 실제적인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장애인 행정에 실망을 느껴 과감히 카페에 도전한다. 실제로 ‘행복한카페’에는 자폐증을 앓는 청년 용석군이 바리스타로 당당하게 근무하고 있다. 비록 말투는 어눌하고 행동은 느리지만 손님들은 용석군을 기다려주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이 책에는 그 외에도 공부가 거의 폭력의 지경에까지 이른 신도시에서 아이들에게 대안적인 쉼터를 제공하는 ‘커피마을’, 의정부 시장골목에 변호사 사무실 겸 카페를 운영하는 ‘동네변호사카페’, 유기농 식자재로 진심이 담긴 먹거리를 제공하는 카페 ‘이로운’, 어엿한 도시생태계의 일원인 길고양이를 함께 키우는 ‘책읽는 고양이’ 등 착한 경영이 빛나는 네 곳의 카페가 더 소개돼 있다(8장).

 

그렇다면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비자본적으로 살아남겠다는 야심을 품은 저자의 ‘카페바인’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저자가 착하게 살아남은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밝혀낸 비밀은 바로 스토리다. 저자는 아무리 쌓아도 불안하기만 한 ‘스펙’ 같은 인테리어 대신 쌓으면 쌓을수록 소통의 자산이 되는 스토리를 택한다. 강정마을을 위해 제주도로 떠나는 청년에게 비행기 삯을 지원하기도 했고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돕기 위한 ‘와락커피’를 판매했으며 투표를 마치고 인증샷을 찍어온 손님들에게는 커피를 반값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홍대를 탈출해 동교동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열었다.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프랜차이즈가 따라하지 못할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 타인을 향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스토리는 함부로 따라할 수 없다. 이 책은 착한 경영이 왜 강한 경쟁력을 갖는지를 카페의 경우에서 탐구한 경영서이자 지속 가능한 카페의 로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한번은 꼭 읽어야 할 지침서이다.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의 파고를 넘은 이러한 착한 공간이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인가. 새삼스런 말이지만 모든 건 사람이 한다. 그러니 카페도 커피머신이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착해도 망하지 않는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