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영혼과 정신의 신음
안병률
1999년 독일 뮌헨 문학의 집과 베르텔스만 출판사는 99명의 저명한 독일 작가, 비평가, 학자들에게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독일어 소설을 선정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33명씩 세 그룹으로 나뉜 전문가들이 각각 세 편의 소설을 선정한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독일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인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제치고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가장 많은 표를 얻어 1위를 차지한 것이다. 2002년 노르웨이 북클럽이 전세계 100명의 작가들에게 세계의 문명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책 100권을 설문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도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선정되었다. 무질과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들 중에는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DH 로렌스, 마르셀 프루스트, 카프카, 토마스 만, 루쉰, 톨스토이 같은 대문호들만 그 명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로베르트 무질이 20세기 세계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특히 『특성 없는 남자』는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20세기 현대문학의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무질은 생전에 이러한 명성을 한번도 누려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생애는 안타까울 정도의 궁핍과 불운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그런 불행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가 태어나기 4년 전 단 하나의 누이가 될 뻔한 엘자(Elsa)가 한살도 못 돼 사망한다. 이 사건은 무질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가 되어 평생을 따라다녔으며 여러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가정사의 불행은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무질의 어머니는 매우 복잡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아버지의 묵인하에 다른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평생 유지했는데 이는 무질의 유년과 청년기를 지배한 또하나의 깊은 그늘이 되었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무질의 생애에 닥친 최대의 불운은 『특성 없는 남자』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첫 소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을 발표할 때만 해도 그는 평단의 주목을 받는 유망한 젊은 작가였다. 고등군사학교 기숙사 생활의 체험을 소재로 삼은 이 소설에서 무질은 당시로서는 드문 소재인 동성애를 다룸으로써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이후 소설을 집필하면서 베를린대학에서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몇차례 교수직을 제의받는다. 그러나 교수직을 거절하고 1차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부터 『특성 없는 남자』의 집필을 시작해 죽을 때까지 이 미완성 대작에 매달린다. 1930년 베를린 로볼트 출판사에서 1권(1·2부, 1~123장), 1932년 2권(3부, 1~38장)이 연이어 출간되었고 언론과 평단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이번에는 시대가 발목을 잡았다. 때마침 정권을 잡은 나치가 그의 작품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판매금지시킨 것이다. 그나마 평단에서 나오던 반응마저 시들해졌고 그의 작품은 대중에게 잊혀져갔다. 이후 무질은 급격한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고 나치를 피해 스위스로 거처를 옮긴 후에도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결국 1942년 뇌졸중으로 제네바에서 숨을 거둔다. 『특성 없는 남자』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생전의 유고를 수합한 전집이 편집자 아돌프 프리제(Adolf Frisé)에 의해 출간되면서부터였고, 이후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면서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무질의 유고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오직 디지털 상태로만 그 전부가 정리돼 있다고 한다.
사유와 소설
무질은 오스트리아 작가지만, 그가 태어날 당시 소속된 나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1867~1918)이었다. 이 나라는 ‘카카니엔’(Kakanien)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불렸다. 『특성 없는 남자』를 이해하는 데 카카니엔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잠깐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무질이 이 소설 도입부(8장)에서 언급하듯이 카카니엔에는 ‘황제-왕실의’(kaiserlich-königlich) 또는 ‘황제의 그리고 왕실의’(kaiserlich und königlich)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독일어에서 k는 ‘카’로 발음되는데 말하자면 이 나라는 두개의 k(카)로 돼 있어 카카니엔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독특한 역사 때문인데 이 제국은 오스트리아 황제와 헝가리 귀족이 타협한 결과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의 국왕을 겸임했던 것이다. 흔히 이 제국이 이중제국이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그러니까 『특성 없는 남자』는 단순히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아니라, 헝가리와 체코, 세르비아, 보스니아 등지를 아우르는 중부유럽의 거대한 제국이 1차세계대전으로 몰락하기 직전의 마지막 몇년을 그린 소설인 것이다.
실로 이 제국은 다양한 사상과 이데올로기로 들끓는 용광로 같았다. 특히 소설의 주무대인 제국의 수도 빈(Wien)은 봉건적 귀족주의와 시민계급의 자유주의, 한창 대두되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독일식 군국주의와 반유대주의가 도시 전체를 감싼 사상의 집합소와 같은 곳이었다. 또한 이 수도를 중심으로 타오른 학문과 문학예술의 불길은 세계적인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우선 맑스와 쌍벽을 이루는 현대사상가 프로이트가 빈에서 활동했으며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 과학철학자 에른스트 마흐, 클림트와 실레 같은 화가들, 쇤베르크를 필두로 한 음악가들, 마르틴 부버와 같은 신비주의자들까지 이 도시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과 예술인들을 배출한 장소이기도 했다. 이른바 세기의 천재들이 모인 도시 한가운데 바로 무질이 있었고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시도들은 무질의 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성 없는 남자』를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마땅한 ‘사유(思惟) 소설’이라는 특징 역시 이러한 빈의 들끓는 사상적 풍경과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특징은 그저 사상에 대한 소설의 대응이 아니라, 철저하게 의도된 하나의 실험적 시도로 보아야 하다. 무질의 소설에는 당대의 사유들, 즉 과학철학과 심리학, 생철학, 군국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성찰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특히 주인공 울리히는 이 모든 사상들에 맞서는 ‘사유의 영웅’이라 할 만한데, 이는 전시대의 주인공들을 특징짓는 ‘행위의 영웅’에 비하면 매우 낯설고 독특한 캐릭터였다. 무질의 지지자이자 체코 태생의 현대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특성 없는 남자』의 새로운 시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설의 역사에서 사유가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작품은 없었다. 무질은 소설가인 동시에 위대한 사상가였다. 『특성 없는 남자』에서 그의 사유는 당대의 인물, 사회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의 사유는 여러 학문을 답사해 나온 그런 답답한 지식이 아니라, 현실의 실존적 측면에 집중한 결과였다. 한마디로 독특한 소설적 사유였던 것이다.( 「나의 20세기 책」, 『차이트』 1999년 1월 21일자)
여러 학문과 사상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이 그저 박식함에 그쳤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세계적인 명성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명성은 무질이 어떤 사상이든 그것을 당시의 인물과 그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매우 생생하게 그려낸 덕분이었다. 이런 소설적 특징을 일컬어 무질 스스로는 ‘에세이즘’(Essayismus)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에세이의 참된 의미는 “학자의 연구실에서 떨어져나온 부스러기 같은 논문과 논설들”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삶이 결정적인 사유를 통해 추론해낸 단 하나의 변할 수 없는 형식”(2부 62장)이다. 무질의 작품 도처에서 우리는 이런 ‘결정적 사유’의 흔적을 발견한다. 가령 역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사유를 보자.
우리는 이런저런 사건이 역사에서 이미 자리를 잡았다거나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 사람들은 마치 신문이 그렇듯이 일어난 일을 그때마다 적어두거나, 그 일이 자신의 직업이나 재산 문제에 관련된다는 확신이 없으면 역사에 대해 뭐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은퇴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 어느 때가 되면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 같은 것이 더없이 중요한데다 전쟁조차도 그런 맥락 속에서야 기념할 만한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2부 38장)
무질의 사유가 놀라운 것은, 그것이 학술논문의 엄정함을 간직해서가 아니라 삶 속의 매순간에서 현대사회의 특징을 날카롭게 간파하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은 현대세계의 추상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대는 모든 것들을 빨아들여 개인과 집단의 실제 삶과 상관없는 무시무시한 추상체계로 바꿔놓는다. 가령 이제는 전쟁조차도 한 집단의 의지가 아니라, 증권시장의 그래프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무질은 역사의 이런 추상적 진행을 ‘그렇고 그런 일이 벌어지다’(Seinesgleichen geschieht)라는 2부의 제목으로 압축했는데, 이는 어떤 사건도 구체적인 삶으로 체험하지 못하는 동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질의 이런 사유가 이미 모더니즘 시대를 넘어서 후기자본주의 사상가들의 사유를 선취했다는 점이다. 인용된 부분은 아마도 기든스(A. Giddens) 같은 사회학자의 ‘추상체계’라는 개념과 잘 어울릴 것이다. 모오스브루거라는 살인범을 통해 법과 제도의 규율적 측면을 비판하고 광기의 인간적인 면모를 옹호한 무질의 사유는 푸코(M. Foucault)의 문제의식을 선취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현실 인간’에 대립되는 ‘가능성 인간’에 대한 추구, 그리고 ‘다른 도덕’을 향한 무질의 실존적 모험은 들뢰즈(G. Deleuze)의 ‘분열된 주체’와 ‘탈주를 향한 욕망’에 앞서 나온 것이었다.
영혼과 정신의 불완전성
현대소설사에서 『특성 없는 남자』가 차지하는 장르적 위치를 ‘에세이적 소설’, 즉 하나의 독창적인 ‘사유 소설’로 볼 수 있다면, 주제적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영혼과 정신의 불완전성’이 될 것이다. 거대 제국 카카니엔의 시대적 운명은 두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그 하나는 민족주의의 발호에 따른 1차세계대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종주의, 군국주의가 결합된 파시즘이었다. 1차세계대전은 카카니엔의 황태자 페르디난트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게 피살되면서 시작됐으며, 나치 총통 히틀러 역시 카카니엔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세계 지성과 문화의 집합소라는 제국의 수도 빈이 이러한 파국을 막지 못했던 것일까? 남아공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존 쿠체(John Coetzee)는 『특성 없는 남자』가 유럽 자유주의의 몰락을 파헤치면서 파시즘의 대두를 예견했다고 평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그렇게 많은 사상과 문화에도 불구하고 왜 유럽이 야만 상태로 빠져들었는지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파시즘에 관한 수많은 연구들과 구별되는 무질의 독특한 관점은 바로 ‘영혼과 정신의 불완전성’을 날카롭게 지적해낸 데 있다.
이 소설의 1, 2부의 핵심에는 ‘평행운동’이라는 애국주의운동이 자리잡고 있다. 카카니엔 황제 즉위 70주년을 기념하여 주변국에 평화의 의지를 알리자는 취지의 이 운동은 물질의 세계의 맞서 구질서를 회복하자는 영혼회복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 취지는 사라지고 운동의 주위로 하나둘 모여든 엘리트들의 서로 다른 입장만이 남게 된다. 시민계급 출신이자 고위관료의 아내인 디오티마에게 평행운동은 ‘위대한 오스트리아의 문화’를 통해 물질문명의 나락으로 떨어진 세계에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살롱에 모여든 다종다양한 사람들은 그저 전문가들일 뿐이었고, 현실세계에 대처할 아무런 구체적인 대안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평행운동의 창시자 라인스도르프 백작은 민중의 제안이 황제에게 전달되는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군주국을 꿈꾼다. 그러나 그렇게 쏟아져나온 제안들은 자기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뿐이었으며, 결국 모든 제안들은 관료의 서류더미 속에서 방치되고 만다. 또한 그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프로이센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스며들어 있는데, 이는 언제라도 평행운동의 방향을 군국주의로 전환할 수 있는 폭탄 같은 것이었다. 세계역사에는 어떤 오류도 있을 수 없음을 주장하는 이성주의자이자 거대기업을 소유한 자유주의의 화신 아른하임은 또 어떠한가? 프로이센 출신인 그에게 평행운동은 분명히 어리석은 짓이지만, 그는 사유를 권력의 장에 끌어들이려는 야심을 품고 이 모임에 합류한다.
울리히에게는 이 모든 영혼과 정신의 움직임들은 그저 불완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비록 아름다운 영혼과 정신의 외양을 걸치긴 했으나 평행운동은 ‘불충분한 근거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며, 그래서 역사진행의 과정을 촉진시키는 촉매의 작용은 할지언정 전쟁이 될지 평화가 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울리히는 영혼과 정신이 모자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과잉이 문제라는 점을 확실히 알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은 계몽주의를 거쳐 정신의 우월함을 주장했고 그것을 문명의 우위로 입증한 유럽인들에게는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울리히는 당대의 정신이 처한 상황을 아래와 같이 웅변한다.
그러던 어느날 울리히는 그 희망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축구장이나 권투 링에서의 천재들이 이야기되기 시작했고, 단 하나의 하프 백이나 테니스 선수가 잘 보도되지도 않는 열명의 발명가나 테너, 작가들보다 더 나은 시절이 돼버렸다. 그 새로운 정신은 자기자신을 확실히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울리히는 어디선가 ‘천재적인 경주마’라는 기사를 읽었는데, 그 말은 마치 익기도 전에 떨어져버린 과일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1부 13장)
무질이 보기에 바로 이런 것이 현대가 처한 상황이었다. 디오티마가 말끝마다 주장하는 ‘위대한 이상’은 새롭고 천재적인 사상이나 예술을 수용하고자 하지만, 이미 경주마 한마리가 ‘천재’로 대접받는 시대에 그런 사상과 예술은 끊임없이 ‘소비되는 전율’ 이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정신의 불완전한 과잉상태는 모오스브루거라는 살인범을 처분하는 사회적 시스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끔찍한 살인범은 우선 언론에 의해 집중적인 관심을 받다가 대중적인 관심이 흐려지면 전문가들의 손에 넘어간다. 그 결과 법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이 살인범을 놓고 자기영역의 우수함을 다투지만 그 어느 영역도 모오스브루거의 내면에 자리한 광기의 의미와 범죄의 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
결국 이 딱딱한 전문가 사회에서 정신의 과잉은 오히려 대중의 의식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말았다. 무질은 이들 전문가 집단을 향해 끊임없이 신랄한 야유를 퍼붓는다. 그 야유는 무엇보다 ‘특성’을 향한 비판이었다. 서구 역사에서 ‘신’을 대체한 이 특성은 ‘자아’ 또는 ‘주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주체’들이 인류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전쟁과 학살에 참여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재앙은 무질이 살았던 카카니엔에서의 짧은 자유주의 시대가 끝나고 곧바로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한복판을 지나 누구도 예상치 못할 역사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는 또 어떤 재앙을 준비하고 있을까? 무질이 지금 살아서 백년 전이나 다름없이 대책없는 질주를 거듭하는 인류를 본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정신과 영혼의 신음에 귀를 기울이고 좀더 정확한 영혼에 다가서려는 무질 같은 사람들, ‘특성 없는 사람’들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20대 후반 대학원 시절 무질을 처음 접하고 그 소설적 깊이에 압도된 역자는 그때부터 공부삼아 이 소설을 조금씩 번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생의 기로에서 번역자나 연구자가 아니라 편집자라는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에 번역은 계속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늦게나마 작은 결실을 맺게 돼 흥분되는 한편 독자들을 향한 두려움도 앞선다.
이번에 독자들께 선보이는 『특성 없는 남자』 1차분 1, 2권은 1930년 처음 발간된 소설 1권의 83장까지를 번역한 것이다. 사실 이런 형태의 두권짜리 번역본을 내기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우선 1차분을 먼저 내게 된 계기는 전체 소설의 분량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다. 전집의 유고를 빼더라도 거의 1천여 페이지(번역원고로는 2천여 페이지)에 이르는 소설을 한꺼번에 내기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고, 사실상 미완성 소설인데다 스토리보다는 한장 한장의 사유가 더욱 돋보이는 소설을 꼭 한꺼번에 낼 필요는 없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에서 중간결산을 해야지 앞으로의 번역작업을 이어나갈 힘과 용기가 생기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차분을 굳이 두권으로 나눈 것은 좀더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서였다. 많은 분량을 한권으로 낼 경우 독자들의 심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가급적 각권의 분량을 가볍게 하여 누구라도 쉽게 독파하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두권이 힘들다면, 단 한권만 읽어도 큰 울림을 줄 수 있겠다는 희망섞인 기대도 있었다.
번역 원서로는 아돌프 프리제가 편집한 로베르트 무질 전집(Gesammelte Werke, Rowohlt 1978)을 사용했다. 워낙 묘사와 서술이 치밀한 작품인데다 무질의 사유를 하나하나 따라가기에도 벅찼기 때문에 작품에 스며든 작은 숨결까지 잡아내기에는 실력이 모자랐음을 고백한다. 미국에서 먼저 나온 훌륭한 번역본인 The Man without Qualities(Sophie Wilkins 번역, Vintage 1995)에도 많은 신세를 졌음을 밝혀둔다. 초판에서 부족한 부분은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면서 좀더 나은 번역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아울러 10여년 전 어리숙한 대학원생에 불과했던 역자에게 용기를 주시고 번역 초반작업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던 안소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또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번역작업 내내 격려해주면서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듬어준 소설가 김조을해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늘 친구 같은 성건이는 아빠의 첫 번역소설 『곰스크로 가는 기차』(2010)의 팬이 돼주었는데 이번 소설도 좋아해주었으면 좋겠다.
부디 이번 번역으로 한국에서 로베르트 무질이 그 명성에 걸맞은 평가를 받기를 기대한다. 또한 한국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기를 소원하며, 2차분도 최선을 다해 곧 찾아뵙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