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여성신학자 엘리자베스 A. 존슨이 현대 신학의 개척지를 탐험한 책이다. 엄격한 학문을 추구하는 대신 좀더 폭넓은 독자들의 신학적 교양을 위해 씌어진 책으로 정치, 성, 인권, 생태 등 우리가 마주친 현실에서의 신학을 탐구한다. 오늘날 다원화되고 세속화된 세계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발견하기 위해 씌어진 이 책은 올바른 신학과 영적 리더십을 갈망해온 독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역작이다. 출간 후 미국주교회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는 파장을 겪었지만 신학계와 독자들로부터는 찬사를 받았고 신학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지난 2011년 3월 미국가톨릭주교단은 이례적인 성명을 발표한다. 미국 포덤대학 신학과 교수이자 미국가톨릭신학회 회장을 역임한 저명한 여성신학자인 엘리자베스 A. 존슨의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Quest for the Living God)가 교회의 교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중등학교 및 대학에서 읽혀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다(『뉴욕타임스』 2011년 3월 30일자). 이는 사실상 주교단이 신학자의 저서에 금서(禁書) 처분을 내린 것으로, 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주교단의 처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신학자들의 폭넓은 지지는 물론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기에 이 책은 미국 신학계를 뒤흔들며 일약 베스트셀러로 뛰어올랐을까? 사실 존슨이 진보적인 여성신학자로 활약하기는 하지만, 정치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생태신학 등 현대 신학의 개척지를 다룬 이 책에 정통 교리를 해칠 부분은 전혀 없다는 게 신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오히려 이 책은 홀로코스트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했을까, 하나님은 왜 어머니가 아닐까 같은, 평신도들이 궁금해할 만한 신학적 질문들에 대한 깊이있고 명석한 해답으로 가득하다.
인간의 고통 앞에 신은 무엇을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저자는 신은 하늘에 거주하며 인간의 고통에 참여하기를 거부한다고 주장해온 현대 유신론을 먼저 비판한다. 이같은 시각에 맞서 저자는 정치신학의 토대를 놓은 칼 라너(Karl Rhaner)의 이론에 주목한다. 라너는 세속적 상황에 놓인 인간의 본성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인간의 내면에는 언제나 현재를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라너에 따르면 이런 열망은 하나님과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늘 갈구하고 질문하는 존재로 창조함으로써 형언할 수 없는 신비에 이끌리는 피조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신비가 인간의 영혼과 맞물려 있다는 게 우리가 신을 이야기할 때 잊어서는 안될 대전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1~2장)
이런 전제가 놓이자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된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학살 앞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했는가? 신은 인간의 고통을 외면할 뿐인가? 그 대답은 유럽의 폐허를 자초한 독일에서 활동한 세명의 신학자들에게서 나왔다. 위르겐 몰트만과 도로테 죌레는 예수의 십자가에 주목한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현실의 고통에 끝까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죌레는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일부가 될 때, 또한 타인에게 가해지는 모든 부당한 고통에 저항할 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요한 밥티스트 메츠는 그럼에도 이 고통이 미화되어서는 안되며 오직 십자가를 기억하듯이 모든 고통을 기억하고 연대하며 슬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고통에 대한 기억, 저항, 그리고 애도는 파토스의 하나님이라는 선지자적 전통을 되살리면서 유럽 정치신학의 핵심이 되었다. 정치신학은 역사의 핍박을 받은 자들은 그저 죽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다시 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3장)
두번째 질문 역시 비통하게 시작된다. 매일 2만 5천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하는 비참한 세계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는가? 이 질문에 처음 대답한 이들은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에 의해 ‘해방신학’이라는 새로운 개척지가 제3세계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 신학의 성서적 근거는 하나님이 만물의 번성을 원하시며 그렇기에 이런 번성을 방해하는 모든 상황을 미워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더 사랑하시는데,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착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이 비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가난과 비참은 하나님의 창조가 상처받았음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교회와 신도는 경제구조의 정의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해방신학은 강조한다.(4장)
한편, 사회는 물론 교회 안에서까지 뿌리깊은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대답을 주셨을까? 이 문제를 다뤄온 여성신학은 우선 남성 하나님으로 굳어진 이미지를 무너뜨리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무심코 하나님을 그(He)로 말하고 하늘에 계신 권위의 왕으로 상상할 때 하나님의 모습은 또하나의 우상이 되고 만다. 세상에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며 번영을 갈구하는 하나님의 모성이 회복될 때만이 여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체험된다. 그때에 여성은 더이상 ‘제2의 성’으로 차별받지 않으며 교회에 깊게 스며든 가부장제와 결별할 수 있고 평등한 제자도를 이루기 위한 소명에 헌신할 수 있다.(5장)
어머니이자 흑인이신 하나님
‘남성 하나님’이 하나의 우상이라면, ‘백인 하나님’은 어떠한가? 오랜 세월 박해와 차별 속에서도 미국의 흑인들은 해방의 선물을 주실 하나님을 갈구해왔다. 이는 출애굽 사건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그들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었으며 비밀예배와 흑인영가 속에서 면면이 이어져왔다. 흑인신학은 억압받고 소외된 자들의 편인 하나님이 결국 흑인들의 편이 되어주실 것을 믿었으며, 이 믿음 가운데 하나님은 검다는 상징을 발전시켰다. 여기서 하나님이 검다는 것은 하나님이 억압된 상황을 취하시고 그것을 자신의 상황으로 만드신다는 뜻이다. 이는 흑인들의 자기애에 큰 영향을 끼쳤고 흑인 해방신학을 통해 스스로 노예의 사슬을 끊는 길에 나서게 했다.
(6장) 여성이나 흑인, 가난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구상에 가난한 생명으로 존재하는 생태계 역시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그에 걸맞은 사랑을 받아 마땅하다. 생태신학은 인간의 탐욕이 빚은 생태적 파괴에 맞서 인류를 넘어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연대를 확장시킨다. 우리는 인간에게만 쏠려 있던 윤리적 관심을 모든 생명집단에 돌려야 하며,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전체 생명집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8장)
오늘날 교회에 다른 종교만큼 민감한 주제는 없을 것이다. 믿지 않는 이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타종교인들에게 구원은 있을까,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도 늘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 문제에 관해 특히 가톨릭은 비신자와 타종교인의 구원 가능성을 폭넓게 인정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문서(「주님이님 예수님」 2000)에서는 예수를 떠난 성령에 구원의 가능성은 없으며 타종교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지적했다. 저자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타종교에 결함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 논리적 오류일 뿐 아니라 상대 종교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며 이를 비판한다. 아울러 상대 종교의 영적 세계를 몸소 체험해보고, 교리를 통해 대화를 나누며, 사회적 문제에 연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에 합당하다고 주장한다.(7장)
이 책의 역자이자 『욕쟁이 예수』 등을 발표하며 대안적인 영성운동을 펼쳐온 박총 작가는 “현대 신학과 하나님에 대한 성찰을 다룬 저작 중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이 책을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