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10월 12일자
[책과 삶]역사와 현장 속에서 ‘살아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라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엘리자베스 존슨 지음, 박총·안병률 옮김 | 북인더갭 |
서영찬 기자 akirame@kyunghyang.com
책은 약자, 가난한 자 그리고 고통받는 자에게 시선을 두면서 하나님을 성찰한 신학적 탐구이다. 여성 신학자인 저자는 현대 유신론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현대 유신론은 이성주의에 경도되고 신을 인격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근원은 자연과학이 득세하고 세속화하면서 기독교가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한 데 있다. 기독교는 방어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명료한 관념으로 객관화하려 애썼다. 이런 태도는 결국 기독교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을 언어나 이미지로 규정할 수 없는 ‘불가해한 신성한 신비’로 정의하며 현대 유신론을 비판한다. 이를 위해 ‘살아 있는 하나님’(원제는 <Quest for the Living God>이다)이라는 신학적 명제를 도출한다. 이는 고착화, 정형화된 하나님 이미지에 반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어두운 실험실에서 원자 같은 것을 발견하듯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며 “그렇게 발견한 이미지는 우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하나님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신성한 신비를 베푸는 존재이다. 따라서 역동적이고 호혜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정치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등에 주목한다.
홀로코스트는 무신론보다 더 심하게 믿음을 위협한 사건이었다. ‘왜?’라는 물음 앞에 기독교는 당혹해 하며 제대로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몸소 체험한 3명의 독일 신학자는 이 질문과 맞섰다. 이들은 인류의 고통을 직시하며 십자가의 의미를 재발견했다. 이 같은 종교적 분투 과정에서 탄생한 정치신학은 개인주의와 평화주의에 물들어 고통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한 기독교단에 경종을 울렸다. 저자는 타인의 고통에 등 돌리지 않는 게 진정한 크리스천의 자세라고 말한다.
킬링필드, 인종청소, 르완다·수단에서 벌어지는 학살극 등 인류의 고통은 끊임없다. 학대와 차별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십자가는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 세워지고 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이란 역사와 현장 속에서 십자가를 재발견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타 종교를 포용하자는 다원주의자이기도 하다. 크리스천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서 ‘살아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라고 말한다. 그는 진화론마저 포용한다.
전통주의자가 들으면 표정이 굳어질 내용이 적잖다. 가령 ‘하나님은 왜 여성이나 흑인이면 안되는가’라는 대목이 그렇다. 로마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 그림의 주인공은 젊은 백인 남성인데 이는 남성 하나님의 이미지를 낳았다. 이 그림에는 인종, 계급, 성 차별이 반영돼 있다. 기독교의 통념으로 자리잡은 여성혐오와 ‘지배하는 남성 하나님’ 이미지는 우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하나님은 한없는 모성, 즉 여성의 면모도 지녔음을 역설한다. 살아 있는 하나님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심도 있는 고찰과 설득력을 갖춘 이 책은 미국 내 많은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되는 등 인기를 얻었다. 그 때문일까. 2011년 미 가톨릭 주교회는 책의 일부 내용이 교리에 어긋난다는 성명서를 냈다. 사실상 금서로 지정된 상태다. 하지만 적잖은 신학자와 독자들이 저자를 지지하며 논쟁을 촉발했다.
<매일경제> 10월 12일자
"하느님은 왜 인간을 시험하나"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 엘리자베스 A. 존슨, 박총 등 옮김 / 북인더갭 펴냄
"아버지,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아버지 하느님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2차 세계대전 도중 나치는 유대인이라는 이름만으로 600만명을 대학살했다. 이 가운데 100만명은 어린 아이들이었다. 무자비한 대학살이 잔행됐을 때 하느님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전지전능한 신이자 사랑으로 가득 찬 존재인 하느님은 왜 인간의 고통을 멈추고 싶어 하지 않는가.
전통 신학의 관점에 따르면 하느님은 자신의 자연법칙으로 세상을 창조했고, 인류는 자유의지를 가지며, 때문에 하느님은 재앙을 허락하거나 용인한다. 인간의 원죄를 벌하기 위해, 인생을 시험하기 위해, 또는 교화시키기 위해, 아니면 천국을 향한 영혼들을 정제하거나 순화하기 위해 고통을 허용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겪은 유럽은 이러한 전통 신학으로 인류의 거대한 고통을 설명할 수 있느냐며 의문의 눈길을 보냈다.
이때 탄생한 신학이 `정치 신학`이다.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도로테 죌레, 밥티스트 메츠가 창안한 것이다. 그들은 개인의 종교적 체험이나 도덕에 중점을 두기보다 종교의 공공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메츠는 "평화로운 고요에 머무는 하느님이 아니라 세상의 악에 저항하고 질문하며 고통당하는 하느님"에 눈을 돌렸다. 몰트만은 십자가 사건을 가르키며 "모든 재앙과 하느님에 의한 버려짐, 절대적인 죽음, 지옥의 무한한 모욕, 무(無)로의 추락이 하느님 자신의 존재 안에 있어야만 하느님과의 결합이 영원한 구원이 된다"고 쓴다. 십자가를 기억하듯 모든 고통을 기억하고 연대하며 슬퍼해야 한다는 새로운 신학이다.
저명한 여성신학자 엘리자베스 존슨이 쓴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금기시된 질문과 새로운 신학을 파고든 책이다.
2011년 3월 미국가톨릭주교회로부터 금서(禁書) 딱지를 받았지만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에서 하느님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백인 남성을 위한 하느님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하느님, 흑인을 위한 하느님, 타 종교에 너그러운 하느님의 얼굴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향휘 기자]
<한국일보> 10월 12일자
홀로코스트 와중에, 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A 존슨 지음ㆍ박총 등 옮김
분명 변증론(apologeticsㆍ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관념체계)의 범주에 속하는 책이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미국 포덤대 신학과 교수인 엘리자베스 A 존슨이 썼다.
"예수와 성령은 세상과 자기를 사랑으로 밀접하게 소통하는 단 하나의 또렷한 신비이다… 신성의 신비는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든 현실에 개입하는 존재이며…"(73쪽)
책은 20세기 중반 이후 정치, 과학, 철학, 심리학, 문학에서 용도 폐기된 신의 존재를 힘있게 웅변하는 현대 유신론자의 논변을 담고 있다. 그러나 2011년, 미국 가톨릭주교단으로부터 '중등학교 및 대학에서 읽혀서는 안 된다'는 사실상의 금서 처분을 받았다. 그 미묘한 균열에, 이 변증론이 기독교의 테두리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괜찮은 인문지식으로 읽히는 여유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 균열에 서서 저자가 얘기하는 '신비'를 21세기 신학의 보편성으로 이해하고 싶다.
해방신학, 여성신학, 생태신학 등 현대 신학의 여러 개척지 풍경을 보여주지만 그러한 입장에 매몰되지 않는다. 이 책이 다루는 핵심은 현 시대 크리스천이 가질 수밖에 없는 실존적 질문들이다. 홀로코스트 속에서 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신은 여성답게 행동할 수도 있는 것인가, 진화하는 세상에서 창조주 성령의 존재는 무엇인가… 해답을 구하다 벽에 부딪쳤을 때, 저자는 낡은 성경 주해서의 페이지 뒤로 숨지 않는다. 되레 무신론이 판치는 논변의 복판으로 전진한다.
예컨대 홀로코스트의 문제. 저자는 대학살을 자초한 독일의 정치신학자들의 연구에서 해답의 단초를 찾는다.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타인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고통에 저항할 때만 신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저항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예정된 희생이 아니라 주체적 저항의 십자가에 매달려 현존하는 하나님. 여기서 '크리스천은 세상 모든 고통을 기억하고 연대하고 슬퍼해야 한다'는 당위가 도출된다.
교회 안의 남성주의와 백인우월주의,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관점에 대한 현대 신학의 비판적 논변들도 접할 수 있다. 진보로 볼 수는 있겠지만 이단으로 분류할 성격의 얘기들은 아니다. 오히려 강하게 기독의 신을 옹호하고 있다. 이를테면 지구 생태계 속에서 인간의 겸허를 강조하는 근거가, 이 책 284쪽엔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로 나타난다.
"창조질서의 풍성한 전체 무늬는 호모사피엔스로 가는 길목의 몇몇 단계들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하나님이 창조적으로 거하시는 장소이기도 하다…'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사도행전 17:28)' 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연합뉴스> 10월 8일자
하나님이 낙원에 머물지 않는 까닭은
엘리자베스 존슨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2011년 3월 미국가톨릭주교회는 이례적인 성명을 낸다. 저명한 여성신학자 엘리자베스 존슨이 쓴 책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가 교리와 맞지 않아 학교에서 읽혀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의 금서(禁書) 조치였지만 이 책은 신학자들과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가톨릭교회에서 박사학위를 허락한 최초의 여성신학자 중 한 명인 저자는 '하드코어' 신학자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관용의 수준을 넘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도전했다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대인 홀로코스트 같은 대학살 앞에서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도로테 죌레, 밥티스트 메츠에게서 답을 찾는다.
십자가를 통해야 현실의 고통에 끝까지 함께하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가해지는 모든 부당한 고통에 저항할 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으며, 십자가를 기억하듯 모든 고통을 기억하고 연대하며 슬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매일 2만 5천 명이 굶어 죽는 비참한 세계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는가? 저자의 두 번째 질문이다.
이 질문에 처음 답한 이들은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들에 의해 해방신학이 제3세계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해방신학은 하나님이 만물의 번성을 원하며 이를 방해하는 모든 상황을 미워한다는 것을 성서적 근거로 삼는다. 교회가 경제 정의 회복에 나서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문제 제기는 남성 하나님, 백인 하나님에도 미친다.
하나님을 무심코 '그(He)'라 부르면서 권위의 왕으로 상상할 때 하나님의 모습은 또다른 우상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세상의 생명을 잉태한 하나님의 모성이 회복돼야 여성이 더 이상 '제2의 성'으로 차별받지 않으며, 교회에 깊이 스며든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제도 없앨 수 있다.
흑인신학의 '검은 하나님'은 흑인들의 자존감과 자기애에 큰 영향을 미쳤고 스스로 노예의 사슬을 끊게 함으로써 또 하나의 해방으로 이어졌다.
가난한 자, 여성, 흑인과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 초점을 맞춘 게 생태신학이다. 이 신학은 인간의 탐욕이 빚은 생태적 파괴에 맞서 하나님의 연대를 모든 피조물로 확장시킨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모든 생명이기에 인간에게 쏠려 있던 윤리적 관심을 모든 생명집단에 돌려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종교에 너그러운 하나님의 모습도 고찰했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다른 종교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은 논리적 오류일 뿐 아니라 상대 종교에도 커다란 상처를 줬다고 비판한다. 상대 종교의 영적 세계를 체험해보고 교리를 통해 대화를 나누며 사회 문제에서 연대하는 게 하나님의 자비에 합당하다는 게 저자의 소신이다.
북인더갭. 박총·안병률 옮김. 347쪽. 1만6천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