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태어난 상우일기>
2014.06.10 화요일
내 책상엔 지금 엄청나게 스펙타큘러한 선물이 놓여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인 지금까지, 우여곡절 끝에 운영해왔던 <상우일기> 블로그가 책으로 태어난 것이다!
'틈 속에서 길어올린 고통의 책'이라는 슬로건의 독립 출판사 북인더갭에서, 안병률 대표님과 김남순 실장님! 문학가 부부이자 최고의 책 만들기 전문가인 두 분께서 따뜻한 마음을 모아, 드디어 예쁜 책으로 태어나게 해주셨다.
또 <상우일기>의 표지 디자인은 미국에 사는 황은정 작가님께서 그려주셨다. 얼굴을 뵌 적은 없지만, 내가 블로그에 그렸던 그림들보다 훨씬 기발하고 통통 튀어서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책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명호 사진작가 아저씨께서 나를 모델처럼 찍어주신 사진도 쑥스럽게 웃고 있다.
작년 봄, 북인더갭으로부터 상우일기를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편지를 받고 순간 어안이 벙벙했었다. 블로그에 일기 글을 쓰면서, 어른이 되면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글을 써서 책도 만들어내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한 적은 있었는데, 막상 출판 제의를 받으니 나와 내 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내가 책을 낼만한 자격이 있는지, 나는 아직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글도 좀 두서없는 것 같고... 하지만 책을 내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일 같다.
자신감이 없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나를 흐뭇하게 여긴 계기가 되었고, 한갓 꼬마의 일기를 책으로 발간하려는 북인더갭의 용기와 선택을 믿었다. 두 분이 아니었다면 블로그 <상우일기>가 어떻게 더 큰 세상과 만날 수 있었을까? 평생을 두고 감사한 마음이다. 얼마 전 엄마가 실장님을 만나 짜장면을 먹었는데 실장님께서 그러셨다고 한다. 인문학의 시초는 어린 시절의 한 줄 일기 쓰기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그 얘길 전해 듣고 자신감을 얻었다.
책으로 태어난 <상우일기>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썼던 일기 글이 등장하면서 막이 오른다. 그리고 현재 고등학교 1학년, 대한민국을 분노와 슬픔에 빠지게 한 세월호 비극을 겪은 5월 어느 봄날로 마무리된다. 비극은 아직 현재진행형 중이고 17년 동안 내 또래의 가난한 아이들이 그렇게 살아왔듯이, 철없고 꿈많은 어린 시절을 지나 절망의 늪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사춘기를 거쳐, 거의 웃음을 잃어버린 표정 앞에 <상우일기>는 책으로 태어났다. 그동안 괴롭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블로그에 일기를 쓰면서 진심으로 담고 싶었던 것을 생각해본다. 그건 아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애착이었고, 그 속에서 살아 뒹굴고 숨 쉬고 있다는 확인과 위로였음을 생각하니, 왜 이상하게 가슴이 아파지는 걸까?
나는 <상우일기>를 꼭 끌어안고 내가 <상우일기> 시대 전, 처음 일기 글을 썼을 때의 어린 시절로 시간여행을 하려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았고, 흡수력이 좋은 스펀지 같은 아이였다고 한다. 사실 내가 맨 처음 일기를 썼을 때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장 처음의 기억이라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토이스토리 캐릭터가 그려진 어린이용 공책에 엄마와 같이 붙어 앉아 연필을 잡았던 기억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주로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겨쓰거나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쓰거나였는데, 예를 들면 '나무에서 산소가 나서 내가 감기 다 나았어요.', '엄마, 머리 떼라, 머리가 너무 많아서 아이스크림 같애.', '우리 집은 우주선이고 바깥은 넓은 우주 같습니다~' 뭐 이런 문장들이었다. 엄마는 맞춤법은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저 내가 글을 옮기면 뭔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표정이 한층 젊어지셔서 그게 참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내가 쓴 글이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서툰 연필 글씨체로 엄마의 환한 얼굴을 등불 삼아, 내가 한 말이나 생각을 글로 띄엄띄엄 열심히 옮겨적었었다. 그래서 아직도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은 낡은 나의 일기장을 통해 다시 만나고는 한다.
늦잠을 자 미술학원 버스를 타지 못해서 작은 다리 작은 걸음으로 학원까지 걸어가며 모든 길을 눈 속에 넣어두었던 기억이 일기장에 어설픈 문장으로 남아 있고, 비 오는 날 학원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까닭 없이 울음이 터져 기사 아저씨와 선생님을 당황하게 했던 기억이, 너덜너덜한 일기장에 눈물처럼 비 온 날의 감성으로 남아 있다. 흘러가면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들이, 우리 앞에 놓인 절망의 길이 얼마나 멀지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짧지만 완벽했던 행복의 시간들이, 단어나 글자 몇개, 몇개의 문장을 통해서 지금의 커버린 나와 다시 마주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