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본명은 김남순이다. 황해도 은율에서 남으로 피난와 무사히 정착한 것을 기뻐하며 할아버지께서 돌림자인 홍洪자 대신 남南자로 손주들 이름을 지어주셨다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새로울 것도 없는, 우리 집안처럼 6・25때 살 길을 찾아 남으로 피난온 실향민들의 삶이 어쩌면 나의 첫 장편소설 『힐』의 중요한 단서였던 것 같다.
사람들이 늘 꿈꾸던 남쪽, 하지만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남쪽, 남쪽의 어느 평화로운 부족, 그 부족을 미개하다는 이유로 굴복시킨 제국, 그러나 괴물 같은 제국에 결코 무릎 꿇지 않으려는 한 가족의 이야기. 처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 이 핑계 저 핑계로 거의 6년을 붙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게으름의 끝판왕이다. 2013년에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지 못했다면 아직도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첫 장편이 나온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해주셨던 소설가 최윤 선생님, 그 따뜻한 격려에 감사드린다. 삐딱하고 뚱한 딸을 무한대로 신뢰해주고 응원해주신 부모님, 불효녀는 웁니다… 두 분의 넘치는 사랑에도 마음깊이 감사드린다.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해도 섭섭한 내색 한번 안 하시는 시부모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아이가 아닌, 나의 최고의 여행친구이자 영화친구, 어딘가 나를 닮았지만 어른인 엄마보다 더 여유롭게 웃을 줄 아는, 중학생이 된 아들 성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형제들과 조카들도, 모두 고맙다.
소설을 써놓고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만 해놓는 게 내 취미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돼버렸다. 그러하기에 편집자로, 동업자로, 친구로, 연인으로 복합적이고도 치열하게,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도운 남편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이 차마 새삼스러울 따름이다.
나를 기억하며 내 소설을 기다려준 다정한 친구들에게, 제국을 향해 전의를 불사르며 이 순간도 투쟁하는 용감한 전사들에게, 또한 누군가 희생하며 닦아놓은 길을 생각 없이 뒤따라간 나와 같은 무임승차자들에게, 모두를 격려하고 축복하며, 부끄럽고도 부족한 나의 첫 장편 『힐』을 바친다.
2015년 6월
김조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