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자 도로시아는 의사 리드게이트네 집으로 향했다.
“커소번의 아내라고 전해 줘요.”
하녀가 도로시아를 리드게이트네 응접실로 안내했다.
그런데 뭔가 잘못 본 걸까.
아무리 보아도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사람은 윌 레이디슬였다.
“로저먼드의 보닛은 뒤로 흘러내렸고
그(윌 레이디슬로)를 향한 얼굴은 상기된 채 눈물에 젖어(…)
윌은 그녀 쪽으로 몸을 비틀 듯이 하고
로저먼드의 두 손을 잡고 열성 어린 나직한 음성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1309쪽)
세 사람의 눈길이 드디어 마주쳤다. 그 순간 돌처럼 굳어버린 세 사람.
“아, 실례했습니다, 부인. 저는 리드게이트 씨께 중요한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직접 부인께 전하고 싶었습니다.”
도로시아는 바로 뛰쳐나와 마차를 탔다. 왜?
당장 해석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왜?
나는 왜 도망치는 거지? 도로시아는 혼란스러웠다.
도로시아가 뛰쳐나간 후,
로저먼드는 굳어버린 윌의 소맷자락을 살며시 잡았다.
“손대지 마요!”
‘마치 채찍으로 후려갈기는 듯한’ 목소리였다.
로저먼드를 향한 분노가 불일 듯 일었다.
원망스러운 여자, 참을 수 없는 여자.
윌의 평정심은 깨졌다. 로저먼드와의 우정도 깨졌다.
로저먼드는 안 그래도 질투심에 시달리던 차였다.
내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당신이 나를 위로해줘야지,
그리고 나를 추앙해줘야지… 커소번부인만 바라보지 말고.
“사양 말고 커소번부인의 뒤를 쫓아가세요.”
“이 세상의 여자치고 그 사람과 비교할 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
나는 다른 여자의 살아 있는 손을 만지느니 차라리
죽은 그 사람의 손을 만지고 싶을 정도요.”(1315쪽)
‘윌의 얼굴은 말 없는 분노에 그리고
로저먼드의 얼굴은 말 없는 고통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었다.’(1317쪽)
(윌, 근데 너 되게 웃긴다. 엄밀히 말하면,
니가 니 발로 로저먼드네 찾아간거고
틈을 보이면서 노닥거린 거 아니냐?
그래놓고 도로시아한테 들키니까 왜 로저먼드만 원망하냐?)
윌이 나가자 로저먼드는 바로 정신을 잃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 리드게이트가 진정제를 처방하고 다정스레 위로하자
로저먼드는 다시금 흐느껴 울다 잠이 들었다.
밤에 다시 리드게이트네 집을 찾은 윌.
비겁하게도 낮에 있었던 소란은 말하지 않은 채 부인은 많이 아프냐고 묻는다.
요사이 아내가 과로를 했다고, 아내와 지독히도 싸워댔다고, 고백하는 리드게이트.
그런 뒤 리드게이트는 미들마치에 떠도는 추문을 윌에게 설명했다.
“이 폭로 사건에 자네의 이름이 휘말려 있다는 것을
자네한테 알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자네는 시내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이 사실을 알게 될 게 틀림없어.”(1320쪽)
‘유대인 전당포 주인의 손자 레이디슬로’는
벌스트로드가 자신에게 돈을 주겠다고 회유했던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헷갈리는 분들은 17화를 참고할 것)
스스로를 향해 치밀어오르는 화를
로저먼드를 향해 독설을 퍼부으며 쏟아냈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 리드게이트의 선의가 두려울 정도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윌은 스스로가 혐오스러울 뿐이었다.(비겁한 쉨)
이튿날, 페어브라더 신부 가족과 함께 사제관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 도로시아.
즐겁게 식사를 하는데,
별안간 신부의 이모님이(헨리에타) 가구 밑을 기어다니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거북 껍데기로 된 마름모꼴 상자가 보이지 않아요. (…)
레이디슬로 씨가 주신 거예요. 독일제 상자라고…”
“이모님으로서는 연인의 선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도로시아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왜 윌 레이디슬로라는 이름만 들어도 진정할 수가 없지.
왜 나는 당황하지? 왜 나는 떨고 있지?
겨우겨우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걸어잠갔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신음이 새나왔다.
“아, 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어!”(1326쪽)
‘어째서 그 사람은 내 삶에 파고들어온 것일까?’
도로시아는 마룻바닥 위에 쓰러져 흐느꼈다. 그 상태로 잠이 들었다.
(도로시아, 넌 스무살 나이에 정말 극과 극의 격정을 다 겪는구나)
날이 밝았다. 도로시아는 주춤주춤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목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눈길을 돌렸다.
생명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노동을 위한 저들의 움직임.
‘아침에 일어나 일하러 나가고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온갖 사람들’의 움직임이었다.
(도로시아의 탄력성 진짜 쩐다. 정말, 넘사벽의 에너지야!)
이제는 상복이 아닌 새 옷이 필요했다.
커피를 마시고 11시가 되자, 도로시아는 다시 미들마치로 향했다.
로저먼드를 방문하기 위해.
로저먼드네 내실에서 다시 마주앉은 두 여자.
로저먼드가 생각하는 커소번부인은 자신을 굴욕에 빠뜨린 여자,
질투조차 할 수 없는 여자,
자기보다 월등히 아름다운 여자,
무엇보다 남편에게 은혜를 베푼 여자였다.
“어제는 볼일이 있어서 방문했으나 (…)
리드게이트 씨가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신 것은,
자기가 자신의 변호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에요.
주인을 편드는 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주인의 훌륭한 인격을 처음부터 믿어 왔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부인께서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주제넘다고 생각지 말아 주세요.”(1339쪽)
‘이처럼 예상도 하지 않은 낯선 세계 속을 걸어가는 듯한 기분을 맛보자
로저먼드는 한층 자신이 흔들리고 휘청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까지 없던 엄숙한 양상을 부여하는 새로운 움직임에 밀려서
해야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 있는 도로시아의 이마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을 갖다 댔다.
그리고 두 여인은 그대로 한동안 껴안고 있었다.’(1350쪽)
(오해를 풀면서 같이 눈물을 흘리는 두 여자의 포옹.
존경과 감사의 의미로 로저먼드는 도로시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겠지.
근데 21세기의 드라이한 독자인 나는 읽다가 깜놀했네.
오글거리기도 했고, 투머치한 스킨십이라 느껴지기도 했고.
여튼, 두 여자의 화해는 미들마치 공동체를 위해서도, 그들 개인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결단이자 변화는 틀림없어!)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을 로저먼드는 조용히 응시했다.
“당신, 피곤하신지 눈이 부석부석해요…자, 머리카락 좀 뒤로 넘기세요.”
부부는 다시금 사소한 것에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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