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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서재

한 경주마가 천재로 불린 이후

by 북인더갭 2013. 5. 16.

한 경주마가 천재로 불린 이후

 

율/ 대표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로베르트 무질은 그의 대표작 『특성없는 남자』에서 ‘천재가 된 경주마’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지금이야 ‘야구 천재 ○○○’ ‘축구 천재 △△△’ 같은 말을 흔히 사용하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그런 어법은 꽤 충격적이고 모던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던 듯하다. 무질은 당시 언론에 보도된 ‘천재 경주마’에 대한 기사를 읽고는 경주마 하나가 천재로 불리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를 깊이 고민했다.

 

가령 축구도 없고 경주마도 없던 시절에 천재란 무엇이었을까? 물론 당시에도 경쟁은 있었을 테고 그래서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그런 수재들이 천재로 불리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생을 축구로 보낸 사람, 공만 보이면 잘 훈련된 전신의 근육이 먼저 움직여 상대 진영을 파고드는 사람을 천재라 칭송하는 것을 당시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리라.

 

내 생각에 원래 천재는 좀더 부드럽고 모든 면에서 유연하며 다방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굳이 말하자면 정약용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사람 말이다. 잘 알다시피 다산(茶山)의 관심은 정치학에서 경제학, 건축학, 종교 등을 넘나드는 복합적인 것이었다. 또한 자녀들의 작은 문제까지도 세심하게 챙긴 부드럽고 유연한 가장이었다. 다 빈치는 어떤가. 공식적인 직업은 화가였지만 그는 해부학이나 천문학, 식물학 등에도 식견을 갖춘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했다. 또한 얼마나 산만했는지 그림 하나를 끝까지 완성하는 법이 거의 없었고 그리하여 그 유명한 ‘모나리자’도 미완성인 채 남게 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무질이 고민한 것은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깊은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던 천재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오로지 1등을 위해 단련된 사람 또는 경주마가 들어서게 된 현대의 풍경. 그 후 거의 1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야구 천재, 수학 천재, 피아노 천재 같은 ‘현대적 천재’들은 계속 생산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다 빈치 같은 산만함이 갈수록 홀대받는 현실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 반에는 이른바 산만한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 친구들은 등교하다가 두더지를 잡아서 신발주머니에 넣어오기도 했고 하교할 때는 개구리밥이 가득한 논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뒷동산은 늘 뛰어노는 아이들로 왁자지껄 했으며 어스름이면 골목마다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들의 외침이 어김없이 울려퍼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산만함은 병으로 진단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검사를 받고 장애가 있음을 판정받는다. 놀란 부모들은 눈물을 머금고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독한 약을 아이에게 먹인다. 아이들의 산만함이 혹시 주변의 스트레스를 아이들 나름대로 발산해보려는 정상적인 과정이 아닌지는 의심되지 않는다. 아이가 갑자기 얌전해지고 공부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서야 부모들은 안심한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까지 통제하는 놀라운 현대적 발명품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백년 전 한 경주마가 ‘천재’로 불리던 그 순간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인간과 사물에 대한 부드러운 관심,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 영혼의 자유를 향한 열망 같은 것들은 계량적인 순위에 밀려 사라져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수많은 천재 친구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월간 에세이>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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