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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원체험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책 자칫 종교 서적으로 오해될 만한 이 책의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책장을 얼마 넘기지 않아 풀린다.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 결국 그리스도는 우리가 사는 세상까지 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것이 종교든, 이성이든, 문명이든 그 어떤 얼굴을 하고 있든 간에 구원자는 이탈리아 남부의 소외된 농민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들의 절망적 소외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것이다.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 남쪽, 발바닥 안쪽 산악지대에 해당하는 곳이 오늘날 바실리카타 주로 일컬어지는 루카니아 지방이다. 그리스와 트로이의 정복자들이 이탈리아로 건너와 로마 제국을 건설할 때, 그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토착민들을 배제하고 또다른 정복민족인 에트루리아인들과 손을 잡았다. 사르데냐, 시칠리아, .. 2019. 5. 16.
그리스도가 없고 에볼리가 없는 아름다운 책 모니터에 구글지도를 띄워놓고 이탈리아 ‘에볼리’를 찾는다. 이국의 낯선 도시 이름이 쉴 새 없이 나오는 원고라니, 황홀하다. 그 낯선 도시를 내가 밟아본 것처럼 생생하고도 아련하게 상상한다. 그리고 그 상상이 구축된 지점에서 생각지도 못한 감동이 물밀 듯 밀려올 때, 즉 단순한 공간적 배경으로의 낯선 도시가 아닌, 삶이 이다지나 반짝거리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시공간을 초월해 깨닫는 순간, 나는 외쳤던 것 같다. 헐, 이 원고 대박! 한마디로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모조리 아름다운 것도 모자라, 저 깊은 사색과 날카로운 통찰력의 향연이라니. 호환, 마마, 전쟁보다 무서운 게 있을까? 있을 것이다. 아마도, 체념이 아닐까. 체념은 위대한 통치자다. 그 부정적인 영향.. 2019.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