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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반언어/책 속에서

<언어와 반언어> 책 속에서

by 북인더갭 2026. 8. 12.

책 속에서

 

우리가 머리만 자르고 싶을 때 이발사는 새로운 소식을 전해준다. 우리가 뉴스만을 원할 때 저널리스트는 똑똑해 보이려고 애쓴다. 둘 다 더 높은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17)

 

선동가의 비밀은 자신을 대중들만큼이나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중들은 선동가만큼이나 영리하다고 믿게 된다. (23)

 

문예란을 쓴다는 건 대머리에 컬을 만드는 것과 같다. (33)

 

선동가는 말을 붙잡는다. 예술가는 말에 사로잡힌다. (35)

 

, 황홀한 언어체험의 환희여! 언어의 위험은 사유의 쾌락이다. 저 모퉁이를 도는 것은 무엇인가? 아직 보이지 않는데 이미 사랑에 빠진 것 아닌가. 나는 이 모험 속으로 투신한다. (43)

 

형편없는 화가의 그림은, 순간 입을 벌린 모습으로 그려진 사람이 다시는 입을 다물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59)

 

반대는 그저 기계적인 뒤집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마디를 뒤집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체험과 고통과 인식이 습득돼야 하는가. (65)

 

도덕적 위선자들이 미움받는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것과 다르게 행동해서가 아니라 행동하는 것과 다르게 말하기 때문이다. (72)

 

나는 사생활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나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다. 하나의 새로운 책을 출판해서 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103)

 

세계는 날마다 점점 확장된다는 글이 나오고 있다. 세계가 내적으로 만족한 나머지 외부 정복에 나서는 것일까? 아니면 내부의 적인 어리석음이 이런 길로 이끄는 것일까? 세계의 머리인 언론은 정복욕에 부풀어 올랐고 매일 벌어지는 성취로 터질 지경이다. (150)

 

요령은 계속 작동한다. 훌륭한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가 증명하듯이, 실제 생활을 장식으로 더럽히는 것은 저널리즘이 정신에 침투하는 것과 유사한데, 이는 파국적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163)

 

이 시대에는 통신으로 전달되지 않은 것은 모두 사라져버린다. 그들에게 보고를 해주는 사람들이 그들의 상상력을 대신한다. 언어를 듣지 못하는 시대는 그저 정보의 가치만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