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반언어> 언론 서평 서울신문> 2026. 8. 14. 훔치고 싶은 문장 “선동가는 말을 붙잡는다. 예술가는 말에 사로잡힌다.”비평가 카를 크라우스는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지난 세기 서구 지성의 역사를 한 번쯤 들춰본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반드시 한 번은 그의 이름을 마주칠 것이다. 잡지 ‘횃불’을 창간해 당대 언론, 법, 예술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한 지식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베냐민, 아도르노, 브레히트와 같은 작가들이 크라우스에게 존경을 표했다. ‘언어와 반언어’는 그의 아포리즘과 에세이를 번역한 것으로, 크라우스의 저작이 한국어로 옮겨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동가의 비밀은 자신을 대중들만큼이나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중들은 선동가만큼이나 영리하다고 믿게 된다.” 촌철살인의 문장이 찌르듯.. 2026. 8. 15. <언어와 반언어> 옮긴이 서문 독일어문학,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 문학을 전공했고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번역했던 나로서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활동했던 문인들에게 관심이 없을 수 없었다. 그 중 카를 크라우스는 빈의 문화를 다룬 책마다 등장하는 작가였고, 문제적 작가로 비중 있게 소개되는 인물이었으나 막상 그가 집필한 책들이 번역되지 않아 과연 어떤 작가이길래 이러한 주목을 받는지 늘 궁금했다. 우리가 아는 거장들의 평가 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카를 크라우스가 발행한 잡지 『횃불』Die Fackel의 애독자였던 발터 벤야민은 “침묵, 지식, 정신의 깨어 있음이 논쟁가 크라우스의 특성을 구성한다”고 말했고 아도르노는 “언어를 심판함으로써 사회를 심판하는 작가”로서 크라우스를 높이 평가했다. 빈 출신의 .. 2026. 8. 12. <언어와 반언어> 책 속에서 ▪ 책 속에서 우리가 머리만 자르고 싶을 때 이발사는 새로운 소식을 전해준다. 우리가 뉴스만을 원할 때 저널리스트는 똑똑해 보이려고 애쓴다. 둘 다 더 높은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17면) 선동가의 비밀은 자신을 대중들만큼이나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중들은 선동가만큼이나 영리하다고 믿게 된다. (23면) 문예란을 쓴다는 건 대머리에 컬을 만드는 것과 같다. (33면) 선동가는 말을 붙잡는다. 예술가는 말에 사로잡힌다. (35면) 오, 황홀한 언어체험의 환희여! 언어의 위험은 사유의 쾌락이다. 저 모퉁이를 도는 것은 무엇인가? 아직 보이지 않는데 이미 사랑에 빠진 것 아닌가. 나는 이 모험 속으로 투신한다. (43면) 형편없는 화가의 그림은, 순간 입을 벌린 모습으로 그려진 사람이 다시는.. 2026. 8. 12. 이전 1 다음